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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Shot(더블 샷)-25화 (2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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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운전이라고 할 것도 없는 자율주행 전기차의 운전석에 앉은 레오의 심기를 살피던 혜담은 제 태블릿을 이용해 근처 카페 주소를 입력했다.

촬영 중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고 급하게 바뀐 콘티에도 감독이나 태원은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임해 주었다. 레오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것들을 생각하며 차량 내비게이션에 제가 넣은 목적지가 설정되는 것을 확인하던 혜담은 낮은 헛기침 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제일 가까운 곳은 여기인데 평을 봐서는 30분쯤 거리에 있는 카페가 괜찮다고 합니다. 수정할까요?”

“커피 때문에요?”

“날씨에 신경 쓰느라 커피를 준비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혜담 씨가 죄송할 게 뭐 있어요. 내 성격 탓이지.”

뜬금없는 레오의 고백에 혜담은 마땅한 대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알긴 아네. 성격 특이한 거 모르고 사는 줄 알았더니.

“도착까지는 얼마나 걸립니까?”

“세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가까운 곳 말고 새로 검색한 카페로 가는 건 어떠실까요? 베이커리도 괜찮다는 말이 있어서요.”

“혜담 씨 편한 대로 해요.”

의자를 편히 젖히더니 팔짱을 끼고 눈을 감는 레오의 모습에 혜담은 입술을 꾹 다물고 경유지를 변경했다. 레오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틀곤 슬쩍 그를 살핀 혜담은 짧은 한숨과 함께 긴장을 풀었다.

레오의 곁에 있을 때면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텐션 강한 긴장감도 아니고 불편함도 아니다. 그저 제 모든 감각이 그를 향하는 것 같았다. 작은 표정 변화라든가 의미 없는 움직임에도 한껏 예민해졌다.

비서팀에서 일한 게 몇 년이고, 거쳐 간 상사가 몇 명인데.

처음엔 흘깃거리며 레오를 살폈지만, 그가 깊게 잠든 것 같자 혜담은 의자를 조금 돌려 마음껏 그를 감상했다. 그가 갑자기 사라지고 많은 생각을 했다. 재회에 관련된 것도 생각했는데, 이런 전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저보다 세 살 어린 것도, 회사의 상사가 될 것도 그의 배경이 그리 어마어마할 것도 그 어느 것도 예상에 들어맞지 않았다. 단 하나. 혹시 그가 자신을 잊지 않았을까 하던 생각만 맞아떨어졌다.

그래도 건강히 잘 살았나 보다. 난 별로였는데.

한참 얼굴을 뜯어보던 혜담의 시선이 레오의 손으로 향했다. 좀 전에 저를 불쑥 잡아당긴 것이 떠오른 것이다. 그렇게 세트장 한쪽 구석으로 가서는 별일 아니라고 하고. 급한 일처럼 굴더니. 이어 그가 잡았던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 천천히 손목에 코를 가져다 대었다.

레오에게서 느껴지는 커피 향과 태원에게서 느꼈던 꽃내음을 떠올리며 천천히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향긋한 빵 냄새라. 제게서 사라진 그 페로몬을 찾으려던 혜담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페로몬은 무슨. 제가 쓰는 바디클렌저 향밖에 느껴지지 않는데.

다음번 종합검진 때는 페로몬과 관련된 정밀검사를 받아 볼까? 엉뚱한 생각을 자주 하긴 했지만 정말 엉뚱한 생각 같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열성이라도 오메가라고 판정이 나면 일을 그만둬야 할 것이다.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 베타라는 조항이었으니까. 그럼 레오를 자연스럽게 보지 못할 테고, 그럼 이 이상한 기분도 다 사라지려나?

혜담은 편안한 표정으로 고른 숨을 쉬고 있는 그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보고 또 봐도 잘 생겼네. 외탁보다는 친탁을 한 것 같고. 무엇보다 눈동자 색이 그의 신비한 분위기를 더했다.

빛의 세기나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으로 바뀌는 그의 눈동자엔 많은 감정이 실리는 것 같았다. 가끔 정말 아주 가끔 레오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착각을 일으켰다.

언제부터 저를 쳐다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마주치는 눈빛이나 그와 함께 슬쩍 올라가는 입꼬리가 그랬다.

또 망상이 시작되는 것 같아 앉은 자세를 고친 혜담은 한숨을 쉬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잘 자는 사람을 두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니 조금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 잘난 태원 씨 감상 같은 것 말이다. 휴대전화 갤러리에 들어간 혜담은 제일 앞에 있는 사진을 보고는 헤벌쭉 웃었다.

어쩜 이렇게 막 찍어도 잘 생겼을까. 보고 있는데도 보고 싶고. 화면이 인물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거기다 그 목소리는. 다정하게 제 이름을 부르며 미소 짓던 태원을 떠올린 혜담의 얼굴에 사르르 미소가 피어났다.

“왜 그만 봐요?”

