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은 머리에 수건을 푹 덮어쓰고 습기 가득 찬 욕실을 빠져나왔다. 침 삼키는 게 조금 힘겹긴 하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근데 어째 약을 먹었는데도 왜 이렇게 몸이 으슬으슬 떨리냐.
“이리로 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수현은 침실로 끌려 들어갔다. 풀썩 수현이 침대 위에 밀려 앉자 정시우 이사는 수건을 들어 수현의 젖은 머리를 탁탁 털어주었다. 결도 좋아, 머리카락에 부들부들해 보인다. 손가락으로 두피까지 꼭꼭 눌러가며 머리를 털어주자 수현은 부르르 어깨를 한 번 떨고 온 몸에 힘을 다 풀었다. 미용실 가서 머리를 자르는 그 짧은 시간에도 꾸벅꾸벅 졸 정도로 수현은 머리 밑을 만져주는 걸 좋아했다. 누가 머리를 쓸어주고 만져주면 없던 잠도 다 쏟아졌다.
새 수건을 하나 꺼내와 베개 위에 깔고 정시우 이사는 수현의 상체를 잡아 위로 쑥 끌어올렸다. 넓은 침대 위에 혼자 떡하니 눕게 된 수현의 얼굴에 약간 당황스러움이 스쳤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은은하게 피워놓은 아로마 향초 때문인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헤실헤실 풀어졌다.
“열이 내렸나?”
음, 내렸을 리가 없는데. 해열제는 약을 따로 지어왔거든. 정시우 이사는 수현의 뺨과 목덜미를 짚어보곤 비닐봉투를 뒤적거렸다.
“그건… 뭐예요?”
“해열제.”
“아까 약은요?”
“그건 그냥 감기약.”
아니, 왜 해열제를 따로 지어온 거지. 잠시 의문을 품었지만 수현은 별로 상관없나 싶어 반쯤 들어 올렸던 고개를 다시 베개에 푹 묻었다. 정시우 이사는 작은 갈색병 하나와 파스처럼 생긴 거 몇 개, 그리고 알약같이 생긴 거 몇 개를 꺼내 죽 늘어놓았다.
“뭐가 좋을까.”
있는 대로 다 사와서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음… 꽤 오래 고민하던 정시우 이사는 알약처럼 생겼지만 들어가는 곳이 다른 약을 집어 들었다. 이거 꼭 한 번 써보고 싶은데.
“바지 벗어 봐요.”
“…왜요?”
“약 넣게.”
“근데 바지는 왜… 그리고 약을 넣는다니요?”
먹는 것도 붙이는 것도 아니고 넣는다고? 수현은 정시우 이사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보고 식겁했다. 저건, 조카들 아플 때나 보던, 설마 그… 좌약? 거, 거기로 넣는 좌약?
“이사님, 그건 알약 못 삼키는 애기들한테나 쓰는…”
“수현 씨가 알약을 잘 못 먹는 거 같아서.”
“잘 먹는데요! 차라리 부르펜을 먹이세요.”
“난 이거 넣어보고 싶은데.”
“이, 이사님…!”
덥석 제 바지춤을 잡아 내리려는 손을 수현은 간신히 밀어낼 수 있었다. 이불을 둘둘 말아 안고 침대 밑으로 내려오려 했지만 그런 수현을 정시우 이사가 가만 둘 리가 만무, 수현은 그대로 침대 위로 엎어졌다.
“그럼 좌약 말고 다른 거 넣읍시다.”
“…….”
“뭔지는 말 안 해줘도 알겠지?”
노골적인 말, 하지만 전혀 천박하지는 않은 말투. 손에 들고 있던 좌약을 휙 던져버리고 수현의 손목을 고쳐 쥔 정시우 이사가 툭 코끝을 마주 닿게 했다. 그리고 따끈하게 열이 오른 윗입술을 쪽 빨았다.
