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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Shot(더블 샷)-83화 (8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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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진짜 엄마 말대로 말 드릅게 안 들어. 좀 떨어져 봐.”

일방적인 인사만 남기고 루나가 냉정하게 떠나 버리자마자 혜담은 곰돌이 인형 안듯이 자신을 꼭 끌어안고 비비적거리는 레오부터 밀어내려고 했다.

“왜요.”

“왜요는 뭐가 왜야. 내가 사람들 있는 데서 이러지 말랬지.”

밀어도 밀리지 않는 레오의 어깨만 밀어 대던 혜담은 방법을 바꿔 결국 그의 풍성한 머리카락을 움켜쥐고서야 그의 머리를 제게서 조금 떼어 놓을 수 있었다.

“둘만 있는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그러죠. 우리 못난이 나랑 있을 때는 잠만 자잖아. 깨어 있을 때 보는 게 얼마 만인데!”

갑자기 왜 혼나는 대형견 모드가 되는 건데, 조금이라도 불리할 것 같으면 꼭 이런 모습이지? 아주 그냥.

“너 이런 거 세상 사람들이 좀 알아야 해.”

“그거 좋은데? 그럼. 어디서든 이래도 되잖아.”

내가 연인이 생긴 건지 애가 하나 생긴 건지. 들러붙는 레오를 모질게 떼어 놓을 생각이었지만 이번에도 결국 그에게 두 손을 들고 만 혜담은 지금껏 쥐고 있던 머리카락을 놓아주었다.

나. 참.

놓아주기 무섭게 원래 자리가 거기였던 것처럼 제 어깨에 얼굴을 묻는 레오의 만행에 혀를 차며 혜담 역시 그에게 편하게 몸을 기댔다. 제가 벗어나려 힘을 주고 버둥거려 봤자 둘 다 에너지 낭비일 뿐이니까.

“어떤 스타일로 갈 거야?”

이렇게 붙어 있다고 한들 놀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혜담은 파일을 넘겼다.

“우리 못난이 마음…….”

역시나 늘 그에게 듣던 말을 듣는 것과 동시에 쓰읍. 소리를 내자 레오의 말이 그쯤에서 멈췄다.

“화이트, 우드로 가. 우리 둘 다 알록달록은 싫어하고, 루나 말대로 아기들 태어나는데 집이 우중충하면 그것도 아닌 건 맞으니까.”

“응.”

“아, 좀 전에 결혼식 메인 색상은 초록으로 했어. 그 뒤엔 루나가 알아서 한대.”

“응.”

“아기방은 무슨 색으로 할까?”

“……응.”

부드러운 커피 향에 폭 빠진 채, 파일을 넘기며 호불호 체크를 남기던 혜담은 웅얼거리는 레오의 대답에 고개를 들었다.

건성으로 대답하긴 해도 보고 있을 줄 알았던 레오의 두 눈이 곱게 감겨 있었다. 로버트를 통해 제출한 자신의 사직서는 제출한 날 바로 처리되었다. 생각 없이 계좌를 확인하다 어이없는 금액이 찍혀 있는 것에 레오는 “퇴직금.”이라는 말로 짧게 설명을 마쳤다.

그런 사정과 다르게 레오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리 가벼운 것들이 아니었다. 하긴 맡고 있던 프로젝트가 몇 개인데, 거기다 엄마의 말대로 저도 모르는 사이 섬에 몇 번이나 왔다 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왔으면 저를 깨우든지 말을 하지 그랬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나 불편해서 떠나 있었던 거잖아. 그런데 거기까지 따라간 걸 알면 더 싫어할까 봐.”였다.

평소보다 잠이 많아진 것도 있지만 제가 잠든 후 들어와서 눈 뜨기 전에 출근하는 바쁜 생활을 하는 레오가 피곤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미뤄 온 것에 결혼식으로 약 일주일 정도의 시간까지 내야 하니 한가하게 빈둥거리다가 선택 몇 가지 하는 것이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자신과는 전혀 반대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피곤하면 들어가서 편히 자면 되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자. 레오. 일어나 봐.”

