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ouble Shot(더블 샷)-40화 (4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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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말 안 들으면 줘 패라니요. 팬다고 맞아 줄 놈 같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거기다 갑자기 루이스가 알파들이 좀 그렇다니요. 무슨 이야기를 하시고 싶으신지…….

“에반이 처음 만났을 때, 집안 엄청나지, 외모도 잘났지. 못 하는 거 없지. 친절하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뭐 하나 모난 게 없는 세상 다 가진 놈이더라고. 마음은 커지는데 섣불리 말을 할 수가 있나. 그냥 혼자 접어야지. 포기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삽질도 하고 그랬는데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아요. 내가 좋으면 됐지. 거기다 나 좋다잖아. 뭘 고민해. 나나 에반 그렇게 고지식하지 않아요.”

분명 오늘 처음 뵙는데, 자주 만난 사람처럼 편안하게 말을 하는 모습과 그에 담긴 내용에 혜담은 어떤 말도 쉽게 할 수 없었다. 혹시 자신과 레오의 미묘한 관계를 알고 말씀하시는 건지. 그것까진 모르더라고 제가 공식적으로 베타인 것과 고아인 것까지 개인사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고요?

두 분은 같은 그룹 멤버이셨고, 외모도 뛰어나시고, 가족도 화목하시고……. 레오의 부모님인 시우와 에반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며 혜담은 아랫입술만 이 끝으로 짓이겼다. 굳이 끄집어 내려 하지 않아도 다른 점들이 너무 많이 보였다.

“팀장님. 배려도 잘해 주시고, 잘 챙겨 주시고 좋으신 분입니다.”

“당연히 잘 챙겨 주고, 배려해야지. 혜담 씨 입장에서 얼마나 부담스럽고 불편하고 힘든지 내가 다 아는데. 안 그러면 나한테 말해요.”

“저…… 조금의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긴장감에 입이 바싹 마르자 뱅쇼를 조금 마신 혜담은 아랫입술을 짓이기다 겨우 말을 꺼냈다. 자신을 응시하는 고운 중년 남성의 눈을 차마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혜담은 살짝 눈을 내리깐 채, 촉촉이 땀이 배어 나오는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질렀다.

“이혜담!”

좋은 직장 상사와 직원 딱 그 정도 사이라는 말을 하려던 혜담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넓은 정원에서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찾아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마주친 사람도 없는데, 그러고 보니 이분도 어떻게 찾아온 거지? 갑자기 깨달은 사실에 혜담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쉿.

눈이 마주친 시우가 윙크하며 검지 손끝으로 입술 앞에 대고 하는 제스처에 혜담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오가 여기까지 오지 못하게 하라는 건가? 같이 있는 걸 비밀로 하라는 것 같은데?

“……추운데 거기서 뭐 해요? 감기 걸리면 어떡하려고?”

두뇌도 몸도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거리는 상태가 된 혜담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레오를 바라보았다.

“팀장님, 여기는 어떻게…….”

레오의 말에 대답하며 뒤를 돌아본 혜담은 여전히 조용히 해 달라는 제스처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시우를 마주 보았다.

“밖으로 나간 것도 모르고 안에서 한참 찾았잖아요.”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이 집안사람들 진짜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다가오는 레오 한 번 슬쩍 뒤로 물러나는 시우를 한 번. 혜담은 떨리는 눈동자로 둘을 번갈아 보았다.

“어딜 가면 간다고 말해요. 파티장에 사람이 많은 만큼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사건·사고는 늘 일어날 수 있으니까.”

“네, 주의하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절 찾으시는 겁니까?”

혜담은 레오가 갑자기 입고 있던 재킷을 주섬주섬 벗는 것까지 보고는 다시금 뒤돌아보았다.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던 그는 어느새 멀어져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여유롭게 한 손까지 흔들어 보인 그는 반대편으로 가 버렸다.

“추운데 왜 밖에 있어요. 감기 걸리면 어떡하려고. 뭐 좀 챙겨 먹었어요? 옆에 같이 있고 싶은데 워낙 사람이 많아서, 혼자 심심했죠.”

왜 같은 말을 또 해? 그러고 보니 평소보다 더 건들거리고 걸음걸이가 불안정한 것 같은데. 가까워지는 레오를 응시하는 혜담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그가 빛을 등지고 있었기에 그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다시 뒤돌아보았을 때 작은 인영은 이곳에서 제법 먼 곳에 있었다.

레오에게도 멀어지는 시우에게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다 가까이 다가온 레오가 펄럭이는 것에 몸이 휙 감긴 혜담의 입에서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왜 재킷을 벗나 했더니 그걸로 왜 저를 감싸냐고. 어깨에 걸쳐 주는 것이나 입혀 주는 것도 아니고 재킷을 담요라도 되는 것처럼 둘둘 말아 주는 레오에게서는 은은한 커피 향 대신 강한 알코올 향이 가득했다.

“팀장님? 저기. 팀장님.”

