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24)

  

  

  콜록콜록,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먼지에 수현은 입을 막고 요란하게 기침을 해댔다. 안 쓰던 회의실을 청소해놓으라는 지시에 마구 어질러져 있는 책상 위와 바닥을 치우는데 먼지가 상상을 초월했다. 도저히 그냥은 못하겠다, 서류철로 휘휘 먼지를 흩뜨리고 수현은 회의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검은색 바지에 회색 먼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오늘 오후부터 인턴사원들이 오기로 되어 있었다. 대학생들 방학시즌을 맞아서 늘 있어왔던 일이지만 몇 번을 겪어도 적응이 안 된다. 차라리 신입사원 교육을 했으면 했지 인턴 교육은 영 맞지가 않다. 그 푸릇푸릇한 느낌과 알 수 없는 열정이 부담스럽다. 요즘 들어서는 좀 덜하지만 말이다. 

  

  

  “저 청소기 좀 빌려주세요.”

  

  

  층층을 샅샅이 뒤져 간신히 청소부 아주머니를 찾아낸 수현이 청소기를 빌렸다. 우선 먼지부터 싹 빨아들여놓고 치워야지 이대로는 먼지 때문에 질식해 죽을 지도 모르겠다. 

  

  

  “맨날 이런 건 나만 시켜.”

  

  

  다 똑같은데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여기는 거라고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좀 귀찮고 껄끄러운 일은 왠지 제게 다 넘어오는 기분이다. 수현은 퉁명스러운 얼굴을 했다가 꾹꾹 뺨을 눌러 얼굴 근육을 폈다. 

  

  

  “이사님이 애인이면 뭘 해, 도와주기는커녕 먼저 놀려먹지 못해서 환장하는 판에. 좌약 가지고 대체 언제까지 툴툴댈 건지.”

  

  

  넣고 나서 열 팍 다 떨어진 건 맞잖아, 그게 약 때문인지 식겁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 속 쑤셔대는 건 괜찮고 자기 속은 손가락 하나도 아깝다 이거야? 나중엔 꼭 포지션을 바꿔보고야 말겠어. 주먹까지 불끈 쥐고 씩씩대던 수현은 톡톡 어깨를 두드리는 누군가 때문에 미친 듯이 놀랐다. 청소기 소리 때문에 누가 들어온 줄도 몰랐다. 

  

  

  “야! 사람 죽이려고 환장했어?!”

  “이름도 불렀거든?”

  “청소기 때문에 안 들렸거든?”

  “쯧, 꼭 귀찮은 일은 다 혼다 떠맡는구만.”

  “넌 영업부 직원이 왜 영업도 안 나가냐?”

  

  

  콩닥거리는 가슴을 움켜쥐고 수현은 매섭게 눈을 떴다. 진짜 간 다 떨어지겠다. 

  

  

  “왜 왔어.”

  “김 주임 보러 왔다가 잠깐 들렀지. 네 연애가 좀 걱정 되어서 말이다. 근데 좌약이라니, 좌약?”

  “…그게 뭐.”

  “혼자 중얼댔잖아, 좌약 어쩌고저쩌고.”

  “아무것도 아닌데.”

  

  

  청소기를 다시 요란하게 켜고 수현은 회의실 구석구석까지 깨끗하게 밀었다. 유리창이 통유리라 문이 열리지 않음에 한탄하면서 환풍기를 제일 세게 돌려놓고 진명에게 서류와 책들을 한 아름 안겼다. 안 그래도 손이 부족했는데 열심히 부려먹을 참이었다.

  

  

  “그거 가져다가 저기 책장에 꽂아.”

  “야!”

  “다 꽂으면 걸레 빨아 와서 책상 닦고.”

  

  

  수현은 온갖 앙금을 담아 손걸레를 홱 진명 쪽으로 던졌다. 하지만 곰 같은 덩치를 하고도 진명은 꽤 날렵하게 걸레를 피했다. 쳇, 하고 아쉬운 소리를 냈지만 수현은 더 이상 그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금요일에 니네 이사하고 같이 월차 냈다며?”

  “아팠거든? 그 몸으로 밤새 야근했는데 월차가 대수냐.”

  “지금은 멀쩡한데?”

  

  

  오히려 이사 쪽이 킁킁 코 막힌 소리를 냈지. 책 높이를 맞춰 책장에 탁탁 책을 꽂던 진명은 흐음, 하고 의미심장한 소리를 냈다. 감기 옮을 짓을 했군 그래. 안 봐도 비디오, 안 들어도 오디오다. 

  잘난 남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그 어떤 남자가 자기보다 잘난 남자를 좋아할쏘냐― 진명은 정시우 이사에게 합격점을 주었다. 우선 높은 직위와 경제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직원들과 불화 없이 어울리는 것도 좋았고 꽤나 짐승같이 굴 것처럼 생겨서는 의외로 순진한 면이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특히 이수현 같은 인간에게는 딱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수현은 너무 밀어붙이면 도망가고 밀어붙이지 않으면 아예 자각을 못하니 정시우 이사 같은 성격이 밀당하기엔 안성맞춤인 거다. 그런 고로 결과도 꽤 좋지 않은가, 수현은 정말 최초로 도끼로 제 발등 찍기 전에 나무를 쪼갰고 이른바 연애질이라는 걸 하고 있으니.

