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24)

  

  

  실수했다. 아무리 가고 싶어도 놀이공원 따위를 입 밖으로 내는 게 아니었다. 수현은 애들 틈에서 불쑥, 그것도 아주 불쑥 튀어나와 있는 정시우 이사의 머리통을 보고 후회에 후회를 거듭했다. 단색의 반팔 폴로셔츠―메이커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알고 싶지는 않았다―에 블랙 진 하나를 입은 매우 단출한 행색임에도 전혀 단출해 보이지 않는 이사님은 바글거리는 애들을 툭툭 무릎으로 쳐 밀어냈다. 

  마치 홍해의 기적을 재현하듯 그가 내딛는 걸음에는 사람들이 다 비켜섰다. 그들도 정시우 이사가 심상찮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챈 모양이었다. 유리창에 가려졌음에도 표 끊어주는 아가씨 얼굴이 슬쩍 붉어진 걸 수현은 놓치지 않았다. 정시우 이사는 아주 의기양양하게 자유이용권을 끊어 왔다. 자기가 사겠다는 수현의 말은 나중에, 라는 핑계로 싹 무시했다. 

  

  시내에 있는 실내 놀이공원은 오늘이 주말임을 몸소 보여주는 듯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수현은 목울대가 울컥거리도록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나 뭔가 좀 잘못한 거 아닐까, 왜 저 인간은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설마 화살처럼 박히는 저 시선들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수현은 뺨이 다 아릴 정도로 쏟아지는 시선에 고개도 들지 못했다. 하지만 정시우 이사는 꽤 들뜬 모양으로―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제 모습처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왜 자꾸 뒤로 처집니까.”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뭐가?”

  

  

  …모르시면 됐구요.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얼굴에 그냥 철판도 아닌, 순대볶음 해먹는 철판을 얹어도 저렇진 않겠다. 

  

  

  “바이킹 타고 싶다 그랬나?”

  “…예.”

  “저건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긴 손가락이 굵은 철심에 고정되어 왔다갔다하고 있는 커다란 배를 가리켰다. 수현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당장 나가고 싶었다. 그냥 삼십 대 남자 둘이 들어와서 돌아다녀도 이상하게 볼 판에 무슨 연예인 급의 남자가 놀이공원 안을 헤집고 다니니 반응들이 상상을 초월한다. 끼리끼리 놀러온 여자들은 물론, 연인들도, 심지어는 아기 엄마들까지. 진짜 연예인인 거 아니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놀이공원 와보셨어요?”

  “아, 영감이랑 디즈니랜드가 마지막이었던가? 열네 살 때였지.”

  “…영감?”

  “현現 그룹 회장.”

  “…특이하시네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정시우 이사는 계속 두어 발 뒤에서 걸으려고 하는 수현을 팔을 꽉 잡아 당겼다. 그리곤 어깨에 머리를 박을 정도로 확 딸려온 수현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깍지 끼고 손잡고 다니기 싫으면 딱 옆에 붙어서 와라.”

  

  

  으윽, 정시우라는 사람이 한다면 하는 사람임을 이미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수현은 이젠 옆에 반 보 정도 떨어져서 걷기 시작했다. 조금 뒤로 처지려고 하면 바싹 따라붙어 걷는 것이 정말로 손잡고 걷는 건 무서운 모양이었다. 

  

  

  “고개 숙이면 허리 감고 걷는다?”

  

  

  고개도 숙이지 말라는 소리에 수현은 식겁했다. 바닥을 향해 있던 고개를 바뜩 들어 올리고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이사님은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

  “둘만 있는 거 아니잖아요!”

  

  

  이 상황에서도 호칭을 고집하려는 듯 정시우 이사는 꾹 입을 다물고 고개를 몇 번 저었다. 

  

  

  “내가 말한 건 다른 회사 직원이 있을 경우에, 입니다. 이수현 씨.”

  “있을 수도 있잖아요.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누가 있을지 어떻게 알아요!”

  “그러면 아예 오질 말았어야지.”

  

  

  입술에 딱풀 바르는 소리에 수현은 딱 입을 다물었다. 물론 저게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 순간에도 무슨 동물원의 원숭이 보는 듯한 시선에 수현은 울상을 지었다. 그런 표정 변화를 가만 보고 있던 정시우 이사가 수현의 머리를 툭툭 두어 번 가볍게 두드렸다. 좀 더 대범해져야지, 뭐 이런 걸 가지고. 그리곤 수현의 이마를 제 어깨 쪽으로 딱 당겨 숨겨놓곤 눈을 부리부리하게 치켜떴다. 저승사자 못지않은 얼굴로 딱 한마디 내뱉었다.

