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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Shot(더블 샷)-21화 (2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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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끊겼고 둘 사이엔 침묵이 내려앉았다. 둘이 먹기도 과한 양의 음식들이 가득한 곳에서 혜담의 시선은 홍차에 닿았다.

그러고 보니 다시 만난 이후 그와의 식사는 처음이었다. 평범한 마케팅팀 팀장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듯 레오는 항상 누군가와의 점심 약속이 있었고, 아직까지 야근이 없었던지라 정시면 퇴근했던 것이다.

그와 단둘만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었다. 아침 식사 시간이라고 해 봤자 그는 출근 준비로 바빴다. 잠시 마주 보고 앉아 아침을 먹을 때도 그는 그대로 태블릿을 보았고, 자신은 그날 일정을 브리핑했다.

그렇게 10여 분도 있지 않으면 로버트가 나타났으니까, 늘 사람들로 분주한 회사에서도 일정이나 일로 관련된 꼭 필요한 대화 외 사담은 섞이지 않았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보고서도 식욕이 동하지 않는 건 처음이었다.

“로버트가 잠시 영국으로 들어가서 내일 모임은 동행해 줘야 하는데 많이 곤란해요?”

조금 전 그의 가벼운 말투와 어감은 개인적은 플러팅처럼 느껴졌다. 그랬기에 망설였고, 작게나마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거절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었다. 한데 일이라면, 일의 연장선이라면 선택권이 없었다.

레오가 포크와 나이프를 들기에 혜담은 찻잔을 집었다. 따뜻하고 진한 홍차를 한입 머금고는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려 했다. 단둘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평온했던 감정이 불안정하게 요동치기 시작한 탓이었다.

답답함, 갑갑함, 두근거림, 억울함, 반가움, 설렘.

부정적인 감정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반듯한 자세로 식사를 하는 그의 모습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평범한 크기의 포크와 나이프를 작아 보이게 만드는 그의 손에 혜담의 시선이 닿았다.

이내 살짝 올라간 셔츠 아래로 드러난 시계를 본 혜담은 고개를 숙였다.

“몇 시 모임이십니까?”

“저녁 7시 30분.”

“장소와 모임의 목적을 말씀해 주시면 거기 맞춰 준비하겠습니다.”

“혜담 씨.”

준비된 식기엔 손도 대지 않고 예쁘게 플레이팅 된 음식을 보던 혜담은 레오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내가 불편해요?”

“네.”

직설적으로 묻기에 혜담 역시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이유는?”

“직장 상사를 편하게 여기는 사람은 잘 없을 겁니다.”

“그것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

처음엔 그의 녹안을 응시했지만 이내 눈을 내리깔던 혜담은 유난히 크게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에 손끝을 살짝 움츠렸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소리가 나는 곳에 시선을 둘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에 계속 시선이 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 본능에 충실히 따른 혜담은 다시금 녹안에 잡히고 말았다.

“긴장 풀고, 빈틈 좀 보여 봐요.”

조금 전까지는 허리를 곧게 펴고 있는 그는 의자에 편히 기댄 상태였다.

“하루 이틀 일할 것도 아닌데 매번 그렇게 경계하고, 선을 긋고, 방어적인 태도로 있을 겁니까?”

마치 제 마음을 읽는 것처럼 하나하나 꼬집는 말에 혜담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제 행동이 불편…….”

“틀렸어요.”

“네?”

“대답이 틀렸다고. 지금 내가 하는 말 모두를 부정적으로 듣고, 그걸 고친다고 말하고 있잖아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다고 하면 성격도 외모도 다 바꿀 겁니까?”

“제가 싫으시다면 다른 팀으로 발령…….”

향에 성격이 있다면 지금의 커피 향은 낮게 으르렁거리는 것 같았다. 뭔 말만 하면 아니라고 으르렁. 네가 싫다면 일을 그만두겠다는 말 역시 잡아먹을 듯 확 달려드는 향 앞에서 온전히 끝맺지 못했다.

“내가 잘못한 게 있습니까?”

눈썹을 찌푸리고 눈을 가늘게 뜬 그의 낮은 목소리에 혜담은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잘못한 거 많다. 정말 많고, 엄청 많고, 많다 못해 넘치는데. 그는 잘못한 것이 없다.

“……편하게 식사해요. 그리고 내일부터는 아침에 제집으로 오지 않아도 되니 9시까지 회사로 출근하고.”

깊은 한숨과 함께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이 사라졌다. 아니. 시선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레오는 그 공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문을 나가기 직전 휴대전화를 잠깐 들어 보인 것이 전부였다.

넓은 공간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혜담은 지금껏 긴장하고 있던 몸에 힘을 쭉 빼고는 의자에 푹 기대앉았다. 제가 한 모금 마신 홍차, 레오가 썰다 만 소시지. 한가득 차려졌지만 손이 닿은 흔적은 거의 없는 음식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왜 지가 지랄이야. 빡치는 건 난데.”

기억을 잃은 채, 갑자기 찾아온 것도 너고. 사람 다 흔들어 놓고 미련 없이 떠난 것도 너고. 우연이라지만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것도 너잖아. 그래 놓고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것도 넌데.

