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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Shot(더블 샷)-31화 (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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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역시나 준석의 옷을 입고 표정을 잔뜩 찌푸린 채, 이마를 문지르고 있는 것이 딱 온달이었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가 아니라 샤워하고 대충 털기만 해 흐트러져 내려온 앞머리가 그를 더 어려 보이게 했다.

“나보다 네가…….”

“팀장님.”

“뭐?”

맺고 끊는 것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 어영부영 여차 저차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꾸물텅 해 버렸다가 덤터기 쓰는 건 자신일 것이 뻔했다.

“어제, 오늘 일에 어떤 의미 같은 건 없으시죠?”

레오의 표정을 읽은 혜담은 그가 말하기 전에 얼른 말을 이었다.

“동하면 그럴 수도 있잖아요. 저나 팀장님이나 성인이고 서로 책임을 물을 만한 형질도 아니고요. 혹시 불편하시다면 절 다른 팀으로 전근 보내 주시면…….”

“에둘러서 말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 바로 해요.”

방금까지 감정이 확확 보이던 레오의 얼굴에 무표정이 내려앉았다.

“제 실수입니다. 죄송합니다.”

혜담은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사죄의 말을 꺼냈다. 가타부타 설명 붙이느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제일 직선적이면서 깔끔할 것 같았다.

“본능. 실수. 그럼 어제 여기 있던 사람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그렇게 했을 거란 말입니까?”

그건 아니지. 너니까 그랬지.

“……네.”

“실례합니다.”

본심과 다른 머뭇거림이 잔뜩 들어간 혜담의 말은 노크 소리와 함께한 로버트의 목소리에 묻혀 버렸다.

“로버트 씨?”

저를 잡으려는 레오의 손길을 피한 혜담은 한걸음에 현관으로 가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가장 난감하고 어려운 상황에 등장한 그가 구세주 같았다.

“안녕하세요, 혜담 씨.”

“어서 오세요. 언제쯤 오시려나 했는데, 찾기 힘드셨죠?”

“아닙니다. 한데 혜담 씨. 어디 아프…….”

“쿨럭. 어제 눈을 좀 맞아서 감기 기운이 있네요.”

괜한 헛기침을 한 혜담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레오는 대화를 나누던 방문 앞에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무언가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서 있던 그는 말없이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저도 옷 좀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강풍경보에 이어 새벽에 폭설 주의보까지 내려 모시러 오는데 시간이 좀 지체됐습니다. 두 분 다 다친 곳은 없으신가요?”

“전 괜찮은데 팀장님께서 이마 위쪽을 다치셨습니다. 조금 찢어진 것 같은데, 바로 지혈은 됐지만 그래도 병원에 가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조수석 시트 열선을 최고로 올리고는 몸을 파묻어 온기를 느끼던 혜담은 얼른 대답했다.

“난 괜찮으니 가는 길에 혜담 씨 집으로 바로 데려다주고, 혜담 씨는 주말까지 쉬고 월요일부터 출근하도록 해요.”

뒷자리에 앉자마자 긴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더니 눈을 감아 버리던 레오가 하는 말에 혜담의 눈이 커졌다. 제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만 해도 말랑말랑하게 느껴지던 둘 사이가 다시금 한없이 멀어진 것 같았다.

로버트의 등장으로 둘의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레오에 이어 혜담 역시 정장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앉은뱅이 식탁 위엔 레오가 준비한 레토르트 식품 대신 로버트가 준비해 온 도시락이 자리 잡고 있었다.

특별한 대화가 오가지 않는 상태에서 도시락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허기를 채웠고, 집을 나서다 둔통에 비틀거릴 때 자신의 팔을 잡아 준 것 외에 레오는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휴가를 준다고? 오늘이 목요일이니 내일 하루만 주어지는 휴가지만 혜담의 입장에서 나흘을 쉴 수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거저 주는 휴가를 마땅히 거절할 이유도 없는 혜담의 대답을 끝으로 차 안엔 클래식 음악만 흘렀다. 깨어 있어야 한다는 건 알지만 피곤함과 함께 아늑하게 몸을 감싸는 의자에 의지하며 혜담은 손끝으로 허벅지를 꾹꾹 눌러 댔다.

멈춘 것 같은 시간은 착실히 흐르고, 연립주택이 죽 이어져 있는 좁은 골목을 천천히 움직이던 차가 멈추자 혜담은 말없이 차에서 내렸다.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최고의 위치에 있는 그의 집에 비해 혜담의 집은 참으로 소박해 보였다. 넓은 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확 트인 전망 대신 창문을 열면 불과 몇 미터 앞에 다른 집 창문이 보이는 곳이 제집이었다.

그래도 착실하게 월급 받아서 더 쾌적하고 넓은 곳으로 이사 갈 테니까. 가난이 부끄러운 것도 아닌지라 몸을 돌린 혜담은 저를 따라 내리는 레오를 잠시 바라보았다.

