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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Shot(더블 샷)-47화 (4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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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먹어요.”

혜담은 자리에 앉자마자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을 대번에 비워 버리는 레오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다 이내 제 앞에 있는 폭립 뼈를 집어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맥주도 맥주지만 먹음직스러운 양념이 폭 배어 따뜻한 온기를 모락모락 내뿜고 있는 폭립이 먼저였다.

“도대체 좋아하는 게 뭐예요?”

야들야들한 고기를 씹던 혜담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레오의 말에 피식 웃었다. 좋아하는 게 뭐냐고? 나도 모르겠는데.

“자는 거요?”

“……그건 누구나 좋아하고요.”

“아니면 먹는 거?”

“……그런 사람치고 식사량이 많은 것도 아니고, 매끼 꼬박꼬박 잘 챙겨 먹는 것도 아니던데.”

“노는 건 확실히 좋아합니다.”

“무노동 고임금?”

“네?”

“전에 그렇게 말했잖아요.”

“들켰네요.”

딱히 재미있는 대화도 아니건만 폭립을 시작으로 고기를 먹는 혜담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고기 좋아하는 건 확실하고.”

“술도.”

루나와 있을 때까지만 해도 꼬박꼬박 나오던 존칭을 붙였던 말이 단둘이 있게 되자 그 경계가 흐려지는 것 같았다.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누가요?”

“못생긴 혜담 씨죠.”

“제가 진짜 못생겼어요?”

“네.”

계속해서 자신을 못생겼다고 부르는 말이 익숙하면서도 어색했다. 루나에게 그가 말하는 못생겼다는 말에 대한 정의를 듣지 못했다면, 별생각 없이 지나갔을 수식어였다. 객관적으로 그와 그의 가족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제가 못생긴 건 확실하니까.

하지만 루나의 말을 듣고 난 이후 그 말이 그 어떤 다른 말보다 불편하게 느껴졌다.

“진심으로요?”

“내가 그렇게 부르는 거 싫어요?”

혜담은 다 뜯어먹은 뼈를 내려놓고는 옆에 놓인 맥주를 들이켰다. 하얗게 거품이 인 맥주는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다. 꽉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 주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레오처럼 단번에 다 비울 순 없지만 1/3 정도를 마신 혜담은 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못생긴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못생겼다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그리 좋은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알겠어요. 예쁜 혜담 씨.”

챙그랑.

폭립을 하나 뜯었으니 이젠 고기를 썰어 먹으려고 들었던 나이프가 혜담의 손끝에서 흘러내려 식기에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못생겼다는 말을 들을 때도 별 감정을 담지 않았던 혜담의 눈동자가 파리하게 떨렸다.

“팀장님.”

“네, 예쁜 혜담 씨.”

“지금 저랑 장난하십니까!”

못생겼다는 말 붙이지 말라니까 예쁘다고? 좋게 긍정적으로 보려야 볼 수가 없었다. 확 치고 올라오는 분노에 절로 혜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진짜 예뻐서 그래요.”

“좀 전엔 못생겼다면서요.”

“그것도 사실.”

“미쳤구나.”

“그걸 이제 알았어요?”

잠시나마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다. 말장난도 정도껏이지, 더 길게 대화를 나눠 봐야 이상한 말장난만 늘어날 것 같아 혜담은 놓쳤던 나이프를 다시 집어 들었다.

식기에 나이프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고 고기를 썰어 낸 혜담은 입 안 가득 고기를 물고 질겅질겅 씹었다. 길게 이야기를 하느니 맛있는 것이나 먹자는 것이 혜담의 생각이었다. 앞에 있는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음식 맛만큼은 훌륭했다.

“어떡하면 좋아해 줄래요?”

“그럴 일 없을 것 같습니다.”

남은 맥주를 마시며 혜담은 은은한 조명이 깔린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로 잔잔히 흐르는 강물이 빛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 그의 집 정원만큼 정갈하고 아름답지는 않지만 한적한 분위기를 느끼며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고 싶었다.

“난 혜담 씨 좋은데.”

“네.”

“지금 제가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반응이 왜 그래요?”

그의 말에 대답하려 입을 벌렸던 혜담은 아차 하는 표정과 함께 입술을 꾹 물었다. 그와 보내는 밤이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 좋아한다, 예쁘다는 말인데 새삼스러울 필요가 있나. 조금만 방심했어도 매번 하는 말이라는 대답을 할 뻔했다.

“팀장님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 굳이 싫어하는 사람이랑 일하진 않을 거 아닙니까. 이렇게 단둘이 얼굴 보고 밥 먹을 일도 없고.”

가장 무난한 말을 한 혜담은 포크와 나이프 대신 맥주잔에 손을 댔다.

“고기 좀 더 먹어요.”

“많이 먹었습니다.”

“평생 무노동 고임금 할래요?”

제대로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맥주나 마시고 노닥거리기만 하던 레오의 제안에 혜담은 맥주를 마시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팀장님. 식사하세요. 오늘 제대로 안 드셨거든요. 그리고 오늘 이렇게 놀면 내일부터 꼬인 스케줄 어떻게 수습하시려고, 그거 다 수습하시려면 체력 좋으셔야 하니 좀 드시죠.”

“저 지금 혜담 씨에게 제 인생을 건 제안을 했는데, 제대로 된 대답 피하는 겁니까?”

