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190)

1화

연예계만큼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업계가 또 있을까? 그래, 물론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짧은 식견으로는 연예계만큼 고저의 편차가 큰 곳도 드물었다.

이곳은 밤잠을 줄여 가며 열심히 노력하고 연습하고 청춘을 바쳐도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기본급도 없고, 최저 임금도 없고, 최소 근로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은, 그야말로 야생의 무법지…….

타고난 원석이 스스로를 갈고닦으며 끊임없이 수련하다가 로또를 맞아야만 그나마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곳.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한번 더 로또를 맞아야만 뜰 수 있는 곳. 타고난 것과 운과 노력이 모두 따라야만 성공할 수 있는 곳.

그것이 바로 연예계…….

“…….”

비장한 표정으로 벽면 거울을 노려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민망해져 혼자 헛기침을 했다.

쓸데없이 진지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게 현실이다. 연예인이,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아이돌이 뜨고 말고는 한 개인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회사에서 밀어 준들 본인이 준비되어 있지 않고, 시기가 적절하지 않으면 절대 유명해질 수가 없었다. 반대로 모든 것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딱딱 들어맞으면 하루아침에 유명해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내가, 아니 우리가 유명하지 않고 인기가 없다는 게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형 득도하는 거 아니야?”

“득도? 갑자기 웬 득도?”

“아니, 표정이 부처님 같길래…….”

고개를 살짝 든 채 눈을 감고 있는데 옆에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말만 속닥거리는 거지, 딱히 숨어서 이야기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더 상념에 젖어 있다가는 계속 놀림을 받을 것 같아 천천히 눈을 떴다.

“부처님 눈 떴다.”

“부처라고 하지 마, 기독교면 어쩌려고.”

“그럼 예수님이라고 할까?”

“천주교 무시해?”

“…….”

덩치는 산만 한 사내새끼들 세 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속닥거리고 있는 모습이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나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셋을 차례차례 한 명씩 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혀를 찼다.

“형 한숨 쉬잖아. 다 들었나 봐.”

“그러게 내가 조용히 얘기하라고 했잖아.”

“언제?”

“아까 했어. 속으로.”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한숨을 쉬든 말든 이진혁과 유노을이 저들끼리 쓸데라고는 쥐뿔도 없는 대화를 몇 마디 더 주고받았다. 옆에서 그걸 가만히 보고 있던 김강이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런 표정으로 거울만 쳐다봐?”

“…….”

나는 나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큰 김강을 올려다보며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물어보니까 또 할 말이 없었다. 별말을 안 하면 그냥 말하기 싫은가 보다 하고 돌아서는 게 보통인데, 김강은 눈치도 살짝 없고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계속 멀대처럼 멀뚱멀뚱 서서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비정하고 차가운 연예계에 대한 고찰이랄까…….”

진지한 내 말에 김강이 그제야 아,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술 마셨어?”

그러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쓰읍 하고 개를 혼내듯 소리를 낸 다음에 아직도 헛소리를 하고 있는 이진혁과 유노을을 불렀다.

“그만 떠들고 다 이리 좀 와 봐.”

티격태격하던 애들이 내 말에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다시 가만히 셋을 쳐다봤다.

사람을 불러 놓고 아무런 말이 없자 세 명이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학생들처럼 나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짧게 말하고 빨리 끝내라는 듯한 눈빛으로…….

나는 헛기침을 하다가 이진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래, 우선 우리 리더 진혁이…….”

“형, 혹시 어제 병원 갔다 왔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진혁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갑자기 웬 병원?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자 옆에서 가만히 우리를 보고 있던 유노을이 입을 열었다.

“건강 검진 받았냐고 물어보는 거 아니야?”

“맞아.”

“……?”

둘은 척하면 척이라는 듯 죽이 맞았지만 옆에서 듣고 있는 나는 여전히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그걸 왜 묻는 건데?

그때 가만히 있던 김강이 나를 팔꿈치로 툭툭 치면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디 아프냐고.”

“뭐?”

“아까 내가 술 마셨냐고 물어본 거랑 비슷한 거야.”

“…….”

그제야 나는 저놈들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하고 나는 이진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시작했다.

“오늘도 굶지 말고 누가 시비 걸면 꼭 형한테 전화하고 열심히 하자. 알겠지? 저번처럼 스케줄 펑크 났다고 슬퍼서 혼자 놀이터 가서 그네 타고 있지 말고.”

“그 말을 지금 왜 꺼내.”

“너 저번에 슬프다고 혼자 깡소주 마시면서 그네 타다가 뒤로 넘어가서 머리 깨질 뻔했잖아. 술을 왜 놀이터에서 마시냐고, 애들 노는데 방해되게.”

“아무튼 알았어.”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이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었던 모양인지 이진혁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며 나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는 유노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우리 셋째, 댄스 신동, 어나더 공식 귀염둥이…….”

“아유, 뭘 또 신동이래.”

유노을이 그만하라는 듯 멋쩍은 표정으로 웃자 옆에서 가만히 있던 이진혁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난 왜 그런 거 말 안 해 줘?”

리더라는 놈이 이렇게 질투가 심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이진혁이 원하는 대로 온갖 미사여구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노래 천재, 성대 미남, 교회 오빠, 유리구슬의 환생…….”

“유리구슬의 환생은 뭐야?”

유노을의 물음에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진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만큼 목소리가 청량하고 섬세하다는 거지.”

