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24)

  

  

  ‘분명히 애인이 생긴 거예요.’

  ‘맞아, 연애 아니고서야 저런 얼굴이 나올 리가 없지.’

  ‘대체 어떤 여자랑 연애 하는 걸까요?’

  ‘그러니까 말야, 왠지 저런 남자는 약혼녀랑 정략결혼이나 할 거라고 생각했더니 연애도 하나 봐.’

  ‘그 여자 완전 부럽다, 그죠?’ 

  ‘잘생겼지, 돈 많지, 매너도 좋지, 성격까지 좋잖아. 거기에 저런 들쩍지근한 눈빛까지 더해지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연애가 맞긴 한데… 아직 연애는 아니거든요? 연애 하자고 제안만 해놓은 상태지 도장은 못 받았다구요. 또 여자랑 하는 것도 아니고… 잘생기고 돈 많고 매너 좋은 것까지는 인정하는데 성격이 좋은지는 잘… 제 뒤에서 소곤소곤 이어지는 김 주임과 박 과장의 뒷담화 아닌 뒷담화에 수현의 얼굴은 제멋대로 씰룩거렸다. 

  요즘 아주 풀릴 대로 풀린 정시우 이사의 얼굴에 회사 내에는 ‘정시우 이사 연애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 얼굴표정 숨기는 데에는 따라올 자가 없는 사람인데 얼마나 줄줄 흘리고 다녔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주차장 김 씨 아저씨도 알 거다. 게다가 저 눈빛이 얼마나 느끼―다른 사람들은 다정이라고도 하지만―한지 어제 정통으로 눈 마주친 로비 직원 아가씨 하나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을 정도라고 한다. 

  

  띵동, 메신저로 쪽지가 하나 들어왔다. 퇴근하고 뭐하냐는 정시우 이사의 쪽지에 수현은 슬쩍 고개를 들어 이사의 자리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쪽지 따위 보낸 적 없다는 듯 태연한 그 태도에 흥미가 떨어져 금세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답장은 안 보내야지, 왜냐면 도망갈 거니까. 퇴근시간 되자마자 도망갈 거다, 뭐.

  뭐 할 거냐니까요, 쪽지가 또 왔다. 도망 갈 거예요, 하고 대답할 수도 없고 별로 할 일 없어요, 라고 답하기도 뭐해 수현은 또 쪽지를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어차피 퇴근 시간까지는 십 분! 여섯 시 반 되자마자 튀어나갈 거다. 이미 가방도 다 챙겨 놓은 참이다. 

  

  

  ‘어머어머, 애인한테 전화하나 봐요. 얼굴 봐, 얼굴.’

  ‘저녁에 데이트하나? 안 그래도 새끈한 사람이 옷까지 완벽하네.’

  

  

  수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들고 사무실 밖으로 뛰었다. 문을 닫고 휴게실 쪽으로 발을 옮기기 무섭게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 이 경계심 없는 사람! 그쪽에서 전화하자마자 내가 전화 받으면 뭔가 이상하잖아!

  

  

  ‘쪽지는 맛있게 먹었습니까.’

  “…이사님, 회사 내에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그러니까 쪽지에 답을 했으면 되지 않습니까.’

  “할 말이 없어서요.”

  ‘아하, 할 일이 없다는 거죠?’

  “아뇨! 바빠요. 단지 이사님께 말씀드리기가 그럴 뿐…”

  

  

  가방 들고 나올 걸, 그럼 지금 바로 나가면 되는데. 머리를 마구 헤집으면서 수현은 입 안이 바싹바싹 말라옴을 느꼈다. 이 찜찜한 기분, 왠지 생각했던 대로 일이 안 풀릴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 수현은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예감은 단 한 번도 비껴나간 적이 없음에 오한이 들었다. 

  

  

  ‘대답, 아직 못 들었습니다.’

  “하하…”

  ‘웃음이 나옵니까.’

  “아, 아뇨…”

  ‘끝나고 가만 자리에 앉아 있어요.’

