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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Shot(더블 샷)-76화 (7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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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적으로 온기를 찾아 움직이던 혜담은 뜨끈하고 단단한 것에 자신의 팔다리를 턱 하니 걸치고는 작게 하품을 했다. 무인도에 들어온 이후로 숙면을 취한 것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입덧이나 현기증처럼 불면증도 임신 증상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잠은 쉽게 들었지만 자는 동안 서너 번 정도 깨는 건 기본이었다. 목이 말라서,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그냥 갑자기 눈이 떠져서.

이유야 어떻든 최근의 혜담은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부족한 잠은 낮잠으로 보충하고 하루 종일 침대, 소파, 데이베드, 흔들의자 등을 오가며 휴식을 취하기에 그리 힘든 걸 느끼진 못했지만 어쨌거나 오랜만에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잔 혜담의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아침에 깰 때마다 느끼던 울렁거림도 없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오늘은 괜찮았다. 무엇보다 온기 가득한 이불 속이 너무 좋았다. 임신 초기 증상들은 시간이 지나면 절로 괜찮아진다더니 지금이 딱 그런 것 같았다. 이 정도만 돼도 편안할 텐데…….

늘 푹신하게 머리를 감싸 주던 베개를 잘못 베었는지 딱딱한 것이 느껴지자 혜담은 베개를 잡고 머리를 몇 번 움직여 편안한 자세를 잡으려다가 눈을 번쩍 떴다.

무거운 암막 커튼 대신 쳐져 있는 하얀 커튼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방 안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지난밤 그렇게 비바람이 불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오늘은 평소와 다름없는 날씨인 것 같았다.

“……온달.”

이제 와서 깨지 않은 척을 한다든가, 부끄러워한다거나, 화를 내는 것 대신 혜담은 착실하게 베개 역할을 하고 있는 이를 불렀다.

“네.”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의 몸을 통해 귀로 전해졌다.

“네가 왜 여기 있는지 육하원칙을 바탕으로 잘 설명해 봐.”

“누가, 우리 못난이가. 언제, 지난밤에. 어디서, 이 방에서. 무엇을, 내 청혼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왜, 그건 우리 못난이의 마음.”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편안하고 안락한 품속을 벗어나지 않은 채, 최대한 담담한 기분으로 그의 변명을 들어주려던 혜담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자신은 지난밤 이 방에서 벽난로를 피우고 싶었지만 어떻게 피우는지 몰라서 주위만 둘러보다가 침대로 들어왔다. 그리고 레오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것이 제가 기억하는 지난밤의 마지막이었다.

일단 레오가 이 방에 있는 것으로 꼬투리를 잡을 생각은 없었다. 제가 오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레오는 허튼짓 대신 착실하게 제게 필요한 난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절로 기분을 좋게 만드는 커피 향까지 뿜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청혼은 뭐며, 허락은 뭐란 말인가?

청혼이라 함은 네가 그 폭우 속에서 밖에서 무릎 꿇고 혼자 주절거린 게 전부잖아. 난 거기에 응답한 적이 없는데?

“수시로 기억 상실하는 건 너지. 내가 아니야.”

편하게 누운 레오의 몸 위로 반쯤 상체를 겹친 채 엎드린 자세를 여전히 고치지 않으며 혜담은 여유로워 보이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바보 온달이라고 이름 지어 줬어요?”

“…….”

“언제까지 내가 온전한 달이라는 말을 믿어 줄 것 같은데요?”

“평생.”

“그럼 그렇게 믿어야지 뭐.”

능글맞은 이놈을 어떻게 말로 이기겠어. 싱긋 웃으며 한 손으로 제 머리를 쓸어 넘겨 주는 레오의 손을 보던 혜담의 눈이 가늘어졌다.

길고 곧은 레오의 하얀 손가락에 시커먼 한 줄이 생겨 있었다. 가늘고 둥근 것. 왼손 약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커플 반지나 결혼반지를 끼는 그곳에서 혜담은 눈을 떼지 못했다.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살짝 움직이던 혜담은 턱 끝으로 레오의 어깨 부근을 꾹 눌렀다.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낯선 감촉. 지금까지 반지라는 것을 껴 본 적이 없는 혜담은 그제야 이물질이 제 손가락에 끼워져 있음을 알아챘다.

“이런다고 내가 네 말대로 할 줄 알고?”

“이렇게라도 해야 한 번이라도 생각해 줄 거잖아요.”

일부러 턱 끝으로 가슴과 어깨 부분을 꾹꾹 누르자 레오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밥이나 해. 된장찌개랑 계란말이 먹고 싶어. 다 되면 불러. 난 더 잘 거야.”

뒤척거리며 몸을 돌려 레오를 등진 혜담은 넓은 침대 위를 더듬어 굴러다니던 쿠션 하나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거 말고는 또 먹고 싶은 거 없어요?”

“진미채볶음. 간장이랑 고추장에 무친 거 둘 다.”

“…….”

