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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Shot(더블 샷)-64화 (6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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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진짜 맛집이라니까. 혜담 씨 이렇게 잘 먹는 거 처음 보는 것 같아. 우리 다음에도 또 와요. 나도 여기 음식 좋아하거든요. 레오, 넌 따라오지 말고.”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레오에게 축객령을 내리는 루나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그에 맞서는 레오 역시 만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둘의 대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혜담은 오히려 제게 집중했다. 너무 허겁지겁 먹었나?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없던 입맛이 갑자기 도는 바람에. 진짜 이걸 내가 다 먹었다고? 속은 아직은 괜찮은 것 같은데. 또 더부룩해지면 어떡하지?

어쨌거나 컨디션 좋을 때, 루나가 준비한 파일만 받고 빨리 헤어지는 게 상책이었다. 로버트와 레오의 스케줄을 조절하던 중 오늘은 외근 후 회사 복귀가 아닌 바로 퇴근하는 것으로 말을 맞춰 놓았다.

계속 불편하다면 병원을 방문해 제대로 된 진단을 받고 입덧을……. 아직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현상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너무 크고 유명한 오메가 센터보다는 작고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을 알아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내려놓았던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휴대전화를 꺼낸 혜담은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검색을…….

“우리 시간 더 뺏을 거야? 바쁘신 분은 그만 가. 우리도 할 거 많아.”

“혜담이 피곤해. 파일만 넘겨주면 됐지, 또 뭘 하려고?”

저들끼리 티격태격하느라 바쁜 둘을 무시하며 검색창에 「오메ㄱ」를 쓰던 혜담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라고? 방금 제 이름이 들린 것 같은데.

“뭘 하긴? 일하고, 오후엔 티타임 할 거야. 너희 호텔에서.”

“말해 놓을게.”

‘혜담이? 티타임? 호텔?’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을 연달아 들은 자신만 당황했는지 방금까지 아옹다옹하던 루나와 레오는 대화를 멈추고 각자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티타임?”

자신의 뇌에 박힌 세 단어 중 가장 무난한 단어가 혜담의 입에서 흘러나갔다.

“애프터눈티 좋잖아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푹신한 소파에 몸을 파묻고 루이보스티에 달달한 핑거푸드만큼 힐링되는 상황이 어딨어요. 열심히 일한 자 편히 쉬어라. 몰라요? 우리가 레오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데, 이 정도 혜택은 누려야죠. 거기다 우리의 보스는 이런 데 후하거든요. 지금도 미리 호텔에 연락해 둔다잖아요.”

그녀가 말하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안락함이 밀려왔지만, 현실을 직시한 혜담은 살짝 머리를 흔들어 망상을 떨쳐 냈다. 그녀가 레오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건 사실일지 모르지만 최근 한 달을 돌아봤을 때, 현재 자신의 상황은 무노동 고임금과 흡사했다.

아, 레오와 고강도로 체력이 마이너스가 될 때까지 놀아 주니 한계까지 일하고 있는 것인가?

“저는 괜찮습니다.”

“왜요?”

“왜?”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정중하게 루나의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배려하며 거절의 말을 꺼낸 혜담이 마주한 건 두 명의 시선이었다. 루나는 그렇다 쳐도 레오 넌 왜 그러는데?

“근무 시…….”

“자, 자, 그만 일어나죠. 저기 로버트 씨도 오네. 레오, 혜담 씨 편으로 보내는 파일 꼼꼼히 잘 봐. 네게 꼭 필요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혜담 씨, 우리도 그만 갈까요? 근무시간인데 근무해야죠. 암요. 일해야지. 해야 하고말고. 그래야 당당하게 놀지.”

루나와 있을 때 늘 그랬던 것처럼 재빨리 주위를 환기한 그녀의 손에 등 떠밀려 음식점을 나온 혜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아마도 루나는 레오를 제멋대로 휘두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큰 목소리로 타박하고, 레오가 뭐라고 말하든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그녀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태도를 레오 역시 익숙하다는 듯 무심하게 받아넘겼다.

제가 그녀처럼 말한다면 레오는 꼬치꼬치 캐묻고, 확인하고, 따지고, 다투고…….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 뻔해 헛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요?”

“팀장님을 마음대로 굴릴 수 있는 유일한 분 같아서요.”

“제가요?”

“네.”

“혜담 씨, 솔직히 말해 봐요. 연애 별로 안 해 봤죠?”

“아뇨, 저 정말 많이 해 봤습니다.”

“속일 사람을 속여요. 혜담 씨 손짓도 아니고 눈빛 하나에 레오가 바닥을 구르는데.”

“당연히 그래야죠. 제가 스케줄 관리하는데. 저 화나게 했다간 5분 단위로 굴려 버리는 거 일도 아니잖아요. 그런 일 당하고 싶지 않으면 잘해야죠.”

“아, 방금 그 말 되게 얄미웠다. 제가 이렇게 떽떽거려도 레오가 아무렇지 않은 거랑 혜담 씨의 행동에 레오가 반응하는 거랑 완전히 다른 거 몰라요?”