병원놀이만 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짐승이라고 해도 어째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취향이 아픈 사람이었나, 하얗게 질린 얼굴이나 비실비실한 표정이 직격으로 푹푹 박혀오는데 안 그래도 반 토막 난 인내심이 팍팍 깎여 나간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정시우 이사는 해열제 알약을 꺼내 수현의 붉은 혀 위에 알약을 넣어주었다. 입에서 입으로 물을 밀어 넣어주자 수현은 낮게 콜록거리면서 해열제를 삼켰다.
“원래 감기는 땀 빼야 낫는 겁니다.”
“그 땀은 이 땀이 아닌데…”
“그래서 또 엉덩이 빼려고?”
수현은 잠시 고민했다. 사실 이 멋진 남자가 자신을 홀랑 집어 삼키고 싶다는 눈길로 보는데 고민하고 자시고가 어디 있나 싶지만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니까. 이상하게 제가 만난 사람들은 마음을 주면 금세 식어버리곤 했다. 그 전에는 안달복달하던 이들이 몸 주고 마음 주고 나면 정말 순식간에.
풀죽은 강아지처럼 축 처진 수현 때문에 정시우 이사는 푸스스 김이 다 빠졌다. 으이그, 약간의 타박을 담아 손등으로 얼굴을 쓰다듬자 미묘한 표정의 수현이 품에 안겨들었다. 몇 번 만나고 말 가벼운 상대면 그냥 자버려도 상관없겠지만 연애하는 사이니까 왠지 더 겁이 나는 거다.
하지만 몸의 욕구에 꽤 충실한 편인 수현에게 정시우 이사는 꽤 욕심나는 사람이었다. 얼굴 잘생겼어, 몸매 좋아, 성격도 좀 능글맞긴 하지만 좋은 축에 속하지… 사실 섹스타입도 좀 기대된다.
흘끔 눈알만 굴려 정시우 이사의 얼굴을 핥듯 훔쳐본 수현이 미미하게 목덜미를 붉혔다. 이 머리와 몸의 괴리라니! 슬쩍 고개를 쳐들려는 아래를 다리를 꼬아 숨기고 수현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하지만 좀 놀아본 이사님이 그런 수현의 변화를 놓칠 리가 없었다.
“…하고 싶습니까?”
뭘요, 라고 묻기엔 진짜 양심도 없는 거고, 그렇다고 고개 끄덕이자니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눈 딱 감고 해버릴까,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이 사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근거 없는 확신은 뭘까.
“어떻게 해주실 건데요?”
“어떻게 해주길 바랍니까?”
사실 너무 달달 간질거리는 것보다는 살짝 거친 게 좋아요, 라고 말하려다 수현은 입을 꼭 다물었다. 제 무덤 파는 짓은 더 이상 안 하고 싶다.
“애인 같이…?”
“그건 기본이고.”
먼저 원해왔으니 해도 되겠지―자기가 먼저 못 견디고 키스한 건 쉽게도 잊는다―, 정시우 이사는 처음엔 병원놀이만 할 생각이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수현의 뒷머리를 한 손에 다 잡았다. 아주 동글동글하니 두상도 예쁘다.
수현은 얼굴은 단정하니 딱 봤을 때 확연하게 눈에 뜨이는 미인상은 아니지만 몸 구석구석이 예뻤다. 툭 튀어나온 쇄골하며, 매끌매끌한 피부하며, 적당히 균형 잡힌 늘씬한 몸 하며, 그 중에서도 최고는 역시 엉덩이다. 피부는 말랑한데 손을 대면 바싹 긴장하는 근육이 단단하게 손아귀에 잡힌다.
입천장을 긁으면서 정시우 이사는 수현의 엉덩이를 손에 쥐었다. 움찔하고 놀라는 몸이 바짝 굳어졌다가 탁 풀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엉덩이는 탄탄하게 긴장되어 있다. 놀리듯 주무르자 수현은 입술을 깨무는 것으로 그 장난질에 대해 보답했다.