  

  

  “뭘 봐.”

  

  

  혹시 본 적 있는가, 새벽에 물을 마시기 위해 주방의 불을 딱 켰을 때 바퀴벌레 뭉치들이 촤르르 흩어지는 모습을. 다소 더러운 비유지만 이 상황에 이만큼 어울리는 비유도 없다. 수현은 어깨 너머로 자신들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확인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됐지?”

  “…된 걸까요.”

  “또 쳐다보면 또 해주지.”

  “…….”

  “싫어? 그냥 나갈까?”

  

  

  에라, 모르겠다. 쪽 좀 팔리면 어때. 수현은 몇 번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휘 둘러보았다. 의외로 괜찮은 것 같기도… 괜히 예민하게 반응한 것 같아 민망해졌다. 사람이 많아서 그렇게 눈에 띄지도 않는 것 같다. 물론 이사님은 엄청 눈에 띈다.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크니까. 

  

  

  “…바이킹은 타아죠.”

  “바이킹 타고 저것도 탈까?”

  

  

  수현은 얼굴을 창백하게 굳혔다. 수현의 리밋라인은 딱 바이킹까지였다. 그 이상은 절대, 절대 싫었다. 특히 뱅글뱅글 도는 거, 그건 절대. 심지어는 회전바구니도 싫다. 그런데 롤러코스터를 타자니. 롤러코스터라니!

  

  

  “저, 이사님…”

  “자자, 갑시다.”

  

  

  정신이 빠진 수현의 어깨에 은근슬쩍 팔을 감고 정시우 이사는 기세도 좋게 발을 옮겼다. 바이킹 대기줄로 질질 끌려가다 수현은 얇은 소재의 셔츠가 착착 감기는 튼실한 허리에 살금 팔을 반쯤 감아보았다. 뚝, 발이 멈추고 머리통에 시선이 꽂혔다. 뭘 잘못했나 싶어서 수현이 눈만 올려 뜨자 정시우 이사는 톡 수현의 코끝을 두드렸다. 

  

  

  “바이킹 타기 전에 다른 거부터 탈래?”

  “…변태.”

  “저거 타자고, 저거.”

  

  

  정시우 이사가 가리키는 걸 본 수현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아무래도 이 인간, 저를 놀려 먹는 것에 제대로 맛들인 게 틀림없다.

  

  

  “…회전목마 말이죠.”

  “뭘 생각한 거냐. 변태가 누군지 모르겠네.”

  

  

  ‘사장님, 미워요.’를 외치던 블랑카처럼 수현은 이사님 미워요, 를 몇 번이고 질러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그 정도 깡은 없으므로 속으로만 몇 번. 그리고 수현은 정시우 이사를 움찔움찔하게 만드는 포카리스웨트보다 더 상큼한 눈웃음을 지었다. 일부러 지은 것이 틀림없는데도 정시우 이사는 팔 안쪽에 소름이 돋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직빵으로 먹힌다.

  

  

  “…전 이사님을 타고 싶었는데.”

  “…….”

  “회전목마 타세요. 제가 손 흔들어 드릴게요.”

  

  

  순간 얼음이 된 정시우 이사를 뒤로 하고 수현은 발걸음도 가볍게 걸었다. 그러게 적당히 놀려먹었어야지. 

  

  

  

  

  

  

  

  

  

  

  

  수현의 고집은 만만치 않았다. 무려 이사님의 등을 떠밀어 회전목마에 태우고 한 바퀴씩 돌 때마다 정말로 손을 팔랑팔랑 흔들어주었다. 천성이 뻔뻔한 정시우 이사야 처음에만 당황했지 나중엔 아주 보부도 당당하게 플라스틱 말을 탔다. 그 우스꽝스러운 그 모습에 수현은 정말 배가 다 아플 정도로 웃었다.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보이는 수현을 끌고 정시우 이사는 수현이 질색을 했던 롤러코스터로 향했다. 수현은 웃느라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몰랐다. 

  계속 웃고 놀리느라 정신이 없었던 수현은 롤러코스터 특유의 체인 감기는 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지금 제가 어디 서있는지, 이 줄이 무엇인지, 그리고 눈앞에 닥친 상황이 무엇인지. 제 팔꿈치를 쥔, 핏줄이 다 돋아있는 손을 내려다보고 수현은 하하, 허무하게 웃었다.

