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글지글 고기가 철판 위에서 구워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수현은 집게를 들고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예전에는 연탄연기도 자욱했던 가게인데 리모델링을 하면서 다행히 연기는 피어오르지 않게 됐다. 그것도 은근히 매력이었는데, 수현은 다 구운 고기를 불 바깥쪽으로 밀어놓고 채소 몇 장을 겹쳐 집었다.
“안 드세요?”
“음…”
“마음에 안 드세요?”
“아닙니다.”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가 불편할 만도 하지, 왠지 조금 기분이 좋아진 수현이 잘 익은 고기를 넣어 크게 쌈을 싸 입에 밀어 넣었다. 볼이 미어지도록 쌈을 넣고 꾹꾹 열심히 씹자 단 맛이 나는 육즙이 배어나왔다. 고기 하나를 더 집어 입에 넣고 수현은 불판 가득 고기를 더 얹어 놓았다.
“맛있습니까?”
“예. 정말 맛있는데. 드셔보세요. 뭐 지저분해보이고 그래서 싫으신 거…”
“아닙니다.”
딱히 지저분해보이는 가게도 아니고 그런 거에 크게 신경 쓰지도 않고. 정시우 이사는 단지 열심히 먹는 수현이 보기 좋아 흐뭇하게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평소에도 잘 먹는 편이긴 하지만 저렇게 신나서 먹는 건 또 처음이다. 잘 먹으면 좋지, 안 먹는 것보다야. 수현의 채근이 젓가락을 든 정시우 이사는 고기를 한 점 집어 먹어보았다.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맛이었다. 은은히 연탄불 냄새도 나고.
“맛있군요.”
“그죠?”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이던 수현의 얼굴이 활짝도 펴졌다. 정시우 이사는 수현의 손에서 집게를 빼앗아 왔다. 느릿느릿하게 고기를 뒤집자 수현은 정시우 이사의 손등을 찰싹 때리면서 빨리빨리 뒤집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손이 안 보일 정도로 빨리! 하는 말에 정시우 이사는 열심히도 고기를 뒤집었다.
“탄 부분은 다 이사님 줄 거예요.”
“암 걸려 죽으라고.”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태우지 말라는 거지.”
젓가락으로 집게를 탁 치면서 수현은 정시우 이사를 타박했다. 꼭 한 번씩 저렇게 밉살맞게 이야기 한단 말이야.
“많이 먹어요.”
“고기 먹는 거 오랜만이라서 안 그래도 많이 먹을 거예요.”
“특히 허벅지 쪽에 살이 좀 쪘으면 좋겠는데.”
빼짝 마른 건 아니지만 말랑한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닌 몸이라서 어디 호되게 부딪치면 좀 아플 때도 있다.
“이사님도 그렇게 부드럽진 않은데요.”
아주 배까지 딴딴하면서. 수현은 커다란 상추와 깻잎을 겹치고 고기를 세 점이나 넣었다. 커다란 마늘과 청양고추를 넣고 쌈장도 듬뿍 넣은 후 아주 커다란 쌈을 하나 쌌다. 그리고 쌈과 정시우 이사를 몇 번 번갈아 바라보았다. 주려고 싼 거긴 한데 차마 주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걸 싼 거지, 주변에 사람이 몇 명인데. 입에 다 들어갈까 의심스러운 크기였지만 수현은 턱운동을 한 번 하고 입을 벌리려고 했다. 중간에 낚아채어지지 않았다면.
“…크군요.”
한참을 씹고서야 뭉개진 발음으로 정시우 이사는 한마디 내뱉을 수 있었다. 그걸 다 삼키다니, 역시 사람은 위대해. 쌈을 넣기 위해 쩍 벌려졌던 입을 생각하니 좀 웃기긴 했지만 수현은 애써 웃지 않았다. 뭐랄까, 이 커다란 사냥개 같은 이사님이 귀여운 건 참…
“…이상하게 어울린단 말이야.”
“뭐가 말입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거기 고기 타는데요.”
수현은 고기와 함께 시켜놓았던 소주병을 땄다. 퉁퉁 밑동을 두어 번 두드리고 병을 열어 잔을 채웠다. 잔을 들어 가볍게 부딪치고 알싸한 액체를 넘겼다. 오랜만에 마시는 소주는 달기까지 했다.
“고기 먹고 노래방 갈 겁니까?”
“…아뇨? 노래방 안 가요!”
“그럼 술 마시는 게 아까운데.”
