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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23/190)

23화

너무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피하지도 못하고 반사적으로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는데 폐병 걸린 환자처럼 거센 기침 소리가 들렸다.

“콜록, 콜록! 콜록!”

“…….”

“콜록! 아, 죄송, 콜록, 콜록! 선배님, 죄송, 콜록!”

“…….”

나는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손을 들어 대충 눈 쪽만 닦았다. 별로 많이 튄 것도 아니고 다행히 눈 안으로 들어가진 않아서 따갑거나 하진 않았다.

“콜록, 콜록!”

정우진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입을 가리고 계속 기침을 해 댔다. 한 손은 내 쪽으로 뻗고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동동 구르는데, 대충 봐도 엄청 미안해하고 있었다.

“사레들었어? 일단 괜찮으니까 앉아.”

손으로 대충 커피를 닦고 있는데 안절부절못하던 정우진이 갑자기 자기 옷으로 내 얼굴을 닦으려고 하는 게 보였다.

“콜록! 콜록!”

“아니, 진짜 괜찮다니까. 일단 앉아. 앉아.”

결국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정우진를 억지로 앉히고 휴지를 찾았다. 하지만 보이지가 않아서 직원을 부르려는데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나도 자리에 앉아서 벨을 누르자 정우진이 좀 진정이 된 건지 내게 말했다.

“괜찮으세요? 죄송해요,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이게 잘못 나온 거 같아서…….”

정우진은 자기 양손을 어떻게 간수해야 할지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기침을 얼마나 했는지 눈에 눈물까지 잔뜩 고여 있었다. 계속 괜찮다고 하다가 정우진의 커피를 들고 한 모금 마셔 봤다.

“선배님!”

그러자 정우진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는 것이었다. 마시다가 놀라서 입을 떼자 정우진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그걸 왜…….”

“아니, 잘못 나온 것 같다길래……. 괜찮은데?”

고개를 갸웃하며 한 모금 더 마셔 봤지만 딱히 이상한 건 없었다. 그냥 내 거랑 똑같은 평범하고 일반적인 아이스아메리카노의 맛인데 뭐 때문에 그랬던 걸까?

그때 조금 늦게, 처음에 왔던 직원이 아니라 다른 직원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부르……셨어요?”

테이블과 내 상태를 보고 놀란 건지 직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 티슈 좀 주세요.”

“네, 잠시만요.”

직원이 티슈를 잔뜩 가지고 와서 그걸로 테이블도 닦고 얼굴도 닦았다. 정우진은 하얀 티슈 한 장을 손에 꼭 쥐고 있다가 팔을 뻗어 내 광대뼈 쪽을 톡톡 두드렸다.

“여기도…….”

“아, 고마워.”

“죄송해요. 저 원래 뭐 마시다가 뱉고 그러지 않는데 아깐 너무 놀라서…….”

“근데 커피 괜찮던데 이상했어?”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정우진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다고요?”

“응, 그냥 평범한 커피 맛이던데?”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정우진이 불신 가득한 눈으로 커피를 가만히 보다가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

“…….”

이번에는 다행히 뿜지는 않았지만 커피가 입술에 닿는 순간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꽉 쥐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나랑은 입맛이 많이 다른 듯했다. 정우진은 아주 비장한 표정으로 천천히 유리잔을 내려놓고 벌벌 떨리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눈은 여전히 감은 상태였는데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면서 젖어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멀뚱멀뚱 보다가 혹시나 싶어 물었다.

“……혹시 써서 그래?”

“에…….”

아직도 쓴맛이 가시질 않은 건지 발음도 불분명했다. 내가 황당해하고 있는 사이 눈을 뜬 정우진이 서러워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이거 사약 아니에요?”

“…….”

“아니, 선배님 입맛이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이게 이상해서…….”

“…….”

나는 갑자기 변명을 하고 있는 정우진을 가만히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왜 시킨 거야?”

“네? 아니, 그게……. 이거 원래 이런 맛 아니지 않아요? 저번에 마셨을 땐 안 이렇던데…….”

“샷 추가했잖아.”

“…….”

내 말에 정우진이 뭐라고 하려는 듯 숨을 마셨다가 다시 내뱉고 또 숨을 마셨다가 내뱉기를 반복하다 결국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너 원래 뭐 마시는데?”

“……그냥……. 물이요…….”

“물? 카페 오면 물을 마신다고? 물만?”

“아니요, 그건 아닌데…….”

“……?”

자꾸 옹알이를 하는 정우진을 보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커피도 원래 안 마시는 거 같은데 왜 이걸 시켜서 먹다가 뿜기까지 했는지도 모르겠고, 아까부터 계속 웅얼웅얼하는 것도 이상했다.

“저 그냥 물 마실게요.”

그때 정우진이 결심한 듯 나를 보며 말했다. 여전히 작은 목소리였지만 단호함이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답답해서 물었다.

“아니, 너 원래 뭐 마시냐고.”

