소설리스트

54화 (54/190)

54화

“그런데 두 분 서로 이름 부르시나요?”

송철 피디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 본명이요? 네, 그냥 이름으로 불러요. 아, 혹시 방송에서는 활동명으로 불러야 하나요?”

내 질문에 송철 피디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그런 거 없어요. 그냥 편하신 대로 하시면 돼요. 그럼 저희도 그냥 이름으로 부를까요?”

“네네, 피디님 편하신 대로 불러 주세요. 원이라고 하셔도 되고, 서주라고 하셔도 되고. 제 이름은 강서주예요. 이쪽 세가온 씨는 정우진.”

내 말에 우리를 멀뚱멀뚱 보고 있던 정우진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정우진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정우진 씨. 저는 송철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둘이 통성명을 하면서 인사해서 나도 한 박자 늦게 말했다.

“저는 강서주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주변에서 다시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약간 어색한 자기소개 시간이 끝나자 송철 피디가 물었다.

“자, 그럼 혹시 두 분이서 같이 여행하신 적 있으세요?”

“아니요, 여행은…….”

별생각 없이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바다에 간 건……. 드라이브니까 여행은 아니겠지? 내가 말을 끝맺지 못하자 송철 피디가 다시 물었다.

“혹시 있으세요?”

“아니요, 없어요.”

“아, 그러면 이번에 처음이네요? 그러고 보니까 최근에 두 분이서 같이 다니시는 것도 사진 많이 찍히셨더라고요.”

찾아본 건 아니었지만 굳이 듣지 않아도 뭔지 알 것 같았다.

“디저트 가게 앞이나 새벽에 토스트집에서도 찍히셨어요. 혹시 보셨어요?”

“아……. 보지는 않았는데 언젠지 알 것 같기는 해요. 그때 다른 분들도 꽤 많이 계셨어서…….”

“두 분이 바다 전망대 있는 곳으로 유명한 휴게소도 가셨더라고요? 거기 산책로도 있고……. 저도 거기 가 봐서 알거든요. 사진 찍힌 걸 좀 찾아봤는데 엄청…….”

그 말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거기서도 찍혔다고? 마스크도 끼고 모자도 쓰고 선글라스까지 껴서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게다가 누가 우릴 찍고 있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했었다.

“엄청 좀 패션이 특이하셨어요.”

송철 피디가 웃음을 참는 얼굴로 말했다. 그 말에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정우진이 말했다.

“모자 쓰고 선글라스 낀 날이요?”

“네, 맞아요. 두 분이서 알감자도 드시고.”

설마 먹여 주는 것까지 찍힌 건 아니겠지? 사색이 된 얼굴로 혼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정우진이 웃었다.

“그거 선배님이 골라 준 선글라스였어요.”

“서주 씨가요? 아, 평소에 좀 그런……. 하이패션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누가 봐도 그냥 어린애들이 쓰는 장난감 같은 선글라스였는데, 하이패션이라고 포장해 주는 모습에 어색하고 민망해졌다.

“아니, 원래 좀 평범한……. 그런 검은색 선글라스로 사려고 했는데 그런 게 없더라고요.”

“모자도 선배님이 골라 주신 거예요.”

“그건 네가 골라서 산 거였잖아.”

“선배님이 예쁘다고 해서 샀던 거예요.”

“아, 그랬어?”

“네.”

내가 예쁘다고 했었나? 기억이 나진 않았지만 단호한 말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뒷목을 긁고 있는데 송철 피디가 갑자기 우리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제가 사진을 몇 개 가지고 왔거든요.”

뭔가 엄청나게 비밀스러운 것을 보여 주는 듯한 모습이라 의아해하고 있는데 사진을 보니 왜 그런 건지 이해가 됐다.

“이거 방송 나가도 괜찮은 거죠?”

“아…….”

뭔가 이 장면을 예고편으로 쓸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아무튼 안 그래도 걱정했던 건데 아니나 다를까 그게 찍혀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정우진에게 알감자를 먹여 주고 있는 사진이…….

“아, 저도 이거 봤어요.”

“우진 씨도 보셨어요? 사실 이거 굳이 저희 방송이 아니라도 이미 보실 분들은 다 보신 거라 질문이 좀 의미가 없기는 해요.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가요?”

누가 봐도 몰래 찍은 듯한 사진이었는데, 거리가 꽤 가까워서 정우진과 내 얼굴이 정확하게 나와 있었다. 벌리고 있는 정우진의 입에 알감자가 반 정도 들어가 있는 모습이었고 나는 그걸 먹여 주면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자세였다.