  

  

  뚝 끊긴 전화기를 들고 수현은 망연자실해 있었다. 하지만 시도도 안 해보고 붙잡힐 순 없었다. 아무리 황폐한 사바나에서도 맹수에게 쫓기는 초식동물은 열심히 뛰지 않던가. 수현은 핸드폰으로 김 주임 전화번호를 찾아 꾹 눌렀다. 

  

  

  “김 주임, 제 가방 좀 밖으로 가져다주면 안 될까요? …으앗, 이 대리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그냥 조용히 책상 옆에 가방 챙겨져 있으니까 살짝 그것만 가져다 줘요.”

  

  

  흔쾌히 알겠다는 대답을 하는 김 주임이 수현에겐 구세주 같아 보였다. 수현은 직감적으로 이번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호랑이한테 목줄기 물린 사슴 꼴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상상도 하기 싫다, 정말. 하지만 수현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미 상상도 할 수 없는 두께의 콩깍지가 정시우 이사의 눈깔에 덮어씌워졌다는 것과, 그런 그는 수현이 하는 말이라면 벼룩의 간이라도 찾아줄 것이며, 겉모양새는 이사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진정한 칼자루는 자신이 쥐고 있다는 것을.

  

  

  “고마워요, 김 주임.”

  “그런데 어디 가시길래 그러세요?”

  “집에 가야죠.”

  

  

  엘리베이터의 하향 버튼을 꾹 눌러 놓고 수현은 흘금 사무실을 살폈다. 다행히 들키지 않고 갈 수 있을 것도 같…

  

  

  “이수현 씨.”

  “으앗!”

  “김 주임은 들어가요.”

  

  

  안광이 형형한 이사의 얼굴에 김 주임을 후다닥 사무실로 돌아갔다. 물론 다른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 창문으로 눈만 빠끔히 내놓는 건 잊지 않았다. 그들이 이 재미있는 광경을 놓칠 리가 없었다.

  

  

  “오늘까지 대답하기로 했던 거 같은데.”

  “오늘이 끝나려면 아직… 6시간이나 남았는데요.”

  “그래서, 뽀르르 도망가서는 어쩌려고. 12시 되기 전에 전화라도 해주게?”

  “그, 그런 방법도 있네요.”

  “전혀 말할 생각이 없었구만.”

  

  

  엄마, 이를 어째. 수현은 일그러지는 정시우 이사의 얼굴에 가느다란 바늘 끝이 가슴팍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그런 얼굴까지 하게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사람 속이 진심일지 아닐지 가늠해 본 것이 미안해지는 얼굴이었다. 커다란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하는 정시우 이사의 팔을 수현이 툭 붙잡았다. 

  

  

  “저… 이사님.”

  “…….”

  “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싫다고 할 거면 입 틀어 막아버릴 거니까 꿈에도 생각하지 말아요.”

  

  

  여유가 없다. 분명 수현이 튕김질을 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여유가 생기질 않는다. 일부러 대답해주지 않고 약만 살살 올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수현은 망부석 마냥 그 자리에 박힌 정시우 이사를 간신히 끌어다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 이사님한테 제가 너무 질질 끌려가는 것 같아서 그랬어요.”

  

  

  수현은 참 이럴 때만 직설적이다. 정시우 이사는 수현의 입에서 튀어나온 뜬금없는 말에 인상을 구겼다. 누가 누구한테 끌려가? 

  

  

  “이수현 씨.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끌려가는 건 수현 씨가 아니라 납니다.”

  “…항상 이사님 마음대로 하시잖아요.”

  “내 마음대로 된 게 뭐가 있습니까?”

  

  

  수현은 찬찬히 과거를 되짚어 보았다. 음, 음, 음… 

  

  

  “마음대로 뽀뽀 하시고, 호텔 방도 바꾸시고…”

  “그건 과정이고. 내가 먼저 연애하자 그랬고 난 수현 씨 대답 기다리는 형편인데, 뭐가 내 마음대로 한 겁니까?”

  “좋아한다는 말도 안 해줬으면서.”

  

  

  수현의 입에서 툭 진심이 튀어나왔다. 흠칫 놀라 제 입을 틀어막고 수현은 ‘이 멍청한 것!’하고 스스로에게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진짜 듣고 싶었단 말이야, 그래서 스쳐 지나가듯 몇 번이나 물었는데 대답도 한 번 해준 적 없으면서! 

