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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혜담은 등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작은 신음을 뱉었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아무도 없는 정원에서 폭죽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어떻게 안으로 들어온 것인지, 사람들의 눈은 어떻게 피했는지 이런 건 기억나지 않았다.
잠시만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벙긋거리던 입술은 레오에게 먹혀 버렸다. 갖춰 입고 있던 옷은 벗은 것인지 찢어 발겨진 것인지 모르게 사라지고 없었다.
늘 제가 취해 있었고, 레오가 맨정신이었던 것 같은데.
질척하게 얽혀 오는 그의 혀를 뿌리치지 못한 혜담의 두 팔이 절로 레오의 목에 감겼다. 숨 쉴 때마다 느껴지는 커피 향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제 피부 위를 노니는 뜨거운 커다란 손도 뒤섞이는 숨결도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레오의 체력을 따라가지 못해 숨을 헐떡이며 잠시라도 그의 입술을 피할라치면 레오의 몸짓이 격해졌다.
몸을 부숴 버릴 것 같은 강한 힘에 의한 것인지 쾌락에 절어 버린 뇌에서 본능적으로 흘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신음이 혜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 레오…… 좀.”
서서 하는 것보다 누워서……. 그와의 키 차이 때문에 혜담의 두 다리는 현재 허공에 떠 있었다. 제 엉덩이를 받쳐 쥔 그의 손이 없다면 곧장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 당연했다.
레오가 팔의 힘을 풀면서 강하게 치고 올라오는 감각에 혜담의 두 팔에 힘이 들어갔다.
“다시 말해 봐.”
평소보다 훨씬 거칠어진 레오의 숨결 사이로 들리는 짓씹는 것 같은 목소리에 혜담의 몸속 깊은 속이 더 뜨거워졌다. 늘 그렇듯 아랫배는 절절 끓었고, 몸속의 모든 세포가 제가 살아 있음을 깨닫게 해 주고 있었다.
쾌감과 둔통, 평소에도 갈구하던 커피를 원 없이 들이마시는 것 같은 느낌에 혜담은 그를 더 꼭 끌어안았다. 맞닿은 가슴을 통해 빠르고 강하게 뛰는 그의 심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잠시 그의 입술이 떨어진 것이 아쉬워 오히려 혜담의 입술이 그의 입술을 찾았다.
“이혜담.”
어서. 키스해. 아무 생각할 수 없도록 만들어 달라고.
누구의 것일지 모를 타액으로 흠뻑 젖은 제 입술로 그의 입술을 뭉갠 혜담의 혀끝이 레오의 입술을 더듬었다. 그의 입술이 살짝 벌어진 틈을 타 그의 입 안까지 탐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으응.
제가 피할 때는 그렇게 집요하게 따라붙더니 제가 원하는 대로 키스해 주지 않는 레오에 혜담의 입에서 불만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시 말해.”
무슨 말을 했지? 대답하지 않는 이상 레오가 움직이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익숙한 쾌락을 좇던 혜담의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침대.”
침대로 가서 원 없이 뒹굴면 안 돼?
“아니.”
방금까지 제가 느끼는 곳을 공략하고 제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서 제공하던 레오의 모든 움직임이 멈추자 혜담은 내리깔고 있던 눈을 천천히 크게 떴다. 조금의 틈도 없이 꽉 끌어안고 있던 팔에도 힘을 풀었다.
둘 사이에 약간의 거리가 만들어지자, 레오와 눈을 맞춘 혜담은 혀끝을 내밀어 제 입술을 훑었다. 깊은 눈은 더욱 어두워져 있고,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열기에 온몸이 익어 버릴 것 같았다.
“다시 불러 줘.”
지긋이 눈을 맞추던 레오의 명령 같은 말에 혜담의 입술이 절로 열렸다.
“레오…….”
레오. 레오 루이스. 본명을 다 불러 주려 했지만 멈춰 있던 레오의 급격한 움직임에 혜담은 그의 이름을 온전히 입에 담지 못했다. 제 엉덩이를 받쳐 안은 채, 성큼성큼 걷는 그로 인해 전해지는 낯선 감각에 이완되어 있던 혜담의 몸이 경직되며 발끝이 곱아들었다.
“다시.”
“……레오.”
몸을 가득 채웠던 강한 전율이 지나가고, 혜담의 입에서 다시금 그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이럴 때만 말 듣지.”
등 뒤로 부드럽고 푹신한 이불이 싸늘하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혜담은 제가 원하던 대로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쾌락을 추구하는 본능만이 혜담을 지배했다. 레오가 멀어질 때면 오히려 제가 더 허겁지겁 그를 끌어안았다.
레오의 거친 움직임에 더 달아올랐고, 그의 움직임이 느려지면 감질나서 한껏 상체를 젖혔다. 그를 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불덩이를 안고 있는 것 같은 열기에 녹아내린다 해도 놓을 수가 없었다.
쾌락의 끝에 찾아온 통증에 혜담의 두 손이 레오의 어깨에 닿았다. 이런 고통은 처음인데, 격하게 휘몰아치는 태풍의 끝에 찾아오는 안락함을 기대하던 중 찾아온 통증에 그를 밀어내려 절로 팔에 힘이 들어갔다.