아쉬운 듯한 어투에 수현은 사색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첫날부터 추태였지. 첫날 신경질 부리는 것도 다 봤고, 툴툴대는 것도 다 봤고, 술 마시고 역한 애교떠는 것도 봤고, 허리에 침질까지 했었지. 여전히 미스터리인 것은 대체 왜 이사님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을까, 그리고 조… 좋아하게 되었을까, 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어서. 왜 좋아하냐고 놀리듯 물어본 적이 있긴 했지만 제대로 대답해준 적은 없었지, 사실 제게도 그런 질문을 하면 대답할 말이 궁하긴 했다. 진짜 어쩌다보니 홀랑 넘어가 버린 거라서.
“술 잘 마시네. 노래방 가야겠는 걸.”
“이사님!”
“안 갈 테니까 눈꼬리나 내려요.”
정시우 이사는 손을 뻗어 수현의 눈꼬리를 잡고 밑으로 쭉 끌어내렸다. 왠지 멋쩍어져 수현은 얼굴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이사님.”
“음?”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
“뭡니까?”
“음… 그게…”
“뭐길래 그렇게 뜸을 들입니까?”
“…절 왜 좋아하세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수현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부끄러운 건 아는지 낮게 목소리를 깔고 입안으로 웅얼거렸다.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음… 곤란한데.”
“왜요?”
“설 거 같은데.”
“안 돼요! 밥 먹다가 무슨…”
“그런 질문을 하질 말았어야지.”
“질문엔 문제 없었거든요?”
설마 진짜로 세우진 않겠지, 젓가락을 문 채 수현은 초조한 눈으로 정시우 이사의 얼굴과 아래쪽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다행히 겉으로 티가 날 정도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저 관심만 가졌을 뿐인데 말이야.”
“…….”
“순식간이었지.”
눈을 찡긋거리면서 하는 말에 수현은 얼굴을 미묘하게 일그러뜨렸다. 저 느끼함은 좀 익숙해지지 않는단 말이지, 하지만 뭐, 상관없나.
“오늘은 안 하려고 했는데 이수현 씨가 불 지른 겁니다.”
“그런 적 없는데요?”
“그래서 하기 싫습니까?”
“그… 런 건 아니지만요…”
“먹고 집에 갑시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열심히 고기를 집어먹기 시작했다. 타지 않게 제대로 구워놓은 고기는 분명 맛있어야 하지만 이상하게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도 같고, 입술이 근질거렸다. 꽉꽉 누가 씹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현은 소주는 몇 잔이나 연거푸 들이켰다. 제 헤실헤실 풀어지는 얼굴에 정시우 이사의 얼굴이 점점 더 난감해지는 건 왠지 기분이 좋았다. 정말 곤란한데… 하고 흐리는 말끝도.
쯧, 혀를 한 번 찬 정시우 이사는 계산서를 집어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수현의 뺨을 툭, 한 번 두드려보았다. 급히 소주 몇 잔을 마시더니 이 모양이다. 말술인 것도 아니면서 가끔 도를 지나친다니까. 하지만 그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수현을 등에 둘러업었다. 묵직하긴 하지만 못 옮길 정도로 체력이 약하진 않다.
조수석에 수현을 밀어 넣고 차를 돌아 운전석에 오른 정시우 이사는 킁킁 제 몸에서 나는 고기 냄새를 맡아보았다. 정말 고기 먹고 온 거 광고라도 할 것처럼 냄새가 났다. 하지만 뭐, 나쁘지 않았지. 꽤 좋기까지도 했다. 맛도 있었고.
“키스하고 싶지만 참아야겠지?”
키스하자고 하면 수현은 분명 이를 닦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럼 지금 해버리는 게 낫지, 괜히 이 닦아야 된다고 해서 시간 버리는 것보다는. 그리고 정말로 고기집에서 세울 뻔 했거든.
“알았어, 짧게.”
마치 수현이 말이라도 하는 듯 그는 깔끔하게 대답하고 입술을 짧게 붙였다 떼어냈다. 씁쓰름한 소주 맛이 나는 입술이었다. 정말로 아래가 벌떡 기립할 것 같아 잠시 운전대를 잡고 비아그라 먹은 아들놈도 죽여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하반기 마케팅 전략을 읊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일의 강도가 끔찍한.
“두들겨 패서라도 깨워서 한다, 내가.”
왜 좋아하냐는 깜찍한 질문을 해놓고 책임도 안 지려고 하면 섭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