열이 조금 내리긴 했지만 여전히 따끈따끈하다. 이젠 이 열이 감기 때문인지 흥분 때문인지 알 수 없어졌지만 수현은 감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아니면 너무 부끄러울 거다. 얇은 파자마 단추 두어 개는 금방 풀어졌다. 아래에서 들어온 손이 가슴팍 위를 살살 더듬어 올라왔다. 수현은 정시우 이사의 셔츠를 끌어 올리면서 이를 세워 질겨 보이는 핏줄 선 목덜미를 깨물었다.
“읏―”
“어… 이사님 거기…”
좀 느끼시나 봐요, 또 이런 거 찾아내는 재미가 있지. 수현은 잇자국이 난 목덜미를 손끝으로 살살 쓸어보았다. 확연히 다른 반응에 왠지 즐거워졌다. 귀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부분에 쪽쪽 입을 맞추고 살살 힘을 빼 깨물자 즉각적으로 떨림이 전해진다. 푸흐흣, 하고 어깨에 입술을 묻은 채 수현이 웃자 정시우 이사는 약간 자존심 상한 얼굴을 했다. 이거 원 주도권이 팔 할은 넘어간 기분이다. ―분발해라, 절륜짐승―
하지만 정시우 이사는 서두르지 않았다. 단번에 찢어 발겨 먹어치우는 것도 좋지만 천천히 시간과 공을 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노글노글하게, 한여름의 아스팔트 위의 버터처럼 녹이는 것도 좋다. 파자마를 휙 벗기고 정시우 이사는 수현의 배 위에 올라타듯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검은색 셔츠를 스트립쇼라도 하는 것처럼 벗었다. 수현은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새까맣기만 하던 눈동자가 지금은 왠지 붉게 보였다. 누군가 탁, 발화시켜 놓은 듯.
아, 키스하고 싶어. 머리를 가로로 팍 관통하는 욕구에 수현은 손을 뻗어 부드러운 뺨을 안았다. 확 잡아당겨 입을 맞추자 적극적으로 호응해왔다. 밀물처럼 차오르는 이 뿌듯함은 뭘까, 누군가가 자신을 원해준다는 게 이렇게나 기분 좋은 일이었나.
젖은 마찰음이 순간 화끈하게 귓불이 달아오르게 하지만 이건 아직 전초전에 불과하다. 말랑한 귓불을 만지작거리면서 정시우 이사는 수현의 속옷과 바지를 천천히 끌어내렸다. 헐렁한 바지는 내려가는 느낌도 없을 거고 키스에 정신이 팔린 수현은 속옷이 벗겨져 나가는 것도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곧 저 멀리 옷가지가 휙 집어 던져졌다. 그제야 수현은 이미 알몸이 된 제 상태를 자각했다.
“치사해… 왜 저만 벗겨요?”
“벗기고 싶으면 벗겨.”
덤빌 테면 덤벼 봐, 하지만 쉽게 벗어주진 않지. 수현은 간신히 정시우 이사의 바지 밴드를 잡을 수 있었지만 그걸 끌어내릴 순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환자는 환자, 게다가 제 알몸을 숨기기 위해 다른 한 손으로 베개를 끌어안고 있느라 제약이 너무 많았다. 괜히 덤볐다가 더욱 끌어안긴 모양으로 수현은 침대에 파묻혔다. 새털이불이 옴 몸에 가감 없이 감겨 왔다.
오랄은 하는 것보다는 시키는 걸 더 좋아했는데 말이지… 확 삼켜버리고 싶은 건 또 처음인걸. 이미 볼 장 다 봤는데도 애써 숨기려는 것이 더 충동에 부채질을 한다는 걸 수현은 모르는 모양이다. 손끝으로 유두를 꾹 눌러보고 빙글 몇 번 돌려본 정시우 이사는 은근슬쩍 무릎으로 수현의 다리 한쪽을 눌러 벌렸다. 허벅지 안쪽을 우연인 듯 스쳐 꽉 아래를 잡았다. 끝을 문지르자 예민하게 통통 움직이는 게 아주 주인 닮아 귀엽기도 하지.
