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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13/190)

13화

곰곰이 그런 생각을 하는데 문득 차가 멈춰 섰다. 횡단보도 앞에서 어린아이들이 손을 들고 건너는 걸 가만히 보다가 물었다.

“근데 우리 어디 가?”

차를 타자마자 대화가 시작돼서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정우진이 고개를 돌려 날 쳐다봤다. 시선이 느껴져 나도 고개를 돌려 쳐다봤는데 아무런 말도 하질 않는 것이었다.

얼굴에 뭐가 묻었나 싶어서 손을 들어 뺨을 만졌다. 선크림이 덜 발렸나? 좀 전에 유노을이 선크림 덜 발렸다고 말해 줬던 턱 부근을 손으로 벅벅 문지르고 있는데 정우진이 말했다.

“저 먹고 싶은 거 있는데 그쪽으로 가도 될까요?”

“어, 되지. 먹고 싶은 게 뭔데?”

“호두파이요. 근처에 엄청 유명한 가게 있다고 해서…….”

그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호두파이? 너도 호두파이 좋아해? 나도 좋아하는데.”

“…….”

디저트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호두파이는 나도 엄청 좋아해서 반가운 마음에 물었는데 정우진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처럼 그냥 가만히 입을 다물고 쳐다봐서 나는 결국 물었다.

“……내 얼굴에 뭐 묻었냐?”

그렇게 물어보면서 핸드폰 카메라를 켜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얼굴을 확인했다. 선크림 자국도 없고 딱히 뭐 묻은 것도 없는데 쟤는 왜 자꾸……. 그러다가 목 언저리가 하얀 걸 발견했다. 나는 놀라 손으로 목을 박박 문지르면서 말했다.

“아, 나오기 전에 선크림을 발라서……. 야, 말을 좀 해 주지 그렇게 계속 쳐다보기만 해, 왜.”

아니, 분명 나오기 전에 꼼꼼하게 확인하고 유노을이 봐 주기까지 했는데 왜 이렇게 선크림이 덕지덕지 발린 거지? 혹시 몰라서 티셔츠 목깃을 들어 어깨까지 손을 넣어 문지르고 있는데 옆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해요.”

“어?”

“저도 좋아해요.”

아주 작고 깃털처럼 보송보송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내 시선을 느낀 건지 정우진이 고개를 푹 숙이자 새카만 머리카락이 사르륵 움직였다.

빵빵-!

그때 뒤에서 커다란 경적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지만 정우진은 꼼짝도 하질 않았다.

빠아아앙-!

그리고 다시 들리는 소리에 나는 손을 뻗어 정우진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야, 너 뭐 해?”

그제야 멈춰 있던 차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를 펴고 정자세로 앉아 무릎 위에 손을 두고 공손한 자세로 앞을 보다가 사색이 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정우진, 너 혹시…….”

“우진이라고 불러 주시면 안 돼요?”

“그래, 우진아.”

“네?”

나는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며 자연스럽게 물었다.

“너 혹시 면허 딴 지 얼마나 됐어?”

“면허요? 한…… 2, 3년쯤 된 것 같아요.”

2, 3년이면 최근은 아니었지만 이건 함정일 수도 있었다. 정우진은 평소에 대부분 매니저랑 함께 다닐 테니까 자기가 스스로 운전을 한 적이 손에 꼽을 것이다.

“왜 그러세요?”

“아니……. 평소에 운전 자주 해?”

“왜요? 혹시 드라이브하는 거 좋아하세요? 저도 좋아해요.”

뭔 소리지? 갑자기 왜 드라이브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맥락을 보면 자주 한다는 뜻 같았다.

“저 스케줄 없을 때 종종 하는데 선배님도 같이하실래요?”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왜냐면 난 살면서 드라이브라는 걸 몇 번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할 땐 지방 행사 때문에 하루에 반은 차를 타고 다녀서 사실 차 타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드라이브하는 거 안 좋아하세요?”

왜 갑자기 드라이브 얘기가 나온 걸까? 운전 자주 하냐고 물어봐서 뭘 오해했나? 드라이브 좋아한다는 사람 앞에서 딱 잘라 싫다고 말하기도 뭐해서 그냥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닌데 가끔…….”

“가끔이요? 며칠에 한 번이요?”

“날짜를 정해 놓지는 않고 그냥 스트레스 받을 때만? 친구가 운전하는 걸 좋아해서 가끔 같이 가는 정도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가다 보니 뭔가 주변 풍경이 익숙한 것 같았다.

“그럼 다음에 저랑…….”

“지금 가는 곳이 혹시 호두 공장이야?”

“네, 선배님도 아세요?”

“아, 거기…….”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찾았다. 그리고 인별에서 호두 공장을 찾아 최근 글을 확인했다.

오늘 개인 사정으로 쉽니다.

“…….”

“왜 그러세요?”

오늘 오전에 올라온 글이었다. 호두 공장은 호두파이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정해진 휴무일도 없이 사장 마음대로 문을 열고 닫았다. 장사를 하다가도 한 시간 만에 문을 닫기도 해서 호두파이 사러 갔던 우리 애들도 헛걸음을 한 적이 많았다.

“오늘 개인 사정으로 쉰다는데?”

“네?”

“여기 원래 문 자주 닫아서 가기 전에 확인해 보고 가야 돼.”

“…….”