  

  

  “내가 정말 쪽팔려 죽길 바라는 겁니까?”

  “…그런 말도 안 해주는 사람이랑 사귀고 싶지 않아요.”

  “후…”

  

  

  좋아하니까 연애하자고 그런 거지! 연애가 뭐냐, 연애가 뭐냐고! 정시우 이사는 정말이지 수현을 이길 수가 없었다. 이 시기만 지나면,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정말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거다. 특히 침대 위에서―과연 할 수 있을까―.

  

  

  “…이수현 씨, 그거 압니까?”

  “예?”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 회사 내에 수현 씨밖에 없습니다.”

  “…예?”

  “당연히 좋아하니까 연애하자고 한 겁니다.”

  

  

  으앗, 으앗, 어떡해. 수현은 여름날 버터처럼 노골노골 녹아버릴 것 같은 정신줄을 간신히 붙들어 맸다. 귓가에 소곤거린 목소리가 은근한 색향을 풍겨 정말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이사 눈빛 받고 주저앉았다던 그 비서가 이해가 될 판이다. 고집 부리길 백번 잘 했지, 이런 말도 못 듣고 연애했으면 억울해서 죽을 뻔 했다. 

  수현은 잘 익은 석류가 터지듯 알알이 웃어버렸다.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온갖 걱정과 우려,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건과 사고들이 싹 밀려 없어졌다. 수현은 손을 뻗어 수려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부들부들하니 피부도 좋아, 뺨을 슥슥 쓸고 여전히 눈가를 찌푸린 채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시우 이사의 얼굴에 먼저 쪽, 입을 맞췄다. 가볍게 뽀뽀만 하고 말 생각이었는데 그건 수현의 바람이었을 뿐 확 온 몸이 끌어 안겨 거센 키스를 받아야했다. 가쁜 숨을 내뱉으면서 수현은 작게 속삭여 주었다.

  해요, 연애.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면서 정시우 이사는 눈살을 가볍게 찌푸렸다. 현재시각 AM 11시 10분, 약속은 11시였다. 안 그래도 연애 하자고 해놓고는 냉큼 집에 가버린 수현이 얄미웠던 참인데―짐을 챙기러 들어간 그새 튀었다― 약속시간도 안 지키다니, 회사는 아침에 쫄랑거리면서 일찍도 오면서. 10분이나 기다렸으면 인내심 많은 애인이지, 정시우 이사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수현의 저장명은 새끼강아지다. 

  

  

  ‘…여보세요?’

  “뭡니까.”

  ‘예… 에?’

  “안 나옵니까?”

  ‘지금 몇 시예요? 헉.’

  

  

  전화를 받을 때부터 잠이 덜 깬 목소리다 싶더니 정말 방금 잠에서 깬 모양이다. 정시우 이사는 가볍게 한숨을 쉬면서 오피스텔로 발을 옮겼다. 지금 일어났으면 씻고 나오는데 꽤 시간이 걸릴 거다. 603호였던가,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의 귀에 수현의 죄송하다는 소리만 와 닿았다.

  

  

  “죄송할 건 없고, 현관문이나 열어 놔요.”

  ‘예?’

  “들어가서 기다릴 테니까.”

  ‘이, 이사님! 그건 좀…’

  “문 앞입니다.”

  

  

  툭, 핸드폰을 끊고 정시우 이사는 문 안의 동태를 살폈다. 우당탕하는 소리가 몇 번 들리고 비닐봉지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잠금쇠가 돌아갔다. 작게 열린 문틈으로 빠끔히 고개를 내민 수현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헉.”

  “헉은 무슨 헉.”

  “잠깐만요, 이사님. 집안이 엉망이에요. 진짜 안 되는데…”

  “들어갑니다.”

  “…….”

  “수현아.”

