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시간 내내 서늘한 얼굴로 누가 묻는 말에도 단답식으로 대답하고 정시우 이사는 참 많은 사람 민망하게 만들었다. 아침 회의 시간에는 내내 뭐 씹은 얼굴로 서류를 노려보더니 점심시간이 된 지鳧?사무실 문 앞을 떡하니 막고 서있다. 그 모양에 수현은 점심도 먹으러 못 가고 자리에 앉아 머리통도 보이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래, 한 끼 굶자. 차라리 굶고 만다.
“이수현 씨.”
고요한 사무실 내에 퍼지는 낮은 목소리는 냉기가 풀풀 날렸다. 하지만 수현은 대답은커녕 고개도 한 번 까딱 안 했다. 정시우 이사는 매우 화가 나 있었다. 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건지 갈피조차 잡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났다. 알고 있었잖아, 그저 제가 밀어붙이는 것에 못 이겨서, 상사니까 싫어도 받아주고 있다는 거. 차라리 정말 나쁜 남자처럼 못되게 굴어볼까 싶기도 하지만 그건 또 내키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비하하는 말이든 비꼬는 말이든 내뱉고 말았을 텐데 그것도 못하고. 잘 세팅된 머리를 마구 흩뜨리고 정시우 이사는 뚜벅뚜벅 발을 옮겨 수현의 자리로 다가갔다.
“점심 안 먹습니까?”
“…….”
“두 번 묻게 하지 말아요.”
“…별로 생각이 없네요.”
“끌고 가기 전에 알아서 일어납시다.”
“이사님.”
수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숨을 한 번 쉬고 똑바로 눈을 떠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지금까지 살면서 원하는 걸 단 한 번도 놓쳐보지 않았을 거다. 억지를 쓰지 않아도 손 안으로 사람들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다 굴러들어왔을 것이다. 조바심이 나겠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강압적인 태도가 어울리는, 그리고 그런 태도로 대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정시우 이사는 제게는 말은 약간의 협박을 섞을지언정 행동까지도 억지로 행한 적은 없었다. 아마 키스든 그 이상이든 수현이 싫다고 했다면 절대 그 이상 손을 대지 않았을 것이다. 미적지근한 제 태도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수현은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말해주지 않으면 물어봐야지.
“전 회사 내의 불이익이나 이익을 생각하고 이사님을 대한 적은 없습니다.”
수현의 단정한 눈매에 단호함이 섞였다. 그 눈빛에 정시우 이사는 저릿해진 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 꼭 도도한 척 하려는 고양이처럼 보였다. 세제를 잔뜩 풀어 한참을 삶은 세탁물처럼 바르르 끓었던 화가 푹 가라앉았다.
“제가 미적지근하게 굴고 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이사님도 제대로 말씀해주신 적 없잖아요.”
“…….”
“이사님이 뭐라고 말을 해주셔야 제가 그걸 생각해서 이사님을 대하지 않겠어요?”
이건 또 다른 면이네, 귀엽고 물렁하기만 한 줄 알았더니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한다. 하지만 신기해하기도 잠시, 정시우 이사는 수현이 요구하는 그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맛난 것도 먹어본 사람이 먹고 말도 해본 사람이 한다고 평생 그런 닭살스러운 말과는 관련이 없었던 그로선 입술만 달싹거릴 수 있을 뿐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언제나 능청스럽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드는 것에 수현은 팩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렇다는 거지, 확실히 말해달라는 말은 당황스러워 한다는 거지. 저 반응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할 말은 없다는 거야? 그냥 놀려 먹은 거라고 생각하라는 건가. 수현의 머릿속에는 만에 하나라도 그가 쑥스러워한다거나 부끄러워할 수 있다는 가정 따위는 들어있지 않았다. 그런 단어와는 수억 광년 떨어져 있는 태도와 생김새 아닌가.
“점심 드시러 가세요. 전 생각 없어요.”
왜 이렇게 속상하지. 좋지도 싫지도 않다고 생각했으니 어떤 반응이 돌아오더라도 그에 따라 적당하게 행동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나 보다. 제 마음은 좋은 쪽으로 기울어진 채 조금이나마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무 말도 없는 걸 보고 실망하는 거 보면. 뻐근한 눈가를 문지르면서 수현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차라리 이게 나은 걸지도. 그쪽은 생각 없이 그저 유희거리로 대했을 뿐인데 홀딱 빠지기 전에 브레이크가 걸렸으니.
“…이수현 씨.”
“…예.”