내가 먼저 칭찬하기는 했지만, 얜 자기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에 부끄럽지도 않나? 대단한 철면피가 아닐 수 없었다.

“아, 그건 인정. 완전 옥구슬이지.”

“너도 완전 춤추는 기계야.”

철면피 둘이서 서로 치켜세워 주며 엄지를 들고 웃고 난리였다. 속이 좀 안 좋기는 했지만 그래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것보다는 이게 훨씬 나아서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봤다.

그때 갑자기 옆이 따가워서 슬쩍 시선을 돌리자 김강이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를 바라는 것 같은 눈빛에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 우리 막내 포포…….”

“왜 나만 포포야.”

“우리 막내, 강이.”

“…….”

“……어깨가 넓고 듬직한 우리 강이…….”

칭찬 레퍼토리가 다 떨어져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김강의 표정이 점점 시무룩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서 우리를 보고 있던 이진혁이 입을 열었다.

“멀대처럼 큰 우리 막내 강이.”

“맞아, 어나더 공식 장신 강이.”

나는 얼른 이진혁의 말을 주워 그대로 말했다. 하지만 내 말이 끝나자 다시 정적이 맴돌았다. 등에 조금씩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려던 그때 유노을이 입을 열었다.

“헬창 강이.”

“그래, 운동을 좋아하는 우리 멀끔한 강이.”

나는 유노을의 말을 조금 순화시켜 다시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김강의 표정은 계속 부루퉁했다.

“잘생긴 강이.”

“…….”

“어나더 공식 비주얼 강이.”

“…….”

조금씩 덧붙이자 김강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풀리기 시작했다. 정말 쉬운 남자가 아닐 수 없었다.

아무튼 세 명을 한 번씩 다 부르고 난 뒤에 할 말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진혁이 날 보며 말했다.

“우리 맏형 강서주.”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유노을이 말을 이었다.

“어나더 공식 아빠 강서주.”

“우리 아빠는 강서주가 아니라 김경인데?”

“아버지 실명을 여기서 왜 말해. 그리고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무튼 너도 빨리 한마디 해.”

눈치 없는 김강이 한마디 했다가 유노을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근데 왜 둘 다 서주 형이라고 안 하고 이름 불러?”

“강아.”

“어?”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야.”

이진혁의 말에 김강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바라봤다. 사실 이렇게 한 명씩 돌아가면서 칭찬을 하라고 부른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다.

사실 할 말도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었고 오늘도 열심히 해 보자는 말이나 하려고 불렀던 건데……. 고민하고 있는 듯한 김강을 보며 됐으니까 그만하라고 하려다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서 계속 기다렸다.

“…….”

“…….”

“…….”

“…….”

연습실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김강은 한참 고민하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강서주.”

“…….”

“멋쟁이.”

“…….”

이 새끼가…….

내가 눈을 치켜뜨자 김강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뻔뻔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서주 형 멋쟁이.”

“…….”

“어나더 공식 치켜뜬 눈이 잘 어울리는 남자.”

엎드려 절을 받은 건지, 엎드려 놀림을 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숨 막히는 칭찬 릴레이에 종지부를 찍고 애들을 한 번씩 다시 불렀다.

“오늘도 열심히 하자. 밥 굶지 말고 꼭 챙겨 먹고.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잘 먹어야지. 알았지?”

“알았어.”

“파이팅.”

“잘 먹자.”

우리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로 한가운데로 손을 모았다가 타이밍에 맞춰 아래로 내렸다. 누가 보면 운동회라도 하는 줄 알겠네.

“오늘 진혁이 라디오 있다고 했나?”

“어, 이제 나가야 돼.”

“유노을, 너는?”

“형은 꼭 나만 성 붙여서 불러. 투투한테는 진혁이라 그러고 포포한테는 강이라고 하면서.”

유노을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진혁과 김강이 입을 열었다.

“갑자기 그 이름은 왜 불러?”

“맞아, 석삼아. 포포라고 하지 말고 이름으로 부르라고.”

“아, 진짜. 석삼이라고 하지 말라고.”

“형이 먼저 했잖아.”

셋이 실랑이하는 걸 보다가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만 싸우고 빨리 나가. 진혁이는 라디오 있다고 했고, 유노을 너는 오늘 누구 만난다며. 친구? 잘 갔다 오고, 강이는 운동 갈 시간이고. 빨리 다들 가. 해산. 해산. 해산.”

내 말에 셋은 여전히 투투가 어쨌니 석삼이가 어쨌니 포포가 어쨌니 하면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세 명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는데, 문을 열고 나간 애들이 동시에 얼굴을 내밀더니 이진혁이 물었다.

“오늘 어디 안 나가?”

“난 갈 데 없어.”

“형도 밥 챙겨 먹어. 굶지 말고.”

“알았으니까 빨리 가.”

둘이 한마디씩 했는데 혼자 가만히 있기는 뭣했는지 김강이 멀뚱멀뚱 날 보다가 대뜸 말했다.

“원이 멋쟁이.”

“…….”

“어나더 공식…….”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둘이 김강을 끌고 나갔다. 문이 닫히자 연습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처음 데뷔했던 날이 떠올랐다. 대충 4년쯤 지난 것 같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구나.

그때는 이렇게까지 한가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는데.

“…….”

그래, 나는 4년 차 아이돌이다.

그러니까 이제 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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