  

  

  수현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엉망인 것도 엉망이지만 지금 꼴이… 팬티랑 티셔츠 하나 입었단 말이다. 게다가 아침 기상현상이 한창 중인데 저렇게 부르면 어쩌자는 거야. 수현은 겉핥기로만 알고 있는 반야심경을 속으로 낭독했다. 하지만 그건 정시우 이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수현의 결 좋은 생머리가 이리저리 뻗쳐있는 게 귀여워 죽을 판이었다. 잠이 덜 깨 약간 부은 눈까지도.

  

  

  “들어가서 기다린다니까.”

  “이사님, 저 집에 에어컨도 없어서 더우실 거예요.”

  “안 더워.”

  “진짜 빨리 나갈 테니까…”

  “억지로 들어간다?”

  “그럼 잠깐만요, 정말 잠깐만…”

  “문 닫으면 다시 안 열어 줄 거 안다.”

  “아니에요!”

  

  

  수현은 온 몸으로 문이 다 열리지 않도록 지탱했다. 손 하나로 문을 당기고 있는 정시우 이사와는 다르게 처절한 몸짓이었다. 하지만 정시우 이사가 팔 근육에 힘을 빡 준 순간 수현은 문이 열림에 앞으로 튕겨 나가고 말았다. 흐윽, 그냥 애초에 열지를 말았어야 했어. 완전히 열린 문 사이로 당당하게 들어온 정시우 이사는 수현의 차림을 위에서부터 주르륵 훑었다. 눈에 확 불이 붙었다.

  

  

  “…씻고 나올게요.”

  

  

  수현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든 타파해야 함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후다닥 뒤로 물러서기 무섭게 커다란 손이 어깨를 붙잡았다. 삐거덕 소리가 날 것 같은 움직임으로 뒤를 돌아보자 정시우 이사는 씩, 매끄럽게 입술을 움직여 웃었다. 

  

  

  “이사님, 데이트하기로 했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그 눈빛 좀 어떻게 해주세요… 잡아먹을 것처럼 보지 마시구요, 진짜 그런 눈으로 보면 다리가 벌벌 떨리는 거 같다구요. 

  

  

  “이것도 다 데이트의 일환이지.”

  “예부터 데이트란 영화보고 밥 먹고 공원가고 이런 거…”

  “집에서 노는 것도 데이트야.”

  “저 이도 안 닦았어요. 세수도 안 했는데요.”

  “내가 그런 거 신경 쓰게 생겼어?”

  

  

  근데 왜 그렇게 너무 당연하게 반말하시는 건가요. 회사에서 나오기만 하면 반말 작렬이니, 이거 참. 나도 확 반말할까 보다. 

  

  

  “왜 뿌루퉁해.”

  “안 뿌루퉁한데요.”

  “반말해서 싫어?”

  “싫다기보다는…”

  

  

  흘끔 수현은 눈치를 살폈다. 솔직하게 말했다가는 정말 털도 안 뽑고 먹어치울 지도 몰라. 그래도 한 번 말해보고 싶다. 정말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고. 

  

  

  “막 등줄기가 저릿저릿해요.”

  

  

  시동버튼이 눌렸다. 그것도 아주 기어를 빡 올린 채로 꽉. 입 안을 헤집는 혀 위에 제 혀끝을 굴리면서 수현은 대충이나마 급하게 이를 닦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래서야 데이트 갈 수 있을까.

  

  

  진짜 키스 하나는, 혼이 다 빠지네. 딱 수현이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스텝 바이 스텝, 꾹꾹 밀어 넣는 깊이까지 조절하는 그 섬세함이 머리카락까지 쭈뼛 서게 만들었다. 수현은 커다란 손이 얇은 팬티 한 장 위로 엉덩이를 쥐고 주무르는 것도 제대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키스에 푹 빠져 있었다. 따끈따끈하고 조금은 촉촉한 손바닥이 뺨과 목덜미를 만지는 것도, 몸에 땀이 살짝 배어나오는 느낌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차가운 마룻바닥과는 대조되는 뜨거움이 더욱 감각을 부채질 한다.

  

  

  “응, 음… 저, 이사님…”

  “분위기 깨지 말고.”

