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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Shot(더블 샷)-57화 (5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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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와 잡았던 손을 잠시 놓고 태블릿을 넣은 가방을 잘 닫은 혜담은 앞서 나갈 줄 알았던 레오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자 슬쩍 고개를 들며 턱짓을 했다.

“아, 진짜 오늘 왜 그래요?”

눈썹 위를 손끝으로 긁으면서 투덜거리듯 하는 말에 혜담은 다시 한번 턱짓을 해 나가자는 의견을 피력했다.

“나 곤란하게 하려고?”

아니, 나가자니까 뭔 말이 주절주절 많아. 두 번이나 제 행동을 봐놓고도 나가려는 의지가 없어 보이기에 혜담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여권 발급이 한 시간 안에 되나? 여권 발급을 해 봤어야 말이지. 극성수기에 실시간으로 표를 구할 수 있나? 로버트라면 가능할지도…… 아! 얘 전용기 있지? 그런데 어디 가? 여벌 옷도 세면도구도 그 무엇도 없는데, 면세점에서 그런 것들도 다 파나?

“서둘러야 하지 않아?”

레오의 중얼거림엔 답을 하지 않은 채, 갑작스러운 여행을 앞두고 수없이 떠오르는 상황과 그것을 해결하려 노력하던 혜담은 장승처럼 서 있는 레오의 팔목 부근을 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손을 잡고 싶지만 그건 너무 간지럽고, 그런 친밀하고 간질거리는 행동을 할 사이는 아닌 것 같았기에 내린 선택이었다.

“먼저 안아 주고, 키스 더 해 달라고 조르고, 여행 가자니까 바로 따라나서고, 이거 꿈이죠?”

“……여권 발행이 한 시간 안에 돼? 옷도 세면도구도 아무것도 없어. 그거 한 시간 안에 다 해결할 수 있어?”

혜담은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옷이 왜 필요해요?”

옷이 왜 필요하냐는 레오의 질문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혜담이 고개를 번쩍 들자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레오의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

갔다가 오늘 돌아오는 거였어? 내가 너무 앞서 나간 거야? 보통 여행이라고 말을 붙이면 최소 하루는 자고 오는 거 아니었어? 새해 카운트다운 같이 보자고 했으면, 같이 밤 보내는 거 아닌가? 카운트다운만 보고 집에 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생각들이 쏟아져 나왔고, 조금 전 나눴던 대화들과 뒤엉키며 더 혼란스러워졌다.

“여권 필요 없는 곳이야?”

“옷 필요해요?”

동상이몽. 가끔 이야기만 하는 상황이 연출되긴 했지만 오늘만큼 헛다리 짚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당일치기면 당연히 옷 필요 없지, 세면도구도 필요 없고.

“잠깐만 상황 정리 좀. 방금 한 시간쯤 뒤 비행기 타고 어딘가로 간다고 했잖아.”

“응, 그런데 나랑 있는데 옷이 필요하다고?”

아까부터 왜 계속 옷 타령이야. 너랑 있든 누구랑 있든 옷은 당연히 필요하지.

“어디 가는데?”

“제주도. 더 좋은 곳…….”

레오가 더 말을 하려 했지만, 혜담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제주도면 당일치기 가능하겠네. 전용기면 밤낮없이 띄울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지금 거기서 카운트다운만 딱 보고 다시 돌아오자는 거지? 씨바. 괜히 앞서 나가서 별생각 다 했네. 여권 필요 없고, 준비물도 필요 없으니 서두를 이유도 없고.

하…….

솔직하고 간단한 대화 몇 마디면 해결될 것을 의뭉스러운 단어들로 뒤섞인 대화 때문에 헛바람까지 든 것에 자괴감을 느끼며 혜담은 잡고 있던 레오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엉뚱한 생각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 뭐. 아직 내년 개인 스케줄은 모르긴 하지만, 1월 3일 오전에 회의 있고.”

레오의 공식 일정을 떠올리며 혜담은 설레어 붕 떴던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 도대체 자신은 뭘 기대했고,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설렘에 가슴이 부풀었던 것일까.

“또 표정 변하면서 발 뺄 궁리하는 것 같은데, 이쯤 되면 불가능하다는 거 알 때도 됐잖아. 매번 실패하면서도 이런 거 보면 참 한결같고, 꾸준해.”

혜담은 은근슬쩍 자신의 손을 잡아 오는 레오의 손을 바라보았다. 살아오면서 준석이와 있을 때 빼고는 작다는 말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그와 비교했을 때는 모든 것이 작은 것 같았다.

레오의 손안에 제 손이 들어가고, 손가락 사이사이가 얽히면서 단단하고 곧은 그의 손가락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루 이틀 정도의 여유만 더 있었어도 우리 못난이 가고 싶은 곳 다 갈 수 있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별로 없잖아. 이번엔 아쉬워도 제주도에 있는 부모님 별장 갔다 와요. 첫 여행인데 비행기 안에서 시간 버리는 건 너무 아깝잖아. 다음엔 가고 싶은 데 미리 말해요.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기어이 큰 몸을 숙여 눈높이를 맞추고, 차분하게 설명하는 레오의 말을 다 들은 혜담의 귀 끝이 한껏 붉어졌다.

