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댓글은 너무 빨라서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희미하게 잔상이 남은 글자를 대충 해독해 보면 거의 대부분이 청혼하는 글이었다. 사실 댓글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나는 정우진만 빤히 쳐다봤다.
핸드폰을 들고 고개를 숙인 자세로 찍고 있는 건지 화면 전체에 얼굴이 가득했다. 눈 안 보이는 노인도 아니고 왜 이렇게 가까이에서 찍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계속 화면을 보고 있기가 좀 부담스러웠지만 일단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제가 떡볶이 사 달라고 한 거예요. 근데 매운 떡볶이로 잘못 와서 먹다가 눈물이 났던 거고……. 제가 자꾸 우니까 형이 아이스크림도 사 주셨거든요. 튀김도 엄청 많이 사 주시고 김밥이랑 순대랑 어묵이랑…….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이는 표정으로 정우진이 우리가 먹었던 메뉴를 줄줄 읊었다. 왠지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유노을과 김강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묻자 김강이 입을 열었다.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오늘?”
“진짜 형한테 떡볶이 사 달라고 온 거야? 우리 연습실에?”
“어…….”
대답하면서 나도 믿기지 않아 말끝을 흐렸다. 당사자인 나도 아직 어리둥절한데 둘은 얼마나 황당할까? 아니나 다를까 유노을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거 또 어슬렁거리면서 대표님한테 이상한 소리 하려고 근처에 있었던 거 아니야? 저번에도 그랬잖아. 사한결이 이상한 헛소리해서.”
“아, 그게 사한결이었어?”
“걔 자꾸 마주치기만 하면 눈깔을 귀신처럼 뜨고 째려봐서 부담스러워 죽겠어. 짜증 나고. 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나이도 어린놈의 새끼가.”
유노을이 진절 넌더리를 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한결은 정우진과 같은 그룹의 막내였다.
-예전부터 팬이었고 정말 존경하는 선배님이라 친해지고 싶어서 제가 말도 안 하고 그냥 찾아갔던 거예요. 근데 쫓아내지도 않고 떡볶이도 사 주시고 아이스크림도 사 주셨는데, 이런 오해가 생겨서 너무 죄송하고 저도 당황스러워요.
말을 하면서 정우진은 한숨을 내쉬며 턱을 괴었다. 화면이 움직이면서 이마와 눈이 잘리고 보이는 건 코와 입, 그리고 턱뿐이었다. 댓글 창에 얼굴 보여 달라는 말밖에 올라오지 않았지만 정우진은 자기 할 말만 꿋꿋하게 이어 나갔다.
-제가 선배님이라고 하니까 형이라고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다시 선배님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너무 폐를 끼친 것 같아서……. 이런 논란이 생긴 거 자체가 정말 말이 안 되고……. 아무튼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걱정하시는 그런 일들은 없었어요.
말을 끝낸 정우진은 핸드폰을 들어 다시 자기 얼굴을 비췄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핸드폰을 얼굴 가까이에 댄 정우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화면을 보다가 별안간 웃었다.
눈매가 둥글게 휘어지면서 입이 살짝 벌어지고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순식간에 변한 표정에 잠시 당황하고 있는 사이 정우진이 말했다.
-그럼 이만 끌게요.
정말 단 한 조각의 미련도 없는 것처럼 라이브 방송은 그렇게 순식간에 종료됐다. 그럼과 동시에 현관문이 열리면서 이진혁이 들어왔다.
“나 왔악!”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던 이진혁은 거실에 서 있는 우리를 보고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도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 왜 저렇게 놀랐는지 알 것도 같아서 나는 발로 유노을의 다리를 퍽퍽 차면서 말했다.
“빨리 씻으러 들어가, 들어가.”
“아, 왜 때려! 갈 거야! 간다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거실에 서 있던 유노을은 나한테 차여서 씻으러 갔다. 이진혁은 아직도 충격이 다 가시지 않은 얼굴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 아무리 더워도 사람이면 사람답게 좀 살자……. 원시인도 아니고 왜 옷을 벗고 있어?”
“나는 안 벗었잖아. 그리고 원시인도 사람이야. 원시인 무시해?”
“나도 안 벗었어. 쟤만 벗은 거지.”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거기서 뭐 하고 있었던 거야?”
뒤늦게 온 이진혁에게 김강이 라이브 방송에 대해 설명해 주는 사이, 나는 다시 레몬을 마저 씻으러 주방으로 갔다.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까지 씻은 레몬 한 개를 4등분으로 잘라 접시에 담았다. 역시 하나씩 통째로 먹으면 속 쓰릴 수도 있으니까 그냥 조금만 먹는 게 나을 것 같았다.
***
유노을, 김강, 이진혁 순서로 씻고 나와 우리는 다 같이 거실 바닥에 둘러앉았다.
“세가온이 일부러 형한테 접근했을 가능성은 없어?”
이진혁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다른 애들도 다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이럴 수밖에 없는 게 다들 한 번씩은 당한 게 있었다.
