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굿나잇.”
어떠한 반응이라도 보이지, 가만히 있는 레오에게서 떨어진 혜담은 궁색한 변명을 꺼냈다. 그리고 옆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굿나잇은 지금부터 시작일 것 같은데.”
틈으로 나가기도 전에 한 걸음 더 다가온 레오 때문에 벽과 그의 사이에 끼여 버린 혜담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싫어요?”
귓가에서 느껴지는 작은 속삭임에 긴 시간 잠들어 있던 온몸의 세포가 모두 깨어나는 것 같았다. 딱히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닌데, 배 안 깊은 곳이 뜨거워졌고 몸이 젖어 들었다.
촉.
어설프게 레오를 피하려 고개를 돌린 혜담은 레오의 입술이 목덜미에 닿자 급히 어깨를 움츠렸다. 목덜미와 어깨, 귀 뒤쪽에 연이어 내려앉던 입술이 귓불을 무는 순간 혜담의 눈이 꼭 감겼다.
앙다물고 있던 입술 사이로 미처 수습하지 못한 작은 소리가 새어 나갔다. 잠들어 있는 감각이 제멋대로 깨어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여기구나.”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젖은 숨결이 귓불의 솜털을 스쳤고, 레오의 이가 귓불을 긁자 혜담의 두 손이 레오의 어깨로 향했다.
“안…… 안녕히 주무세요.”
겨우 레오의 옷깃을 움켜쥔 혜담은 그를 밀어내며 겨우 말을 뱉었다. 그날 같아서, 날이 추워서, 많이 외로워서, 아니면 지금 제가 느끼는 커피 향에 너무 식욕이 동해서 혜담은 급급하게 제가 저지른 일에 대한 변명거리를 찾아내려 했다.
“같이 자요.”
귓불을 입술 사이에 두고 혀로 톡톡 건드리다 이로 씹으면서 하는 대답에 고개가 절로 젖혀졌다. 준석이가 같이 자자고 했다면 웃었을 것이다. 그 큰 몸을 끌어안고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자는 일 따위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추운 날엔 구시렁거리면서 저를 밀어내는 놈 옆에 제가 붙어 잤다.
하지만 레오의 말엔 가벼운 농담조차 흘러나가지 않았다. 그의 말에 숨은 뜻은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알았다. 혜담이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 이미 그의 허리는 레오의 팔에 들어가 있었고, 얌전치 못한 레오의 한 손은 혜담의 티셔츠 안으로 파고들었다.
“침대…… 좁아요.”
“그래서 더 좋을 것 같은데요.”
뜨거운 열기를 품을 커다란 손이 혜담의 등을 느릿하게 쓸었다. 척추를 타고 올라온 손이 옆구리를 스치자 혜담의 숨결이 흐트러졌다.
혜담의 귓불을 마음껏 농락한 레오의 입술이 찾은 곳은 옴폭 들어간 보조개였다.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레오의 페로몬이 어떻게든 숨을 곳을 찾는 혜담의 페로몬을 거칠게 뒤쫓았다. 집요하고 농염하게 몸을 타고 흐르고 유혹하는 페로몬에 휩쓸린 혜담이 겨우 눈을 떴을 때 마주한 것은 저를 지켜보는 눈빛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짙은 녹색에 일렁이는 빛에 현혹된 혜담의 입술 위로 레오의 입술이 느릿하게 닿았다. 그의 페로몬과 입술, 손짓엔 조급함이나 서투름 따위는 없었다.
지금이라도 강하게 뿌리친다면 그는 저를 놓아줄 것이 분명했다.
부드럽게 닿고 하나가 되듯 뭉개졌던 입술이 떨어지길 반복하자 굳게 닫혀 있던 혜담의 입술이 절로 열렸다. 허락을 구하듯 느릿하게 따라붙던 페로몬이 확 바뀌었다.
입술을 여는 사소한 행동 하나로 레오는 돌변했다. 거칠게 입술을 탐하는 레오를 받아들이는 혜담의 두 팔이 레오의 목을 휘감았다. 흐트러진 호흡을 잠시 가다듬는 동안에도 레오의 입술은 혜담의 얼굴 여기저기를 탐했다.
급히 숨을 들이마신 혜담이 천천히 내뱉는 숨결이 떨리자 작게 웃은 레오는 혜담의 코끝을 살짝 깨물었다. 이어 혜담의 반박 따위는 듣지 않겠다는 듯 그의 입술을 막아 버린 레오의 몸짓 아래 혜담의 옷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레오는 손 아래 부드럽게 감기는 살결을 마음껏 누렸다. 말랑하고 따뜻하며 제 혀 놀림에 서툴게 따라오는 혜담의 혀를 가지고 놀던 레오의 입술이 턱선을 타고 아래로 향했다. 곧은 빗장뼈에도 촘촘히 붉은 울혈이 생기고, 가슴에 얼굴을 묻자 혜담의 손끝이 레오의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벽과 레오의 사이에 갇힌 혜담의 몸엔 어느새 실오라기 하나 남지 않았고, 몸은 체액으로 흠뻑 젖어 들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쾌감이 혜담의 몸을 지휘했다. 늘 많은 생각으로 가득한 혜담은 어떤 것도 떠올릴 수 없었고 집요한 레오는 혜담에게 조금의 틈도 주지 않았다.