  

  

  “이사님, 저 배가 아픈 것 같아요.”

  “…….”

  “여기 너무 덥지 않아요?”

  

  

  정시우 이사는 수현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쓸어보더니 다시 입을 한 일자로 다물었다. 땀방울 하나 안 맺혔으면서 덥다고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 하는 거 봐라. 

  수현은 앞에 사람이 몇 명 남지 않자 정말 초조해졌다. 이거 사진도 찍히잖아! 정말 삼십 년간 놀림감이 될 지도 몰라. 주먹을 꾹 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수현은 최후의 일격을 쓰기로 했다. 정말 쓰고 싶지 않지만, 절대, 내가 내 몸 팔아 가면서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지만… 수현은 잘생긴 정시우 이사의 귓가에 손을 말아 대고 아주아주 작게 속삭였다.

  

  

  “…시우 씨, 키스하고 싶지 않으세요?”

  

  

  수현은 손끝이 마구 곱아드는 것과 함께 극심한 자괴감이 온 몸을 타고 오르는 게 느껴졌지만 꾹 참고 반응을 기다렸다. 이게 안 먹히면 정말 꼼짝없이 롤러코스터를 타야할 판이니 못 할 짓이 없다.

  

  

  “수현 씨, 은근 밝히네?”

  

  

  아니에요! 아니라구요! 밝힌다고 해도 이런 데서 갑자기 키스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분별없는 인간은 아니거든요? 

  

  

  “키스는 나중에 하지 뭐.”

  “…….”

  “아쉬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여기서 할 순 없잖아.”

  “화, 화장실이라도…”

  “줄 선 게 아까워서.”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수현의 얼굴은 드드드드득 하는 체인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새파랗게 변해갔다. 코앞에서 줄이 딱 끊겼을 때는 뒷목을 붙잡고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팔꿈치를 쥔 손은 아무리 털어내고 손가락을 뜯어내도 풀릴 생각도 않고 이젠 뒤로 돌아나갈 길도 없었다. 

  딱딱하게 굳어져서는 멍하니 앞만 보고 있는 수현은 금방이라도 딱 숨을 멈추고 뒤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동공까지 불안하게 흔들리는 터에 정시우 이사는 쯧, 혀를 한 번 찼다. 난 회전목마까지 탔는데! 해맑게 웃으면서 손까지 흔들어주면서 사람 놀릴 때는 언제고 파삭파삭 굳어져서는.

  

  

  “이수현 씨.”

  “…예?”

  

  

  목에 기름칠 좀 해야겠다. 어째 돌릴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것 같냐. 수현은 하나도 웃고 있지 않았다. 아니, 웃지 못했다. 왠지 더 두고 보고 싶은 얼굴이긴 하지만 정말 사람 하나 잡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주 크리티컬 존을 쿡쿡 찔러댄다.

  

  

  “나가고 싶습니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현은 고개를 마구마구 끄덕였다. 그러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열차를 보고 식겁해 팔에 매달리기까지 했다. 이거 참 곤란하네, 턱을 쓸면서 잠시 고민을 하던 정시우 이사는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갑시다.”

  

  

  사람들의 온갖 원성들을 다 귓등으로 흘리면서 둘은 열심히 줄을 다시 다 헤치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새 십 년은 더 늙은 것 같다. 수현은 무릎을 짚고 혀를 빼문 채 헥헥거렸다. 인적이 좀 드문 곳을 찾아 앉고 수현은 정시우 이사가 사다준 라임 맛 슬러시를 쭉 빨았다. 긴장을 해서인지 목이 칼칼하게 말랐다. 

  

  

  “롤러코스터는 안 태웠으니까 하나는 내 마음대로 합니다.”

  “예에? 또 뭘요?”

  “또는 뭐가 또. 한 것도 없는데. 잠깐 기다려요.”

  “이, 이사님!”

  

  

  대체 뭘? 대체 뭘 하려고? 수현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여기서 도망가는 게 어떨까,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미친 듯이 도망가서 집으로 가면, 집에 가서 문 딱 걸어 잠그고 주말을 보내면 괜찮지 않을까. 좋아, 결심했어. 주먹을 불끈 쥔 수현이 벤치에서 일어나 도망가려는 자세를 잡기 무섭게 잠시 사라졌던 정시우 이사가 등장했다. 손에 쥔 것을 본 수현은 차라리 롤러코스터를 탄다고 하고 싶었다.

  

  

  “그, 그거로 뭐하시게요?”

  “뭘하긴.”

