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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3/190)

3화

난 들어 본 적도 없는데? 설마 자랑하러 왔나? 아니면 날 같은 소속사 선배도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안무가A로 알고 있는 거 아니야?

너무 황당하면 화도 안 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한테 가르쳐 달라고?”

“네.”

“난 들어 본 적도 없는데 그걸 왜 나한테 가르쳐 달라고 해? 안무를 내가 짠 것도 아닌데.”

“안 들어 보셨어요? 들려 드릴까요?”

“……?”

세가온이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지금 나만 이해가 안 되나? 우리가 대화를 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서로 말은 하고 있는데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술이 아니면…… 혹시 마약이라도 했나? 얼마 전에도 어떤 아이돌이 대마초를 상습적으로 흡연했다는 기사가 뜬 적이 있었다. 말하는 것도 이상하고 얼굴이 살짝 상기되어 있는 것도 그렇고, 자꾸 오락가락하는 게 아무래도 의심스러웠다.

눈을 가늘게 뜨고 세가온의 얼굴을 살펴보고 있는데, 핸드폰에서 동양적인 느낌의 사운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BB는 처음 데뷔할 때부터 컨셉이 동양적이었는데 그게 노래와 헤어, 메이크업, 코디까지 이어졌다. 멤버들마다 각자 담당하고 있는 것도 있었는데 어딘가에 오랫동안 깃들어 있다가 사람으로 변한 도깨비라고 해야 하나? 세가온은 검 도깨비였던 것 같은데…….

대표님의 취향인지 이런 걸 너무 좋아했다. 어나더도 처음 데뷔할 때 각자 멤버들마다 정해진 컨셉이 있었는데, 참고로 내 컨셉은 츤데레 연하남이었다.

지금은 흐지부지된 컨셉을 떠올리다가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세가온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너무 티가 났던 걸까? 나는 찔려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네.”

“여기가 제 파트예요.”

“아……. 제목이 뭐야?”

“연리지요.”

“아, 좋네.”

노래가 좋은 것도 사실이고 제목도 괜찮은 거 같은데 문제는 우리가 이런 대화를 해 본 게 처음이라는 점이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우리는 이런 대화를 할 만한 사이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신곡 나왔다고 자랑하려고 온 줄 알았는데 표정을 보니까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솔직히 안무를 가르쳐 달라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그냥 심심해서 왔나?

평소 세가온은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이미지 탓에 팬들 사이에서도 별명이 얼음송곳이었는데, 이렇게 찬찬히 보니까 별로 차가워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좀 얼빵해 보이는 게 생각보다 꽤 어려 보이기도 했고…….

갑자기 맥이 빠져서 조금 느슨해진 나는 세가온을 보며 물었다.

“너 몇 살이었지?”

“스물셋이요. 선배님은 스물다섯이시죠?”

고개를 끄덕이자 세가온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하기 시작했다.

“갈비찜 좋아하고 아이스크림은 폴라포 포도 맛 많이 드시고, 초밥은 참치 안 먹고 지느러미 쪽도 별로 안 좋아하시고, 단맛 많이 안 나는 계란 초밥이랑 연어 초밥 좋아하시고 커피는 무조건 아이스아메리카노 샷 세 번 추가하고, 키 180, 몸무게…….”

“잠깐만.”

툭 치면 나오는 기계처럼 줄줄 말하던 세가온이 내가 손을 들자 입을 다물었다. 아직도 할 말이 많은 건지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는 걸 보며 나는 질색하면서 물었다.

“너 뭐, 나무위키 같은 거 보고 왔어?”

“아니요, 그건 아닌데…….”

“…….”

멋쩍은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는 걸 보니 별안간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가온은 날 감시하러 온 것도 아니고 신곡 나온다고 자랑하러 온 것도 아니고 심심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나랑 친해지고 싶어서 온 건가?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까지 시험 치듯 달달 외워서?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생각했던 것보다 이상한 애는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오래 대화를 해 본 것도 처음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나는 좀 머쓱해져 뒷목을 벅벅 긁다가 말했다.

“노래 좋다.”

“감사합니다.”

“어, 그래…….”

“…….”

“…….”

다시 침묵이 흘렀다. 너무 어색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세가온이 침묵을 깨고 내게 자기 핸드폰을 슬쩍 내밀며 말했다.