결혼식에 입을 옷 가봉까지는 앞으로 1시간 3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혜담은 파일을 덮어 내려놓고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건 웅얼거림이었다.

“여기 건 내가 할 테니까, 넌 들어가서 눈 좀 붙여. 이따가 가봉하러 오면 그때 깨워 줄게.”

제 허리를 단단히 감싸고 있는 레오의 팔을 풀어내려던 혜담은 오히려 더 꼭 끌어안는 그의 행동에 한숨을 내쉬었다.

“레오 루이스.”

이번에는 대답도 안 하냐? 조금 전에는 깜빡 잠든 것이 맞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잠이 깬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레오는 자는 척하는 걸 선택한 것 같았다.

“우리 같이 들어가서 같이 잘까?”

적당히 레오를 구슬릴 말을 꺼내던 혜담은 갑작스러운 그의 움직임에 화들짝 놀라 두 팔을 레오의 목에 둘렀다. 자신을 번쩍 안아 든 레오는 언제 졸았냐는 듯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앓느니 죽지. 속이느니 속고 말지.

잠시 후, 가봉할 준비를 끝내고도 나타나지 않는 레오와 혜담을 찾으러 그들의 침실에 들어간 로버트는 멋쩍은 미소와 함께 돌아 나와야 했다.

* * *

검은색 정장을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준석이 어색한 듯 계속해서 넥타이를 만지며 걸어오는 모습에 혜담은 피식피식 웃었다.

“……뭐냐.”

가까이 다가온 준석이 불편함을 숨기지 않은 채 툭 뱉는 말에도 혜담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이렇게 정장을 입고 만났던 적이 있던가? 직장인인 자신이야 정장을 자주 입었지만, 운동부 출신에 지금도 운동을 하는 준석이 정장을 입은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좋냐?”

“좋다.”

바로 대답하지 않았더니 무뚝뚝한 목소리로 툭 말을 뱉기에 혜담은 똑같은 말투로 대답을 했다.

“됐다.”

“어.”

가볍게 혜담의 어깨를 꾹 쥐었다 놓은 준석의 얼굴에 그제야 옅은 미소가 나타났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준석과 무슨 말이 필요할까? 갑자기 여행이니 뭐니 떠들어 대며 사라져서는 집을 팔아 달라 새집을 구해 달라고 한 게 불과 두어 달 전이었다.

그때도 말없이 제 부탁을 들어준 준석은 뜬금없이 건넨 청첩장에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준석은 짧게 말을 건넸고, 혜담은 딱 그에 맞는 답을 해 주었다.

“몸은?”

“티 안 나지?”

“……자랑이냐?”

“넌 애인도 없는데, 난 이제 애도 둘 있잖아.”

하아.

평소였다면 그 크고 두툼한 손으로 제 팔을 툭 쳤을 준석이지만 오늘만큼은 길게 한숨을 내쉬는 걸로 그는 제 감정을 모두 표현하고 있었다.

“온 김에 신나게 놀고 가.”

“너나 잘하세요.”

“아, 왜! 나 겁나 잘 살거든?”

씩 웃으며 끝날 줄 알았던 대화가 미묘한 분위기와 함께 늘어지자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한 혜담은 오히려 큰 소리로 과장되게 말했다.

“시바……. 왜 내가 아들내미 장가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건지.”

“웃기시네. 내가 너보다 생일 빨라.”

그 말과 함께 혜담은 지금껏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났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친구라고는 서로밖에 없었다. 버스 타고 20분을 가야 하는 작은 학교의 전교생도 겨우 여섯 명이었다. 그렇게 친구처럼 형제처럼 붙어 지낸 준석이었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늘 곁에 있었기에 혜담에겐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다.

