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24)

  

  

  차에 타자마자 수현은 머리띠부터 확 빼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쳐 뒷좌석으로 홱 던져놓고 안전벨트를 맸다. 운전석에 오른 정시우 이사는 느긋하게 자리에 앉아 차에 시동을 걸었다. 놀이공원에서 나가기 전에는 절대 머리띠를 빼면 안 된다는 말에 수현은 바로 놀이공원을 나가려고 했지만 목덜미를 붙잡혀 질질 끌려가 바이킹은 타야만 했다. 머리띠 좀 제발 벗겨달라고 끝내는 애원까지 했지만 정시우 이사는 그 말이 아예 들리지도 않는 듯 행동했다. 

  제 주위에 있던 고등학생들의 시선에 수현은 내내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했다. 다행히 바퀴벌레 쫓는 정시우 이사의 ‘뭘 봐.’가 몇 번 발동되어서 그나마 다행이긴 했지만. 애초에! 원인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전혀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재미있다는 듯이 토끼 귀를 건드리는 손을 밀어내고 목덜미를 주무르는 성적인 의도가 함뿍 섞인 손도 밀어내면서 탄 바이킹은 그래도, 그만큼의 가치를 하긴 했다. 

  

  

  “재미있었습니까?”

  “재미는… 있었어요.”

  

  

  입술을 조금 삐죽이면서도 수현은 재미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을 돌아다닌 것도 오랜만이고, 크게 소리 내어 웃어본 것도 오랜만이고. 토끼 머리띠 같은 것들이 좋은 기분에 약간의 걸림돌이 되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당혹스럽긴 했지만. 

  

  

  “사진 찍혀서 돌아다니면 어쩌죠.”

  “이사님이랑 돈독한 정을 쌓았다고 해요.”

  “놀이공원에서 삼십 대 아저씨 둘이?”

  “그럼 주차장에서 한 번 쌓아볼까?”

  

  

  정시우 이사는 기억력이 매우 좋았다. 특히 사람 사이에서 한마디씩 주고받은 말을 기억하는 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런 그가 다른 말도 아니고 수현이 어설프게, 유혹하는 말을 잊을 리가 없었다. 그것이 자의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그 말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므로. 

  

  

  “나를 타고 싶다고 했던가?”

  “그, 그건…”

  “키스도 하고 싶다고 했었지?”

  

  

  이 마음씨 넓은 내가 허락해 주지, 라는 듯이 눈가를 비틀어 웃는 얼굴에 수현은 황당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안전벨트 풀어지는 소리에 반쯤 빠져나갔던 넋이 돌아왔다. 이건, 이건! 정말 안전벨트다. 이게 풀어지는 꼼짝없이 정말 저 위에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현은 안전벨트를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미 풀린 안전벨트는 전혀 안전하지 못했고, 뒷좌석에 던져놓았던 머리띠는 다시 제 머리로 돌아왔고, 게다가 차는 주차장 중에서도 가장 어둑한 곳에 전면주차 되어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키스 정도는 괜찮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제 태평한 머릿속이다.

  수현은 별로 고지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픈 마인드로 뭐든지 오케이, 까지도 아니었지만  마음 통하면 몸 통하는 거야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로 열려있긴 했다. 싫어하는 남자가 어디 있겠나 싶지만 섹스도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특히 전희를 좋아했다. 커다란 손이 제 허리를 쥐고 당기는 것이 어느 날부터인가 좋아서 상상만으로도 반쯤 세울 만큼.

  

  

  “그럼 키스만…”

  

  

  키스만으로 끝날 수 있을 거 같니, 몇 번이나 당했으면서 은근히 둔하다니까. 정시우 이사는 주위에 사람이 없자 수현이 별 거부감 없이 쓰고 있는 토끼 머리띠를 두어 번 쓸어보았다. 정말 살아있는 귀라도 되는 듯 파르르 떠는 것 같아 그냥 꼭꼭 씹어보고 싶었다. 

  수현은 신발을 벗고 기어를 넘어 정말 정시우 이사의 허벅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치 빠르게 뒤로 시트를 쭉 밀어 놓은 터라 자리는 넉넉했다. 세게 틀어놓은 에어컨 때문에 땀이 맺혔던 목덜미가 마르면서 소름이 포스스 돋아 올랐다. 뭔가, 눈빛이 굉장히 간질간질해서 수현은 바로 입을 맞추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정말 사랑스러워하는 느낌… 확 불타는 고구마가 된 얼굴을 보여줄 수 없어 급히 뺨을 붙잡고 입술을 부비고 말았다. 