레오의 손길과 입술 아래에서 휘청이며 흐느적거리는 혜담의 다리 사이로 레오의 허벅지가 파고들었다. 한껏 달아오른 피부에 옷감이 스치며 민감한 곳을 자극하자 혜담의 입에서 다시금 신음이 흘러나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을 녹여 버리는 열기에 휘청이던 혜담의 손끝에 레오의 상의가 붙들렸다.
“레오.”
단단한 그의 피부를 느끼고 싶었다. 본능은 빈틈없이 꽉 끌어안았던 순간을 기억했다. 그가 가져다주는 환희와 쾌락이 어떤지 이미 알고 있다.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것도 더한 것이 끊임없이 밀려들 것도 알기에 혜담의 손이 레오의 티셔츠 안으로 들어갔다.
열기로 가득한 레오의 상체를 어루만지는 혜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제 손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레오의 근육이 물결치듯 움직이고 그의 숨결이 흐트러졌다. 이래서 그가 자신을 집요하게 만지려고 했나? 완벽한 그를 손으로 통제하는 느낌은 짜릿했다.
복근이 꿈틀거리고, 레오의 입에서 작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제 엉덩이를 움켜쥐는 레오의 손길에 혜담의 손끝이 레오의 두툼한 가슴을 긁어내렸다.
레오의 가슴 위에 손바닥을 올리고는 그의 심장이 저만큼이나 빠르게 뛰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 혜담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음욕이 일렁거리는 초록 눈동자는 어둡게 빛났고, 자신의 엉덩이를 마음껏 농락하는 손끝은 질척하게 젖어 든 곳을 찾아냈다.
“이제 나랑 같이 잘 생각이 들어요?”
혜담은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레오의 손끝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에 제대로 된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저를 받치고 있는 단단한 허벅지에 몸을 문질렀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레오가 다시금 혜담의 귓불을 깨물며 말하는 순간 혜담이 몸이 파르르 떨렸다. 혜담의 하체와 맞닿아 있는 레오의 옷은 축축해진 지 오래였다. 혜담이 조금 더 저를 즐기도록 두고 저 역시 느릿하게 혜담을 맛보고 싶었지만 레오는 점차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아니.”
부정의 말을 뱉는 혜담이나 그걸 듣는 레오나 그 단어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거절의 말을 들음과 동시에 레오는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혜담의 엉덩이를 받쳐 들며 안자 그의 다리가 레오의 허리에 감겨들었다.
“그럼. 네가 원하는 방식대로…….”
레오보다 눈높이가 높아진 혜담은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쌌다. 반듯한 이마에 입술을 대자 레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내가 원하는 게 뭔데?”
높은 코끝은 그가 했던 대로 이를 세워 깨물었고, 입술 역시 허겁지겁 거칠게 먹어 치우기보다 폭신하게 두 입술이 닿는 걸 즐겼다.
“날 먹어 치우는 거.”
겨우 몇 발자국만 걸으면 닿는 침대로 옮겨서 침대 시트가 혜담의 등에 닿을 때까지, 그 짧은 시간까지가 혜담이 온전히 기억하는 순간이었다.
혜담은 그의 말대로 커피를 끊임없이 들이켜야 했다.
쾌감에 휩싸인 혜담의 입에선 쉼 없이 흐느낌과 신음이 터져 나왔다. 버거운 감각에 헐떡이며 조금의 간격이라도 만들라치면 레오는 더한 몸짓으로 응답했다.
커피 향은 더없이 진해졌고, 혜담이 저도 모르게 흘려 내는 빵 내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달콤했다.
“제발…….”
레오에게 매달린 혜담의 손끝이 그의 넓은 등을 마구 헤집어 댔다. 심장은 미칠 듯이 폭주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피부가 강한 자극에 비명을 질러 댔다. 배 안은 뜨겁고, 발끝은 한껏 곱아들었다.
순식간에 빠르고 거친 폭풍우가 몰아치고, 혜담은 묵직한 레오의 몸을 가득 끌어안은 채 그의 젖은 뒷머리를 쓸었다.
제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모든 것을 쏟아 낸 레오가 내뱉는 거친 숨에 덩달아 휩쓸렸다. 온몸을 가득 채운 커피는 짙었고, 씁쓸했으며 미친 듯이 맛있었다.
손끝 하나 까딱할 힘도 없고, 나른한 잠이 밀려들었다. 레오의 뒷머리를 쓰다듬던 혜담의 손길이 느려지던 순간 레오가 움직였고, 혜담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다시금 터져 나왔다.
잔열감과 함께 사그라들던 쾌감이 아래에서부터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아니야…….”
나른하고 안락한 수면을 원하던 혜담의 입에서 뭉그러진 발음이 새어 나가고, 다급히 레오를 저지하려 그의 뒷 머리카락을 움켜쥐었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다시 시작됐는지 모르겠지만 다시금 불붙은 레오를 진정시키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레오를 진정시키는 것에 성공한 것인지 아니면 그를 완벽하게 다 받아 낸 것에 성공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끝없는 쾌감과 자극에 몸부림치던 혜담은 겨울밤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