“한 번 더 들으실래요?”

“…….”

나는 눈을 깜빡거리면서 세가온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니까 얘는 신곡을 나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자기도 할 말이 없으니까 고민하다가 어떻게 쥐어짜 내서 뱉은 말이 이거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핸드폰에서는 다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음산한 어둠 속에서 시작하는 것만 같은 단조롭고 느린 음들이 천천히 나오는 걸 듣다가 세가온의 옷자락을 당기며 말했다.

“좀 앉아서 듣자.”

“네.”

우리 둘은 연습실 구석탱이로 가서 바닥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핸드폰 액정만 쳐다봤다. 노래가 거의 끝나 갈 때쯤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세가온이 긴 다리를 구부리고 무릎을 모아 팔로 감싸 안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느낀 건데, 얜 왜 이렇게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걸까? 시선이 마주치자 세가온이 내게 물었다.

“식사는 하셨어요?”

“점심은 아까 먹었고 저녁은 아직.”

“저도 아직 안 먹었어요.”

“아……. 저녁을?”

“아니요, 점심도 안 먹었어요.”

나는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려 핸드폰을 쳐다봤다. 때마침 노래가 막 끝난 참이었다.

“저녁 뭐 드실 거예요?”

“글쎄. 떡볶이나…….”

아니면 그냥 숙소 가서 있는 반찬으로 대충 먹든가. 잘 모르겠다.

“저도 떡볶이 좋아해요.”

“아, 그래?”

“네.”

“…….”

……뭐지? 같이 먹자는 건가? 사 달라는 건가? 나는 당황한 얼굴로 세가온을 보다가 그냥 예의상 물었다.

“그럼 떡볶이 같이 먹을래?”

“네.”

“…….”

“저도 같이 먹을게요.”

“아……. 그래.”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는 걸 보며 나는 얘가 밥을 얻어먹으려고 여기에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갑을 안 가지고 나왔나?

아직 저녁을 먹기에는 시간이 일렀지만 세가온이 점심도 안 먹었다고 해서 나는 핸드폰을 찾아 배달 어플을 켰다.

“너 따로 시켜 먹는 곳 있어?”

“아니요. 선배님 드시고 싶은 걸로 시켜 주시면 저도 그거 먹을게요.”

“매운 건 잘 먹어?”

“선배님은요?”

“나는 그냥 보통 맛으로만 먹는데. 그것도 신라면 맵기 정도 돼.”

“그럼 저도 그거 먹을게요.”

1인분씩 따로 포장을 해 주는 곳이라 나는 보통 맛 떡볶이 두 개를 선택했다.

“너 튀김도 먹어?”

“네.”

“무슨 튀김? 이거 보고 네가 먹고 싶은 걸로 시켜.”

나는 세가온에게 핸드폰을 건네주며 말했다. 세가온은 두 손으로 공손하게 핸드폰을 받은 뒤에 조금 어색해 보이는 손짓으로 액정을 몇 번 만지다가 내게 말했다.

“선배님은 튀김 뭐 드세요?”

“난 그냥 모둠 시키는데.”

“그럼 그걸로 시킬게요. 또 어떤 거 드세요?”

자꾸 물어보는 게 자기가 먹고 싶은 걸 시키지는 않을 것 같아 결국 나는 옆으로 가서 액정을 보다가 말했다.

“순대도 먹을래?”

“네.”

“너 내장도 먹어?”

“선배님은요?”

“난 먹지.”

“저도 먹어요.”

“그럼 순대도 시키고……. 김밥은?”

“선배님이 드시고 싶으시면…….”

같은 소속사고 나이 차이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극존칭을 쓰면서 어려워하는 줄 모르겠다. 물론 우리가 안 친하고 같이 밥을 먹은 적도 없고, 이렇게 오랫동안 대화를 하는 것도 처음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래도 고작 떡볶이 시키는 건데 너무 굳어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돌려 세가온을 보며 선택지를 줬다.

“김밥 먹을래, 주먹밥 먹을래?”

“선배님이 좋아하시는 걸로 먹을게요.”

“아니, 네가 좋아하는 게 뭐냐고. 평소에 떡볶이 먹을 때 김밥 먹어, 주먹밥 먹어? 아니면 두 개 다 시킬까?”

