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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Shot(더블 샷)-9화 (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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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던지듯 벗고 그대로 침대 안으로 뛰어든 혜담은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썼다.

한 단어일 뿐이다. 정말 자주 쓰고 많이 쓰는 너무나도 쉽게 하는 한 단어.

온달의 한마디가 가슴에 콱 틀어박혔다. 부드러운 이불에 얼굴을 묻은 그의 숨결이 조금 거칠어졌다. 상황을 아는 이들은 모두 제게 같은 말을 했다. 그럴 때마다 작게나마 미소를 띠고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그 단어를 건네며 어깨를 두드리기도 했고, 손을 잡아 주기도 했다. 이어진 그들의 위로하는 말과 덕담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침에 할머님들의 수다를 들었으니 온달도 제 상황을 알 것이다. 그러니 그런 말을 건넸겠지. 수없이 많은 말을 함축한 그 말에 형식적이고 대외적인 답을 하지 못했다. 입술이 떨렸고 목이 콱 막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안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아.

무섭고 두렵고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지.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어. 상상과 현실은 다르니까.

대학에 들어가면서 온전한 독립을 했다고 여겼다. 자는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고, 다 모으지 못한 학비는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이곳에 계신 할머니께 부담이 될까 봐. 전액 장학금을 받는다고 거짓말도 했다. 매일 매일을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 지치면 할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이젠 힘들어도 전화할 곳이 없다.

[우리 강아지. 밥은 잘 챙겨 먹고?]

힘들다고 지친다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밥은 먹었냐 옷은 잘 챙겨 입었냐. 학교는 잘 다니냐 온통 제 걱정뿐인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괜찮아졌다.

이젠 힘들면 어떡하지? 진짜 어떡하지?

이불을 끌어안고 있는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제 감정을 수습하기도 벅찬 혜담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물소리가 멈췄을 때쯤 혜담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멍했고, 졸음이 밀려왔다. 술 잘 먹는 편인데, 온달은 주지 않고 혼자 두 병 넘게 마셔서 그런가. 늘 수없이 많은 생각과 망상들로 시끄럽던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았다.

누에고치처럼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눈을 감은 혜담은 느리게 숨을 쉬었다. 인기척이 느껴지고 등 뒤로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불째 머리가 슬쩍 들렸다 내려졌을 땐, 머리 아래로 따뜻하고 단단한 것이 있었다.

열기를 내뿜는 벽 같은 것이 등 뒤에 자리 잡고 무게 때문인지 슬쩍 몸이 뒤쪽으로 기울었다. 허리께쯤엔 묵직한 것이 척 하니 올라왔다.

커피에 퐁당 빠져 버린 것 같은 향이 지금 제게 이런 짓을 하는 이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려 주고 있었다. 그래도 나도 남잔데, 쓸데없이 덩치만 크고 열만 많은 놈을 뒤척거리거나 몸을 뒤로해 떨어뜨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데. 그에게서 전해지는 온기와 숨결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지난밤과 다른 묵직한 커피 향은 저를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가슴을 옥죄던 두려움, 공포, 막연함, 외로움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하나둘 사라졌다. 무겁던 머릿속이 편안해지고 안정감과 따스함에 딱딱하게 굳었던 몸이 풀렸다.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은은한 커피 향에 몸을 맡기고 있던 혜담은 묵직하게 와닿는 향에 천천히 몸을 돌렸다. 둘 사이에 작은 공간이 생기고 침대 옆 창을 타고 들어온 달빛에 비친 온달과 마주한 혜담은 한 손을 들어 그의 볼을 만졌다.

조금 전 평상에서 그가 자신을 만졌던 것처럼 손바닥을 그의 볼에 대고 엄지로 입가를 쓸었다. 엄지 손끝 아래에서 부드럽고 말랑한 그의 입술이 뭉개졌다.

따뜻한 젤리를 만지는 것 같은 촉감에 혜담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피어났다.

순간 방금까지 다정하게 저를 보듬어 주던 향이 거칠게 날뛰었다. 빛을 받은 초록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는 찰나 그의 입술이 혜담의 입술을 찾아들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벌어진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오갔다. 온달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느껴지는 짜릿한 감각에 혜담은 온전히 그에게 제 몸을 맡겼다.

술에 취한 것인지 커피 향에 취한 것인지 달빛이 침대를 비추는 분위기에 취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자신의 몸을 쓰다듬는 이가 온달이라는 것과 그의 입술이 내려앉는 곳마다 뜨거운 불길이 타오른다는 것이었다.

짜릿하면서도 농염하고 미칠 듯이 타오르면서도 서늘했다. 시작은 입술이었지만, 이내 얼굴로 턱선으로 목덜미로 타고 흘러내리던 온달이 가슴에 얼굴을 묻는 것과 동시에 혜담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누군가와 이렇게 친밀하게 있는 것도, 포옹도, 손길과 숨결을 느끼는 것도 처음인 혜담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거침없이 파고들고 희롱하며 낯선 감각을 몰고 오는 온달을 끌어안기에 급급했다.

베개와 시트 위에서 갈 곳을 잃고 헤매던 혜담의 손가락이 풍성한 온달의 머리카락을 파고들자 낮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추위 때문에 겹겹이 껴입고 있던 옷들이 사라지고 살갗이 훤히 드러났다. 피부에 와닿는 타인의 살결에 혜담의 다리가 움츠러들었지만 그런 작은 움직임으로는 온달을 막을 수가 없었다.

