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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Shot(더블 샷)-51화 (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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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에 문제 있습니까?”

이럴 때 필요한 게 눈새지. 얼른 눈빛을 바꾼 혜담은 셔츠 깃을 세우고 넥타이를 걸고만 있는 그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혜담 씨, 도움이 필요하네요.”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정말 진지한 목소리로 문제가 있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레오와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혜담은 소리 나게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가까이 와서 직접 봐야 할 것 같은데.”

“전 그럼, 나가서 기다리겠습니다.”

레오의 말과 로버트의 말이 겹쳐서 들렸지만 혜담은 제게 필요한 말을 정확히 캐치하고는 몸을 홱 돌려 로버트를 바라보았다.

빵도 준비됐고, 같이 먹을 잼과 버터도 준비가 끝났고, 음료 준비는 자신이 끝내 버렸다. 인자한 미소와 함께 ‘일정 조절 때문에요.’라는 말을 작게 붙인 로버트는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부엌을 빠져나갔다.

“저기…… 저…….”

떠나는 로버트를 잡고 싶어 급하게 손을 내민 혜담의 손만 허공에 허망하게 떠 있었다. 그를 꼭 붙들어 놓을 만한 타당한 이유를 급히 찾았지만 하얗게 변해 버린 두뇌는 어떤 작용도 하지 않고 멈춰 있었다.

“넥타이 봐 주는 게 그렇게 힘들어요?”

이게 끝까지 말도 안 되는 넥타이 타령하고 있네.

로버트가 떠나는 모습을 같이 지켜본 레오가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후 하는 말에 허공에 멈춰 있던 혜담의 손이 주먹으로 바뀌었다.

방금까지 가까이 오라던 놈이 싱글거리며 아일랜드 테이블 너머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순간 그 손은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딱.

“…….”

“…….”

혜담의 손이 레오의 이마를 쥐어박으면서 난 소리 이후 둘 사이엔 이상한 기류와 침묵이 내려앉았다.

절대 쥐어박으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손이 멋대로 움직였고, 하필 거기 레오가 있었을 뿐이고. 왜 내 손에 움직이는데 네가 머리를 집어넣어서 쥐어박히는 건데?

“아, 씨바…….”

분명 속으로 욕을 한 것 같은데, 이 말은 또 왜 밖으로 튀어나온단 말인가.

“들켰구나.”

쥐어박히고도 웃냐? 거기다 뭘 들켜?

사고회로 정지로 여전히 한 손을 허공에 든 채, 그대로 굳어 버린 혜담은 제 앞에서 자신보다 더 멋들어지게 넥타이를 매는 두 손을 바라보았다.

할 줄 알면서 헛소리한 거 맞는데, 그런 부분에선 제가 큰소리쳐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어쨌거나 지금 자신은 상사의 머리를 쥐어박은 막돼먹은 직원이었다.

“그냥 내가 부르면 와 주면 안 돼요?”

“……죄송합니다.”

레오가 뭐라고 지껄이든 한숨과 함께 사죄의 말을 건넨 혜담은 커피잔에 손을 댔다. 커피나 마시자,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든 휘말려서는 안 돼. 나는 지적인 인간이고,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비폭력주의자니까. 박애주의자까지는 아니지만, 타인의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배포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보자.

따뜻한 커피가 가득 든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 혜담은 느릿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폐를 가득 채우는 커피 향을 한껏 음미한 후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혼란스럽던 기분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것을 느낀 후, 혜담은 커피를 마시려고 했다.

자신이 커피 향을 즐기고, 심호흡하며 감정을 가다듬던 동안 얌전히 있던 레오가 엉뚱하게 움직였고 겨우 강 같은 평화를 얻었던 혜담의 감정이 또 한 번 뒤엎어졌다.

“뭐 하십니까?”

“커피 말고, 이거.”

두 손으로 잘 잡고 있던 머그잔을 한 손으로 뺏어 간 레오는 다른 머그잔을 제 손에 쥐여 주었다. 굳이 그에게 이게 뭐냐고 묻기 전에 이미 향으로 혜담은 그 음료가 무엇인지 인지했다. 한 대 쥐어박았다고, 이제 치사하게 먹는 것까지 네 맘대로 하려고?

“팀장님, 우리 이야기 좀 할까요?”

음료 마시는 것을 포기한 혜담은 머그잔을 내려놓았다.

“싫어요.”

“네?”

“우리 못난이 지금 화나서 나 혼내려는 거잖아. 그러니 싫습니다.”

이 또라이 새끼가.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반말하려면 쭉 반말을 하든가. 이 이상한 화법은 뭐며. 그놈의 못난이는…….

“레오 루이스. 앉아. 그리고 그 입 닥치고, 잘 들어.”

앞으로 계속 비서 일을 하든지, 아니면 때려치우든지 그 둘 중 하나를 결정하기 전에 할 말은 해야 했다.

“무서운데.”

구시렁거리면서도 얌전히 의자에 앉아 자신을 올려다보는 레오의 얼굴을 보는 순간 혜담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늘 그를 올려다보는 입장이었다. 같이 앉아 있다 하더라도 앉은키 역시 그가 더 크기에 그를 보려면 항상 약간 고개를 들거나 눈을 조금 치켜떠야 했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무밭에서 제멋대로 무 뽑았다가 할머니 앞에 불려가 앉은 누렁이가 왜 여기 있는 것 같냐고. 커다란 덩치를 움츠린 것도 아닌데 방금까지의 그 당당하고 뻔뻔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좋아서요.”

