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190)

2화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많았다.

마치 성공 공식처럼 천편일률적인 연예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싶다고 말했던 강만덕……. 그러니까 우리 소속사 대표님이 대중들은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다며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고 싶어 했던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대표님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는 했다. 경쟁이 심한 아이돌 시장에서 튀려면 특별한 것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늘 위험을 동반한다는 걸 알았지만 모험 없이는 성공하기 힘든 곳이었다.

하지만 대표님이 생각하는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것과 내가 생각하는 남들과는 다른 차별점에 큰 간극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서주야, 네가 나이가 제일 많으니까 원이라고 하자.’

데뷔 전 예명을 짓게 되었을 때였다. ‘원’이라는 예명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또 그렇게 엄청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라서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다음 나오는 말에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진혁아, 너는 둘째니까 투.’

‘예?’

‘투.’

‘……?’

‘아니, 투는 너무 임팩트가 없는데……. 투투라고 하자.’

‘?’

대표님의 시선은 마치 아랍어를 듣고 있는 것처럼 어리둥절한 이진혁을 지나 유노을 쪽으로 돌아갔다. 그 시선에 유노을이 얼마나 놀라고 질색을 했는지 어깨가 10센티는 위로 솟았던 걸 나는 똑똑히 봤었다. 유노을은 넋이 나간 얼굴로 먼저 입을 열었다.

‘대표님, 저 설마 쓰리쓰리…….’

‘쓰리쓰리는 입에 촥 붙질 않는데……. 석삼이 어떠냐?’

‘네? 석삼이요?’

‘강이는……. 포포로 하자. 막내니까 어감도 귀엽고. 좋네.’

그렇게 우리의 예명은 나이순으로 원, 투투, 석삼, 포포가 되었다.

그때를 다시 떠올리니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소름이 돋은 팔뚝을 벅벅 문지르다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게 현실인가? 싶지만 이건 꿈이 아니라 진짜 현실이었다. 정말로 우리는 원, 투투, 석삼, 포포…….

“염병…….”

물론 우리도 사람이니까 항의를 안 했던 게 아니다. 근데 말이 안 통해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이름으로 데뷔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나마 그룹명은 어나더(Another)인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룹명까지 넘버 이딴 거였으면 진짜…….

아니, 차라리 컨셉이라고 하고 넘버라고 하는 게 더 나았으려나? 잠깐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들어서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튼 이게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우리도 한참 뒤에 안 사실인데 대표님이 전직 건달이셨던 거다. 어디서 연예계 사업은 돈이 꽤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무런 지식도, 준비도 없이 그냥 무작정 시작한 일이라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대표님은 그냥 아이돌이라는 게 잘생기고 예쁜 애들 몇 명 모아다가 노래시키고 춤추게 하면 되는 줄 알았단다. 강만덕이라는 놈은 이런 말을 우리 앞에서 대놓고 할 정도로 답이 없는 양아치 건달 새끼였던 것이다.

사실 이거 말고도 당장 떠오르는 만덕 씨의 기행들이 사천오백칠십육 개 정도 되지만, 생각해 봤자 속만 터져서 이쯤에서 그냥 생각하기를 관뒀다.

그리고 우리가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된 계기라고 해도 될 만한 사건이 터졌는데, 그게 세 번째…….

갑자기 인기척이 들려서 고개를 돌리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

세가온?

낯은 익지만 어색한 얼굴이기도 해서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

“…….”

연습실 문을 열고 밖에서 날 가만히 보고 있던 놈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에 띄게 놀란 듯했다. 그러다가 그냥 시선을 피하고 등을 돌릴 줄 알았는데,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것을 보고 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 그래…….”

인사를 하는데 또 무시할 수는 없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살짝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그리고 갈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 서서 다시 날 쳐다보기 시작했다.

뭐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자 놈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

“…….”

“…….”

아니, 뭔데…….

저 새끼가 혹시……. 날 감시하고 있는 건가?

그도 그럴 것이 저놈은……. 그러니까 세가온은 우리 소속사 후배인데, 어나더를 좆소 망돌이 아니라 대기업 망돌로 만들어 준 장본인들 중 한 명이었다.

어나더를 대차게 말아먹은 대표님이 심기일전해 준비한 별빛달빛 엔터의 두 번째 그룹, 배틀 브라더스(Battle Brothers). 솔직히 나는 그룹명 보고 또 예감이 좋지 않았는데, BB는 데뷔곡으로 모든 지상파 음악 방송, 음원 차트 1위를 석권하고 그 해 신인상과 대상을 포함한 온갖 상들을 동시에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며 그야말로 순식간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이돌이 되었다.

덕분에 별빛달빛 엔터는 강만덕 대표님의 이름을 따 MD 엔터로 사명을 변경하고 사옥도 옮기고, 아무튼 소위 말하는 좆소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다.