부드럽고 따뜻하며 말랑한 온달의 입술이 다시금 혜담의 입술을 찾았을 때는 처음처럼 친절하지 못했다. 본능을 숨기지 못한 질척한 타액이 오가고 둘의 혀가 난잡하게 엉켜들었다.

흘러나오는 신음까지 모두 삼켜 버리는 온달의 혀끝이 가져다주는 쾌락에 빠진 혜담의 손끝이 온달의 어깨에 파고들었다.

“온달.”

그의 리드에 따라가지 못한 혜담의 애원이 닿은 것인지 겨우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다시 마주한 것은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 같은 눈동자였다.

다시금 제 입술을 찾으려는 온달의 행동보다 혜담이 그의 얼굴을 감싸는 것이 더 빨랐다. 시선이 얽히고 달아오른 거친 숨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커피 향이 이렇게나 야살스러울 수가 있을까? 무겁고 진하면서 쌉쌀한 향이 농염함을 가득 채운 채 살결을 타고 흐르자 혜담의 고개가 젖혀졌다.

가슴에서 복부로 종아리에서 허벅지로 온달의 손길과 입술이 몸을 타고 흐를 때마다 혜담의 숨결이 거칠어지고, 온몸엔 붉은 울혈들이 생겨났다.

배 안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열기는 온몸으로 퍼져 나갔고, 온달의 손끝과 입술이 한껏 젖은 곳을 찾아들자 혜담의 입에선 숨기지 못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쾌감을 이기지 못한 혜담의 손끝이 다시금 태오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농염하고 은밀한 감각이 꿈틀거렸고 모든 것을 방출하는 것과 동시에 혜담은 아득한 어둠으로 떨어져 내렸다.

온달이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았지만 혜담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 폭죽이라도 터진 듯 눈앞은 하얗게 변했고, 귀는 먹먹한 것 같았다. 잔뜩 긴장됐던 몸이 완전히 이완되기도 전에 찾아든 강한 감각에 혜담의 상체가 들썩였다.

자신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온달의 뜨거운 숨결과 아래에서 시작된 열기는 끊임없이 놀라운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온달은 성난 파도처럼 밀려들다가도 봄바람처럼 다정했다. 뜨겁고 단단한 온달의 품에 안긴 혜담의 허리가 절로 들썩거렸다.

엉덩이가 그의 손에 잡히고 허공에 뜬 다리가 둘의 움직임에 따라 거칠게 흔들렸다. 낡은 침대의 삐걱거리는 소리와 마찰음, 이어 숨기지 못한 둘의 거친 숨결만이 혜담의 긴 밤을 가득 채웠다.

* * *

침대에 덩그러니 앉은 혜담은 눈앞에서 왔다 갔다 바쁜 커다란 덩어리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좁은 집을 더 좁게 보이게 만드는 놈은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것 같았다.

심한 육체노동이라도 한 듯 축축 처지는 몸과 뻐근한 허리. 지난밤 제가 입고 있던 것과는 다른 상의. 그 외의 모든 것들이 제게 일어난 일이 꿈이 아님을 생생히 알려 주고 있었다.

이리저리 오가던 온달과 시선이 얽혔고, 그는 미소를 지은 채 다가왔다. 혜담의 턱을 가볍게 받친 온달이 상체를 숙이자 곧 말랑 콩떡 같은 것이 입술을 꾹 눌렀다가 사라졌다.

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온 것인지 온달의 머리카락 끝엔 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그에게선 향긋한 바디 클렌저 향이 풍겼다.

“굿모닝.”

입술을 간지럽히는 작은 목소리에 혜담은 슬쩍 고개를 돌렸고, 커다란 손으로 머리를 흐트러뜨린 온달은 부엌으로 가 버렸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눈이 맞았고,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지난밤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랫배가 묵직해지고 아릿해지는 것 같자 혜담은 얼른 고개를 작게 흔들어 망상들을 떨쳐 냈다.

그건 그렇고 일어나긴 일어나야 하는데, 이불을 어깨에 두른 채 침대 위에 덩그러니 앉은 혜담의 시선은 싱크대 앞에 서 있는 온달에게 닿아 있었다.

“사과밖에 없어.”

“나 원래 아침밥 안 먹어.”

한참을 싱크대 앞에 서 있더니 그가 자두 크기가 된 사과를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들며 혜담은 작게 웅얼거렸다. 작아진 사과를 한입 베어 문 혜담은 깎지 않고 물로만 씻은 큰 사과를 먹는 온달을 올려다보았다.

“몇 시야?”

“8시 조금 넘었어.”

“읍내 갈래? 병원이나 파출소나 그런데 가자고는 안 할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혜담은 따스한 이불 속에서 벗어났다. 사과를 입에 물고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려다 몰려오는 둔통에 한숨을 쉰 혜담이 욕실로 들어갔다가 나왔을 땐, 온달은 외출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같이 고기 구워 먹고, 돌고 돌아 원점이 된 시답잖고 이상한 대화를 나눌 때는 편하게 말도 놓은 것 같은데. 갑자기 온달이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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