대체 뭐라고 말하냐고! 정말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꼬꼬마 애기들도 아닌데 손 붙잡고 고백하고 우리 이제 하나 둘 셋 하면 사귀는 거야, 라는 말이라도 하라는 건가. 척하면 척 알아들어줘야지, 지금까지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순간 정시우 이사는 자기 외모가 이 상황의 원흉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고 그 외모가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어떤 편견을 만들어내는지도 잘 알았다. 수현도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겠지, 한 번 꼬아볼 수밖에 없는 거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거고. 저 자기비하로 꽉 찬 머릿속이 어떻게 돌아갈지 정시우 이사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이 사람이 날 좋아할 리 없어.’라는 자기 비하를 할 거라는 건 꼭 머리통을 열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사님 계속 여기 계실 거면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불편해서 피하는 겁니까.”
“불편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끝까지 말을 하지 못하고 수현은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지금 상황이 불편한 거지, 정시우라는 사람 자체가 불편한 건 아니다. 최근에는 같이 점심식사를 하는 것도 전혀 꺼려지지 않았을 만큼. 하지만 지금은 수현은 속이 상했고 정시우 이사는 화가 났으니 서로 얼굴을 보지 않는 편이 나을 거다.
“같이 있어봐야 좋을 건 없을 거 같아서요.”
수현은 조금 시무룩해졌다. 조금이 아니라 한정 없이 기분이 가라앉고 있었다. 저 잘난 얼굴 계속 보고 있다가는 화까지 날 것 같아 수현은 사무실을 나가려고 했다. 카페테리아라도 올라가서 시간이나 보내고 올 참이었다. 하지만 그건 생각일 뿐 수현은 제대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이수현 씨.”
앞에 붙은 긴 침묵이 망설임을 보여주었다. 살면서 이런 말 정말 처음해보는 거라고. 애초에 이런 말을 하게 될 거라곤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을 정도니까. 차마 감정을 표현하는 말은 도저히 못할 것 같아 어떻게 고르고 고른 말인데 되게 멋없어 보여 정시우 이사는 제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흠흠, 목을 몇 번 가다듬고 상기된 듯한 얼굴에 마른세수를 하고 나서야 간신히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시선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열기를 가라앉히려고 해도 목덜미부터 스물스물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다.
“…합시다.”
“예?”
수현은 정말로 앞에 단어가 들리지 않아 되물은 것이지만 정시우 이사는 수현이 자기를 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수현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물음표와 고개를 갸웃하는 행동에 또 목만 가다듬었다. 에이씨, 머리카락을 거칠게 한 번 헤집고 확 쏟아내듯 말해버렸다.
“연애 합시다.”
“…….”
“…….”
“…여, 연애요?”
뜨악해서는 되묻고 수현은 정시우 이사와 같이 얼굴을 붉혔다. 연애라니, 연애… 이사님이랑 연애? 예상 답안으로 꼽아 놓고 있었던 것임에도 충격은 덜하지 않았다. 가슴께가 간질간질, 강아지풀로 누가 슬슬 간질이고 있는 것 같아 수현은 제 왼 가슴팍을 툭툭 두드렸다.
“저… 이사님, 전…”
“…싫은 겁니까?”
“그…”
싫진 않은데, 아, 이거 왜 이러지. 수현은 협심증이라도 있는 것 마냥 제멋대로 두근거리기 시작한 것 때문에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다. 어렴풋이 예상하는 것과 직접 듣는 것의 차이는 상상보다 더 컸다. 홧홧해진 뺨을 두드리고 손부채질을 하다가 수현은 그제야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던 이사님의 얼굴이 꽤 절박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기야 이런 말을 어디 가서 해봤겠어.
“이사님 쑥스러워하시는 거예요?”
“…익숙하지 않을 뿐입니다.”
“뭐가요?”
“…….”
“연애하자는 말이요?”
수현은 크게 웃고 싶었다. 정시우 이사는 얼굴까지 새빨개지진 않았지만 카라 위로 드러난 목덜미가 미미하게 붉어져 있었다. 에어컨 바람에 차갑게 식은 손바닥을 가져다대자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서는 그에게 수현은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어째 상황이 역전됐다.
“저 잘 못 들었는데.”
“…이수현 씨.”
“다시 말씀해 주시면 생각해 볼게요.”
“정말 화냅니다.”
화 못 내실 거 같은데요. 연애하자고 하셨잖아요, 연애.
“뭐라고 하셨어요? 연… 뭐였던 거 같은데.”
정시우 이사는 수현의 눈웃음을 이런 상황에 보는 것이 참 그랬다. 자기를 놀려 먹으면서 지어지는 눈웃음이라. 저렇게 살살 웃으니 정말 화도 못 내겠다. 에라이, 한 번 했던 거 두 번 못하겠냐. 당황스러움을 싹 지우고 단정함을 얼굴에 한 겹 덮어씌웠다. 순간 진지해진 얼굴에 수현은 덩달아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에 수현이 시선을 조금씩 피할 무렵 모양 좋은 입술이 열렸다.
