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은 손가락 까딱 안 하고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단추 하나 제 손으로 안 풀고 심지어는 샤워도 정시우 이사가 다 해줬다. 물기 남은 차가운 머리카락이 배 위에 흩어졌다. 아래에 뜨겁게 닿아오는 입김에 수현은 움찔 발가락이 곱는 것 같았다. 이런 상반된 감각이라니, 손끝이 저릿저릿하다. 하지만 아닌 척 수현은 애써 움츠러들려는 몸을 폈다.
“여기가 좋습니까?”
밑에 깔렸던 다리를 빼내 수현은 정시우 이사의 어깨를 툭 찼다. 여전히 입으로 하는 건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하지 말라고 친 거였는데 오히려 더 달아오른 듯 정시우 이사는 수현의 허벅지를 눌러 열고 훅 입김을 불었다. 기민하게 반응하는 게 귀여웠다. 입이 닿을라치면 부끄러운 듯 붉게 변하는 몸도.
엄지로 반쯤 힘이 들어간 것의 끝을 슥슥 문질렀다. 수현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채 만족스러운 듯 입가에 미미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가슴 위에 톡 올라온 것을 혀끝으로 강하게 누르면서 핥자 음, 하고 짧게 목을 울렸다. 오늘 조절 못할 거 같은데, 안 그래도 일주일만인 데다가 의외로 이런 상황이 더 달아오르게 했다. 제 애무를 그대로 받으면서 반응하는 수현이라, 입운동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거기… 아파요.”
“아프기만?”
아프기만 한 건 아니지만… 수현은 오랫동안 자극당해 따끔거리는 유두에서 정시우 이사의 머리를 밀어냈다. 머슴처럼 부려주겠다면서 존대는 참 꼬박꼬박 한단 말이지. 젤을 손 안 가득 담아 밑에 문지르자 수현은 차가움에 놀란 듯 허리를 풀썩 한 번 움직였다. 입구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던 손가락이 안을 파고들었다. 안을 강하게 긁는 손끝에 수현은 탁하게 소리를 냈다.
“너무 갑자기…”
“쉬쉬―”
정시우 이사는 수현의 귓가를 달래듯 입술로 물고 귓불을 잘근잘근 씹었다. 수현은 아래가 벌어지는 느낌에 몸서리를 치면서 단단한 허리에 허벅지를 대고 버텼다. 짙은 회색 시트가 몸에서 배어나온 땀 때문에 진한 빛깔로 변했다. 손가락 네 개가 안을 휘저어대는 건 아무리 겪어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라 수현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몸을 떨었다. 그러다 쿡쿡 느끼는 지점을 손가락이 스칠 때마다 미칠 것 같은 기분에 다리를 휘저어댔다. 씨이, 나중에 좌약 한 열 개 확 집어 넣어버릴까 보다. 나한테는 손가락 네 개나 집어넣고, 이제 또 다른 것도 넣을 거면서 좌약가지고 툴툴댔다 이거지.
“넣어도 됩니까?”
“…….”
“싫은가… 머슴은 명령을 해야 듣지.”
수현은 고개를 젖힌 채 숨을 몰아쉬었다. 단번에 손가락이 쑥 빠져나가는 그 감각에 둥글고 단단한 끝이 닿아오는 감각이 합쳐져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 아래를 한 번 내려다보고 수현은 황당한 얼굴을 했다.
“그, 그건 뭐예요?”
“뭐가.”
“그거요.”
수현은 정시우 이사의 중요부위에 손가락질을 했다. 현란하게도 빛나는 저것은 대체 무엇이냐.
“야광콘돔.”
“그런 걸 왜 써요?”
“왜 쓰긴, 좋잖아.”
“뭐가 좋은데요? 앗! 갑자기 들어오지 마세요!”
