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설마 얘도 봤나? 지금 사진 찍힌 거 댓글 보고 내가 곤란해할까 봐 일부러 사진 찍어서 올린 건가?
그게 아니면 굳이 지금 이 상황에 이런 사진을 찍어서 인별에 올릴 이유가 없었다. 아니면 상황을 모르는데 그냥 우연히 지금 이 타이밍에 올린 건가? 아무튼 이유가 어찌 됐든 계속 세가온을 혼자 둘 수 없어서 다시 연습실로 돌아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세가온이 나무젓가락을 입에 문 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안 먹고 있었어?”
음식이 줄어들지 않은 것 같아서 좀 머쓱한 표정으로 묻자 세가온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선배님 오시면 같이 먹으려고…….”
“아……. 먹어, 먹어.”
내 말에 세가온이 고구마튀김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기 시작했다. 쟤는 아까도 저거 먹고 있더니 도대체 언제까지 먹는 거야? 사실 별로 배가 고픈 게 아니었던 거 아닌가?
근데 일단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었다.
우리 같이 아이스크림 먹는 거 사진 찍혔는데 내가 너 군기 잡아서 울렸다더라, 웃기지 않냐?
우리 같이 사진 찍혔는데 지금 댓글 천 개도 넘어. 나 이렇게 댓글 많이 받아 본 적 처음인데, 고맙다.
너 방금 인별에 사진 올린 거 혹시 알고 올린 거야?
“…….”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몇 가지 말들을 생각해 보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져 슬쩍 고개를 들자 세가온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걸 보며 나는 왠지 지금 이 상황을 세가온도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인별에 사진 올린 것도 그럼 정말 내가 곤란해할까 봐 일부러 찍어서 올린 게 맞는 걸까?
“선배님, 혹시 같이 사진 찍어서 인별에 올려도 될까요?”
그때 세가온이 어딘지 모르게 긴장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 물음에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진? 또? 너 아까도 올렸잖아.”
“보셨어요?”
“어? 아……. 어, 봤지.”
“저 팔로우 안 하셨잖아.”
“어어, 근데 유노을이……. 같은 멤버 있는데 사진 보내 줘서 아까 봤어.”
내 말에 세가온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갑자기 어색한 침묵이 흘러서 당황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사진 찍어. 괜찮아.”
“인별에 올려도 돼요?”
방금도 올려놓고 왜 굳이 이걸 물어보는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안 될 건 없었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는 세가온이 일부러 내 생각을 해 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 괜찮아. 올려.”
“팔로우해도 돼요?”
“어어, 되지.”
“선배님도 저 팔로우해 주실 거예요?”
“어어, 할게.”
나는 세가온의 옆으로 다가가며 말을 잘 듣지도 않고 무작정 고개를 끄덕거렸다.
“핸드폰으로 찍을 거지?”
“네, 제가 찍을까요?”
“네가 편할 대로 해.”
내 말에 세가온이 긴 팔을 뻗어 핸드폰을 들었다. 한 화면에 두 사람이 모두 잘 나오지 않아서 조금씩, 조금씩 세가온에게 붙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자세를 취한 뒤 고개를 옆으로 젖히고 웃었다.
“…….”
“…….”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촬영음이 들리지 않았다. 계속 화면을 보면서 웃고 있다가 점점 얼굴에 경련이 올 것 같아서 나는 최대한 표정과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복화술을 하며 물었다.
“동영상 찍냐?”
“아, 아니요……. 아니요, 사진 찍을 거예요.”
“……?”
목소리가 너무 떨리고 있어서 나는 결국 의아한 얼굴로 세가온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 화면으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직접 보니 얼굴이 많이 빨개져 있었다.
아까 그렇게 매운 불지옥 떡볶이를 먹고도 빨개지기는커녕 창백하기만 했던 얼굴이……. 얼굴도 그렇고 귀랑 목까지 시뻘겋게 불타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혼자 벌게진 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아직도 매워?”
“아니요.”
“근데 왜 그래, 갑자기?”
“……죄.”
“죄?”
“죄송합니다…….”
“…….”
별안간 세가온이 죄를 지은 사람처럼 사과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황당한 얼굴로 세가온을 가만히 쳐다봤다.
빨개진 것도 그렇고 목소리가 떨리는 것도 그렇고 표정이나 행동이 꼭 어디서 많이 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이기는 한데, 세가온이 날 앞에 두고 이런 행동을 할 리가 없어서 긴가민가했다.
그러니까 지금 세가온은 꼭……. 만나고 싶었던 연예인을 팬 사인회에서 처음 만난 수줍고 내성적인 열성팬 같았다.
신빙성 없는 생각이기는 했지만 그게 아니라면 세가온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혹시 얘 진짜 내 팬인가? 날 좋아하나?
“……사진 내가 찍을까?”
“네? 아, 네. 이걸로 찍어 주세요.”
별 등신 같은 생각이 들어서 나는 얼른 생각을 접고 세가온에게 물었다. 세가온은 내 말에 양손으로 공손히 내게 핸드폰을 건넸다. 허리까지 살짝 숙이는 모습이 꼭 교장 선생님에게 표창장을 받는 초등학생 같았다.
“음……. 그래, 아무튼 이쪽 봐.”
“네.”
