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먼저 가자는 수현의 말을 무시하고 정시우 이사는 바로 대행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슈트케이스도 가져다 놓고 미리 해놓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에도 막무가내였다. 아직 약속 시간도 안 되었는데요, 하는 말에는 그럼 먼저 밥부터 먹자는 억지를 썼고 저녁 약속이 잡혀 있는데 뭘 또 밥을 먹냐는 말에는 그럼 차나 마시든가, 하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 똥고집대로 호텔에 가지 못하고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왜 호텔에 가기 싫어하냐고 수현이 몇 번이나 물었지만 정시우 이사는 그냥 별 것 아니라는 듯 말을 돌렸다. 제대로 답해준 건 하나도 없었다. 혹시 남자랑 호텔 들어가는 거 때문에 그러냐고 했더니―절대 그런 거에 신경 쓸 사람처럼 보이진 않지만― 정시우 이사는 좀 묘한 얼굴을 했다. 어차피 비즈니스 룸으로 잡아 놨고 싱글 룸으로 두 개나 해놨는데 뭐가 문제냐는 말에는 더 미묘하게 얼굴을 굳혔다.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타이밍 좋게 대행사 측 직원 들이 도착해서 그 이상은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었다.
정시우 이사는 정말 이사 같지 않았다. 위압감 그런 건 딱 상류층 사람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의외로 소탈한 느낌이 들었다. 하긴 그래봐야 KTX 특실이 불편하고 바나나우유가 입맛에 안 맞는 사람이지, 수현은 오랜만에 먹는 생선회에 대행사측과의 대화는 전부 정시우 이사에게 미뤄두고 먹기 바빴다.
“이수현 씨.”
“…예?”
채 다 씹지도 못한 음식물을 꿀꺽 삼키고 수현은 간신히 대답했다.
“2차 가고 싶습니까?”
“이사님은요?”
“난 좀 들어가서 쉬고 싶은데.”
“그럼…”
“혼자 들어가긴 좀 그렇지 않을까.”
“어차피 룸을 따로 잡아 놔서…”
수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시우 이사는 휙 고개를 돌려 대행사 측에 미안하지만 2차는 힘들겠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포트폴리오 발표도 있고 하니 그쪽도 들어가서 쉬는 게 좋겠다는 허울 좋은 핑계를 대면서.
“전 2차 가고 싶었는데요…”
택시에 올라서야 수현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다. 아까는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째려보던지, 2차 가고 싶다고 하면 정말 몇 대 맞을 것 같았다.
“그럼 아까 말하지 그랬습니까.”
댁이 못 말하게 했잖아, 댁이! 그런 얼굴로 쳐다보는데 어떻게 가고 싶다고 말을 하나요. 했다가는 당장이라도 허리에 돌 묶어서 강에 던져버릴 것 같은, 야차 같은 얼굴이었으면서! 억울함에 몸서리면서도 수현은 꾹꾹 눌러 참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상사만 아니면 확…
“상사만 아니면 확, 그다음엔?”
“…예?”
“다 중얼거려놓고 아닌 척 하기는.”
수현은 턱 입을 막았다. 혼잣말이 입 밖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2차는 둘이 하죠.”
아, 아뇨,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은데요. 저번에 키스… 아니 뽀뽀 당한 것도 술 마셨을 때고, 아무래도 술하고 저는 인연이 아닌가 봅니다. 술 마시고 나면 기분도 좋고 나른하게 풀어지는 게 방어벽이 팍팍 다 부서지는 거 같아서.
“근데 왜 호텔엔 그렇게 가기 싫어하셨어요?”
“싫어하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무겁진 않지만 이것도 다 들고 다니게 하고…”
“뭐, 별로.”
또 저 미묘한 표정, 수현은 왠지 모르게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 같아 슥슥 옷 위로 손바닥을 문질렀다. 호텔 내에 에어컨이 너무 세게 틀어져 있나 보다. 왜 이렇게 섬뜩하냐, 하하하.
“정시우, 로열 룸일 겁니다.”
신분증을 내놓으면서 하는 정시우 이사의 말에 수현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설마 자기 방만 쏠랑 저렇게 바꾼 건 아니겠지? 뭐 저런 나쁜…
“이수현 씨 방은 없습니다.”
“예?”
“방 하납니다.”
“예?”
“방 하나라구요.”
“전 분명…”
“예약 취소하고 다시 잡았습니다.”
그러니까 대체 왜…
“좁은 방에서 못 잡니다.”
전 좁은 방에서도 잘 자는데요, 게다가 로열 룸이면 스위트 룸 바로 아래인데 회사 경비가 그렇게 나올 리도 없고…
“로열 룸은 개인 경비로 따로 잡은 겁니다.”
