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ouble Shot(더블 샷)-10화 (1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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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트러져 내려와 있던 앞머리도 깔끔하게 넘어가 있고, 정말 시간과 날짜를 보는 용도로밖에 쓸 수 없는 묵직한 시계를 차다 슬쩍 고개를 들어 자신과 쳐다보는 눈빛에 혜담은 벌리고 있던 입술을 슬그머니 닫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온달의 입에서 나온 “못생겼다.”라는 말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말이었다. 본인 얼굴이 존잘인데 다른 사람들이 문어나 오징어로 안 보이는 게 이상하지.

“왜 봐도 봐도 못생겼지. 사람 곤란하게.”

방금 씻고 나와서 매꼬롬한 사람에게 그게 할 말이냐! 거기다 내가 못생겼는데 네가 왜 곤란해?

못생겼다고 말하면서 웃기는 왜 웃어? 그리고 어제 우리가 한 일이 있는데 그 말이랑 지금 말은 전혀 이어지지도 않잖아.

혜담은 수건으로 얼굴을 박박 닦고는 옷장 문을 벌컥 열었다. 고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있는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은 혜담은 앞장서서 걸었다.

차 한 대만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을 벗어나 이차선 도로로 나온 혜담은 하루에 두 대 오는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간이 정류장의 의자에 앉았다.

“언제 와?”

“9시. 오전 9시에 읍내 나가는 차. 오후 5시에 읍내에서 들어오는 차 타야 돼.”

“하루 두 번?”

“응. 네 명 사는 마을에 매일 들어와 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지.”

옆에 앉기보다는 서서 주위를 둘러보던 온달과 오래돼서 털털거리는 버스에 올랐다. 큰 키 덕분에 머리를 기울이고 손잡이를 어색하게 잡고 있는 온달의 모습에 작게 웃은 혜담은 그를 이끌고 제일 뒷자리로 가서 앉았다.

안락함도 안전함도 보장 안 되는 덜컹거리는 버스가 그로 가득 차는 것 같았다. 가끔 버스가 크게 흔들릴 때마다 슬쩍 자신을 잡아 주는 온달의 손길에 혜담은 괜히 창밖에만 시선을 두었다. 느리게 가는 버스를 타시는 분들은 대부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셨고,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온달에게 한마디씩 건네셨다.

“어이고. 이 총각은 왜 이렇게 잘 생겼어? 영화배우야?”

“우리 말 못 듣는 거 아녀? 거기 옆에 학생. 이 총각 모델인가?”

못 알아듣는 척 무표정으로 있는 온달을 향하던 어르신들의 시선은 이내 혜담에게로 옮겨졌다. 그럴 때마다 혜담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아니오.”라는 말을 할 뿐이었다.

눈에 띄는 온달이 오가는 이가 많이 없는 시골의 작은 읍내의 스타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신발부터 살래?”

혜담은 신발이 주렁주렁 걸려 있고, 쌓여 있는 작은 상점 앞에 멈춰 섰다.

“뭔 사람 발이 그렇게 커? 이게 우리 집에서 제일 큰 거여.”

잠시 후, 혜담은 손엔 검은색 비닐봉지가 들렸다. 온달에게 딱 맞지는 않지만 그래도 집에 있는 슬리퍼보다는 훨씬 큰 것이었다.

다음으로 들어간 상점에서는 출시된 후, 돌고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오게 된 115 사이즈의 흰 티셔츠가 3장에 10,000원. 후줄근한 검은색도 곤색도 아닌 물 빠진 희한한 색상의 트레이닝 바지를 장당 5,500원에 살 수 있었다.

말이 115 사이즈이지 그것보다 큰 것 같은 옷들을 저렴하게 살 수 있었던 건 읍내 특유의 상황 때문이었다. 들여는 왔지만 맞는 이가 없는 그 옷은 상점에서 자리만 차지할 뿐이었고, 얼른 치워 버리고 싶은 상점 주인의 사심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배고파. 밥 먹을래?”

“뭐가 있긴 해?”

길 한복판에 선 채, 불신의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온달을 보고 혜담은 작게 웃었다.

이세계에 떨어진 판타지 주인공 같네.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인데, 식당 하나 없을까 봐? 우리나라는 어딜 가나 꼭 하나는 있는 식당이 있지.”

앞장서서 걸은 혜담은 뒤따라와 놓고도 미적거리며 들어오지 못하는 온달을 둔 채, 크게 주문부터 했다.

“사장님. 여기 간짜장 곱빼기 하나 짬뽕 곱빼기 하나 탕수육 대자 하나요!”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혜담은 그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짓다 이내 표정을 굳혔다. 읍내의 작은 중국집 낡은 의자에 앉은 온달은 나온 음식을 보고 당황하기보단 능숙하게 면에 자장을 넣고 비비기 시작했다.

“부먹? 찍먹?”

간짜장을 비빈 후, 탕수육 소스를 보고 하는 말에 절로 혜담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

“난 찍먹인데……. 온달, 너 진짜 정체가 뭐냐?”