“연애 합시다, 이수현 씨.”
“…….”
“대답은?”
순식간에 제 페이스를 찾은 정시우 이사가 수현은 얄미웠다. 게다가 저 패턴, 어디서 본 패턴이다.
“대답은 안 해줍니까?”
“…….”
“수현아, 대답은?”
“저, 저도 시간이 필요해요.”
“오래는 못 줘.”
정시우 이사는 손가락을 세 개 펴들었다. 설마 삼 초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럼 진짜 나쁜… 싫다고 할 거야. 수현은 확 눈꼬리를 치켜 올리고 고개를 마구 저었다.
“주말엔 데이트해야 하니까 오늘까지 포함해서 삼 일.”
“…삼 일이요?”
“그럼 설마 삼 초겠습니까. 그렇게까지 못돼 먹진 않았는데요.”
아… 수현은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죄송해요, 삼 초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주말엔 데이트 하는 겁니다.”
제 대답의 언권言權은요… 대답 여하에 관계없이 데이트 한다는 건 승낙을 하라는 무언의 압박인 건가. 하지만 언제나 물샐 틈 없는 그의 바리케이트가 싫지 않다. 그냥 대답할까, 꼭 삼 일까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삼 초면 충분했을지도. 수현은 정시우 이사가 그리 갈망해마지 않던 반달눈을 한 채 지금 말할까 말까 고민했다. 하지만 곧 후자를 택했다. 그렇게 쉽게 손에 잡혀주고 싶지는 않다―지금까지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건…―. 애 좀 태워보라지.
수현은 이사님이 책상 위에 놓아주고 간 서브웨이 샌드위치 포장을 뜯었다. 아침에 샌드위치 집이 꽤 붐빌 텐데 잘도 사가지고 온다. 수현이 아침을 두유 하나로 때운다는 걸 안 정시우 이사는 아침마다 샌드위치를 사다 주었다. 호밀 빵에 몸에 좋은 야채들로 풍성하게 채운, 수현은 비싸다는 이유로 잘 사먹지도 않는 샌드위치를.
이 사무실에서 아침에 일찍 출근하는 종자는 수현과 정시우 이사 둘뿐이었기에 수현이 샌드위치를 먹는 아침 시간은 조용했다. 사람은 참 적응력이 강한 동물인 건지, 수현은 이제 옆에서 누가 옷을 벗고 바바리맨 짓을 하든 뭘 하든 간에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철이라도 뚫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눈빛으로, 한여름 태양보다 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정시우 이사 앞에서도 태연하게 샌드위치를 베어 먹을 수 있을 정도니.
“맛있습니까?”
“…예.”
입 안에 들은 걸 꿀꺽 삼키고 수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흐뭇한 미소가 퍼지는 얼굴은 꽤 보기 좋은 것이라 마주 웃어주기도 했다. 잘 먹고 잘 키워서 잡아먹으려는 거냐,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긴 했지만 뭐 어떠랴 싶어 수현은 이런 자잘한 호의는 잘 받아들였다. 커다란 걸 사다 안긴다거나 했다면 거부감부터 들었겠지만 커피 한 잔, 샌드위치 하나, 이런 건 괜찮지 않겠나 싶었다. 사실 이사에 재벌 집 아들내미면 이런 샌드위치는 먹지도 않을 텐데 어떻게 알고 사오나 싶기도 하고.
“이사님도 이런 거 드세요?”
“이런 거라뇨.”
“체인점에서 파는 샌드위치 같은 거요. 집에서 맨날 좋은 것만 드시지 않아요?”
“우리 집안의 교육방침은 그렇게 막나가지 않습니다.”
“어떤데요?”
“기업을 운영하려면 경영감각이 제일 중요한데 돈을 흥청망청 쓰게 교육시키진 않죠. 미국에 있을 때는 맥도날드와 그 샌드위치로 매 끼니를 때웠습니다.”
“호오…”
“제대로 돈을 쓸 수 있게 된 건 서른이 넘어서였죠. 차도 그때야 뽑았습니다.”
“그래서 은근히 소박하시구나.”
상상했던 것처럼 돈지랄은 안 하니 다행이다. 그랬으면 아주아주 밉상이었을 텐데. 펼쳐 놓은 포장지 위로 데리야끼 양념을 한 치킨 조각이 떨어졌다. 수현은 손가락으로 낼름 그걸 집어 입에 쏙 밀어 넣었다. 그 양념이 묻은 손끝을 가만 쳐다보던 정시우 이사가 그걸 입에 물지만 않았어도 오늘 아침은 태연한 태도를 쭉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더럽잖아요!”