배틀 브라더스. 그러니까 정우진이 속한 그룹의 멤버들은 나이순으로 일미르, 이솔, 세가온, 사한결 총 네 명이었는데 그중 제일 첫 번째 멤버인 일미르는 나와 동갑이었다.
일미르는 데뷔하자마자 김강의 나이가 자기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반말을 하면서 열심히 하자고 말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나이가 많으니 반말은 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상대가 같은 업계의 선배였고 그게 첫 만남이라는 것이었다.
사한결은 아까 말했다시피 우리 연습실 근처에서 매번 기웃거리다가 유노을과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한 보복인지 뭔지 대표님에게 초등학생이 선생님에게 고자질하듯 우리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솔은 딱히 대놓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그냥 우릴 봐도 인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근데 이솔은 우리뿐만 아니라 대표님 외에 다른 사람에게는 인사하지 않기로 유명하긴 했다.
아무튼 이솔을 제외하고 다른 멤버들의 기행을 내가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워낙 들은 게 많아서 나도 사람인지라 비비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걔가 나한테 일부러 접근할 이유가 없잖아. 뭐 얻을 게 있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같이 떡볶이 먹으면서 얘기해 보니까 나쁜 애는 아닌 것 같던데.”
정우진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내가 느낀 그대로 말하자 유노을이 못 들을 얘기를 들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물었다.
“형, 그게 무슨 소리야? 걔들이 우리한테 어떻게 했는지 기억 안 나? 다 잊어버렸어?”
“기억나긴 하는데……. 정우진이 뭘 어떻게 한 적은 없지 않았나?”
“걔도 인사 안 하던데?”
그때 이진혁이 거들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랬구나, 정우진도 인사를 안 했구나…….
“겨우 인사 안 하는 걸로 이런 말 하는 게 이상할 수도 있는데, 같은 회사 다니면서 지나가다가 마주치면 인사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같은 아파트 옆 호수에 사는 서먹한 이웃도 아니고…….”
이진혁의 말에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사실 인사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는데 그 기본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랑은 별로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이쪽 일을 하다 보면 워낙 자기 잘난 맛에 취해서 남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더욱 그랬다.
그때 계속 가만히 있던 김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근데 아까 라방에서 말하는 거 보니까 착하던데…….”
“야! 그거 다 이미지 관리야! 너 같으면 라방 하는데 막 평소처럼 그렇게 욕하고 형들 깔보고 그러겠냐?”
“내가 언제 형들을 깔봤다고 그래? 그리고 난 욕 안 해. 루머 퍼트리지 마. 나 그거 진짜 예민하니까.”
“아무튼 형도 조심해. 저번처럼 또 옆에서 알짱거리다가 대표님한테 이상한 소리 할지도 모르니까. 아니면 뭐 약점 같은 거 잡아서 그걸로 협박하려고 그러는 걸 수도 있고.”
협박을 왜 하지? 돈도 나보다 훨씬 더 많을 거고 팬도 많고 인기도 많은데. 딱히 약점이라는 걸 잡아 봤자 나한테 뜯어낼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유노을의 말처럼 나도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들이 많은 건 사실이었다.
근데 또 표정이나 행동 같은 걸 보면 정말 어떤 음모를 꾸미고 접근했을 것 같지는 않고…….
“일단 그건 됐고, 빨리 이거나 먹어. 무슨 참기 대회 한다며.”
쓸데없는 생각은 접어 두고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접시를 가리켰다. 그 위에는 정확하게 4등분된 레몬 조각이 동그랗게 놓여 있었다. 비장한 표정으로 레몬을 한 조각씩 드는 애들을 보며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얘들아, 나 정말 괜찮고 악플이나 루머 같은 거 진짜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는데 이건 그냥 안 하면 안 될까?”
“형이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내 말에 이진혁이 제일 먼저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런 우리를 무시하고 유노을이 입을 열었다.
“셋 샐 동안 안 먹으면 진다. 하나, 둘, 셋.”
뭐라고 할 틈도 없이 시작된 카운트다운에 우리 넷은 동시에 레몬을 입 안에 넣고 씹었다. 순식간에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이면서 턱뼈 안쪽으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 났다.
“어으, 씨.”
가장 먼저 소리를 낸 건 나였다.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데 이진혁이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탁자 위로 엎어졌다.
“으에에엑…….”
유노을과 김강은 눈을 깜빡거리지도 않고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정말 정신 나간 애들 같았다. 바보 같은 짓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웃기기는 했으니까 그걸로 된 것 같기도 했다.
“…….”
그렇게 훈훈하게 끝내려고 했는데 1분이 지났는데도 계속 눈싸움을 하고 있는 지독한 애들을 보며 나는 정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입 안에 신맛도 다 사라졌을 텐데.
“그냥 비겼다고 해.”
“…….”
“…….”
“에휴.”
나는 한숨을 내쉬며 쓰러진 이진혁을 부축하며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