“이사님… 설마…”
수현은 제 다리가 힘없이 벌어져 있음에 기겁을 하면서 다리를 모으려고 했다. 시도만 했다. 무릎이 꽉 잡혀 아까보다 더 활짝 벌어졌을 뿐 수현은 전혀 다리를 모으지 못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으, 으, 하고 목 막힌 소리만 내다 수현은 다음 상황에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이사님이! 이사님이 덥석, 정말 덥석, 제 아래를 물어버린 탓이었다. 손으로 만져줄 때와 다른 엄청난 감각의 차이에 수현은 새된 소리까지 냈다.
“잠깐만요, 이사님, 거기는… 거기는! 입이 닿아야 할 곳이 아닌데요!”
전 오랄 못한단 말이에요, 해달라고 무릎 꿇고 빌어도 절대 안 해준 게 오랄이고 남한테도 해달라고 한 적 없는 게 바로 그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수현의 비명은 들리지도 않는지 정시우 이사는 손가락을 수현의 입안에 밀어 넣었을 뿐이었다. 열심히 적시라는 듯 손가락은 입안 구석구석을 혀처럼 헤집었다.
어떡해, 어떡해, 이거 너무 좋잖아. 금방이라도 확 쏟아낼 것 같았지만 수현은 안간힘을 써 참았다. 첫 관계 때부터 조루 소리를 듣는 건 사양이었다. 더 큰 문제는 입 안을 헤집던 손가락이 뒤를 문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침에 젤까지 잔뜩 준비태세를 갖춘 손가락이 슥슥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터에 수현은 온 몸을 움츠렸다. 다행이랄지 불행이랄지, 수현의 아래를 꽉 틀어쥐고 정시우 이사는 몸을 일으켜 위로 올라왔다.
“토끼는 벌써 쏟아낼 때가 됐는데.”
처음부터 느꼈지만, 정말 목소리가 사람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에 꿰뚫는 거 같다. 수현은 그의 뜨거운 입 안보다 오히려 목소리에 사정감이 몰려와 당황했다. 땀이 딱 한 겹 배어나온 튼실한 팔뚝을 붙잡고 수현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미안하지만 쉽게 놓아주고 싶지 않은데.”
“이, 이사님…”
아주 건드리면 울겠다? 얼마나 급하면 저렇게 애원하는 얼굴로 볼까 싶지만 정시우 이사는 정말로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혼자 가려고 하면 안 되지, 적어도 삽입은 해야 할 거 아냐. 귓불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정시우 이사는 수현의 안을 넓히는데 여념이 없었다. 손가락이 주름을 하나 펼 때마다 수현은 손톱자국을 낼 것처럼 꽉 팔뚝을 잡았다. 그리고 원망감을 담아 어깨를 퍽퍽 두들겨댔다.
질척한 손놀림과는 다른 담백하기까지 한 키스를 받다 수현은 아래에 미끌거리는 것이 닿아옴에 눈을 크게 떴다. 쿡쿡, 찔리고 한 번 둥글게 문질러졌다.
“…아프게 하지 마세요.”
수현의 애처로운 부탁에도 정시우 이사는 뜻 모를 미소만 지었다. 그 미소에 수현은 불안감이 마그마처럼 팍 솟아올랐지만 이미 물그릇은 엎어졌다.
“예? 아픈 거 싫은… 싫은데! 아읏…”
정말 순식간에 꾹꾹 눌러 밀려들어왔다. 숨 고를 틈도 없었다. 수현은 비명도 내지를 수 없었다. 요령 좋은 정시우 이사가 턱을 붙잡고 그대로 입을 맞춰왔기 때문이었다. 틀어쥐고 있던 아래도 놓아주었지만 수현은 그걸 느끼지도 못했다. 더 들어올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허리가 접히고 안으로 더 뭔가가 꽉 질러 들어왔다.
왜 이렇게 큰 거야, 대체 왜 이렇게! 손끝이 벌벌 떨리는 기분에 마구 몸을 움츠리자 커다란 손이 구겨진 종이를 펴듯 수현의 몸을 매만져주었다. 우선 넣고 나면 사정 봐주지 않지만 그렇게 하기엔 수현은 너무 특별하다. 통증에 찔끔 나온 눈가의 물기를 슥 닦아주고 정시우 이사는 그 커다란 손으로 수현의 얼굴을 다 감싸 쥐었다. 빨갛게 변한 코끝을 앙 물어주고 입술에 콕콕 쪼듯 입을 맞추자 수현은 늘어져 있던 팔을 들어 산짐승 같은 정시우 이사의 어깨를 안았다.