여전히 베개가 아닌 레오의 팔을 베고 있던 혜담은 레오가 멈칫하는 것을 느끼고는 씩 미소를 지었다. 된장찌개 밀키트는 저장실에 있고, 계란말이는 계란으로 만들면 된다. 하지만 진미채 자체가 없는데 그건 어떻게 할래?

“다른 건 없고요?”

“연탄에 구운 곱창.”

이불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레오의 대답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모로 누워 있는 자신의 머리에 입을 맞추고, 이불을 잘 여며 준 레오가 침대에서 얌전히 나가는 것을 느끼며 혜담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것도 잠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혜담은 왼손을 이불 속에서 빼냈다. 약지에 끼워져 있는 검은색의 반지를 보는 그의 얼굴에 보조개가 깊게 파였다. 입술을 꼭꼭 깨물며 반지만 쳐다보던 혜담은 한숨과 함께 흘러내린 이불을 다시금 끌어 덮었다.

― 한식 반찬 종류 구할 수 있는 대로 다 구해서 보내.

“뭐?”

너 지금 거기랑 여기랑 시차가 얼마나 나는지 알고 하는 말이야? 거긴 오전이겠지만 여기는 한밤중인데. 갑자기 전화해서 반찬 타령을 해? 밤낮을 떠나 지금 구해서 보낸다고 해도 족히 서너 시간은 걸리는 일이었다.

― 진미채볶음은 간장 맛 고추장 맛 둘 다 챙기고, 하여튼 밑반찬으로 구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오빠가 먹고 싶대?”

― 오빠?

남편을 깨울까 봐 조심스럽게 침실을 나서던 루나는 잔뜩 날이 선 레오의 팔에 피식 웃었다. 이놈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응. 우.리.혜.담.오.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혜.담.오.빠가 먹고 싶은 건 뭐든 어떻게든 구해야지. 우.리.오.빠. 또 먹고 싶은 건 없대?”

일부러 우리 혜담 오빠라는 단어에 힘을 줘 말하며 탭을 켠 루나는 빠르게 손을 놀리며 레오를 약 올렸다.

― 하아.

휴대전화 너머 들리는 깊은 한숨을 즐기며, 레오가 말한 것 외에 필요한 것들을 임의로 찾아 리스트를 작성하는 루나의 얼굴엔 미소가 잔뜩 걸려 있었다.

“그래도 프러포즈 성공했나 봐? 오.빠.가 먹고 싶은 걸 챙기는 것 보니까.”

― …….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몰라 슬쩍 떠보던 루나는 이어지는 침묵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무리 봐도 콧대가 하늘을 찌르던 잘난 레오의 기를 혜담이 팍 꺾어 놓은 것 같았다. 절대, 절대 쉽게 허락해 주지 말라고, 오빠가 힘들고 고생한 만큼 부려 먹으라고 말한 제 충고가 먹힌 것 같았다.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을 참는 루나의 입술이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평소라면 이렇게 약을 올리는 루나에게 한마디 했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는 레오는 반건조 오징어를 손으로 잘게 찢었다. 부엌으로 들어와 냉장고와 저장 창고를 모두 뒤졌지만 진미채는 찾을 수가 없었다.

혜담이 말한 것은 진미채였지만 한식을 먹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혜담에게 필요한 물품들은 루나를 통해 다 준비했기에 제가 손을 벌릴 곳은 루나밖에 없었다.

“쓸데없는 소리 할 시간에 1초라도 빨리 준비해서 보내는 게 좋을 텐데.”

― 나한테 투덜거릴 시간에 오빠가 좋아할 만한 음식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게 좋을 텐데?

“……세 시간.”

― 미쳤어?

끝까지 약을 올리는 말을 자르고 통화를 끝내기 전 들린 버럭하는 루나의 목소리 따위는 레오의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진미채가 없으니 일단 반건조 오징어로 뭐든 만드는 것이 먼저였다.

“진미채볶음 레시피.”

AI가 알려 주는 레시피에 귀를 기울이던 레오는 창밖을 보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다진 마늘 한 스푼, 식용유 한 스푼, 다진 마늘…… 또 뭐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요리 좀 배우는 건데.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추스르고 AI가 읊어 주는 재료를 찾아 냉장고와 저장 창고, 싱크대 서랍을 열어 대던 레오는 깊은 한숨과 함께 쪼그려 앉았다.

왜…… 양념통에 라벨이 하나도 없는 건데? 같은 디자인의 유리병에 재료들이 다양하게 담겨 있으면 안에 든 재료를 설명하는 라벨을 붙이는 것이 기본이 아닌가?

막막함과 좌절감에 앉아 있는 것도 잠시, 레오의 시선이 벽에 걸려 있는 시계로 향했다. 우리 못난이 배고프기 전에 뭐든 준비해야 했다.

오전이긴 하지만 차라리 바비큐가 먹고 싶다고 해 주면 안 되나? 당장 창고에 있는 장작을 패서 바비큐 만들어 주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갑갑함에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바라본들 답이 나오는 건 아니기에 다시금 일어난 레오는 AI가 알려 주는 대로 제게 주어진 미션을 하나씩 수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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