물러지는 마음을 다잡고 최대한 차갑고 냉정하며 딱딱한 말투를 꺼낸 혜담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온 해맑은 대답에 말문이 턱 막혔다.

“지금 제가 장난하는 걸로 보이십니까?”

“장난 아닌데…….”

제대로 된 대화 좀 하자. 제발. 이 화상아. 마치 준비된 대답처럼 톡톡 나오는 레오의 말에 혜담은 손으로 허리를 짚었다.

“그럼 지금 이 모든 행동이 팀장님이…….”

“레오.”

“……레오. 니가 나 좋아서 하는 거라고?”

“네.”

아…… 존나 진짜. 왜 할머니들이 강아지들을 오래 매섭게 혼내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무장한 마음을 녹여 버리는 미소에 혜담은 다시금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왜!”

“좋아하는 데 이유가 왜 필요해요?”

“그러니까 왜 난데! 나보다 어리고 예쁘고 착하고 능력도 있고, 오메가에 너랑 비슷한 집안에, 부모님도 다 계시고, 어! 그런 사람 많잖아! 지난번에 파티에서 보니까 그런 사람 넘치던데 왜 나냐고!”

치사하고 유치한 말이 혜담의 입에서 줄줄 새어 나갔다. 자격지심 가지지 않고 당당하고 즐겁게 살아온 자신이 그와 곁에 서는 순간 초라하고 하찮게 여겨지는 부분들 같은 것 말이다.

“…….”

방금까지 불쌍한 표정도 지었다가 생글거리는 해맑은 미소도 지었다가 눈치도 살살 보던 레오의 얼굴에서 풍성한 감정들이 서서히 사라졌다. 생기 넘치고, 다정하고,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다 받아 줄 것 같던 그가 말 붙이기도 어려운 차가운 석고상 같은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본 혜담은 입술만 꾹꾹 물었다.

방금까지 앉아 있기에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그가 일어남에 따라 혜담의 고개가 그를 따라 움직였고, 이내 늘 그랬던 것처럼 그를 올려다봐야 했다. 방금까지 제가 쥐고 있다고 여겼던 칼자루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목을 옆으로 꺾으며 가볍게 푼 레오가 한 발 다가오자 혜담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내가 싫은 건 아니었네?”

겨우 거리를 만들었지만, 더 다가오는 레오였기에 뒤를 살피며 슬금슬금 물러나던 혜담은 결국 그와 싱크대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었잖아.”

반걸음. 그가 조금만 더 다가오면 신체가 완전히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가 되어버렸다. 그것을 인지한 혜담은 두 손을 살짝 제 앞으로 내밀며 물고 있던 입술을 놓았다.

“내가 너보다 어리고, 돈도 많고, 집안도 좋고, 부모님도 다 살아 계셔서 문제였어? 남들은 그런 조건 때문에 앞뒤 안 가리고 미친 짓도 벌이던데, 우리 못난이는 겨우 그런 것 때문에 도망가려고 했구나.”

숨 막힐 것 같은 짙은 커피 향과 함께 싱크대를 손으로 짚은 레오가 상체를 숙이자 그의 가슴이 제 손에 닿았다.

졸지에 레오의 가슴에 손을 올리게 된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혜담은 그가 더 다가오자 허리를 뒤로 젖혀야만 했다. 그의 입술이 가까워지자 혜담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피했다.

“도망가고 싶어요?”

귓가에 닿는 그의 습한 숨결과 낮은 속삭임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도망가고 싶으면 가도 돼요. 우리 못난이 하고 싶은 건데, 그거 하나 이해 못 할까……. 그래서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정확히 뭐였어요? 우리 못난이 좋아하지 말라는 말 빼고는 다 들어줄게.”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 저를 올려놓을 때는 언제고 달콤한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따스한 분위기로 다정하게 속삭이며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는 레오의 행동에 혜담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반박하기 위해 고개를 홱 돌렸을 때, 혜담이 마주한 건 레오의 입술이었다.

“마음대로 입 맞추지 마!”

마음에도 없는 말이 툭 튀어 나갔지만 레오는 ‘기각’이라는 단어로 가볍게 자신의 제안을 쳐냈다.

“마음대로 끌어안지도 마.”

“……둘 다 허락받으면 돼요?”

“아니.”

“그럼?”

“이렇게 막 가까이 오지도 말고, 내 퍼스널 페이스 지켜 달라고. 또, 일단 확실한 네 마음 알았으니까 나한테도 생각할 시간을 주고…… 야!”

당당하게 레오의 눈을 쳐다본 것도 잠시, 다시 고개를 돌리고 깨끗한 싱크대만 보면서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던 혜담은 갑자기 허리를 잡아 싱크대에 앉히는 레오의 행동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러니까 우리 못난이도 나 좋다는 거잖아.”

……아, 왜 내 말이 그렇게 이해되는 건데? 레오와 눈높이가 같아진 혜담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도 이상하게 곡해해 듣는 특이한 능력 앞에 모든 전투력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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