왜 나한테 그래.

직장 상사인 너랑 내가 손 마주 잡고 앉아서 쎄쎄쎄라도 할 거야? 눈 맞추고 배 맞추고 그런 거 할 거냐고. 아니잖아. 네가 알파가 아니긴 뭐가 아니야. 부모님만 봐도 특이 형질이겠더만. 그러니 네 입으로 알파인데 알파가 아니라고 하면서 페로몬 다 흘리고 다니는 거잖아.

온몸의 힘을 빼고 천장을 보고 있던 것도 잠시 몸을 추슬러 앉은 혜담은 포크와 스푼을 집어 들었다. 입맛 없다, 배도 고프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차려진 음식을 안 먹고 오후에 배고픔을 느끼면 그게 더 비참할 것 같다.

말랑한 오믈렛에 스푼을 푹 쑤셔 넣어 내용물을 가득 퍼 입에 넣는 것과 동시에 포크로 샐러드를 콱 찍었다.

격식, 형식, 식사 예절 따위 개나 주라지. 손이 닿는 대로 음식을 한입씩 다 먹던 혜담은 휴대전화 알람과 함께 스푼과 포크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12시 50분.

점심시간이 10분 남았음을 알리는 알람이었다.

언제 게걸스럽게 먹었냐는 듯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남은 홍차를 마신 혜담은 일어나서 옷매무새를 꼼꼼히 정리했다. 그리고 닫혀 있던 문을 열고 나가서 제일 먼저 마주친 것은 문 옆 벽에 기대서서 누군가와 통화 중인 레오였다.

제가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레오는 통화를 끝냈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 둘 사이엔 어떤 대화도 없었다. 늘 알랑거리며 제 주위를 맴돌던 커피 향도 느껴지지 않았다. 늘 참여하던 마케팅팀 회의에도 들어가지 않고, 혜담은 오후 내도록 그가 보충해 오라는 자료를 모았다. 그리고 퇴근 전 그의 책상 위에 정리한 보고서를 올려놓았다.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나올 때까지 둘 사이엔 어떤 대화도 없었다.

* * *

“코맘은요?”

레오는 정원석을 밟으며 천천히 내려가 빈 의자에 편히 앉았다.

“재웠지. 한국만 들어오면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잘 생각을 안 하잖아.”

“아예 들어 오시지 그래요?”

“……낚싯대나 잘 봐.”

“사냥이 재밌지, 낚시는 재미없어요.”

어두운 밤. 은은한 조명만 있는 강에 드리워진 낚싯대를 시큰둥하게 바라본 레오는 긴 다리를 꼬곤 낚싯대가 아니라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12월 찬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몰아치는 곳에서 두 남자는 미동도 없이 흐르는 강물과 낚싯대만 응시했다.

“코맘. 은근 까다로운데 어떻게 꼬셨어요?”

고요함을 끊어 낸 레오의 말에 에반의 입에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늦은 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는 짐짓 심각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결국 꺼내놓은 말이 연애와 관련된 것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시간과 정성.”

“농담할 기분 아닙니다.”

한참을 고민하다 겨우 말을 꺼냈지만 돌아오는 건 웃음에 제대로 된 답도 아닌지라 레오는 불퉁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자두.”

“깨셨어요?”

인기척에 이어 자신을 뒤에서 끌어안는 손길에 레오는 손을 들어 그의 손을 맞잡았다.

“잠깐 깼는데 에반이 없길래. 넌 언제 왔어? 몸 차가운 거 보니 한참 밖에 있었던 것 같은데.”

가슴을 몇 번 토닥거리고 머리에 입도 맞춰 주는 코맘의 다정한 행동에 지금껏 굳어 있던 레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코코, 방향이 잘못됐잖아.”

“잘못되긴 뭐가 잘못돼. 내 아들 내가 챙기는데, 이 날씨에 물고기도 안 잡히는 곳에서 낚싯대 내놓고 뭐 하는 거야? 둘 다 감기 걸리면 어떡하려고.”

제게는 솜사탕 머금은 듯 달콤하던 시우의 목소리와 말투가 에반을 향할 때는 그리 곱지 않았다.

“그러게요. 고민 있어서 왔는데, 대디가 제대로 대답 안 해 줘서 그만 가 보려고요.”

“뭐? 나 어떻게 꼬셨냐고?”

“네, 들으셨어요?”

“말했잖아. 자두.”

조금 전에 오면서 자두라고 부르기에 제 태명을 부르는 줄 알았다. 자신의 태명이 자두였고, 지금도 코맘은 가끔 자신을 자두라 불렀다.

“자두요?”

“만날 때마다 자두를 한 알만 주더라고, 어디에서 파는지는 말도 안 해 주고.”

“거기에 넘어간다고요?”

“단순히 자두 때문이겠어? 어쨌거나 우리 아들은 맛있는 빵 냄새 가득한 분이 곁을 안 줘서 고민인 거네.”

자신을 뒤에서 껴안고 토닥인 것도 잠시 빈 의자가 많은 데도 굳이 에반의 허벅지 위에 앉는 시우를 보던 레오의 표정이 굳었다.

“빵 냄새요?”

“…….”

셋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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