아…정말 사랑받고 있잖아. 눈에서 몽글몽글 애정이라 이름붙일 수 있을만한 감정들이 쏟아졌다. 오만하다고 생각했던 눈동자에 살짝 걱정이 깃들어 있는 것이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아주 잠시였다. 퍽, 처음에 수현은 소리를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뭔가 이 상황에서 나기엔 너무 크고 또 강한… 하지만 그 소리와 함께 온 몸을 타고 오르는 통증과 감각, 그리고 흔들림에 그 소리가 환청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귀엽긴 개뿔이!
“헉, 아읏, 자, 잠깐, 악, 좀, 천천히…”
이음새에 이미 젤 한 통을 거의 다 들어부어놓은 터라 질척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뱃속을 때리는 감각은 통증이 아니라 가늠할 수 없는 쾌감이었다. 끝까지, 이음매에 간질거리는 느낌이 날 정도로 박아 넣었다가 또 끝까지 빠져나간다. 그리고 한 번은 또 얕게 찔러 들어왔다가 흉곽이 다 들썩거릴 정도로 깊고 세게.
수현이 애원이라도 할라치면 정시우 이사는 얄밉게도 키스를 퍼부어댔다. 우선 혀부터 빨고 물어주면 애원 따윈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릴 수 있다. 수현의 아래는 질척질척한 젤과 단단한 쪼꼬렛 배에 오만 자극을 다 받아 이미 가야할 선을 넘어 있었다. 하지만 갈 거 같으면 슬쩍 페이스를 멈춰 방치하고 또 확 몰아치다 갈 거 같으면 방치하는 그 알 수 없는 플레이에 뻣뻣하게 흔들리면서도 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사정을 도와줄 수 있는 손은 이미 침대와 정시우 이사의 커다란 손에 의해 결박되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 제발… 흐윽…”
이러다가 뇌가 다 녹는 거 아냐? 수현은 정말 무서워졌다. 이제까지 해왔던 섹스는 다 거짓이었던 것만 같다. 거짓은 아니더라도 어린애 장난밖에는 안 된다.
“후으… 가고 싶어?”
수현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미쳐버릴지도 몰라, 진짜 울고 싶다. 이미 울고 있는 것 같다는, 우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수현은 애써 그 생각을 털어냈다. 하지만 이미 시야가 흐릿흐릿한 걸 보면 울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귀여워.”
“…….”
“애원하는 얼굴이 말야.”
툭툭 허리를 추어올리면서 정시우 이사는 수현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아아, 단말마의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뱉으며 수현은 간신히 사정할 수 있었다. 꽉 조여 오는 내벽의 감각이 좋다. 은근히 빼면서도 확실히 해야 할 때는 하는 게 마음에 든다. 그 괴리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하아… 흐으…”
가슴팍을 들썩거리면서 수현은 크게 날숨을 내뱉었다. 정시우 이사가 입을 맞춰오는 터에 힘없이 혀도 섞었다. 하지만 수현은 알지 못했다. 아직 정시우 이사는 사정을 하지 않았으며 그는 적어도 하룻밤에 세 번은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걸.
“난 이제 시작인데 어쩌나.”
“…하?”
긴 손가락이 수현의 가슴팍부터 쑥 들어간 배까지 쓸고 내려왔다.
“빨리 끝내고 싶으면 꽉꽉 조여 봐.”
뭔가 나 스스로 또 무덤 판 거 아닐까, 도망갈 틈도 주지 않고 가차 없이 치어드는 것에 수현은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허리를 확 잡아당기는 손에 다시 확 불타오르고 말았다. 끝에는 정시우 이사의 어깨를 밀어 넘어뜨리고 그 위에 올라타기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땀 한 번 제대로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