  

  굽은 등을 쓰는 손바닥은 컸다. 수현은 먼저 혀를 뜨거운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조금 급하게 움직이자 그러지 말라는 듯 부드럽게 혀끝이 엉켜왔다. 한 손으로는 어깨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뺨을 감싼 채 수현은 키스에 열중했다. 셔츠 안으로 들어온 손가락이 가슴을 슬쩍 긁어내리지 전까지. 안을 마구 헤집고 다니는 손을 옷 위에서 덥석 붙잡은 수현이 눈을 부라렸다. 그래봐야 전혀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토끼 머리띠를 했는데 뭐가 무서워 보일까.

  허리를 한 번 추어올리는 터에 덜컹 차가 크게 울렁거렸다. 수현은 새하얗게 굳어져서는 정시우 이사의 어깨를 마구 내리쳤다. 미쳤어요? 하는 새된 소리도 함께.

  

  

  “진짜 변태.”

  “카섹스로 처음을 장식하면 안 되겠지?”

  “공공장소거든요?”

  

  

  휙 차 뒤로 사람 몇몇이 지나가는 터에 수현은 화들짝 놀라 푹 몸을 숙였다. 넓은 어깨춤에서 눈만 빠끔히 내놓고 있다가 사람들이 다 지나가고 나서야 후우, 하고 안도의 숨을 뱉었다. 

  

  

  “이수현 씨, 그거 압니까?”

  “뭘요?”

  “바로 옆이 호텔인 거.”

  

  

  바로 옆도 아니지, 한 건물 안에 호텔이 있지. 꼭 이 좁은 차 안에서 일을 벌일 필요가 전혀 없단 말이다. 카섹스는 꼭 한 번쯤 해봐야 할 일에 속해 있긴 하지만 그게 지금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자고로 첫날밤이란 좋은 장소에서 폭신한 침대 위에서 비누냄새 퐁퐁 풍기면서 비비 꼬이는 온 몸을 물고 빨고 핥아줘야 하는 법. 

  

  

  “또 배고프다고 할지 모르니 우선 배부터 채우고…”

  “어, 전화가…”

  

  

  눈치 없게 바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는 수현의 머리통을 정시우 이사는 약간 비틀린 눈을 해서는 째려보았다. 긴장감이 없는 건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헉, 엄마다. 여보세요?”

  

  

  수현은 액정에 뜬 이름을 보고 급히 전화를 받았다. 엄마라니, 누가 저렇게 말하면 나이 값 좀 하라고 했겠지만 수현에겐 꽤 잘 어울렸다. 막내아들이니까 저럴 만도 하지, 하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줄 수 있다. 누나가 셋이고 어머니가 혼자 계신다고 했던가.

  

  

  “지금 집에 오셨다구요? 김치? 저 지금 밖인데…”

  

  

  수현은 초조해진 얼굴로 입술 껍질을 잘근잘근 뜯어 먹었다. 지금 당장 가야 한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조금 늦을 테니 기다리고 계시라고 해야 할까. 

  

  

  “같이 보죠.”

  “예?”

  

  

  송화기 부분을 막고 수현은 마구 고개를 저었다. 그게 말이 되나, 우리 엄마랑 만나서 뭘 하려고! 수현은 지금 가겠다고 쏟아내듯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두 달 만에 올라오신 건데 차마 늦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 안 됩니까. 회사 상사라고 하면 되지.”

  “…다 아실 걸요.”

  “뭘?”

  “그… 이사님이랑 저랑 무슨 사이인지.”

  

  

  엄마가 남자랑 사귀든 여자랑 사귀든 그건 맘대로 하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짓―불륜, 강간 등등―은 하고 다니지 말라고 그랬는데, 수현은 이 관계가 빵 터지면 얼마나 큰 여파를 일으킬지 상상하곤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거 아냐?

  

  

  “나중에 결혼할 때 좋겠군요.”

  “예에?”

  “다 알고 계시다는 거 아닙니까.”

  “그게 문제가 아니라, 겨… 뭐요?”

  “약혼부터 필요합니까?”

  “이사님!”

  

  

  사람 놀리는 것도 정도껏이지, 수현은 순식간에 분당 200회로 뛰어오른 심장박동을 가라앉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시우 이사는 반쯤은 농담, 반쯤은 진담이었지만 그걸 하나하나 짚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오늘도 불발이 되었으니―첫날부터 일치를 생각은… 솔직히 있긴 했지만 그래도 선처해주고자 오늘은 넘어가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에 비례할만한 페팅 정도는 할 생각이었다. 아침에는 급하게 했으니 조금 느긋하게. 

  

  

  “오늘도 몸 성하게 들어가겠네.”

  “그럼 그… 삽입까지 하면 몸이 안 성하게 된다는 뜻인가요?”

  “조금?”

  

  

  그래, 크긴 크더라… 그게 마구 안을 들쑤신다고 생각하니 생각만으로도 아래가 다 뻐근해졌다. 흥분해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묵직하게 다리 사이를 문지르는 느낌에 수현은 흘리듯 신음소리를 냈다. 회음부가 강하게 문질러졌다. 