제가 일어났음에도 멀뚱히 서 있기만 하는 준석을 덥석 끌어안은 혜담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잘 살게.”

“어.”

느릿한 대답과 함께 준석의 품에 꼭 안긴 혜담은 소리 내어 웃었다. 제게 이런 날이 올지 몰랐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와 영원히 함께함을 기약하는 날이…….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화창하고, 뭉게구름이 그런 하늘을 예쁘게 떠다녔다. 에메랄드 바다는 시시각각 다른 빛을 냈고, 차르르 들어왔다가 사르르 빠져나가는 파도 소리마저 이날을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혼자 있을 때는 참으로 크고 넓게 느껴졌던 섬 안엔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자신의 꿈을 이뤘다며 큰소리치던 루나의 말대로 별장은 아름다운 결혼식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크흠.

준석의 품에 안긴 채, 결혼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과 주위를 훑어보던 혜담은 준석의 등을 몇 번 토닥였다.

“열받게 하면 바로 오고.”

“어.”

평소라면 “네가 뭔 친정이라도 되냐?”라고 한마디 해 줬겠지만 군더더기 하나 붙지 않은 준석의 말이 진심임을 알기에 혜담은 바로 대답을 해 주었다.

“마음에 안 들어도 와.”

“어.”

크흠.

자신을 으스러지도록 세게 안는 준석의 행동에 혜담은 “시키. 안 죽었네. 요즘도 운동 열심히 하나 봐?”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한 거 아니냐? 하여튼 네 뒤에 나 있는 거 잊지 마라.”

얼른 대답을 해야 했지만 이번의 말엔 혜담은 섣불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일정하게 준석의 등을 토닥거리고 있던 손에 힘을 실어 어서 자신을 놓으라는 뜻을 전하려 했다.

“하. 내가 먼저 갔어야 하는데. 아, 그때 그 새벽에 그놈 말하는 게 쎄하긴 했…….”

“야.”

“어린 노무 시키가 말이야…….”

“야. 최준석.”

“하여튼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고. 어!”

“어어. 어. 빨리 놔 봐.”

다급하게 말을 하고 나서야 준석의 품에서 조금 여유를 가지고 숨을 쉬게 된 혜담은 “왜. 뭐?”라는 준석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그의 뒤에 있는 이를 향해 최대한 예쁘게 미소를 지으려고 했다.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잘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 누구도 걱정하지 않게 말이죠.”

레오의 손이 준석의 어깨를 턱 잡는 것과 동시에 혜담을 감싸고 있던 준석의 손이 화들짝 놀라며 사라졌다.

“하하. 그렇지. 뭘 그런 걱정을 다 해. 어. 결혼 축하해 줘서 고마워.”

혜담은 다급하게 멀어지는 준석의 손을 잡고는 결혼식에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을 꺼냈다.

“인사 다 하셨으면 제 페어를 데리고 가도 될까요?”

목소리도 평소와 다름없고, 참으로 정중하게 준석에게 양해를 구하는 말인데 혜담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마주 보고 선 준석과 레오가 뭐라고 이야기하는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한 팔을 뻗어 자신의 어깨를 감싸고 그의 품으로 끌어당긴 레오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준비한 것은 많이 없지만 즐거우셨으면 좋겠네요.”

준석과 레오가 악수를 나누며 덕담을 나누고 준석이 멀어지고 나서야 혜담은 레오의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잠시만 눈을 떼면 이러지.”

“내가, 뭐!”

“또 내가 문제인 거죠?”

방금 그 서늘함이 질투였어? 다른 날도 아니고, 결혼식 날 제일 친한 친구와 우정의 포옹 한번 했다고? 제 페어의 격한 감정 변화가 작고 사소한 질투였다는 것을 확인한 혜담은 발뒤꿈치를 살짝 들었다. 그리고 레오의 귀에 작게 속삭여 주었다. 지금까지 제대로 하지 못한 말을.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너야. 바보 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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