카메라 어플을 다시 켜고 팔을 뻗었다. 액정에 비친 내 모습과 세가온의 모습을 번갈아 보며 사진 찍을 타이밍을 보고 있는데, 애가 또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카메라를 잘 바라보는가 싶더니 점점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도 모자라 결국에는 고개를 푹 숙이는 게 아닌가. 귀가 빨개진 게 화면으로도 다 보일 정도였다.
“야, 고개 좀 들어.”
“네.”
“카메라 보고.”
“네.”
대답은 잘 했지만 행동은 영 시원찮았다. 못 볼 걸 보는 사람처럼 힐끗힐끗 카메라를 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눈을 질끈 감기까지 하는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고 있던 나는 결국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리고 크게 웃자 옆에서 세가온이 화들짝 놀라는 게 느껴졌다.
“야.”
“……네?”
“아니, 너 왜 자꾸 부끄러워해?”
“네? 저 안 부끄러워했는데요?”
누가 봐도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은 얼굴로 세가온이 황급히 부정했다. 그 모습이 또 너무 웃겨서 나는 다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자꾸 고개 숙이지 마.”
“네…….”
“카메라에서 눈 떼지 말고. 아니면 그냥 둘 다 카메라 보지 말고 다른 곳 보면서 찍을래?”
“아니요, 그냥 카메라 보면서…….”
“그래, 아무튼 찍는다.”
“네.”
다시 표정을 갈무리하고 세가온 옆으로 가서 핸드폰을 높이 들었다. 카메라가 켜지자 살짝 상기된 얼굴로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는 세가온의 얼굴이 비쳤다. 또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고 사진을 찍었다.
찰칵.
“됐어. 수고했다, 수고했어.”
큰일을 치른 세가온을 독려하며 찍힌 사진을 확인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표정이 더 가관이었다.
입술을 꾹 다물고 귀까지 빨개진 얼굴로 있는 힘껏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너무 웃기기만 했다. 그리고 내 얼굴도 그리 잘 찍힌 건 아니었다. 자꾸 웃음을 참으려고 하다 보니 그게 그대로 사진에 드러나 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잘 나온 사진 같아서 만족했다.
“선배님은 안 찍으세요?”
“뭘?”
“사진이요.”
방금 찍었는데 무슨 소리지?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고개를 갸웃하는데 세가온이 내 핸드폰을 손가락으로 슬쩍 가리켰다.
아, 설마 내 핸드폰으로도 사진 찍으라는 소리인가?
뭔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못 찍을 것도 없어서 나는 내 핸드폰을 들고 다시 세가온에게 다가갔다.
“아까처럼 똑같이 찍는다?”
“네.”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조금 전이랑 자세가 똑같았다. 다른 사진인데 너무 같은 사진처럼 보이는 것도 좀 이상해서 나는 고민하다가 세가온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브이까지 했다.
“…….”
닿아 있어서 그런지 세가온이 필요 이상으로 놀라는 게 고스란히 다 느껴졌다. 너무 오버했나? 좀 머쓱해져서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내가 너무 친한 척했나?”
“아니요. 저 어깨동무 좋아해요.”
“……괜찮지?”
“네, 괜찮아요.”
“그래, 찍는다.”
“네.”
찰칵.
사진이 찍히는 순간 세가온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아, 다시 찍자.”
“……네.”
“찍는다?”
“네.”
“하나, 둘, 셋.”
찰칵.
이번에도 세가온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괜찮아, 셋 하면 찍을게.”
“네.”
“하나, 둘, 셋.”
찰칵.
이번에는 다행히 고개를 숙인 건 아니었는데 세가온이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
나는 좀 황당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바로 옆에 있는 세가온을 쳐다봤다. 일부러 이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너 혹시 사진 찍기 싫니?”
“아니요. 이번에는 진짜 잘 찍을게요.”
자기가 찍자고 해 놓고 왜 자꾸 이러는 거지? 혹시 이게 세가온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장난을 친 걸까? 개그인가? 내가 너무 센스 없이 못 알아보는 건가? 혼란스러운 기분이었다.
“찍는다.”
“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또 세가온이 장난을 칠까 봐 말했다.
“네가 하나, 둘, 셋 해.”
“하나, 둘…….”
“…….”
“……셋.”
찰칵.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잘 찍힌 것 같았다. 어깨동무하고 있던 팔을 풀고 사진을 자세히 확인하자 세가온의 시선이 아래를 보고 있었다. 그래도 고개를 숙인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지금 사진 올리실 거예요?”
“어?”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사진을 올리다니? 설마 인별에 올리라는 건가? 아니, 나는 사진 올릴 생각은 없었는데……. 내가 잠시 입을 다물자 세가온이 다시 말했다.
“저도 지금 올릴 건데 선배님도 지금 올리실 거예요?”
그 말이 꼭 너도 지금 당장 사진을 올리라고 하는 것만 같아서 잠깐 당황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플을 켰다.
“어어, 지금.”
“저 팔로우 받아 주세요.”
“그래.”
“선배님도 저 팔로우해 주세요.”
“어어.”
“감사합니다.”
“아니, 감사까지야…….”
나는 세가온과 인별 맞팔을 하다가 갑자기 신문지 위에서 싸늘하게 식어 가는 음식들이 떠올라 시선을 내렸다. 세가온 근처에 반쯤 먹다 만 고구마튀김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갑자기 한숨이 나왔다.
우리 도대체 밥은 언제 먹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