내 물음에 정우진이 아래를 한 번 보더니 시선을 올려 나를 보며 웅얼거렸다.

“……떼요…….”

“뭐?”

“라떼…….”

“라떼? 카페라테?”

다시 물었지만 정우진은 또 입을 다물었다. 이쯤 되니까 어린애를 어르고 달래서 대답을 듣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이렇게 소심한 애가 도대체 아이돌 생활을 어떻게 한 거지?

그래서 회사에서도 신비주의 컨셉으로 밀고 나간 건가? 확실히 이 정도면 그게 최선이긴 한 것 같았다.

“정우진, 너 카페라테 마셔? 그걸로 다시 시켜 줘?”

차근차근 천천히 묻자 정우진이 고개를 저으면서 이번에는 좀 더 확실하게 말했다.

“아니요, 고구마…….”

“고구마라테?”

“네…….”

고구마라테라는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지만 나는 말없이 벨을 눌렀다. 아까 티슈를 줬던 직원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뭐가 필요하냐고 물으며 정우진을 쳐다봤다.

“고구마라테 한잔 주세요.”

“아, 고구마라테요? 아이스로 드릴까요?”

그 물음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정우진이 짧게 입을 열었다.

“따뜻한 걸로.”

“아, 네. 따뜻한 고구마라테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직원이 가자마자 나는 정우진을 보며 물었다.

“사레들린 건 이제 괜찮아?”

“네……. 죄송합니다. 제가 옷 사 드릴게요.”

그 말에 고개를 숙여 가슴팍을 보자 하얀 티셔츠에 커피가 튀어 얼룩이 져 있는 게 보였다.

“괜찮아. 심하게 튄 것도 아니고 그냥 빨면 돼.”

“나중에 직원 오면 호두파이도 다시 시켜 드릴게요. 다 튀어서…….”

“아니야, 이거 옆에 있어서 안 튀었을걸?”

만약 좀 튀었다고 해도 정말 조금, 아주 조금만 튀었을 텐데 한 입도 안 먹은 걸 다 버리기엔 너무 아까웠다. 아무리 자세히 봐도 튄 흔적은 보이지가 않아서 그냥 한 입 먹으려고 하는데 정우진이 갑자기 접시째 잡고 위로 들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먹지 마세요.”

“괜찮다니까? 안 튀었어. 봐봐.”

“아니에요, 제가 새로 시켜 드릴게요.”

단호한 모습에 나는 당황해서 물었다.

“야, 너는 돈이 썩어 넘치냐?”

내 물음에 정우진이 곤란해하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나는 뒤늦게 알아 차렸다. 정우진은 분명 돈이 썩어 넘칠 만큼 많을 것이라는 걸……. 갑자기 민망해져서 헛기침을 하다가 그냥 호두파이는 포기하고 커다란 슈 한가운데를 포크로 푹 찍어서 한입에 넣었다.

“그럼 그건 네가 먹어.”

“…….”

얇고 바삭한 겉과 달리 슈 안에는 부드러운 커스터드크림이 잔뜩 있었다. 맛있기는 했지만 너무 달아서 내 입에는 별로 맞지 않았다. 별로 씹지도 않고 그냥 삼킨 다음에 커피를 마시자 벌써 바닥이 보였다. 얼음 하나를 입에 넣고 씹고 있는데 정우진은 아직도 호두파이 접시를 들고 가만히 있었다.

브라우니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저걸 또 먹어야 하나 싶어 고민하고 있는데, 직원이 따뜻한 고구마라테를 들고 왔다.

“고구마라테 나왔습니다.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호두파이 홀 사이즈로 하나 더 주시고, 이건 치워 주세요.”

“네? 아……. 혹시 뭐 때문에 그러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한 입도 안 드신 것 같아서…….”

정우진의 말에 직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묻는 걸 보며 나는 속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걸 진짜 새로 주문한다고? 아니,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옆에 있어서 하나도 안 튀었는데? 아깝지도 않나?

“뭐가 좀 튀어서요.”

“앗, 네. 알겠습니다. 호두파이 홀 사이즈 하나 맞으시죠?”

“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말한 직원이 한 입도 먹지 않은 호두파이 두 조각을 들고 가 버렸다. 기어이 저걸 새로 시키네……. 그래도 본인이 불편하다는데 어쩌겠나 싶어 나도 그냥 더는 말하지 않았다.

직원이 떠나자 정우진은 잠시 머그잔을 양손으로 잡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한 모금 마셨다. 조금 전 사약 같다던 커피를 마셨을 때와는 표정이 딴판이었다.

나는 편안해 보이는 정우진에게 물었다.

“맛있냐?”

“네, 드셔 보실래요?”

정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됐다고, 너 많이 먹으라고 하려다가 너무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라 좀 궁금해졌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뻗어 머그잔을 가져와 한 모금 마셔 봤다.

“맛있네.”

살면서 난생처음 마셔 본 고구마라테는 갓 구워 껍질을 벗긴 군고구마처럼 부드럽고 달고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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