  

  

  “바지 벗자.”

  

  

  흐윽, 정말 목소리로 사람 노골노골하게 녹이는 데는 뭐 있다니까. 수현은 제 바지를 반쯤 허벅지에 걸쳐두고 정시우 이사의 벨트와 바지 버클을 풀었다. 지퍼를 내리기 무섭게 툭 튀어나오는 것에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떴다. 삽입까지 안 하니까 그나마 다행인 걸까. 수현은 공공장소라는 것도 까맣게 잊었다. 새까맣게. 속옷 밴드를 아래로 살짝 당기자 단단하게 힘줄이 선 것이 툭 튀어나왔다. 그래도 아침에 한 번 잡아봤다고 거침없이 손바닥으로 말아 쥐고 가볍게 두어 번 흔들었다. 

  

  

  “잘하네.”

  

  

  귓가에 닿은 입술이 달싹였다. 이런 걸로 잘한다는 칭찬 듣고 싶진 않은데, 수현은 제 바지를 점점 더 밑으로 끌어내리는 손을 느끼지 못하고 조물조물 제 손을 움직이는데 몰두해 있었다. 

  

  

  “문지르기만 할게.”

  

  

  마주보고 있던 자세에서 휙 돌려져 같은 방향을 보고 앉은 자세가 되었다. 이건 더 민망하잖아, 수현은 어깨에 닿은 턱과 목덜미에 닿는 뜨거운 숨과 등에 닿는 널찍한 가슴, 그리고 대망의… 허벅지 사이에 끼워진 그것, 그 힘줄이 잔뜩 서서는 이곳저곳 쿡쿡 찔러대는 그, 그것.

  

  

  “이, 이사님…”

  “어허, 또 깬다.”

  

  

  깨라고 한 거예요, 좀 깨주세요. 어째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부끄러워지기만 하는 걸까. 수현은 뒷목을 자잘하게 깨무는 이에 움찔거리면서 허벅지를 모았다.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뒤에서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해 그 이후부터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앞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몸을 지탱했다. 귓불이 깨물리고 목덜미가 잘근잘근 물어뜯기는 게 정말 살점이 뜯어 먹힐 것 같아 무섭기까지 했다. 

  

  

  “음, 으응, 아읏…”

  “후―”

  

  

  입을 꼭 다물고 목만 울려 소리 내는 게 귀여워 정시우 이사는 수현의 턱을 쥐고 고개를 돌리게 해 입을 맞췄다. 티슈를 잔뜩 꺼내 손에 쥐고 금방이라도 쏟아낼 것처럼 부들부들 떠는 것을 감싸 쥐었다. 땀이 배어나온 허벅지가 부딪치는 소리가 낯 뜨거웠다. 게다가 공공장소… 공공장소! 수현은 그제야 여기가 놀이공원 주차장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하지만 이미 엎어진 물, 쏟아져 흙바닥에 다 흡수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흥분을 돋우기만 했다. 

  수현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뺨과 눈가에 닿는 입술이 뜨거웠다. 가느스름하게 눈을 뜨자 흥분감에 떨리는 날카로운 눈매가 들어왔다. 이 남자가 저로 인해 흥분하고, 씹어 먹고 싶다는 듯 이를 세우고, 사랑스럽다는 듯이 입을 맞추고… 얼굴 보는 게 부끄러워져 어깨에 눈을 묻어 숨기고 수현은 작게 목을 울려 웃었다. 

  

  

  

  

  

  

  

  

  

  

  

  정시우 이사의 아침은 새벽 6시 반에 시작된다. 일어나자마자 그는 바로 건물 안에 있는 피트니스 클럽에서 한 시간 정도 아침 운동을 하고 베이글이나 토스트, 그리고 간단한 과일로 아침식사를 한다. 다른 집 거실만 한 드레스 룸에서 옷을 고르고 커프스와 넥타이핀도 옷에 맞춰 고른다. 오늘은 약간의 광택이 흐르는 그레이 슈트와 검은색 실크 셔츠에 무채색의 사선 스트라이프 넥타이를 골라들었다. 백금에 흑마노가 박힌 커프스와 넥타이핀까지 착용하자 바로 나가도 될 만큼 완벽한 차림이다. 

  거울 앞에서 고개를 휙휙 돌려보면서 제 얼굴을 살피던 정시우 이사는 입꼬리를 들어 올려 웃어보았다. 좀 재수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잘생기긴 했다. 왁스를 손에 조금 덜어 가볍게 머리를 세팅하고 차 키와 가죽가방을 들었다. 지상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정시우 이사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폴더를 찾아 들어갔다. 데이트의 수확이라고 한다면 토끼 머리띠를 쓴 수현의 사진이다. 찍히는 줄도 몰랐겠지만.