BB와 우리는 같은 소속사이기는 했지만 마주칠 일이 별로 없어서 계속 데면데면한 채로 지냈는데……. 마주쳐도 인사조차 안 할 때도 있었고, 슬쩍 고개만 까딱거릴 때도 있어서 더 어색해졌다. 아니, 근데 생각해 보면 다른 애들은 안 그래도 쟤는 인사를 잘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문 앞에 서 있던 세가온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내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연습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걸어오는 모습이 새삼스럽게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스케줄이 없는 건지 화장도, 머리도 하지 않은 편안한 모습이었지만 볼 때마다 신기한 건 사실이었다. 사람이 저렇게 생길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순수한 감탄이랄까?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왜 자꾸 이쪽으로 오는 거지? 혹시 내가 있는 쪽에 자기 물건이라든가 그런 게 있을 수도 있고……. 나한테 용건이 있는 게 아닐 수도 있어서 고개를 돌리려는데 세가온이 내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

“…….”

“…….”

내 옆에 바짝 서서 날 내려다보는 새카만 눈을 한참 쳐다봤지만 굳게 다문 입은 열리질 않았다.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진 나는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뭐 할 말 있어?”

“네?”

“할 말 있냐고. 왜…….”

왜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와서 옆에 멀대처럼 서 있는 건데.

차마 하지 못한 뒷말을 삼키는데 하얀 얼굴에 갑자기 당황한 빛이 서렸다. 아니, 지가 제 발로 걸어서 여기까지 와 놓고 누가 보면 억지로 떠밀려서 온 줄 알겠…….

아, 설마…….

나는 황당한 얼굴로 세가온을 보다가 입을 꾹 다물고 인상을 구겼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애들한테 세가온이 자꾸 연습실 주변을 얼쩡거리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세가온도 이 회사 일원이니 어디서 뭘 하고 있든 알 바 아니었지만, 문제는 예전에 BB의 멤버 중 한 명이 대표님에게 우리가 연습실에 퍼질러 앉아서 놀고만 있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는 게 문제였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표님이 연습실까지 와서 후배한테 그런 소리를 듣는 게 쪽팔리지도 않느냐며 노발대발했던 게 떠올랐다.

아니, 진짜 퍼질러 앉아서 놀았으면 억울하지도 않지……. 갑자기 속에서 천불이 나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무슨 말을 할 듯 안 할 듯 입술을 달싹거리던 세가온이 내게 뜻 모를 질문을 했다.

“여기서 뭐 하세요?”

“뭐?”

“아니…….”

“…….”

이 새끼가 진짜 감시하려고 왔나? 저번에 그런 일도 있어서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내 표정이 사나워지는 걸 봤는지 세가온이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다가 다시 물었다.

“연습하고 계셨어요?”

“…….”

연습하고 있는지 안 하고 있는지 감시하러 온 게 확실했다. 아니, 도대체……. 아무리 인기 많으면 장땡인 업계이긴 해도 이건 너무 상도덕이 없는 거 아닌가? 고작 2년이기는 해도 내가 선배인데, 연습을 하고 있는지 안 하고 있는지 감시를 한다고? 이게 맞아? 맞는 거야?

대표님도 안 하는 걸…….

“저도 연습하려고요.”

그때 세가온이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말을 들으니 황당함에 끓어오르던 분노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 감시하러 온 게 아니라……. 아니, 근데 왜 여기로 와? 연습할 건데 뭐 어쩌라고? 애초에 연습실도 다르니, 이쪽으로 올 이유가 없는데?

의문이 한가득 들었지만 일단 무시할 수는 없어서 그냥 고개만 끄덕거렸다.

“아, 그래.”

“네.”

“…….”

“…….”

아니, 어쩌라고. 뭔데.

왜 안 가고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할 말 있어?”

“네?”

“왜 옆에 와서 그러고 서 있어.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세가온의 눈이 별안간 동그래졌다.

“강아지요?”

“뭐?”

“방금 강아지라고…….”

“…….”

이 새끼 혹시 술 마셨나?

너무 황당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가려 버렸다. 자꾸 헛소리를 하는 세가온을 놀란 눈으로 보다가 살짝 얼굴을 앞으로 갖다 대며 숨을 들이마셨다. 술 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세가온이 화들짝 놀라 두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섰다.

“…….”

“…….”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는 시꺼먼 동공을 가만히 보다가 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인내심 있게 물었다.

“강아지가 요점이 아니라, 여기에서 왜 이러고 있냐고. 연습하러 온 거면 연습하러 가면 되지. 여기에서 할 거야? 내가 나가 줄까? 자리 피해 달라고?”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몰라서 조금 짜증스럽게 묻자 세가온이 고개를 흔들면서 내게 두 발자국 다가왔다.

“저희 신곡 나와서요.”

“아, 그래. 축하해.”

“안무 중에 어려운 게 있어서.”

“……?”

“가르쳐 주세요.”

“…….”

2년 동안 신곡은커녕 활동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나한테 곧 신곡 나오는 너희 안무를 가르쳐 달라고?

이 새끼가 지금 날 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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