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적당히 달아오른 석쇠 위에 고기를 올리자 치직거리는 듣기 좋은 소리와 없던 집 나간 입맛도 돌아오게 하는 굽는 냄새가 마당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먹고 나면 프라이팬에 구운 고기는 못 먹지.”
고기 옆으로 버섯과 양파까지 야무지게 올린 혜담은 집을 흘깃 바라보다 봉투가 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긴 시간을 함께한 것도 아니고 깊은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지만 그리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았다.
지난밤 그 일만 아니라면.
혜담의 손끝이 제 입술에 닿았다. 아무 생각 없었는데 첫 키스였네. 그걸 키스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말랑하고 촉촉했고, 또 따뜻했으며 무엇보다 온몸을 타고 흐르던 그 향과 묘한 감각들이 다시 살아나자 혜담은 느릿하게 입술에서 손을 뗐다.
입술을 꾹 다문 혜담은 상 위에 있던 두 개의 소주잔 중 하나를 치워 버렸다. 적당히 익은 고기를 뒤집자 육즙과 기름이 장작 위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와 연기를 만들어 냈다.
고기 굽는 것 하나는 끝내주게 잘한다고 자부하는 혜담은 연기를 피해 자리를 옮기며 콧노래를 부르다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매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부분에 대해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침 고이게 만드는 고기 냄새 사이에 스며든 커피 향과 머리의 물기를 털며 나오는 온달이 겹쳐졌다. 저놈이다. 저놈이 근처에 있으면 당연하다는 듯 커피 향이 느껴졌다.
‘알파 아니야. 알파인데, 알파 아니라고 했어.’
알파가 아닌데 왜 이런 향이 나? 아니, 난 오메가가 아닌데 왜 이런 향을 맡아?
알파인데, 알파가 아닌 온달보다 자신이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태어났을 땐, 오메가였다던데. 거기다 빵. 갓 구운 빵 냄새. 사진을 보지 않으면 이제는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는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무너무 맛있고 포근한 빵 냄새라고. 다 커도 우리 아들 아무한테도 못 준다고. 꼭 엄마한테 허락받으라고 장난처럼 말했다.
숨이 막힐 만큼 자신을 꼭 끌어안고 웃던 엄마의 목소리와 상큼한 레몬 향이 혜담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어릴 적 자동차 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다. 의사들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지만. 그 후 혜담은 더 이상 오메가가 아니었다. 모든 수치가 베타와 흡사했고, 빵 냄새조차 사라졌다.
그렇게 베타로서 15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왔다.
그런데 왜 지금? 너는 내게서 빵 냄새가 난다고 하고 나는 네게서 커피 향을 맡는 거지?
“너 알파 아니라며.”
“응, 아니야.”
혜담이 느슨하게 잡고 있던 가위와 집게가 온달의 손에 넘어갔다. 이런 일은 또 해 본 건가? 능숙하게 고기를 자르고 살짝 탄 부분도 제거하는 온달의 행동에 혜담은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왜 너한테서 커피 냄새가 나?”
“내 페로몬 향이 커피니까.”
“알파 아니라면서!”
“그러는 넌 오메가야?”
답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는 꼬리물기 같은 질문이 이어졌고, 혜담이 마주한 건 온달의 잘난 얼굴이었다.
“알파, 오메가, 베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대디와 코맘도 그랬거든. 의사와 과학자가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순 없어. 형질을 떠나서 제일 중요한 건 네가 못난이라는 거지.”
상체를 숙여 눈높이를 맞추고 어린아이를 다독이며 설명하는 것 같은 온달의 말을 끝까지 다 들은 혜담의 양 눈썹 끝이 위로 올라갔다.
“눈도 못났고, 코도 못났고, 입도 못났어. 가끔 보이는 보조개도.”
뭐 이런 미친놈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뜬금없는 말과 행동도 그렇지만 어떻게 사람을 코앞에 대놓고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대놓고 못났다고 할 수 있는 거지?
미쳐도 곱게 미친 놈이 못났다고 하면서 왜 씩 웃냐. 세상 모든 사람한테 물어봐. 객관적을 봐도 네놈이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거지. 자신은 평범했다. 어디 가서 잘났다 못났다는 말보다는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얼굴이었다.
“뭐?”
“못난이. 화내면 더 못생겨지니까 밥 먹자. 고기 잘 먹을게.”
“나 안 못생겼거든!”
“누가 뭐랬어?”
“미치겠다. 네가 방금 못난이라며. 눈, 코, 입 다 못생겼다며!”
“응, 못생겨서 좋아.”
구워진 고기를 접시에 옮겨 상에 놓고 먼저 평상에 올라가 앉는 온달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못생겼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가 뭔지 알아?”
“못생겼다? 평균보다 떨어진다. 이런 뜻이잖아.”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는 나한테 어떻게 그렇게 말해? 당장 꺼지라고 하면 어떡하려고?”
“안 그럴 거잖아.”
허.
할 말이 없어 허리에 손을 올린 채, 헛웃음을 짓던 혜담은 입 안으로 쑥 들어온 쌈을 일단 씹었다. 진짜 뭐지? 상추에 밥에 쌈장에 고기, 구운 마늘까지 차곡차곡 잘도 넣은 완벽한 쌈의 맛을 느끼며 혜담은 식사를 하는 온달을 지켜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와 어제, 그리고 오늘. 이 순간까지 그는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처음엔 무뚝뚝하고 말조차 잘하지 않으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더니 기억이 돌아온 건지 아니면 생각을 다 한 것인지 지금은 평범한 또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적당히 친한 친구.