자신을 둘둘 마는 옷을 거부하려는 다급한 혜담의 말은 레오의 품에 먹혀 버렸다. 시우에게 받아 들고 있던 머그잔이 흔들렸고 뱅쇼가 자신의 옷과 레오가 둘둘 만 재킷을 적시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두 팔이라도 자연스러우면 어떻게든 그를 밀어내고 넘친 음료를 수습하겠지만 혜담은 말 그대로 그의 품에 갇혀 버렸다.

“간 줄 알고 놀랐잖아요.”

“파티 끝나면 로버트 씨 도와서 정리하고 가야죠. 그 전에 좀 놓아주시면…….”

취한 게 분명한 레오의 입에서 무슨 말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불안한 혜담은 곁눈질로 시우가 가는 방향을 훔쳐보았다. 이미 머그잔은 넘칠 만큼 넘친 것 같고, 적당한 말로는 레오를 말릴 수 없을 것 같아 모든 것을 내려놓은 혜담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언제부터 나와 있었어요? 몸이 완전히 찬데.”

“조금 전에 바람 쐬러…… 그게 문제가 아니고, 팀장님 취하신 것 같은데 안으로 들어갈까요? 시원한 얼음물 좀 마시면 괜찮을 거예요.”

냉수 먹고 속 차리자 이놈아. 눈치가 있으신 건지 센스가 있으신 건지 이제는 완전히 멀어진 시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잖아도 오해하신 것 같은데 지금의 상황은 그의 오해를 확신으로 바꿀 것 같았다.

지끈거리는 두통에 혜담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을 등지고 있기에 조금 전까지 보이던 보름달 대신 검은 하늘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검은 하늘이 마치 제 미래인 것 같아 암담함이 밀려들었다.

인형이라도 되는 듯 저를 꼭 끌어안고는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레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많이 안 취했어요.”

“네, 그러겠죠. 술 취한 사람이 언제 술 취했다고 시인하던가요.”

모든 것을 내려놓은 혜담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적당히 구슬려서 안으로 데려가야 할 것 같은데 그것조차 귀찮았다. 가만히 레오의 품에 안겨 있으니 헛웃음이 나왔다. 커피 향과 알코올 향이 뒤섞인 그의 체취에 제가 취하는 것 같았다.

“우리 못난이 감기 걸리면 어쩌지?”

뜬금없는 그의 말에 혜담은 몸으로 슬쩍 그를 밀어냈다. 그래 춥다. 이러고 계속 있으면 안 걸릴 감기도 걸리겠지. 난 둘째치고 넌 지금 셔츠만 입고 있으니까.

“그러게요. 감기 걸리기 전에 들어갈까요?”

다리에 힘을 주고는 앞으로 걸어가려 하자 주춤거리며 레오가 뒷걸음질을 쳤다. 이 정도로 밀면 사람을 놓으라고. 왜 끌어안은 채로 뒤로 물러나. 이 미친놈아!

“온달.”

속으로 온갖 비속어를 다 늘어놓으며 레오의 품에서 벗어나든 아니면 그를 이렇게 밀면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든 해야 하는 혜담은 갑자기 저를 꽉 끌어안는 힘에 윽! 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예쁘네.”

제가 미는 대로 쉽게 밀리던 레오가 멈춰선 채 작게 웅얼거렸다. 혜담은 그가 뭘 보았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저 역시 흐르는 강물에 멈춰 있던 그 달에 시선을 뺏겼으니까. 그가 보름달을 보고 떠올린 것 같은 온달이라는 단어가 혜담의 심장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네?”

“온달이 강에 있잖아.”

“보름달이겠죠.”

“아닌데, 온달인데……. 달이 동그랗다고 온전히 동그래서 온달이랬어요.”

레오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레오의 설명에 혜담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누가요.”

방금까지 말을 잘하던 레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디 가서 온달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누군지 몰라도 그 사람이 잘못 가르쳐 준 거니까.”

솔직히 뿌리치려면 뿌리칠 수 있었다. 레오가 아무리 세게 잡는다고 해도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아니, 그 전에 레오는 자신을 힘으로 제압하고 있지 않았다. 이렇게 그의 품에 안겨 있는 건 레오의 뜻도 있지만 저 역시 이렇게 있고 싶었기에 이 상황이 연출된 것이었다.

“아닌데……. 누구였죠?”

기억도 못 할 거면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이어지는 침묵에 계속해 가슴이 저렸다. 저를 기억하면 어떡하지? 한데 어이없는 말에 혜담은 긴 한숨을 내뱉었다. 거기다 네가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는지 기억을 해내야지. 그걸 나한테 물어서 될 일이야?

“내가 그걸 알 리가 없잖습니까.”

레오의 몸을 제 몸으로 툭 밀었고, 레오의 품에서 벗어난 혜담은 저를 싸매고 있는 그의 옷을 벗어 냈다. 예상대로 머그잔을 채우고 있던 뱅쇼는 제 옷과 그의 옷을 망쳐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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