수현은 뒤로 몸을 빼려고 했지만 그건 그저 몸부림일 뿐이었다. 허리를 꽉 붙든 손은 다시 그대로 몸을 원위치 시켰고 찬란한 형광 초록색을 띤 것이 제 몸속으로 들어오는 모습에 수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근데 문제는 더 흥분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남자가 시각적인 동물이라지만 저런 요상한 색깔의 띤 기둥이 몸속을 파고드는 것에 흥분하는 건 변태 같아! 수현은 벌떡 기립한 제 아래를 숨기기 위해 몸을 틀어 보았지만 이미 눈치가 백단인 정시우 이사에게 그런 걸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처음 판은 천천히 고조시켜가는 것이 좋겠지. 수현의 다리를 허리에 감게 하고 정시우 이사는 상체를 내렸다. 코끝이 맞닿게 했다가 입술을 쪽 한 번 빨아들이면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잔잔한 강물 위에서 흔들리는 쪽배 같이, 하지만 곧 거칠어졌다. 난 정말 변탠가, 왜 이렇게 거친 게 좋지. 수현은 싫다는 말, 아프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고 그저 ‘거기 말고 여기, 음, 거기 좋아요.’하는 소리만 내뱉었다. 나중엔 그런 소리를 할 시간도 없었다. 안으로 치고 드는 힘이 얼마나 센지 엉덩이가 후끈하게 아팠다.
이거 아무래도 나중에 질리고 싫어져도 몸 때문에 못 헤어질 거 같아, 수현은 왠지 현실이 될 것 같은 그 예감을 고개를 저어 흩트렸다. 단단한 배 여기저기 문질러지고 자극당한 아래가 자제력을 잃었다. 질척해진 배를 꾹 누르면서 정시우 이사는 더 세게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사정하면서 조여지는 아래가 좋다. 완전히 동시는 아니지만 비슷하게 사정을 했다.
“흐으…”
들어오는 것보다 빠져나가는 게 더 자극이 심하다. 수현은 모로 누운 채 안이 비워지는 느낌을 못 견뎌했다. 질척질척, 콘돔을 묶어 휴지통에 던져 넣고 정시우 이사는 잇새에 콘돔을 하나 더 물었다. 그리고 수현을 훌쩍 들어 안아 제 위에 앉혔다. 수현은 높아진 시야에 조금 당황하다 곧 페이스를 되찾았다. 정시우 이사의 잇새에 물린 콘돔을 빼내 제 이로 쭉 찢어 꺼내곤 키스를 해왔다. 키스를 하면서 손을 내려 반쯤 일어선 것을 몇 번 훑은 후 끙끙대면서도 끝까지 콘돔을 씌웠다.
“…이번엔 주황색이네요.”
“예쁘잖아.”
“취향 참…”
“들어오는 거 보면서 더 흥분하던 이수현 씨가 할 말은 아닌데.”
수현의 허리를 붙잡아 들어 올리고 천천히 안으로 밀어 넣으면서 정시우 이사는 눈앞의 흰 목덜미를 콱 깨물었다. 위에 앉기는 했지만 수현은 열심히 움직이지 않았다. 빨리 움직이라면서 정시우 이사의 등을 찰싹 소리가 날 정도로 때렸을 뿐. 예, 마님, 하고 한소리 했다가 정시우 이사는 수현에게 코를 아프게도 물렸다.
수현은 정시우 이사의 배를 벤 채 러그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좀 푹신푹신한 게 좋은데, 배를 쿡쿡 눌러보았지만 지방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몸에서 말랑말랑함은 바랄 수가 없다. 좀 내려와서 쿠션을 베려고 하면 정시우 이사는 부득불 제 배 위에 수현의 머리를 올려놓았다.
“안 무거우세요?”
“별로.”
“제 머리가 작긴 하죠.”
천연덕스러운 수현의 말에 정시우 이사는 가볍게 목을 한 번 울려 웃었다. 수현을 쑥 끌어올려 제 몸 위에 겹쳐지도록 해놓고 등을 슥슥 몇 번 쓸어내렸다.
“저녁 먹으러 나갈까.”
“뭐 사주실 건데요?”
“이제 얻어먹는 게 익숙해졌나보네.”
“이사님 수준에 맞추기엔 제가 너무 가진 게 없잖아요.”
“그럼 오늘은 이수현 씨가 사주는 거 먹어볼까.”
“뭐 드시고 싶으신데요?”