“쉿. 괜찮아질 거야.”
어떻게든 고통에서 벗어나려 그의 어깨를 밀고 두드려도 레오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저를 더 끌어안았다. 싫다고, 아프다고, 그만하라며 도리질 쳐도 레오는 제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몸을 들썩일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고통에 기어이 혜담의 눈가가 젖어 들었다.
“미안해.”
미안한 거 알면 이게 뭔지 몰라도 그만해.
계속해서 눈물이 차올라 레오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손이 눈물을 닦아 내고 그의 입술이 얼굴에 내려앉았다. 방금까지 그의 품에서 환희에 들떠 헐떡이던 혜담은 없었다.
“씨발. 꺼져.”
갑작스러운 고통에 자신을 처박아 넣은 레오를 향해 원망의 눈빛을 가득 보내던 혜담은 욕지거리를 내뱉고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 * *
씨바. 미쳤네. 미쳤어. 술도 안 처먹고. 혈기 왕성한 10대도 아니고, 이 나이 먹고도 육욕에 눈이 멀어 앞뒤 안 가리고 뒹굴기나 하고. 나가 뒈지든가 자르든가 뭔 수를 내야지.
혜담은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움직여 침대에서 내려오다 척추를 타고 흐르는 고통에 이를 꽉 깨물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기에 망정이지 헐벗은 엉덩이와 무릎뼈가 작살날 뻔했다.
튀어나오는 신음을 삼킨 채, 눈물을 찔끔 흘린 혜담은 일어서는 것보다 느릿하게 기는 걸 선택했다. 무릎을 질질 끌며 기는 소리는 역시나 카펫이 가려 주었다. 깊게 잠든 레오에게 들키지 않고 방 입구 앞에 쌓여 있는 옷더미로 가는 것이 일차 목표였다.
쓸데없이 커다랗기만 한 방을 겨우 기어서 문 앞에 도착한 혜담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탄식은 쉬어 버린 목 상태로 인해 소리가 아닌 헛바람 소리로 바뀌어 나왔다.
셔츠의 단추 몇 개가 사라지긴 했지만 못 입을 만큼 망가지지 않은 것에 웃지도 울지도 못한 혜담은 착실히 제 옷을 찾아 팔과 다리를 꿰었다. 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벽을 잡고 겨우 일어난 혜담의 얼굴이 당혹스러움을 가득 담은 채, 한껏 붉어졌다.
이 벽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이럴 때 제가 저지른 만행을 떠올린 제 뇌를 욕하며 혜담은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한겨울의 이른 아침은 어둠으로 가득했고, 혜담은 어둠이 내린 복도로 느릿하게 발을 옮겼다.
레오와의 관계가 처음도 아닌데 이렇게 힘든 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그와 밤을 보낸 다음에는 몸이 뻐근하고 불편했지만 돌아다니는 데 큰 문제가 없었는데, 몸살이라도 난 듯 축축 처지는 몸과 한없이 무거운 다리가 빈번하게 자신을 아래로 끌어당겨 기어이 벤치에 앉게 만들었다. 다행히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집을 빠져나온 혜담은 이곳에서도 한참 걸어가야 하는 주차장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최근 들어 컨디션이 좋지 않긴 했다. 마지막으로 제게 각인되듯 남은 고통이 떠오르자 혜담은 손을 들어 아랫배에 올려 두었다. 무서울 정도로 강한 고통이었다. 그리고 그 끝은 기억을 잃은 것인데, 제 몸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감기 몸살이 난 것처럼 힘들긴 해도 속이 아프진 않았다. 아랫배를 문지르며 주차장을 바라보던 혜담은 앓는 소리와 함께 몸에 힘을 주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미적거리다가 해 뜨고 말지.
어제까지만 해도 참 멋진 집이다. 돈 벌면 이런 집에 살아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혜담은 현재 이 집에 저주를 내리고 있었다. 넓은 집은 하등 쓸모없다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몇 걸음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자신의 집이 최고다. 집에서 주차장까지 왜 이렇게 멀어! 어제 손님들을 실어 나르던 카트는 다 어디 갔나?
걷기 싫은 마음에 혜담은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이제 먼동이 트는지 처음보다 조금 밝아진 상황이라 명암 정도는 구별할 수 있었다.
돈도 많으면서 조명에 왜 투자를 안 해. 복도도 어두워서 손끝으로 벽을 짚고 나왔구만. 작은 것 하나하나에 불만을 가득 품던 혜담의 눈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는 카트가 들어왔다.
버튼 몇 개로 조작할 수 있는 카트에 몸을 실은 혜담은 긴 정원을 편하게 가로질렀고, 레오가 선물한 이후. 처음으로 개시해서 몰고 온 자신의 차를 찾아 몸을 실었다.
내비게이션에 뜬 자신의 집 주소를 손끝으로 터치한 혜담은 운전석의 의자를 한껏 뒤로 젖혔다. 훈훈한 히터 바람이 차 안을 가득 채웠지만, 혜담은 의자 위에서 몸을 새우처럼 둥글게 말았다.
몇 번 느릿하게 끔벅이던 혜담의 눈꺼풀이 곱게 내려앉고, 고른 숨소리가 차 안을 채우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