  

  

  “이번 인턴 애들은 어떠냐?”

  “뭐가?”

  “성비라든가, 나이라든가, 그런 거.”

  “성비는 최대한 반반 맞춰서 뽑았어. 나이야 비슷비슷하지 뭐. 남자들은 대부분 군대 갔다 온 애들이고.”

  “겨울이랑 비슷하네.”

  “그렇지.”

  “또 한 번 난리 나는 거 아냐?”

  “…뭐가?”

  “이수현 대리님을 가운데 놓고 벌어진 사상 초유의 인턴사원 치정사건.”

  

  

  서류철을 정리하던 수현의 손이 뚝 멈췄다.

  

  

  “이야, 정말 엄청났었지. 총 세 명이었나. 숨어있는 애들까지 하면 대체 몇 명이었을까.”

  

  

  수현은 움켜쥔 서류철로 진명의 머리를 확 후려치고 싶었다. 하지만 진명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입에 달린 속사포는 한 번 발동하면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했길래 애들을 그렇게 다 홀랑 넘어가게 할 수 있는 거냐?”

  “아무 것도 안 했거든?”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애들이 그러냐? 근데 또 너한테 인턴 맡기다니 너희 부서 사람들도 참… 하기야 연수 내내 분위기는 좋았지.”

  

  

  수현은 그냥 잘해줬을 뿐이었다. 방학인데 놀지도 못하고 여기 와서 일하는 애들이 좀 안타깝기도 하고, 또 어린 애들이니까 편하게 대하기도 했고. 하지만 회사 측에서 경고한 대로 사적인 만남은 단 한 번도 없었으며 휴대폰 번호도 알려준 적이 없었다. 근데 그 사단이 난 거다. 수현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 애들 두 명은 회사 안에서 머리채를 쥐어뜯고 싸웠고 남자 하나는 다행히―이것을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슬픈 일이다― 회사 밖에서 난리를 쳤다. 그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수현이 있었다. 

  피 말리는 그 사건에서 회사 측은 수현이 절대로 그럴 의도가 없었음을 인정해 수현은 피해를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찜찜한 기분은 형용할 수 없었다. 순진한 애들 꼬드긴 것처럼 보는 몇몇 직원들의 눈총이 사라지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번엔 밥도 같이 안 먹을 거라고. 회식도 따로 보내고.”

  “니네 이사는?”

  “이사님이 뭐.”

  “아무 말 안 해?” 

  

  

  “무슨 말을 하는데?”

  “아니 뭐…”

  

  

  좀 집착할 거 같아서 말이지. 꼬치꼬치 딱딱 중요한 부분을 집어 캐묻던 그의 얼굴을 떠올리고 진명은 어설프게 웃었다. 수현은 아직 진명이 정시우 이사에게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정보를 팔아먹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딱히 대가를 바라진 않았지만 이번 여름 보너스가 좀 많이 나오긴 했다. 참 머리도 좋지, 그런 거 받으면 또 어떻게든 도와주게 되지 않는가.

  

  

  “아씨! 진짜 먼지!!”

  

  

  철퍽 서류철을 집어 던지면서 수현은 파드득 짜증을 냈다. 쯧쯧, 저러니까 애들이 우습게 보는 거 아냐. 서늘하게 생겨가지고 하는 짓이 귀여우니 더 미치지, 그 갭이라는 게 보통이 아니니까. 첫인상 무지하게 안 좋았다가 한 번 사르르 녹아내리는 눈웃음 지어주면 그냥 다 넘어가는 거다. 꼭 이성으로서가 아니라 사교적인 관계에서도.

  

  

  “너 이사님한테 잘 해야 돼.”

  “내가 왜?”

  

  

  그리고 충분히 잘 하고 있거든. 좌약도 넣어주는 애인이 어디 있겠어, 흥. 게다가 주말 내내 놀아주기까지 했다고. 집에 못 가게 계속 잡길래 못 이긴 척 잡혀주기도 하고 말이야. 영화도 봐주고 밥도 같이 먹어주고 잠―그냥 잠만, 계속 은근슬쩍 어필해도 그냥 잠만.―도 같이 자줬는데 뭘 더 어떻게 하라고. 

  

  

  “그냥 뭐― 신경 쓰이게 하면 안 되잖아.”

  “신경은 무슨 신경, 일 다 떠맡기곤 ‘잘 부탁해요 수현 씨.’ 이러면 단가.”