“어쨌거나 지금은 제주도로 가니 여권 필요 없고, 우리가 가는 동안 필요한 것들은 다 준비될 테니까 이런저런 생각하지 말고 내 생각만 하는 건 어때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 믿는다며.”

분명 자신이 형인데, 그보다 더 오래 살았고, 나름 많은 일도 겪었고 웬만한 일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와 얽히기만 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 같았다.

“미리미리 설명해야 알지. 제대로 말을 안 해 주는데 어떻게 다 알아.”

시선을 내리깔아 레오의 눈을 피한 혜담의 입에서 궁색한 변명이 흘러나갔다.

“안 궁금하다며 나 믿는다며.”

“실언이야.”

레오의 입에서 나온 ‘첫 여행’이라는 말과 ‘다음’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혜담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어떻게 인간의 감정이 30초도 안 되는 시간에 하늘과 땅을 오갈 수 있는 것인지, 입술이 위로 올라갈 것 같고, 그걸 레오에게 들키기 싫어 혜담은 슬쩍 맞잡은 손을 끌어당겼다.

이렇게 마주 보고 서 있는 것보다 나란히 걷는 것이 표정을 숨기기 더 좋았다. 누군가가 필요한 것들을 다 준비해 놓는다고도 했지만 제주도라면 제가 필요한 물품들이 생기더라도 제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둘만 있는 공간에 커피 향이 스며들고 뒤를 잇는 빵 내음에 혜담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직원 휴게실로 들어갔다는 사람들이 나왔나? 서비스로 커피와 디저트를 가지고 나온 것 같기에 그거라도 먹으면서 이상해진 분위기를 푸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빵 내음과 커피 향을 좇던 혜담은 그제야 제가 아침을 챙겨 먹지 않았고, 배가 고프다는 것을 인지했다. 보여야 할 직원들은 보이지 않고, 여전히 자신과 레오 단둘만 있는 것에 의아해진 혜담은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았다.

실제 커피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커피 향은 레오 때문에 느끼는 것 같은데, 빵 냄새는 진짜 뭐지? 레오가 수시로 제게서 빵 냄새가 난다고 끌어안고 코를 킁킁거리긴 했지만 맡아 본 적 없는 향이었다.

막연하게 어릴 적 제게 오메가 형질이 나타났을 때 나타난 페로몬 향이 빵 냄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느껴 본 적은 없었다. 가끔 설마설마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 나이에 재발현이라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고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계속해서 일이 꼬이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오메가면 안 되는데, 베타이기에 레오의 옆에 있을 수 있고 그 때문에 그가 제게 호감을 보이고 있었다.

우성 알파와 관계하게 되면 그 영향으로 페로몬 자극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사춘기 때나 가능한 거고, 무엇보다 왜 이제야 갑작스럽게 자신이 이 향을 느끼는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혹시 레오도 눈치챈 건 아닐까? 숨겨야 하는데 그건 어떻게 하는 거지?

“안 되겠다. 그만 나가야겠어.”

당황한 시선을 숨기지 못한 채, 직원 휴게실 쪽만 바라보던 혜담은 레오에게 이끌려 라운지를 벗어났다. 수많은 냄새가 뒤섞인 공간에 나서는 순간 커피 향과 빵 내음이 사라졌다.

바삐 오가는 사람들의 소음과 어딘가로 자신을 데려가는 레오의 손에 이끌린 채, 혜담은 손목을 자신의 코에 대어 보았다. 손목과 목 뒤에서 페로몬 향이 많이 느껴진다고 했으니까.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지만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살짝 굳었던 혜담의 표정이 풀렸다. 직원 휴게실 안쪽에서 누군가가 토스트기라도 사용했나?

머쓱함에 괜히 검지로 코 아래를 문지른 혜담은 조금 발걸음을 빨리해 레오와 발을 맞춰 걸었다.

“그런데 어디 가요?”

“……어디 가요?”

“아, 어디 가?”

제가 한 말이 고스란히 돌아오자 혜담은 말투를 고쳐 말했다.

“간단히 먹을 만한 거 찾으려고요. 뭐 좋아해요?”

“추로스?”

딱히 추로스를 좋아하고 즐기는 건 아니었다. 단지 눈에 들어왔을 뿐.

조용한 곳에서 단둘이 오붓하게 간식을 즐길 수 있는데도 기어이 밖으로 나온 둘은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항 한쪽에 있는 간이 매장 앞 좁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가운데 놓인 레모네이드를 빨대를 이용해 한 모금 마신 혜담은 추로스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지금부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는 그를 제가 모시는 상사가 아닌 제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중간 어디쯤을 헤매면서 계속 고민하고 갈팡질팡하면서 이 순간과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여행 많이 가 봤어요?”

자신의 얼굴이 아닌 사람들에게 시선을 둔 레오의 질문에 혜담은 고개만 가로저었다.

“나 없는 동안 뭐 하고 지냈어요?”

밑도 끝도 없는 이상한 질문에 풉 하는 웃음이 혜담의 입에서 튀어 나갔다. 이런 이상한 플러팅은 어디서 배운 건지. 그가 말하는, 자신이 없는 동안이라는 게 너를 모르고 산 거의 30년에 달하는 시간을 말하는 것인지, 우리의 이상한 스쳐 지나간 것 같은 짧은 만남 이후를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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