혜담의 진지한 고민에 돌아온 건 잘 비벼진 간짜장이었다. 그리고 혜담의 앞에 있던 짬뽕은 온달의 손에 넘어갔고, 그 안에 들어 있던 홍합 껍질들이 살과 분리되어 옆에 소복이 쌓이기 시작했다.

똑똑.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린 혜담은 그의 시선이 제게 닿자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기억이 났는데 돌아갈 곳이 없다거나 몸을 숨겨야 한다거나 네가 누군지 밝힐 수 없는 어떤 사정이 있는 거야?”

“아니, 기억이 안 날 뿐이야. 그런 쪽으로 생각하려고 하면 처음 말한 것처럼 머릿속이 하얀 안개가 가득 낀 것처럼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거든.”

빠르게 돌아온 단호한 대답에 혜담의 어깨가 푹 꺼졌다. 짬뽕에서 홍합을 다 꺼냈는지 슬쩍 제 앞으로 미는 그의 행동에 혜담은 간짜장 그릇을 끌어 제 앞에 뒀다.

“그런데 어제도 그렇고 코맘, 대디는 꾸준히 네가 말하고 있잖아.”

“네 질문에 반사적으로 나가는 대답이야.”

무한하다는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한낱 인간이 어찌 알겠어. 온달이 그렇다면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방금 그가 한 말이 이해되기도 했다. 어려운 수학 문제나 짬뽕과 짜장면 중 하나만 평생 하나만 먹을 수 있다면 무얼 선택하겠냐는 것 같은 깊은 생각이 필요한 내용이 아닌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단순 질문엔 저 역시 곧바로 대답이 튀어 나가니 말이다.

“어쨌거나 내가 생각해 봤는데 말이지. 처음엔 길 잃은 외국 관광객일 거라 생각했거든? 여기가 오지 산간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와서 배추밭이나 무밭을 사진 찍어 간단 말이야. 한데 한국말도 너무 자연스럽고 네가 보여 주는 행동이 전부 한국인이라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아.”

간짜장을 후루룩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은 후, 단무지를 집으려던 혜담의 젓가락에 단무지 두 개가 어설프게 걸려 딸려 오자 온달의 젓가락이 하나를 쏙 빼갔다.

“봐 봐. 이런 거 이런 거 진짜. 넌 깻잎도 떼주겠다?”

“그건 귀찮아서. 내가 뭘 하기도 전에 대디나 코맘이 먼저 알아서들 움직여.”

“……아무래도 그 대디와 코맘은 네 부모님이신 것 같지?”

어제부터 계속 그의 입에 오르는 대디와 코맘에 대한 정의를 내리자 온달 역시 별 불만은 없는지 고개를 끄덕이곤 짬뽕을 먹었다.

“집은 엄청 큰 고성이고, 정원은 그 뭐냐 바로크? 낭만? 그런 시대풍이고 말이야. 호수도 있고, 사냥개도 있고 총도 있고, 말도 있고, 집사도 있고 일하시는 분들도 엄청 많고 차도 막 수십 대 있고 그지?”

“고양이도 있어.”

“어…… 그래. 면 불어. 어서 먹자.”

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대화가 되지. 누가 들어도 헛소리 같은 말을 죽 늘어놓았더니 반박이 아닌 수긍과 함께 거기에 고양이도 있다고? 에라이. 네가 판타지 소설 속 주인공인데 이 세계로 갑자기 워프됐다고 말해라. 그게 더 믿을 만하니까.

온달과 더 깊게 이야기해 봤자 뜬구름 잡는 소리밖에 되지 않을 것이기에 혜담은 먹는 것에 집중했다. 간짜장을 열심히 먹던 그의 시선이 절로 매콤한 짬뽕으로 향했다. 맛있긴 하지만 짜장 특유의 기름짐과 달콤함은 얼큰한 짬뽕 국물 한 수저면 해결되는 것이었다.

친한 친구 사이라거나 가족이라면 서슴없이 한 수저 들겠건만 온달과 자신은 뭐랄까 참으로 이상한 관계였다. 도움을 준 자와 도움을 받은 자. 그러면서 한 공간을 공유하고 같이 밥을 먹는 부분은 식구 같고, 그의 등장과 함께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커피 향은 이제 친숙하게 느껴졌다.

커피를 마시지 않았지만 충분히 커피를 마신 것 같은 충만함이라고나 할까. 지난밤엔 그 좁은 침대까지 공유한 사이이니 아예 남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한데 서로 아는 게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멀거니 짬뽕을 바라보고 있던 혜담은 제 앞에 있던 간짜장 그릇이 사라지고 짬뽕 그릇이 놓이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처음엔 제가 그의 생각을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짬뽕 국물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을 알았나? 방금까지 제가 먹던 간짜장을 태연하게 먹는 온달을 보곤 혜담 역시 수저를 들었다.

중국집에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둘은 구경할 것도 돌아다닐 것도 없는 작은 읍내 여기저기를 구석구석 구경했다. 부동산에 들러 집을 내놓은 것을 다시 확인했고, 둘의 손엔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들려 있었다.

“차 시간까지 많이 남았는데 뭐 하지?”

쇼핑도 했고 밥도 먹었고, 커피도 마시고 있다. 온달의 의사를 묻는 혜담의 시선은 길 건너 작은 슈퍼마켓에 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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