내 물음에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던 세가온이 시선을 살짝 내리고 수줍어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김밥…….”

“…….”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검고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그걸 보며 나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왜냐면 지금 세가온의 목소리와 얼굴, 전체적인 모습이 고백을 받고 대답하는 내성적인 소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음, 그래. 김밥 시키자.”

“네, 감사합니다.”

“그래…….”

나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빠르게 떡볶이를 주문했다. 튀김이랑 순대, 어묵은 세트 메뉴가 있어서 그걸로 시켰고 떡볶이 보통 맛 2인분에, 참치 김밥 한 줄과 치즈 김밥 한 줄을 시켰다. 김밥도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물어보면 또 선배님이 좋아하는 걸로 먹겠다고 할 것 같아서 그냥 내 마음대로 주문해 버렸다.

60분 내로 배달해 주겠다는 팝업이 뜨는 걸 보며 액정을 껐다.

“먹고 부족하면 다른 거 더 사 줄게.”

“네? 아, 네.”

세가온이 조금 놀라는 것처럼 보였지만 금세 차분해졌다. 그러더니 아, 하고 조금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떡볶이 다 드시면 커피는 제가 사 드릴게요.”

그 말에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지갑 안 가져온 거 아니었어?”

“네? 저 지갑 있는데요?”

세가온이 지갑을 꺼내 내게 보여 주었다. 그걸 보며 내가 또 착각했다는 걸 깨닫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됐어. 커피 마시고 싶으면 그냥 내가 사 줄게.”

“그럼 디저트는 제가 살게요.”

꼭 뭐든 하나는 자기가 사야겠다고 말하는 것 같은 세가온을 보며 결국 나는 푸핫 하고 웃어 버렸다. 너무 크게 웃었던 건지 세가온이 주춤하면서 눈에 띄게 놀랐지만 그 모습마저 웃겨서 나는 또 웃을 수밖에 없었다.

“됐으니까 그냥 먹어.”

“네, 그럼 다음에는 제가…….”

가끔 대화가 끊겨서 숨 막히는 침묵의 시간이 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런저런 스몰토크를 하면서 60분을 잘 견뎌 냈다. 그리고 드디어 떡볶이가 도착했다.

내가 가겠다고 했지만 세가온이 부득불 자기가 가서 가지고 오겠다고 해서 세가온은 로비에서 대신 받아 놓은 떡볶이를 가지러 갔고, 그사이 나는 바닥에 신문지를 몇 장 깔았다.

조금 기다리자 세가온이 큰 봉지를 두 개나 가지고 올라왔다.

“선배님, 이거 맞아요?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세가온이 당황하는 걸 보며 봉지를 받아 안의 내용물을 살폈다. 떡볶이 두 개랑 모둠 튀김, 순대, 어묵, 김밥 두 줄. 그리고 서비스로 준 것 같은 감자튀김이랑 930ml짜리 쿨피스 하나. 우리 것이 맞았다.

“이거 맞아.”

우리는 신문지를 깔아 둔 바닥 위에 음식들을 하나씩 꺼냈다. 포장을 풀고, 비닐을 다 뜯은 나는 세가온에게 나무젓가락을 건네며 말했다.

“모자라면 더 시켜 줄 테니까 많이 먹어.”

“네, 잘 먹겠습니다. 선배님도 드세요. 감사합니다.”

세가온은 내가 젓가락을 드는 걸 보더니 자기도 젓가락 양 끝 쪽을 잡고 당겼다. 딱 소리가 나면서 나무젓가락은 두 개로 쪼개졌는데 완전 쌍쌍바 잘못 뗀 것처럼 하나는 중간 지점에서 뜯겨져 있었다.

“……내 거랑 바꿔 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그래, 먹어.”

내 말에 세가온이 젓가락으로 떡볶이 떡을 하나 집었다. 그걸 보다가 나도 먹으려고 하는데 튀김에 찍어 먹을 간장이 보여서 다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작은 간장을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짜고 있는데 문득 세가온이 너무 조용하다는 걸 깨달았다. 슬쩍 시선을 올려 쳐다보자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에서 도르륵,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물방울이 뺨 위로 굴러떨어졌다.

“……?”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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