“야! 이씨. 넌 먹지 마.”
입 안에 든 것을 꼭꼭 씹어 삼킨 혜담은 자연스럽게 소주병을 따고 하나 있는 소주잔에 술을 채운 후, 입가로 가져가는 온달의 손에서 소주잔을 빼내 홀랑 마셨다.
“너. 솔직하게 말해봐. 기억났지! 아까부터 대디, 코맘 이런 거 말하잖아. 대디는 분명 아빠를 칭하는 거 같고 코맘은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거 역시 누군가를 칭하는 말이고. 지금 네가 하는 행동도 처음이랑 너무 다르잖아.”
“네가 묻는 말에 나도 모르게 대답이 나오는 거야. 대디가 누군지 코맘이 누군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나지 않아. 적어도 확실한 건 여기가 안전하고 주위 무엇도 내게 위협을 가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고. 산기슭에서 어슬렁거리는 멧돼지가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집까지 올 것 같지는 않거든.”
“그럼. 이 돈. 이건 왜 날 주는 건데.”
“어디에서든 밥값은 하고 살라고 했거든.”
“누가?”
“몰라.”
뭔가 대화가 제대로 되는 것 같다가도 원점으로 돌아가는 상황에 혜담은 두 주먹 불끈 쥐고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곱게 미친 놈이구나.
실랑이하는 사이 수북했던 고기가 제법 줄어든 것을 본 혜담은 일단 그의 앞에 앉았다. 온달은 혜담이 어떻게 대응할 새도 없이 소주잔에 술을 따라 마시고는 고기 한 점을 입 안에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그러니까 여기는 널 위험에 빠뜨릴 만한 것도 없고 나는 만만한 데다 못생겼으니까 네 맘대로 하겠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고 슬쩍 제 앞으로 고기 접시를 밀어 놓은 온달이 빈 소주잔을 집자 혜담은 얼른 그의 손목을 잡았다.
“아, 넌 술 못 마신다고. 막말로 네가 미자면 이거 범법 행위거든? 그리고 술도 약한 놈이 어제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기억은 해?”
“내가 무슨 짓을 했어?”
“맞네. 이거 술 못 마시네. 이상한 빵 타령 했잖아.”
차마 제 입으로 네가 그 주둥이를 제 몸에 가져다 댔다는 말을 하지 못한 혜담은 대충 둘러 말했다.
“적어도 그 빵이 너라는 건 알아.”
“너도 나도 알파랑 오메가가 아닌데, 이 냄새는 진짜 뭐냐고!”
온달의 손을 치워 낸 혜담은 소주를 또 홀짝 마셨다. 소주잔을 상 위에 탕 소리 나게 내려놓자마자 소주가 채워졌다.
다 먹은 건지 그대로 평상에 드러눕는 온달의 행동에 혜담은 밥 먹고 바로 눕는 거 아니라는 말을 할까 하다 채워진 술잔이나 비웠다.
“오로라는 안 보이고.”
“여기서 오로라 보이면 그날이 지구 종말의 날이야.”
“별은 많다.”
팔베개를 하고 누우려던 온달의 입에서 작게 앓는 소리에 혜담을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낡은 약통을 뒤진 그의 손엔 동그란 모양의 파스가 들려 있었다. 할머니가 늘 써서 그런지 다행히 파스의 유통기한은 넉넉했다.
“온달. 엎드려.”
무언가 토를 달 것 같기도 했지만 얌전히 엎드린 온달의 등판을 깐 혜담은 잠시 입술을 다물고 완벽한 역삼각형의 상체를 응시했다.
이내 단단하고 따뜻한 온달의 등에 동그란 파스가 더덕더덕 붙었다. 혈 자리 같은 건 알지도 못하고 어디가 얼만큼 아픈지도 모르니 그냥 손이 닿는 대로 붙일 뿐이었다.
“이 근육들은 장식이냐. 완전 물근육이네.”
물근육이라는 말에 자극받았는지 등 근육이 꿈틀거렸다.
“이런 일은 안 해 본 것 같아.”
“그러게 해 보지도 않은 일을 왜 한다고 나서. 이거 며칠 갈걸.”
들고 온 파스를 다 붙인 혜담은 끌어 올렸던 티셔츠를 다시금 내려 주었다. 이내 몸을 바로 한 온달은 하늘을 말없이 응시했고, 혜담은 남은 고기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밤이 깊어가고 고기를 굽느라 피워 놓은 장작이 사그라들자 느껴지는 한기에 혜담은 발끝으로 온달을 툭 건드렸다.
방금까지 하늘을 보던 그의 시선이 제게 닿았다. 달빛과 별빛이 그의 얼굴에 음영을 만들어 내고, 초록색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신비한 빛을 내고 있었다.
“괜찮아.”
그의 입술이 움직이고 귓가에 닿는 말에 혜담은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온달의 손이 볼에 닿을 때도 가만히 있었다.
오묘한 빛의 눈동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따스하고 좋아하는 커피 향이 가득한 그의 큰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가만히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면 그의 입술이 부드럽게 올라가는 순간 혜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온달, 이거 네가 치워.”
여전히 평상에 누워서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불퉁하게 말을 뱉은 혜담은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