인생을 걸건 또 뭐람. 무노동 고임금이 따로 있어? 지금과 똑같은 월급 주는 대신 일을 줄여 주면 그게 나름 무노동 고임금일 것 같은데. 업무량만을 두고 본다면 예전보다 확실히 줄은 건 사실이었다.

인수인계만 하고 영국으로 돌아간다던 로버트 씨는 여전히 혜담과 일을 나눠 하고 있었고, 연말과 연초엔 업무적인 것보다 개인적인 일정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들은 상태였다. 오늘도 냉정하게 말을 하면 일을 했다기보다 백화점 구경하고 맛있는 것 먹고, 오후엔 설렁설렁 돌아다니며 쇼핑하는 것을 구경한 것이 전부였다.

“평생 무노동 고임금이요? 그런 사탕발림에 넘어가기엔 제가 세상을 좀 많이 알아서요. 지금 일에서 조금만 더 줄여 주시면 전 충분히 만족할 것 같습니다.”

“같이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건 곤란한데, 오늘도 혜담 씨 보고 싶어서 일정 다 미루고 온 거거든요.”

“못생긴 제가 다 보고 싶었다니 성은이 망극하네요.”

“왜 또 삐뚤어졌어요?”

“식사 다 하셨으면 그만 가죠. 대리 부를게요. 거리가 있어서 잡히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지만.”

맥주잔에 남아 있던 맥주를 모두 마신 혜담은 테이블 위에 엎어 놓았던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근처에 비서 있으니 부르면 되고, 제 제안 진짜 안 받아들일 겁니까?”

“무노동 고임금이요?”

“네.”

“조건이 뭔데요?”

“원하는 조건 있으면 다 말해 봐요. 최대한 수렴해서 다시 제안할게요.”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는 레오나 그걸 태연하게 무시하는 혜담이나 지금 자신들이 하고 있는 말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았다. 아무 말 대잔치라고 해도 될 만큼 어이없는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혜담은 몇 번이나 웃음을 참으려고 어금니를 꽉 물어야만 했다.

5분 안에 도착한다는 대리기사의 문자에 안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조금 추워도 바깥바람 쐬는 게 어떻냐는 혜담의 제안에 둘은 바람 부는 정원을 천천히 거닐었다.

“그런데 무노동 고임금이라는 말뜻은 정확히 알고 있어요?”

“나랑 결혼하면 내가 가진 돈 다 혜담 씨 것 되는데 그게 무노동 고임금 아닌가?”

“아, 방금 조금 솔깃했다.”

찬 바람이 제대로 여미지 않은 재킷 안으로 파고들자 혜담은 옷을 여미고 팔짱을 꼈다. 딱히 시선을 둘 곳이 없어 하늘을 올려다본 혜담은 방금까지 등 뒤에서 몰아치던 바람이 잠잠해지자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제 등 뒤로 온 것인지, 찬 바람을 막아 주기만 하면 딱 좋을 것 같은 레오의 팔이 슬금슬금 옆구리 사이로 파고들더니 이내 제 허리를 휘감았다. 떼어 낼까 하다 팔짱 푸는 것도 귀찮은 혜담은 그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온달.”

그의 가슴에 닿은 등을 타고 단어가 전해졌다.

“온달은 무슨. 그건 크리스마스 때였고, 며칠 있으면 하현달.”

등이 온전히 그의 가슴에 닿고, 온기가 은은하게 넘어오자 혜담은 몸에 힘을 풀고 그에게 편히 기댔다. 편하게 그의 어깨에 머리를 댄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찬 바람은 모두 레오에게 가고 제겐 그의 체온만 전해지는 것 같았다. 포근하게 자신을 감싸는 커피 향에 혜담은 느릿하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새해에 뭐 해요?”

어두운 하늘에 외로이 떠 있는 달과 그 주위에 드문드문 있는 구름을 보다 입술을 달싹거렸다.

“치맥 하면서 카운트다운 보겠죠.”

“누구랑?”

“그건 아직 생각 안 해 봐서.”

“나랑 해요.”

“내가 왜?”

윽.

갑자기 레오가 팔에 힘을 주는 바람에 허리가 졸려 혜담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왜 그러냐고 항의하려던 찰나 대리기사의 도착했다는 연락에 혜담은 한 팔로 레오의 가슴을 밀며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빨리 나랑 한다고 말해요.”

대리기사에게 주차장에서 보자는 말을 하며 주차장으로 향하던 혜담은 제 앞을 막아선 레오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턱짓으로 옆으로 비키라는 뜻을 전했다.

“도착하셨어요? 차 번호는…….”

대리기사와 통화하면서 주차장으로 가는 단순한 일조차 방해하는 그를 보는 혜담의 눈꼬리가 사나워졌다.

“네네, 지금 가고 있으니 차 앞에서 뵙겠습니다.”

통화를 끝내는 것과 동시에 “왜 그래요! 통화 중…….” 상황을 설명하는 혜담의 말소리를 레오가 한입에 먹어 버렸다.

“다른 사람이랑 통화하지 마요.”

짧다면 짧은 시간이자 길다면 긴 시간 혜담의 입술을 먹어 치운 레오가 꺼낸 말에 혜담은 어이가 없어 혀를 찼다. 자신의 일을 대신해 주는 비서에게 타인과 통화하지 말라고? 통화 안 하고 메시지만 주고받을까?

억지 주장을 너무 당연한 말처럼 하는 레오의 손에 손을 붙들린 채, 주차장으로 가는 혜담은 그의 잘난 뒤통수를 향해 슬쩍 주먹을 쥐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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