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너무 과한 반응이라 당황하기는 했지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고작 두 살 차이기는 했지만 후배라서 더 그런 걸지도 몰랐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도 예전에 지방 행사 많이 다닐 때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때 못 먹고…….
끼니는 그냥 차 안에서 김밥 같은 것만 주워 먹고 그랬던 기억이 났다. 쟤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인기도 많고 스케줄도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을 테니 더 바쁘고 힘들 것이다.
왠지 좀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측은하게 보다가 세가온을 데리고 다시 연습실로 돌아갔다.
연습실 바닥에는 미처 치우지 못했던 음식들이 신문지 위에 그대로 있었다.
“떡볶이는 매우니까 먹지 말고 다른 거라도 좀 먹자.”
세가온이 점심도 굶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우리는 다시 자리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반으로 부러진 젓가락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안 그래도 지쳐 보이는 세가온이 더 불쌍하게 여겨져 결국 나는 새 젓가락을 뜯어 정확히 반으로 나눠 그에게 건넸다.
“이걸로 먹어.”
“감사합니다.”
“그래…….”
오늘따라 유독 힘들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데 내 착각인 걸까?
아무튼 먹지 않을 떡볶이는 멀리 밀어 두고 남은 음식을 먹었다. 많이 식고 튀김은 좀 눅눅해져 있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먹다 보니까 떡볶이 국물이 간절해서 아주 조금만, 정말 조금만 찍어서 튀김이랑 같이 먹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진짜 조금만 찍으면 괜찮지 않을까? 김밥도 있고 순대도 있으니까……. 엄청 매우면 김밥 두 개를 한꺼번에 입에 넣고 씹으면 좀 낫지 않을까? 혼자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진동했다.
액정을 확인하니 3이라는 숫자가 떴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슬쩍 세가온을 바라봤다. 고구마튀김을 먹고 있던 세가온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딱히 쟤한테 뭐라고 한 적도 없고 그 전에 알던 사이도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불편해하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 무서운 사람이라든가 꼰대라고 소문이 난 것도 아닐 텐데…….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이는 세가온을 잠시 보다가 혹시나 싶어서 물었다.
“전화 좀 받아도 되지?”
“네, 괜찮아요. 편하신 대로 하세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기도 전에 핸드폰 너머로 날 부르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형!
그렇지 않아도 조용한 연습실에 날 부르는 비명 같은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이렇게 다급하게 전화할 일이 딱히 없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는데 유노을이 다시 대뜸 물었다.
-혹시 지금 세가온이랑 같이 있어?
그 물음에 나도 모르게 세가온을 힐끗 보면서 핸드폰의 볼륨을 최대한 낮췄다. 그래 봤자 이미 들은 것 같지만…….
“그건 왜?”
-둘이 아이스크림 먹었어?
“어떻게 알았어?”
-뭐? 진짜? 그게 진짜 형이랑 세가온이라고?
아이스크림 먹은 게 왜? 그리고 얘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건지도 의문이었지만 별것도 아닌 일인데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누가 보면 아이스크림을 먹은 게 아니라 못 먹을 거라도 먹은 건 줄 알겠다.
세가온은 핸드폰 너머로 자기 이름을 들었을 텐데도 우리의 대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건지 자기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먹은 게 왜? 너 친구 만나러 간다며? 연습실 근처에 있었어?”
혹시 근처에 있다가 본 건가 싶어서 묻는데, 갑자기 세가온이 내 쪽으로 등을 보이더니 핸드폰을 위로 드는 게 보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형이랑 세가온 둘이서 아이스크림 먹는 거 사진 찍혔는데 걔 막 울고 있다고 난리 났잖아.
찰칵.
“……?”
찰칵, 찰칵.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카메라 촬영음에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에서는 유노을이 자꾸만 뭐라고 하고 있었고, 앞에서는 세가온이 팔을 높이 들고 계속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황당한 얼굴로 세가온의 뒤통수를 보다가 물었다.
“너 지금 사진 찍고 있어?”
-사진은 갑자기 무슨 사진? 나 갑멘에서 차슈 다섯 번 추가한 라면 먹고 있는데?
“아니, 너한테 한 말이 아니라…….”
“아, 네. 선배님이 떡볶이 사 주신 기념으로……. 지울까요?”
“뭐? 아니…….”
그렇다고 또 찍은 사진을 지우기는 왜 지워? 세가온의 표정이 꼭 혼나서 풀이 죽은 애처럼 보여서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 정신도 없고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 잠깐 전화 좀 받고 올 테니까 먹고 있어. 그리고 사진 안 지워도 돼.”
“언제 오세요?”
“어? 금방 올 거야.”
“빨리 오세요. 기다릴게요.”
“어어, 어? 어……. 그래.”
대답하고 돌아서는데 뭔가 말투가 좀 이상한 것 같아서 고개를 갸웃하다가 연습실을 나왔다.
-형 지금 세가온이랑 같이 있었던 거야?
“……어, 근데 너 아까 뭐라고? 아이스크림 먹는 게 왜?”
-연습실 앞에 편의점에서 먹었던 거 맞지? 거기 파라솔에 앉아서.
“맞아. 그게 사진이 찍혔다고?”
-응, 근데 세가온 울고 있어서 지금 형이 걔 기합 줘서 울렸다고 난리 났음.
기합은 또 무슨 기합이야? 나는 슬렁슬렁 복도를 걷다가 황당해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내가 걔한테 기합을 왜 줘?”
-사진 올라온 게시물 지금 댓글 천 개도 넘었어. 형이 걔 울렸다고.
“아니, 내가 울린 게 아니라 떡볶이가 매워서 운 건데 기합은 무슨 기합이야.”
-뭐라고? 떡볶이가 매워서 울었다고? 아니,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떡볶이가 맵다고 울어…….
“너도 저번에 먹어 봤다고 안 했어? 5단계 불지옥 맛. 넌 그거 먹고 강이한테 약 사 오라고 울고불고 난리 쳤다며…….”
-뭐?! 그걸 먹었다고?!
“아무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진이 어디에 올라왔는데?”
-내가 단체 메시지 방에 보낼 테니까 봐봐.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정신없는 통화를 마치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멤버들이 다 같이 있는 단체 메시지 방을 여니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그룹채팅 | 4
3 (사진) |
3 미친 세가온 룰루 떡볶이 5단계 불지옥맛 먹고 운거래 |
2 헐 불지옥맛? 그걸 먹었다고? 근데 그걸 왜 형이랑 둘이 먹었대? |
3 몰라 그거 진짜 엄청 매운데... |
4 노을이 형 그거 먹고 응급실 갈 뻔했잖아 |
3 진짜 개매운데 아 그걸... |
2 불지옥맛 먹인 거면 그냥 기합 준 거 맞는 거 아니야? |
4 ㄹㅇ........... |
3 헐 맞네... 형이 기합 줘서 울린 거 맞네... |
3 불지옥 그걸... 아 진짜 개매운 건데... |
3 사람이 어떻게 그러냐... 아무리 싫어도 불지옥맛 그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