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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Shot(더블 샷)-61화 (6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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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혜담은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준석을 마주 보며 어깨만 으쓱거렸다. 너도 당황스럽냐? 나도 당황스럽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곱창에 소주를 두고 먹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거기다 오늘 먹은 거라곤 아침 식사였던 빵 쪼가리와 커피 조금, 루나를 만나서 마신 얼음물과 유자차가 전부였다.

평소라면 뱃가죽이 등가죽과 하이파이브를 할 상황이라 미친 듯이 흡입해도 모자랄 판에, 혜담이 겪고 있는 증상은 멀미와 식욕 없음이었다.

“속이 별로…… 읍.”

잘 익은 곱창을 타지 않게 뒤집으며 다 익었는데 왜 안 먹냐는 물음을 담을 준석의 표정에 답을 하던 혜담은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를 붙잡고 헛구역질하기를 몇 번, 먹은 것이 없어 나올 것도 없었다. 결국 세면대 앞으로 온 혜담은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입을 헹궈 냈다.

체해도 보통 몇 끼 굶으면 괜찮아지더니 지금은 심해지면 심해졌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엎드린 채, 헛구역질을 해서 그런 것인지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눈앞이 까맣게 변하기까지 하자 혜담은 세면대를 잡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까맣게 변했다가 별이 반짝거리는 것 같던 시야가 점차 바로 돌아오고 현기증이 사라지고 나서야 혜담은 잠시 멈췄던 숨을 느릿하게 내뱉었다.

“괜찮아?”

혜담은 언제 온 것인지 거울 너머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는 준석과 시선과 얽히자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상태 영 아닌데?”

“평생 안 다니던 여행까지 다녀와서 몸이 적응을 못 하나 보네.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야야. 안 좋으면 그냥 들어가. 체했을 때 고기에 소주는 진짜 아니다.”

“소주는 못 먹어도, 곱창은 먹을 수 있거든!”

“우기지 말고.”

“너무 못 먹어서 그래. 못 먹어서. 먹으면 괜찮아진다니까, 오늘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고기 먹고 몸보신 해야 돼.”

커다란 덩치로 문을 막고 서 있는 준석을 밀고 자리로 돌아온 혜담은 미간을 찌푸린 채, 지글지글 익다 못해 곧 타들어 갈 것 같은 곱창을 노려보았다.

조금 전보다 속이 편해진 것 같기는 한데, 도저히 곱창을 집어 먹을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먹었다가 또 변기랑 미팅하고 싶지는 않은데…….

혜담은 뒤따라온 준석이 곱창을 한쪽으로 우르르 몰아 버리고 소고기를 추가 주문하는 걸 말리지 않았다. 소고기가 구워지는 걸 기다리다 소주 대신 탄산을 조금 마신 혜담은 불안한 감정을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한 점을 집어 먹었다.

‘어? 소고기는 괜찮아?’

곱창은 보기만 해도 느글거리더니 소고기는 먹을 만하기에 혜담은 날름 한 점 더 먹었다.

“너는 내가 병원 가라고 한 게 언젠데, 맨날 제대로 처먹지도 않고 밤마다 술이나 까고 말이야. 그러니까 속병이 나지. 니가 아직도 스무 살인 줄 알아? 그리고 운동하랬지. 빡세게 운동하고 찬물로 샤워하면 얼마나 개운한…….”

계속 이어지는 잔소리에 혜담은 마늘을 왕창 넣은 곱창 쌈을 만들어 준석의 입에 쑤셔 넣어 버렸다.

“간다. 간다고. 내일 아침 날 밝는 대로 병원 예약하고 종합검진 받을 테니까, 그만해. 잔소리에 더 체하겠다.”

“운동한다고도 약속해.”

매운 생마늘을 잔뜩 넣었지만, 눈가를 슬쩍 찌푸리기만 할 뿐 우적우적 씹어 삼킨 준석의 말에 혜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오. 진짜 죽을래?”

“저번에도 운동한다고 와 놓고 몇 번 꿈지럭거리다가 곱창만 실컷 먹고 갔잖아.”

“나는 땀 흘리는 게 제일 싫다고.”

준석과 티격태격하며 소고기를 몇 점 집어 먹긴 했지만 결국 평소 양의 절반도 먹지 못하고 결국 젓가락을 내려놓아야 했다.

취한 준석을 택시 태워 보내고 집으로 가려던 혜담은 다시금 속이 불편해지자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적당히 취해서 알딸딸한 기분으로 집에 가서 깨끗하게 씻고 잠들면 좋겠건만 말짱한 정신으로 밤거리에 홀로 선 혜담은 옷깃을 여미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금 전에 빈속이라 더 불편한가 했더니 어느 정도 배를 채운 상황에서도 불편함이 이어지자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속이 비어도 불편하고 채워도 불편하고. 체했을 때 주로 느끼는 것들이긴 한데 현기증에 가슴 답답함까지 겹친 낯선 상황에 눈에 들어온 건 대형 병원이었다.

이 상태로 집에 갔다가 밤새 불편한 상황을 겪을 것이냐. 응급실이라도 가서 대충 진단받고 약이라도 먹을 것이냐에 대한 고민은 그리 깊지 않았다. 왜 하필 곱창집에서 보이는 곳에 대형 병원이 있어 가지고,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제 발로 응급실로 걸어가는 혜담의 입에선 연신 한숨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12월 내도록 농담처럼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힘들다, 졸리다, 지친다, 내년에는 종합검진 꼭 받는다. 이런 말들이었는데, 응급실을 제 발로 찾아갈 줄이야.