  

  

  수현은 무심결에 본심을 불만 섞인 투로 투덜댔다. 즉 신경 안 써줘서 싫다는 거다. 역시 작은 동물과다. 먼저 가서 붙지는 않고 콕 방구석에 처박혀서 불쌍하게 올려다보는 작은 동물. 그러다가 주인이 다가가면 괜히 손끝을 아프지도 않게 콱 한 번 깨물기도 하는. 

  

  

  “먼지 싫다고 했는데 청소도 나한테 시키고, 키위 스무디도 자기가 다 마시고, 아침 회의시간에는 정신 못 차린다고 망신까지 주질 않나, 커피 심부름도 그냥 막 시킨다고.”

  “…….”

  “야, 너 내 말 씹어?”

  

  

  휙 서류철을 집어 던지고 일어선 수현의 눈에 문에 딱 기대서서 역광을 받아 으스스해 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다. 키는 비슷하지만 곰 같아 보이지는 않는 사람이. 이… 잡것을 그냥! 수현은 꽉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눌러 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진명과 정시우 이사 사이에는 뭔가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타이밍이 딱딱 맞을 수가 없는 거다. 수현은 빠른 시일 내에 이진명의 핸드폰을 입수하여 통화 목록 등을 다 뒤져 보기로 결심했다. 

  

  

  “인턴 사원 일은 이수현 씨 담당이고, 키위 스무디는 씨 씹힌다고 투덜댔고, 아침 회의시간에는 졸았고, 커피는 자기가 빼오겠다고 했으면서 뒤에서는 이런 식으로 씹어대?”

  “그게…”

  

  

  우물쭈물, 이래서 어디서든 상사 욕은 하면 안 되는 건데, 이건 상사 욕에 플러스 애인 욕까지 했으니 변명할 거리도 없다. 수현은 그냥 나 죽었소, 하고 쩔쩔 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메마른 세상사, 상사 욕과 애인 욕이 없으면 대체 뭘 하면서 살겠느뇨. 그리고 원래 친구한테는 좋아하는 티를 내기보다는 나쁜 것만 말하게 되니까… 수현은 열심히 자기합리화를 하다가 그냥 에잇, 하고 말아버렸다.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다. 

  

  

  “잘못했어요, 이사님.”

  

  

  깔끔하게 인정하는 수현의 태도에 정시우 이사는 더 이상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 보면 눈치가 참 빠르단 말이지, 져주는 수밖에 더 있나.

  

  

  “먼지 싫어합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럼 예민?”

  “조금요.”

  

  

  휘휘 눈앞에 희뿌옇게 떠다니는 먼지를 흩뜨리고 수현은 마지막 남은 책 뭉치를 캐비넷에 쑤셔 넣었다. 

  

  

  “아주머니한테서 대걸레 좀 빌려와야겠어요. 바닥 좀 제대로 닦아 줘야지, 이대로는 먼지가 계속 풀풀 날리겠네.”

  “수현 씨 얼굴 먼지나 좀 닦읍시다.”

  “제 얼굴요? 별로 먼지 안 묻었는…”

  

  

  얍, 수현은 쏙 얼굴을 빼내 입술을 피했다. 딱히 피하려고 한 행동이라기보다는 본능이었다. 누가 얼굴을 잡아 끌어당긴다고 생각해보라, 안 피하겠는지. 게다가 눈빛도 어둠 속에 고양잇과맹수처럼 형형하게 빛났는데. 순간 눈이 노랗게 보였다. 수현은 피해놓고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그러려던 게 아닌데, 하고 잠시 난감해 하다가 곧 입술을 붙여왔다. 가볍게 입술을 부비고 혀는 넣을 틈도 주지 않고 얼굴을 떼어냄에 정시우 이사는 좀 불만어린 얼굴을 했지만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점심이나 먹으러 갑시다.”

  “저 오리엔테이션 준비를…”

  “다 먹고 살자는 짓인데 먹는 거까지 거르면서 할 필요야 없지.”

  “하지만 책자 준비도 해놓아야 하고…”

  “비서 불러서 시켜 놓죠.”

  “비서 분도 점심 드셔야죠.”

  “계속 고집 부릴래?”

  

  

  무섭게 노려보며 하는 말에 수현은 깽, 꼬리를 말았다. 저렇게 보면 거부할 수가 없다. 

  

  

  “빨리 먹고 올라올 거예요.”

  “커피는.”

  “그건… 사다 주시면 되잖아요.”

  “…뭐 그러죠.”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찔러보는 건 다 괜찮다는 듯 고개 끄덕여주는 게 좋다. 막무가내가 아니라는 점도. 수현은 가만 넓은 등에 이마를 대어보았다. 굳어지는 느낌이 좋아 부빗거려보기까지 했다. 그냥 그러고 있는 것 자체가 좋다는 기분이 들어 좀 어색하기도 했지만 수현은 그저 좋았다. 손에 잡히는 부드러운 실크 셔츠도, 먼지가 자욱한 회의실에 거침없이 들어와 먼지를 뒤집어쓴 매끈매끈한 구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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