그만 보긴 뭘 그만 봐. 갑자기 들린 레오의 목소리에 번쩍 고개를 든 혜담은 의자에 편히 누운 채, 자신을 보는 레오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나 보고 있었잖아요.”

널 보긴 봤지만. 지금은 우리 잘난 태원 씨 보고 있는데? 그게 왜? 뭐? 내가 뭘 또 잘못했어?

“계속 보라고 잠든 척도 해 줬는데.”

이 또라이가.

곱게 미친놈에서 그냥 미친놈으로 승격시켜 주자마자 갑자기 멀쩡하게 행동해서 당황하게 만들더니 역시 그 기질을 못 버린 것 같았다.

자는 거 아니었어? 분명히 자는 포즈를 취했고, 눈도 감았고 일정한 숨소리라든가 모든 게 잠든 모습 그 자체였다.

“쳐다봐 드려요?”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투가 툭 튀어 나갔다.

“네.”

조금만 방심해도 대화가 이상한 곳으로 흘러가기에 혜담은 내비게이션의 시간을 확인했다.

“지루하시겠지만 조금만 더 참으시면 카페 도착합니다.”

일반인이라면 냉수 먹고 속 차리라고 하겠지만 넌 특별히 에스프레소 사발로 마시고 정신 차리라고 해 줄게. 좋아하는 커피에 빵까지 먹고 나면 이상한 성질 좀 죽겠지.

“어딜 봐도 한태원보다 내가 낫지 않나?”

누굴 어디 비교해! 외모는 막상막상이다만 적어도 우리 한태원 씨는 돌아이는 아니잖아.

“……진짜 그렇게 생각하세요?”

“못한 건 없죠.”

“그건 그렇네요.”

이렇게 발끈하는 걸 보면 진짜 어리긴 한 것 같았다. 쓸데없는 것에 목숨 걸기는. 처음 만나서 반말하길래 그러지 말랬더니 한 말이 누가 봐도 네가 나보다 나이 많을 것 같다는 거였나?

“가는 데 세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던가요?”

“네, 특별한 기상이변이나 교통체증만 없다면요.”

“호칭이나 직위 같은 거 다 내려놓고 편하게 이야기 좀 합시다.”

방금까지는 반존대 같으면서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당황스러운 안건을 꺼내기에 혜담은 편하게 젖혀 놓았던 의자를 바로 했다.

“팀장님?”

“그 호칭 빼자고.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그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테니 너도 생각 같은 건 하지 말고 대답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건 좋은데 한발 물러서 정중한 호칭까지 생략한다 해도! 너? 너? 너. 지금 나랑 맞먹자고?

허.

당황스러움에 혜담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갔다.

“나랑 일하는 게 불편해?”

“딱히 그런 것 없습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인사고과나 업무에 전혀 지장이 없을 테니까 편히 말해.”

“사적이든 공적이든 어떤 부분을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회사 생활에 불만 없습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에 상처받긴 했다. 그와 같이 일하는 첫 주는 제법 힘들었다. 계속 제 기억 속의 온달과 겹쳐 보여서.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집중할 때 눈을 가늘게 뜨거나 눈썹을 움직이는 사소한 습관 같은 것들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같이 지낸 시간이 짧은 만큼 기억하고 추억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이제야 겨우 온달이 아닌 레오. 그 자체로 보기 시작했다.

문제는 못생겼다고 말하면서 플러팅을 하는 것 같은 그의 작은 행동들이었다. 못생긴 걸 좋아하는 취향도 없다면서. 분명 제가 모시는 상사인데 오히려 그가 저를 챙기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또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고 제 마음을 떠보려는 것 같은 그의 말투에 짜증이 밀려왔다.

잘생긴 한태원을 좋아한다. 조금 전 그를 만나 설렜고, 같이 사진도 찍어서 행복했다. 그런데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도 심장을 뛰게 만드는 것도 사소한 행동 하나로 긴장하게 만드는 것도 모두 레오다.

그가 직장 상사여서, 제가 모셔야 되는 이라서 그를 관찰하고 그가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면 흠칫했고 어떤 감정을 담는 것이 아닌 그저 같이 자리를 옮기기 위해 제 손을 잡는 그런 사소한 일에 휘둘렸다. 그냥 스쳐 지나간 인연이고 원나잇이라고 생각하고 인지하려 들어도 가슴이 그러질 못했다.

“그럼. 왜 나는 네가 벽을 세우고 조금의 틈도 안 주려 한다고 느끼는 거지?”

“팀장님의 기준을 잘 모르겠습니다. 사적으로 만났다면 조금 다른 관계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상사와 부하라는 관계로 만나 유지되는 관계인 지금 저와 팀장님 사이에 특별한 갈등 문제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다른 이들과는 편하게 어울리고 웃고 이야기하면서 나한텐 그러지 않잖아.”

“그럼. 뭐가 달라지나요?”

“달라져. 많은 것이.”

낮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리는 것 같은 작은 말과 함께 커피 향이 짙어지자 혜담은 슬쩍 몸을 뒤로 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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