“제가 입 벌리고 가만히 있으니까 선배님이 먹여 주신 거예요.”

“아……. 원래 그렇게 평소에 서로 음식을 잘 먹여 주세요?”

송철 피디의 물음에 주변에서 앓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질문도 그렇고 반응도 그렇고 이게 도대체 무슨 컨셉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전에 들은 것도 없어서 어떻게 말을 맞춰야 할지 헷갈렸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손이 없어서……. 지금 보시면 양손에 뭘 다 들고 있었거든요. 근데 감자가 먹고 싶다고 해서 그냥 하나 먹여 준 거예요. 평소에는 그냥 각자 알아서 잘 먹습니다.”

“아, 각자 알아서 잘 드시는군요. 알겠습니다. 어쨌든 그럼 같이 떠나는 여행은 이게 처음일 텐데, 두 분의 첫 여행을 저희와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섭외해 주셔서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네,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가만히 있던 정우진이 내 말을 따라 했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문이 열리면서 고기가 들어왔다. 직원들이 테이블에 밑반찬과 생고기를 세팅하고 나가자 송철 피디가 말했다.

“자, 그럼 배고프실 텐데 우선 배부터 채우죠.”

내 쪽에 집게가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손을 뻗는데 정우진이 내 손목을 잡더니 말했다.

“선배님, 제가 구울게요.”

그 말에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스태프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제가 구울 테니까 편하게 드세요.”

“제가 막내니까 제가 구울게요.”

정우진의 단호한 말에 스태프도 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멤버들이랑 고기를 먹으러 가면 항상 고기를 굽는 것에 자부심이 있는 이진혁이 우리는 아예 손도 못 대게 했기 때문에 사실 나도 고기를 잘 굽지는 못했다.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정우진이 불판 위에 생고기 올리는 것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나선 것치고는 고기를 너무 못 굽는 것이었다.

“…….”

그냥 못 굽는 것도 아니고……. 진짜 존나게 못 구웠다.

정우진의 표정이 진지해서 그런지 스태프들도 말은 못 한 채 불안한 눈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 비싼 소고기를 숯 덩어리로 만들고 있는 걸 도저히 눈 뜨고 지켜볼 수만은 없어서 결국 참다가 정우진의 손목을 잡았다.

“집게 줘 봐.”

“……네.”

정우진도 새삼 자신의 실력이 민망했는지 군말 없이 내게 집게를 건넸다. 그러더니 변명하듯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너무 빨리 타고…….”

“숯불이라서 그래. 원래 숯불이 굽기 더 어려워. 그래서 자주 뒤집어야 돼.”

나는 고기 전문가 이진혁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기 굽는 것에 집중했다. 덩달아 정우진도 내 말을 경청하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

“…….”

하지만 나도 정우진과 별다를 바 없는 초보였다.

“……저기, 그냥 제가 구울게요.”

처음 정우진에게 자기가 고기를 굽겠다고 했던 스태프 중 한 명이 내가 고기 굽는 걸 보다 못해 힘겹게 말을 꺼냈다. 그 말에 나는 조금 전 정우진이 그랬던 것처럼 군말 없이 집게를 건넸다.

“네, 죄송합니다…….”

양손으로 공손하게 건네자 스태프가 전문가처럼 불판 위에 고기를 휘리릭 올리더니 탁탁 치기도 하면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거기에서 이진혁의 모습이 겹치는 걸 보니 저 사람도 고기 전문가가 틀림없었다.

“선배님도 고기 못 구우시네요.”

그때 정우진이 내 옆에 바짝 붙더니 귓속말로 작게 말했다.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더운 숨이 닿자 놀라서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정우진의 어깨를 밀어내며 말했다.

“그래도 너보다는 낫지 않냐? 난 그래도 까맣게 만들지는 않았어.”

내 말에 정우진이 조금 전 자기가 만든 숯 덩어리와 내가 만든 마른 나뭇가지를 접시 위에 나란히 올렸다.

“두 개 똑같은데요?”

“색깔이 다르잖아.”

“진짜 쬐끔만 다르고 완전 똑같은 거 같은데요?”

“너 혹시 색맹이니?”

“아니요? 색맹 아닌데요?”

어이없다는 얼굴로 정우진을 보다가 나는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는 스태프를 바라봤다. 그러자 스태프가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있기라도 했던 건지 자애로운 부처님처럼 웃으며 결론을 내렸다.

“똑같아요.”

“…….”

아니, 진짜 이게 어떻게 같으냐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여기에 내 편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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