“글쎄…”
수현은 정시우 이사의 배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좀 뻐근한 허리가 계속 신경을 쿡쿡 찔렀지만 아프다고 뒤로 넘어갈 정도는 아니었다. 어제는 정말 사정 안 봐주고 했지. 딱 두 번째 까지는 참 좋았는데 세 번째부터는 좀 많이 힘들었다. 옴짝달싹도 못하도록 팔을 침대에 꽉 눌러놓고 속을 마구잡이로 휘저어 놓을 때는 정말 숨도 못 쉴 정도였지.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는 게 문제일까, 사실… 좋았지. 게다가 마지막은 형광 분홍색이었다고! 씻고 나와서는 곽 안 가득 차있는 콘돔을 죽죽 다 뜯어보았다. 대체 무슨 색깔이 더 있나 싶어서.
“회사 주변에 연탄불에 구워먹는 갈매기살 집이 맛있는데… 가보셨어요?”
“음… 아니.”
“생각하니 먹고 싶네요. 거기 가실래요? 제가 살게요.”
고기 생각을 하니 침까지 고인다. 서비스야 엉망이지만―처음부터 끝까지 셀프― 가격도 저렴하고 고기 맛도 좋다. 요즘에야 회식비가 좀 많이 나오니 비싼 곳도 가지만 초반에는 이 집으로 많이도 갔었다. 연탄불이라서 한 번 먹고 나면 옷에 냄새가 배여서 절대 다음 날 입을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긴 하지만.
“가요, 이사님.”
“내가 아니라 이수현 씨가 먹고 싶은 거 먹으러 가는 겁니까?”
“음… 이사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확신은 못하겠지만. 이사님이 소주 마시는 걸 본 적이 있던가, 아, 처음 회식 때 봤다. 그럼 돼지고기는… 못 먹진 않겠지, 딱히 음식을 가리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허름한 가게는 싫을까, 그렇게 거드름 피우는 사람은 아니니 괜찮을 것도 같고.
“싫으시면 말구요.”
“누가 싫다고 했습니까.”
“그럼 가는 거죠? 오랜만에 고기 먹겠네요. 안 그래도 몸보신 좀 해야 했는데.”
수현은 희희낙락한 얼굴로 지금까지 깔고 앉아 있던 배 위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다 순간 팔을 붙잡혀 휙 러그에 등을 대고 눕게 되었다.
“설마 뭐 더 하시자는 건 아니죠?”
“아아… 설마.”
“그럼요?”
“그냥.”
“싱거우시네요.”
“소금 쳐.”
“…재미없어요.”
“진심인데.”
진지한 그 얼굴에 수현은 웃고 말았다. 가벼이 웃는 소리가 입 속으로 먹혀들었다. 이런 쪽에서 절대 몸을 빼지 않는 수현은 팔을 들어 정시우 이사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간식으로 몇 개 집어 먹은 체리 맛이 미미하게 났다. 흑적색을 띤 체리를 입에 물고 씹을 때부터 이러고 싶었지. 작은 엉덩이를 쥐고 제 쪽으로 끌어당긴 정시우 이사가 수현의 입술 안쪽을 꽉 한 번 씹었다. 핏물이 배어 나와도 체리 맛이 날 것 같았다.
“…아프잖아요.”
“보자.”
씹힌 입술을 쥐고 수현은 울상을 지었다. 찝찔한 피 맛이 입 안을 맴돌았다. 입술을 살짝 뒤집어 안쪽을 들여다본 정시우 이사는 제 잇자국대로 난 상처를 혀로 핥아주었다.
“침 바르면 나아.”
“제 침도 있는데요.”
“남의 침.”
먼저 러그 위에서 일어난 정시우 이사가 넘어진 아이 안아 일으키듯 수현을 벌떡 일으켰다.
“애처럼 다루지 마세요.”
“그런 거 아닌데.”
“아닌 건 아는데… 그래두요.”
수현은 잠시 기분 상한 얼굴을 했지만 곧 탁탁 털어버렸다. 이사님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 뭐 어떠랴, 귀여워 보이든 예뻐 보이든, 어감은 껄끄러워도 그 말이 부정적인 것이 아닌데.
“가요, 이사님.”
수현은 정시우 이사의 허리에 팔을 감으면서 휙 현관문 쪽으로 끌어당겼다. 옷 갈아입고 가자는 말은, 그런 곳은 츄리닝 입고 가는 게 제일 좋다고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