  “설마…”

  “설마.”

  “이사님이 쓰시려구요?”

  “내가 왜.”

  

  

  전체적으로 하얀 색에 안쪽은 분홍색인, 깜찍하다 못해 끔찍하기까지 한 토끼 귀 머리띠. 지금까지, 삼십 년간 살면서 넥타이를 머리에 묶어 본 적은 있어도 저딴 걸 써본 적은 없다. 수현은 진심으로 롤러코스터가 그리워졌다.

  

  

  “토끼가 낫지 않나? 쥐새끼보단.”

  “사람들이 욕해요…”

  “안 해, 안 해.”

  “제 나이가 서른인데!”

  “그러니까 써야지, 더 나이 들면 못 쓴다.”

  

  

  애들 용이라서 머리띠 사이즈도 작아 보이는데 그걸 또 굳이 씌우겠다고. 수현은 사정거리 내에서 머리를 이리저리 빼내면서 그 끔찍한 머리띠를 마구 피했다. 하지만 나이 든 몸은 제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고, 정시우 이사의 팔은 생각보다 더 길었다. 목덜미가 붙잡히자마자 의자에 끌어 앉혀져서는 머리 위에 푹 머리띠가 씌워졌다. 

  

  

  “머리통이 작네. 쏙 들어가고.”

  “이사님도 쓰세요! 왜 저만 써요?”

  “그래? 나도 쓸까?”

  

  

  그럼 나는 검은색 토끼 귀로… 진짜 사러 갈 셈인지 휙 몸을 돌리는 정시우 이사의 허리를 잡아끌면서 수현은 됐다고, 그냥 계시라고 애원 아닌 애원을 했다. 

  

  

  “잘 어울려.”

  “으윽…”

  “귀엽네.”

  “콩깍지…”

  “벗으면 혼난다.”

  “…제가 어딜 봐서 귀여워요. 키도 웬만큼 되고 얼굴이 귀염상도 아닌데.”

  

  

  키도 대한민국 성인 남성 평균은 넘고, 대학교 때는 귀염성 없기로 유명했고, 지금이야 성격이 좀 바뀌긴 했지만―그래도 여전히 친해지기 전에는 낯을 가려서 말투에서 얼음이 다 뚝뚝 떨어진다― 생긴 것도 귀여운 거에선 좀 거리가 멀다. 오히려 너무 단정해서 선득하다고들 하지. 술 마시면 달라지지만.

  

  

  “알고 있잖아.”

  “뭘요?”

  “콩깍지. 그리고 키는…”

  “…….”

  “평소에 깔창 깔지?”

  “안 깔아요!”

  “삼 센티는 내려간 거 같은데.”

  

  

  키 크셔서 좋겠어요, 흥. 팩 고개를 돌려 얄미운 얼굴을 외면하고 수현은 부들부들한 토끼 귀를 만져보았다. 아저씨한테 이게 말이나 되냐고. 슬쩍 벗기 무섭게 다시 꾹 머리띠가 눌러졌다. 

  

  

  “어허, 정말 혼날래.”

  

  

  머리띠를 계속 건드리는 수현의 손을 휙 떼어내고 정시우 이사는 수현이 먹던 슬러시를 집어 들었다. 새콤하고 달달한 맛에 왠지 키스가 하고 싶어졌다. 게다가 키스 하고 싶다고 직접 말하지 않았던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롤러코스터가 타기 싫어서 키스하고 싶다고 꾀를 쓴 거겠지만, 원래 제 꾀에 제가 빠지는 법이지. 

  진한 갈색 머리 위에 흰색 토끼 귀가 깡총 올라와 있는 게 정말 앙앙 물어주고 싶었다. 쪽팔린 지 의자 위에 발 올리고 무릎 사이에 얼굴 묻고 있는 모양새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어깨도. 아무리 급해도 사람들이 드글거리는 곳에서 키스를 할 정도로 분별없진 않다. 단지 조금 빨리 돌아갈 계획을 세울 뿐.

  

  

  “바이킹 타러 갑시다. 그거 타러 와놓고는 딴 짓만 하고 있네.”

  

  

  씨익 웃는 잘난 얼굴에서 약간의 불안감이 생겼지만 수현은 바이킹에 혹했다. 그래, 이왕 온 김에 하고 싶었던 건 다 하고 나가야지. 또 언제 올 줄 알고. 머리띠를 꾹 누르는 손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수현은 애써 대범하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사진 찍혀서 돌아다니지만 않으면, 그거면 돼. 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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