  

  연애라고 해서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화하고 만나고 이런 걸 생각하진 않았지만 먼저 연락 안 한다고 정말 전화 한 통 안 하는 수현에게 좀 섭섭했다. 섭섭… 딱히 어울리는 생각은 아니지만 그는 모든 제 생각들과 상상들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때로는 뇌가 어딘가 이상하게 변해버린 건 아닐까 싶을 정도긴 하지만 나쁘지 않다. 

  회사까지는 차로 15분 정도. 넉넉하게 시간을 남겨 놓고 나와 정시우 이사는 회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자켓을 벗어 팔에 걸치고 그가 향한 곳은 회사 앞 샌드위치 집이다. 눈이 반짝반짝거리는 여자 종업원에게 샌드위치와 딸기 스무디를 주문하고 그는 참 어울리지도 않는 작은 의자에 엉덩이를 걸쳐 앉았다.

  

  

  “주문하신 불고기 새, 샌드위치와 스무디 나왔습니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면서 갈색 봉투를 집어 들고 나오는 그 뒤로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하는 인사말이 따라붙었다. 웃기게도 또 오세요, 하는 말에는 어째 애원까지 섞여있다. 그녀들에겐 이 고단한 아침 알바에서 그나마 활력소가 되는 것이 정시우 이사의 등장이므로.

  

  

  “이수현 씨.”

  

  

  샌드위치 가게에서 나오던 정시우 이사는 수현을 발견했다. 반쯤 졸면서 걷던 수현은 어깨를 확 움켜쥐는 손에 화들짝 놀라 경기 일으키듯 몸까지 떨었다. 

  

  

  “…깜짝이야.”

  “왜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립니까.”

  “엄마랑 놀아주느라 잠을 좀…”

  “놀아주느라?”

  “막내아들이니 이런 것도 해야죠. 누나들은 다 결혼해서 바쁘고.”

  

  

  졸린 듯 눈을 비비면서 수현은 터덜터덜 회사를 향해 걸었다. 그리고 정시우 이사의 옷차림을 한 번 보고는 제가 다 더운지 손부채질을 해댔다. 

  

  

  “긴팔 셔츠 입고 안 더우세요?”

  “밖에 나올 일이 별로 없으니까.”

  “거기다 검은 색… 너무 더워 보이는데요.”

  

  

  무슨 여름 날 혀 빼물고 헥헥거리는 새끼 강아지 같다. 수현은 눈앞에 내밀어지는 컵을 무심결에 받아들었다. 분홍색 음료가 담긴 투명한 컵을 쥐고 눈을 동그랗게 뜨자 어서 들어가자는 듯 정시우 이사는 어깨를 쥔 손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이건 뭐예요?”

  “딸기 스무디.”

  “이름이 참… 귀엽네요.”

  

  

  스무디라, 쪽 한 번 빨대를 빨자 달콤하고 상큼한 딸기 맛이 났다. 색깔은 거부감 드는 분홍색이지만 시원하고 맛도 있고.

  

  

  “주말은 잘 쉬었습니까?”

  “엄마랑 놀았다니까요.”

  

  

  엄마라고 부르는 게 참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았다고 표현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도 신기하고.

  

  

  “오늘부터 상반기 결산 시즌인데 어쩌려고.”

  “헉, 맞다.”

  

  

  수현은 얼굴까지 새파랗게 질렸다. 1/4분기 때도 만만치 않은 일감이 쌓이지만 상반기, 하반기 결산 때는 거의 제 시간에 집에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해서는 안 된다. 해봤자 들어가지도 못하지만. 오늘부터 해야 하는 게 그럼… 시장 내의 포지션 변화, 혹은 유지 정도부터 시작해서 예산 실행의 효율성과 같은 경제적인 부분까지 전부… 게다가 하반기 예산안까지 세워야 하니 일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일 거다.

  

  

  “으윽… 일하기 싫어.”

  “우선 먹어요.”

  “예… 감사합니다.”

  

  

  따끈따끈한 샌드위치를 받아들고 수현은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자리에 앉아 포장을 풀기 무섭게 정시우 이사는 옆자리인 김 주임의 의자를 끌고 와 앉아 수현이 먹는 걸 가만 쳐다보았다.

  

  

  “이사님은 아침 드셨어요?”

  “먹고 옵니다.”

  “부지런하시네요.”

  

  

  싱긋, 수현의 입술이 매끄럽게 곡선을 그렸다. 말랑한 볼을 붙잡고 작게 흔들자 아프다는 듯 눈을 찌푸리긴 하지만 여전히 수현은 웃는 낯이다. 귀여워, 샌드위치를 씹느라 퐁퐁해진 볼을 톡톡 두드려 보았다. 

  진짜 콩깍지다, 콩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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