  

  

  얼굴에 음영 지니까 더 잘생기셨네요… 느끼하고 능글맞고 가끔 심통까지 부리지만 잘생긴 건 잘생긴 거다. 수현은 보기 좋은 피부색을 띤 얼굴을 끌어와 높고 곧은 콧날 위부터 입을 맞췄다. 코가 크면 거기도 크다던데, 그래… 그랬지. 제대로 보진 않았지만―보고도 못 본 척 하고 싶었지만―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 있는 기억에 의하면 거기도 실했다.

  

  

  “…그냥 집에서 데이트 하죠.”

  “집에… 앗!”

  

  

  쿡, 정시우 이사의 긴 손가락이 뒤로 찔러 넣어졌다. 수현은 화들짝 놀라 혀까지 깨물었다. 잇자국이 난 혀를 쏙 내밀자 정시우 이사는 달래듯 잔잔한 키스를 해주었다. 셔츠 안으로 들어온 손에 가슴 위에 톡 올라온 것을 간질임에 수현은 꽉 속눈썹이 마구 떨릴 정도로 세게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이사님, 저 샤워해야…”

  “괜찮아요.”

  “제가 안 괜찮은데요!”

  “내가 괜찮다면 괜찮은 겁니다.”

  “아침부터…”

  “원래 모닝섹스가 몸에 좋다고들 하죠.”

  “연애 하자고 한지 하루 됐는데…”

  “60년대 생입니까?”

  “60년대 생 아니라도 지킬 건 지켜야… 아읏…”

  

  

  수현은 팬티 속으로 들어온 손이 마구 안을 휘저음에 제 머리 옆을 짚은 팔을 쥐고 파들파들 떨었다. 남자랑 잔 지 얼마나 됐더라, 삽입까지 한 건 언제가 마지막이었지, 기억을 되짚다 수현은 끝을 둥글리는 손가락에 가슴이 들썩거리도록 숨을 쉬었다. 

  

  

  “으앗, 이, 이사님…”

  “밝은 데서 보니 색깔도 예쁘네.”

  

  

  엄마야… 저 인간 말하는 것 좀 봐. 버터를 통째로 퍼먹었나, 올리브유를 들통 째 마셨나, 거기 색깔이 예뻐 봐야 얼마나 예쁘다고 저런… 

  

  

  “입으로 해줄까요.”

  “…예에?”

  “나이 서른 먹어서 그런 얼굴이 어울리는 건 반칙, 순진한 척 하지 말고.”

  “저, 이사님. 시계 좀 보세요, 흐윽, 아야… 11시 20분인데, 한낮인데…”

  

  

  제 손목을 쥐고 있는 수현의 손을 가만 내려다보던 정시우 이사가 그 손을 툭 떼어내 끌었다. 수현은 제 손 안에 담기는 뜨거운 것에 정말 얼굴이 불이 확 붙는 것 같았다. 커다랗고 단단하게, 아주 기세도 좋게 우뚝 선 것이 수현의 손이 닿을 때마다 민감하게 움직였다. 천천히 감아쥐기 무섭게 더 불쑥 힘이 들어가 수현은 벌벌 떨면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성욕에 젖은 눈가가 움찔거렸다. 

  

  

  “…부드럽게 잡고, 흔들어 봐.”

  

  

  또 등줄기가 저릿하게 만드는 반말, 이번엔 내용까지도 외설적이다. 수현은 홀린 듯 손을 움직였다. 침을 꼴깍 한 번 삼키고 손으로 가볍게 한 번 쓸어내린 순간,

  

  

  “…배고픕니까?”

  “하하…”

  

  

  납작하게 꺼진 수현의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쯧, 혀를 한 번 찬 정시우 이사가 수현의 손에서 제 것을 빼내 한 손에 둘 다 감싸 쥐었다. 연애하자고 해놓고는 무시하고 그냥 확 해버릴 수도 없고, 왠지 그건 또 끌리지도 않고. 맛있는 건 아껴 먹어야지. 

  

  

  “빨리 하고 밥 먹으러 갑시다.”

  

  

  방콕에서부터 홍콩까지 가는 걸로 잡은 데이트 노선은 수현의 요란한 배꼽시계에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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