내 말에 정우진은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갓길에 천천히 차를 세웠다. 그리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엄청 실망한 것 같은 표정이라 나는 나도 모르게 달래듯 말했다.

“내가 다른 집 아는데 거기 가 볼래? 거기도 호두파이 맛있어.”

“…….”

“거긴 안에서 못 먹고 포장만 되는 곳이기는 한데…….”

“…….”

아무래도 호두 공장에서 파는 호두파이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거기 호두파이를 제일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실망할 일인가 싶었다. 그 모습이 좀 황당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그러니까 어린애가 뽑기를 했는데 자기가 원하는 게 안 나와서 실망하는 것 같다고 할까?

“거기 가 보자. 너 드라이브하는 것도 좋아한다며. 호두파이 포장해서 차 안에서 먹으면 되지.”

내가 웃음을 참으면서 말하자 정우진이 다시 날 쳐다봤다. 나는 앞에 보이는 내비게이션을 만지면서 말했다.

“여기서 별로 멀지도 않아. 호두 공장 말고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곳인데 엄청 골목길…….”

“포레스트 말씀하시는 거예요?”

“어? 너 거기도 알아?”

“네, 알아요.”

호두 공장이랑 달리 포레스트는 골목길에 위치한 작은 가게라 아는 사람만 가는 곳이었다. 나도 근처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라 거길 안다는 사람은 처음 봤다.

“외진 곳에 있어서 안다는 사람 못 봤는데 신기하다. 거기 주택가라 찾아갈 일 없으면 가기 힘든데 무슨 일로 거기까지 갔었어?”

그냥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정우진이 곤란해 보이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걸 보고 있다가 순간 머리에 번개가 치듯 뭔가를 깨달아 버렸다. 내가 너무 눈치 없는 질문을 한 것 같아 얼른 말을 돌렸다.

“아무튼 거기 가자. 괜찮지?”

“네, 저는 아무 데나 다 괜찮아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무룩했던 얼굴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얘도 정말 단순한 것 같았다.

“거기도 문 닫았으면 어떡해요?”

“거긴 안 닫았을 걸? 닫았으면 그냥……. 뭐, 또 다른 데 가야지. 내가 호두파이 맛집 많이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네.”

정우진이 어쩐지 수줍어 보이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차가 움직였고,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운전하고 있는 정우진의 옆모습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동안 스캔들 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역시 사람을 만나기는 했구나. 근데 우리는 연애 금지 조항이 있었는데 쟤들은 그런 거 없나? 아니면 그냥 몰래 했었던 건가?

너무 개인적인 질문이라 물어보지는 못하고 그냥 속으로만 그런 생각을 하다가 포레스트에 도착했다. 골목길이기는 했지만 인적이 없는 곳은 아니라서 나는 안전벨트를 풀면서 말했다.

“내가 갔다 올 테니까 너는 여기에 있어.”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어, 안 돼. 절대 나오지 말고…….”

저번에 편의점 사건도 그렇고 혹시 들키면 사람들이 몰릴 것 같아서 단호하게 말하는데 정우진이 슈렉 고양이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너무 노골적인 눈빛에 깜짝 놀란 나는 움찔, 몸을 떨었다.

“……너 마스크 가져왔어?”

“아니요.”

나는 한숨을 내쉬고 나가기 전에 이진혁이 챙겨 줬던 마스크를 정우진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럼 이거 끼고 나와.”

정우진이 양손으로 마스크를 받더니 움직이지도 않고 그걸 내려다보고 있기만 했다. 또 왜 저러나 싶어서 의아한 표정으로 보다가 나는 다시 깜짝 놀라 말했다.

“아, 그거 새 거야. 걱정 안 해도 돼.”

“네?”

“나오기 전에 뜯은 거라서 한 번도 안 했어.”

“아……. 네.”

어딘지 모르게 좀 떨떠름해 보이는 표정이라 괜히 민망해져서 황급히 말했다.

“야, 내가 설마 너한테 내가 했던 걸 줬겠냐? 진짜 새 거 맞아.”

“네, 알았어요. 근데 새 거 아니어도 괜찮아요.”

“새 거 맞다고. 진짜 맞다고. 빨리 마스크나 껴.”

내가 빠르게 말하자 정우진이 천천히 마스크를 얼굴에 썼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건지 너무 커 보여서 나는 내 귀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너무 크면 마스크 줄 한 번 꼬아서 귀에 해 봐.”

“네?”

“마스크 줄 한 번 돌려서……. 그러니까 한 바퀴 돌려서.”

“한 바퀴 돌려서?”

정우진이 마스크를 벗더니 그걸 걸레 짜듯이 돌리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눈으로 그 광경을 보다가 나는 황당한 얼굴로 마스크를 빼앗다시피 가져왔다.

“여기를 이렇게 돌리라고, 줄을. 그럼 얼굴에 딱 붙어서 안 헐렁거려.”

마스크 줄을 한 바퀴 돌려서 귀에 거는 시늉을 한 다음 정우진에게 다시 건넸다. 근데 너무 손동작도 어색하고 표정도 어리바리해서 결국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마스크를 가져왔다. 그리고 정우진 얼굴에 대주고 줄도 한 번 꼬아서 귀에 걸어 줬다.

“이렇게 하라고.”

“…….”

“아무튼 사람들이 알아볼 거 같으면 바로 차에 타.”

“……네.”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정우진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다가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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