레오는 차 문 앞에 선 채로 낡은 5층짜리 원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전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데려다주셔셔 감사하고,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요.”

레오의 배웅이나 대답까지는 기대하지 않던 혜담은 담담한 그의 말에 살짝 머리를 숙이곤 작은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에 들어서고 문이 닫히자마자 신발을 벗거나 재킷을 벗는 것 대신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 혜담은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피곤하고 힘들다. 이대로 잠들고 싶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은 채, 기력을 채운 혜담은 안으로 들어가면서 뱀 허물 벗듯 옷을 하나씩 벗었다. 침대에 다다랐을 땐 속옷 한 장만 걸친 상태였다. 그대로 몸을 풀썩 던진 혜담은 느릿하게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헤라. 맞춰 놓은 알람 모두 지워.”

― 네, 알람을 모두 지웠습니다.

작은 한숨과 함께 혜담은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탕탕탕.

따뜻한 이불 속에서 아늑한 꿈을 꾸던 혜담은 계속해서 들리는 불편한 소리에 이불을 끌어 올려 머리를 덮었다. 꿈도 꾸지 않고 모처럼 푹 자고 일어난 상태라 이대로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었다.

몽롱한 기분에 쌓인 채, 점차 멀어지려는 잠기운을 잡으려는 찰나 불규칙하게 들리는 불쾌한 소리 사이로 ‘이혜담’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섞여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미간을 찌푸렸다.

머리끝까지 끌어 올린 이불 덕분에 만들어진 포근한 공간에서 옆으로 누워 몸을 웅크리고 작게 하품을 한 혜담의 귀에 다시금 제 이름이 들렸다.

“이혜담!”

순간 눈을 번쩍 뜬 혜담은 이불을 홱 젖히고 일어나 앉았다. 쿵쾅거리는 불쾌한 소리는 자신의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이고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익히 제가 아는 목소리였다.

그런데 왜 레오가 제집 문을 이렇게 거칠게 두드린단 말인가? 벨이 고장 나긴 했다. 혼자 사는 데 불편함도 없고 관심도 없어서 고치지 않았는데, 멍하니 눈을 껌벅이다 휴대전화를 집어 든 혜담은 배터리 방전으로 전화가 켜지지 않는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침대를 벗어났다.

“으씨. 추운데…….”

웅얼거리면서 인터폰을 켠 혜담은 얼굴이 아닌 목과 어깨가 보이는 것에 움찔하곤 이내 문가로 다가갔다.

“팀장님?”

“……혜담?”

“네.”

문을 두드리던 소리가 멈추고, 깊은 한숨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문 좀 열어요.”

잠시 침묵이 이어진 후, 다시금 레오의 목소리가 들리자 혜담은 머리를 긁적이며 문을 열었다.

“전화는 꺼져 있고, 벨은 고장 났고,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지. 이름을…….”

조심스럽게 열었지만, 확 열린 문으로 찬 바람과 함께 레오가 들어오며 이어지는 말에 혜담은 몸을 움츠리며 얼른 뒷걸음질 쳤다.

현관에 들어온 레오의 뒤로 문이 절로 닫히는 걸 보던 혜담은 레오가 버럭거리다 말고 말을 멈추고는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한숨을 쉬는 것까지 영화를 보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다가 봉창도 이런 봉창이 어디 있는가.

“지금까지 잔 겁니까?”

지금까지의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들어오자마자 잠든 건 사실이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상체를 팔로 감싸고 팔뚝을 쓸던 혜담의 몸짓이 순간 멈췄다.

비몽사몽 여전히 남아 있던 잠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현관에 서 있는 레오와 바닥에서 침대까지 하나씩 떨어져 있는 정장과 마지막으로 헐벗은 상태에 속옷 한 장 걸치고 있는 제 몸까지 본 혜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차에서 기다릴 테니 외출 준비 하고 나와요.”

“……네? 네!”

다시 현관문이 열리고 레오가 사라지고 문이 닫히는 것까지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던 혜담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시바. 오늘 며칠인데!”

― 오늘은 12월……. 현재 시각은 오후 2시…….

자신의 절규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헤라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혜담은 비틀거리며 욕실로 들어갔다. 정신없이 샤워를 하고 옷장 문을 벌컥 연 혜담의 고개가 옆으로 살짝 기울었다.

“헤라, 오늘 무슨 요일이야?”

― 토요일입니다.

토요일에 직장 상사가 집으로 왜 와? 그러고 보니 레오도 저장이 아닌 편안한 복장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목요일에 집에 데려다줬잖아. 월요일에 회사에서 보자며. 그런데 왜 오늘 우리 집으로 찾아와? 주말인데? 휴가라며. 나 내일까지 푹 쉬어도 되는 거잖아. 그리고 오늘은 공휴일이고 법적으로 회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날이었다.

공적인 일은 아닌 것 같기에 혜담은 곱게 걸려 있는 정장 대신 그 옆에 있는 편안한 옷에 손을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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