“모르겠는데요.”

음식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녀의 사무실이 있었기에 나란히 걷는 동안 사담이 이어졌다.

“혹시 가고 싶은 곳 있어요?”

직장 상사로서 레오가 쉬운 사람이다 아니다 같은 실없는 대화에서 갑자기 완전히 방향이 바뀐 말에 혜담은 어깨를 으쓱했다. 레오 험담하다가 갑자기 가고 싶은 곳이라니.

“글쎄요.”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어 얼버무린 혜담은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한쪽에 쌓여 있는 파일을 보곤 고개를 저었다. 설마 저걸 다 가지고 가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쪽 파일 아니에요. 걱정 마세요. 회의실에 있는데 제가 마지막 점검을 좀 해야 하거든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동안 가고 싶은 곳도 생각해 보시구요. 참, 방금 밥 먹고 오긴 했는데 음료라도 드실래요?”

“아뇨, 사양할게요. 여기서 더 먹었다간 진짜 버클 풀어야 될 거 같거든요. 제가 도와드릴 건 없나요?”

“혜담 씨, 파일은 보셨어요?”

파일이 있다는 회의실로 안내받은 혜담은 그녀가 가지고 오는 짙은 파란색의 파일을 말없이 응시했다. 어제 받아 가면서 한번 대충 훑어본 게 전부였다. 제대로 펴 볼 시간이 없었으니까. 혜담이 안 봤을 거라는 걸 확신하는지 루나는 파일을 혜담에게 안겨 주고는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어디 가고 싶으세요?”

맞은편에 앉아 파일을 열던 혜담은 파일에 시선을 둔 채, 조금 전 주제를 다시 끌어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가 지금 어딜 가요.”

“휴식이 필요한 사람이 휴가 가는 게 뭐 어때서요. 오늘 얼굴 보니 완전 힘들어 보이는데,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고 있는 건 맞죠?”

“직장인이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던가요?”

“아마 제가 말발로 못 이기는 유일한 사람이 혜담 씨일 거예요.”

“설마요.”

“어쨌거나 지금 제가 여행을 못 가니까 대신 다녀와 줘요.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출근 같은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고 늦잠도 막 자고, 그런 완전한 휴식 여행 말이에요. 맞벌이 직장인에 아이까지 있으면 여행은 꿈같은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 지금 많이 다녀야죠! 아기 태어나면 진짜 옴짝달싹 못 한다니까.”

파일을 찬찬히 보다 메모를 남기며 가볍게 꺼내는 루나의 말에 혜담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귀여운 아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여 주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역시 그녀의 귀여운 아이를 보는 건 즐거웠으니까, 한데 점심을 먹을 때도 그렇고 흘리듯 나오는 그녀의 말속에 뼈가 있는 것 같았다.

“따뜻하고 조용하며 아무도 없는 곳?”

대답하지 않으면 집요하게 더 물을 것 같아 혜담은 두리뭉실하게 대답했다.

“무인도 추천해 드려요? 진짜 좋은 곳 있는데.”

“루나 씨는 항상 상상 그 이상이네요. 좋은 여행지 추천이 아니라 무인도라니. 무인도에서 혼자 낚시하고, 불 피우고, 노숙하라고요? 그거 휴식이 아니라 생존 아니에요?”

“왜 생존이라고 생각해요? 완벽하게 시설이 다 갖춰져 있는데, 사람들로 가득 채울 수도 있고, 아무도 남기지 않고 모두 떠나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인데요. 그러니 혜담 씨 원하는 대로 혼자 낚시도 할 수 있고, 해먹에 누워 하루 종일 하늘만 봐도 되는 곳이에요. 노숙도 원하면 할 수 있는데 좋은 시설 두고 왜 노숙해요. 벌레 물리게. 그래도 가면 밤하늘은 꼭 봐야 해요.”

어느새 이미 자신이 그 무인도에 가는 것이 확정된 것처럼 하는 루나의 말에 혜담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저 그 무인도 언제 가는데요?”

“오늘? 내일? 휴가가 무슨 상관이래. 혜담 씨 1년 출근 안 한다고 해도 레오는 할 말 없으니까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원하시면 지금도 가실 수 있는데 어때요?”

파일을 밀어 놓고 곧바로 태블릿을 집어 드는 그녀의 적극적인 행동에 당황한 건 혜담이었다.

아니 갑자기 왜 날 무인도로 보내려고 해. 어디론가 가려고 하는 건 맞지만 아직은 아닌데. 조금은 더 레오의 곁에 있어도 될 것 같은데. 이사는 어떻게 하고…… 그 전에 병원에 한 번 더 가서 확답도 받아야 하는데!

“가고 싶을 때 말할게요.”

그녀가 더 앞서나가기 전에 혜담은 안락해 보이는 일인용 리클라이너 의자 옆에 체크 표시를 했다. 어디서 어떻게 살든 이런 의자 하나쯤은 꼭 필요할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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