“더럽긴 뭐가.”
양념 맛이 괜찮군요, 라고 짧게 덧붙이는 말에 수현은 뒷목을 잡았다.
“이사님 과거가 참 의심스러워요.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울렸을지.”
마지막 샌드위치 조각을 씹으면서 하는 수현의 말에 조금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긴 했지만 정시우 이사는 씩 한 번 웃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하는 행동들은 과거에 해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뺨을 만지작거리고, 입술을 손끝으로 쓸어보고, 이마에 입을 맞추는 그런 행위들. 누군가에게 살갑게 굴어본 적도 별로 없고 사람을 보면서 뭔가를 하고 싶다고 느껴본 적도 별로 없다. 섹스야, 혼자서 자위하는 것보다 낫다 싶어서 한 거지 그 이상이 되었던 적도 없다.
이런저런 소문들이 돌긴 하지만 그것들도 과장된 것이 대부분이다. 미국에 있을 때는 가끔 파트너를 찾는 정도였고 한국에 들어와서는 한창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좀 자주 바를 다녔을 뿐이었다. 워낙 생긴 게 그렇다보니 ‘문란 할지도 몰라.’라는 말이 ‘문란해, 짐승이야.’라는 말로 바뀌는 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절륜한 건 사실이지만 딱히 문란하지는 않다. 그 소문들이 떨거지를 떨어뜨리는 데 좋아서 그냥 두었던 것인데 지금은 좀 후회가 된다. 이게 다 그 입 싸고 부풀리기 좋아하는 이시영 때문이다.
“이사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뭡니까.”
“제 어디가 좋으세요?”
“…….”
“없는 거예요?”
요 며칠간 알게 된 건데 수현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여우짓을 했다. 정시우 이사가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그 여우짓이 별 자각 없이 하는 행동이라는 거였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어서, 궁금해서 하는 말인데 그게 어째 하는 족족 여우짓이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제가 좋으세요?’라고 물었던 것만 생각하면 지금도 정시우 이사는 제가 다 부끄럽게 민망했다. 근데 그게 정말 궁금했던 건지 수현은 몇 번이고 되묻기까지 했다. 내추럴 본 여우, 정시우 인내심이 폴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 오기 전에 모닝키스나 합시다.”
“저 이 닦아야 되는데…”
이는 무슨, 안 그래도 시간 없는데. 수현의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입부터 맞추고 봤다. 말랑하게 입술을 누르고 혀끝으로 살살 아랫입술 안쪽을 쓸었다. 달달한 샌드위치 소스 맛이 났다. 이렇게 먹으니 어째 더 맛있는 거 같네.
뭐, 여기까지 보면 둘이 벌써 연애를 하고 있는 건가 싶긴 하지만 아직 수현은 제대로 답을 해주지 않았다. 밀 때는 확실히 밀어줘야 한다는 신념하에 수현은 오늘까지도 답을 해줄 생각이 없었다. 애가 타서 답을 갈구하면 해줄 생각이었다. 왜냐면! …애를 태워야 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연애를 해도 좋겠지만 수현은 제가 질질 끌려가는 것이 왠지 좀 싫었다. 완전히 주도권을 잡고 흔드는 것도 썩 끌리지 않지만 목덜미를 잡혀 끌려가는 것도 싫다. 연애하자는 말을 정시우 이사 쪽에서 먼저 한 게 다행이다. 그것마저도 못 들었으면 정말 주도권의 ‘ㅈ’자도 못 꺼내봤을 거다.
그리고 또 은근히 자기 눈치 보면서 조급한 표정 짓는 정시우 이사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얼굴이 잘생기니 뭘 해도 어울려서 약간 토라진 듯한 얼굴 짓는 것도 수현은 귀여워 죽을 것 같았다. 예전 같으면 귀엽다는 말이 가당키나 할까 싶었을 텐데 이제는 아주아주 잘 어울린다. 지금도 키스하고 제 얼굴을 살피는 눈에 약간의 불안감이 스치는 것이 수현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저런 얼굴 풀어주지 않는 건 또 좀 마음에 걸린다. 하루의 상큼한 시작을 위해 수현은 제가 먼저 뽀뽀를 아주 짧게, 스치듯이 쪽 한 번 했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복잡하게 얽혔던 정시우 이사의 얼굴이 금세 얼굴이 사르르 풀렸다. 그는 수현이 한 번 키스를 하면 열 배로 갚아준다. 수현은 입술과 뺨에 뽀뽀 세례를 받으면서 눈을 감았다. 뭐, 이런 것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