그냥 좀 심하게 체한 것 같은데 돌아갈까? 아니지, 밤새 이런 불편함에 잠 못 드는 것보다는 약을 먹든 링거라도 맞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내일 레오 앞에서 골골거렸다간 왜 아프냐, 어디가 아프냐, 같이 병원 가자, 따위의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일정은 생각지도 않고 저를 병원으로 데려갈 것이 눈앞에 그려지자 미적거리던 발걸음에 힘이 들어갔다.

응급 환자들 사이에서 너무나도 멀쩡하게 베드 하나를 부여받고 앉아 있던 혜담은 머쓱함에 볼만 긁어야 했다.

“이혜담 환자분.”

“아, 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멀미하는 것처럼 울렁거리고, 헛구역질에 현기증도…….”

의사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혜담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말로 뱉고 보니 진짜 별거 아닌 거 같은데?

“피검사, 소변검사 결과부터 보고 추가 진료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사의 처방대로 움직이면서도 혜담은 계속 후회하고 있었다. 그냥 집에 가서 씻고 잠이나 잘걸. 병원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심하게 울렁거리던 속은 어느 순간부터 편안해졌다. 오히려 잠과 피곤함이 밀려와 푹신한 자신의 침대에 눕고 싶은 욕구가 마구 솟구쳤다.

병원에 가라느니, 운동을 하라느니 같은 잔소리를 듣는 바람에 그런 거다. 그런 말만 안 들었어도 충동적으로 병원에 오지는 않았을 텐데. 바쁘고 급한 환자들이 많은 응급실에서 뭔 민폐란 말인가.

“소변검사 결과…… 오메가 센터…….”

잠시 후, 혜담이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꼬박꼬박 졸고 있던 침상으로 찾아온 피곤에 찌든 야간 응급실 당직 의사는 사무적인 목소리로 차트를 보며 줄줄 읊었다. 나름 집중해서 그의 말을 귀로 듣긴 했지만 낯설고 당황스러운 내용이 이어지기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혜담의 얼굴엔 물음표가 가득 생겼다.

“네? 제가 오메가 센터에는 왜?”

“검사 결과 소량의…….”

“그러니까 제가 임신이라고요? 왜요?”

“……피임 없이 알파와 관계를 맺으셨으니까요.”

살짝 흘러내린 안경을 손끝으로 올리며 대답해 주는 의사의 목소리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이보다 멍청한 질문과 어이없는 대답이 어디 있을까.

제가 정말 오메가냐는 쓰레기 같은 질문은 꺼낼 수조차 없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영양제를 맞고 안정을 취하고 가라는 말을 끝으로 의사는 사라져 버렸다.

소란스러운 응급실에서 홀로 링거를 맞게 된 혜담은 손을 들어 눈을 가려 버렸다. 링거에 뭘 잔뜩 넣었다고 하더니 미약하게 울렁거림이 남아 있던 속도 진정되고, 순간순간 밀려오던 현기증도 사라졌다. 묵직하게 눌리는 것 같던 몸은 편안해졌을지 모르지만 머릿속은 복잡한 상황에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어? 너…… 뭐야?”

차가운 병원 침대에 누워 거진 두 시간 동안 링거를 다 맞고 나온 혜담이 향한 곳은 자신의 집이나 레오의 집이 아닌 준석의 집이었다. 복잡한 머리로 홀로 뒤척거리며 밤을 지새우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었다.

“사람.”

“집에 안 갔어? 지금 몇 시…….”

“집 보일러 고장 나서 추워. 여기서 자고 출근하게.”

자신이 낸 인기척에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던 준석이 다시 잠들자 혜담은 그의 집에 뒀던 자신의 옷을 찾아 입고는 바닥이 아닌 그가 누워 있는 침대로 들어갔다.

잠결에 제가 파고드는 걸 느꼈는지 뭐라고 구시렁거리긴 했지만 밀려오는 잠이 먼저인지 준석이 잠들자 혜담은 그의 팔을 베고 누웠다.

“뭐야.”

평소라면 이불을 꺼내 바닥에서 잤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니 지금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체격도 비슷하고 체온이 높은 것도 똑같은 한 사람이 떠오르자 누군가가 자신의 심장을 꽉 쥐어짜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들었다.

“춥다고. 너 따뜻하잖아.”

내려가라고 하더니 춥다는 말에 준석은 구시렁거리면서 순순히 팔을 내어 주고 이불도 덮어 주었다. 분명 누군가가 저를 편안하게 안아 주고 있고, 고른 숨결을 내뱉으며 잠들어 있는 것도 같은데, 달랐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커피 향도 없고, 숨이 막힐 만큼 가끔 꼭 끌어안는 그런 것도 없고. 준석의 팔을 베고 모로 누운 혜담의 보조개가 깊어졌다.

아이라고? 갑자기? 내가 진짜 오메가였다고?

자신이 느꼈던 그 커피 향이 정말 레오의 페로몬이고, 최근 들어 가끔 맡았던 빵 내음이 정말 제 페로몬이라면…….

정확하게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가 알파라는 것을 알고 있던 제가 조심했어야 했다. 막연하게 어릴 때 오메가였고, 형질이 사라졌으니까 괜찮겠지, 라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하지? 말을 해야 하나? 말을 하면 뭐가 달라지지?

문득 루나와 지나가듯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 혜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이 베타라서 선택한 레오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도 싫어하고, 오메가도 싫어하고. 이제 제겐 그가 좋아할 만한 것들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밤새 입술을 꾹꾹 물고,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뜨고 심호흡을 하는 혜담의 한 손은 아랫배 위에 올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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