“그럼 제 룸을 취소시킬 필요 없는 거잖아요.”
“어차피 넓은데 뭐하러 따로 잡니까.”
이, 이… 능구렁이 같으니! 속에 뱀을 한 삼백 마리쯤 키우고 있는 대왕구렁이! 호텔 나중에 가자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뭔가 걸리는 게 있으니까, 당연히 구린 게 있으니까 제대로 답도 안 하고 능글거리면서 넘어간 거지. 수현은 황당함과 제 멍청함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역시 오는 게 아니었어, 김 주임이나 과장님한테 넘기고 어떻게든 오지 말았어야 했다. 지금까지는 둘이라고 해도 옆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지만 룸에 들어가면 이제 그 마저도 없는데!
“뭐합니까.”
“지금 기차가…”
“없습니다.”
“그럼 버스라도.”
“이수현 씨.”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그것도 모자라 정시우 이사는 우울한 눈빛을 했다. 아, 젠장! 갓댐! 제가 아는 온갖 나쁜 감탄사는 다 내뱉으면서 수현은 저승의 문 같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돌아가고 싶어도 슈트케이스와 가방은 이미 벨보이가 낚아채듯 가져가버렸다.
“내가 무슨 짓 할 거 같습니까? 수현 씨 은근히 자신감 있네요.”
“잇…”
“뭐 할 거 같은데요?”
으악! 수현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바나나우유를 요구르트로 보이게 했던 커다란 손이 엉덩이를 꽉 쥐었다 놓았다. 엘리베이터 안을 휘휘 둘러보다가 수현은 정시우 이사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서, 성희롱이에요.”
빨개진 얼굴로 말까지 더듬으면서 그런 말을 하면 참 설득력이 없는데, 정시우 이사는 때맞춰 열린 엘리베이터 밖으로 수현의 팔을 콱 잡아끌고 나왔다. 아주 건드리면 앵앵 울겠다, 해봤자 뭔 짓을 한다고. 설마 저를 막무가내로 덮치는 그런 놈으로 보는 건 아니겠지. 언제나 정시우 이사는 상대와의 합의하에 관계를 치렀으며 3P나 약물이나 그런 건 절대적으로 싫어했다. 지킬 건 지킬 줄 아는 남자인 거다.
“이사님.”
수현은 포기한 듯 키를 꽂아 문을 여는 넓은 등을 불렀다. 약간 어두침침한 복도 불빛에 음영이 진 수현의 얼굴을 본 순간 그는 이성이 사르르 모래성처럼 무너짐을 느꼈다. 당황한 듯,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두렵다는 듯 보는 얼굴이 가여우면서 귀여웠다. 예뻐, 얼굴 생김새가 예쁘고 여자 같고 그런 건 아닌데 예뻤다. 고민하는 모양새도, 사람의 행동이나 감정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 것도, 심지어는 미적거리면서 결론을 내지 못하는 우유부단함까지도.
수현의 팔을 꽉 잡아 룸 안으로 들어온 정시우 이사가 이마가 마주 닿을 듯 말 듯 머리를 내렸다. 한순간 뜨겁게 달아오른 제 호흡이 하얀 얼굴에 부딪쳤다가 되돌아옴에 더욱 흥분됐다. 거칠게 끌어내려 섹스를 하고 싶다는 욕구보다는 가볍게 포옹하고 키스하고 싶은, 그런 흥분.
“이수현 씨.”
“…예?”
“키스만 합시다.”
“예?”
“싫습니까?”
“…싫다고 하면 안 하실 건가요?”
“설마.”
근데 그런 걸 왜 물으시나요. 수현은 싫다고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입에서 싫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의문이었다. 오히려 손가락이 저릿저릿한 게 기대하고 있는 건가 싶기까지 했다. 이미 답은 나와 있는 걸지도.
헐겁게 옭아매고 있던 팔이 조금 더 세게 몸을 안아왔다. 쪽, 간지러운 마찰음과 함께 입술이 가볍게 닿았다 떨어졌다. 약간 왼쪽, 이번엔 조금 오른쪽, 그리고 살짝 방향 바꿔 입술의 갈라진 틈이 겹치도록. 막무가내로 할 것 같은 오만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저 간질간질하게 부딪쳐오기만 하는 입술에 수현은 가슴이 뜨끔뜨끔했다. 아, 먼저 혀 좀 써줬으면 좋겠는데…
입술 주름이라도 세고 싶은 건지 정시우 이사는 표피로만 살살 입술을 쓸었다. 한껏 예민해진 피부라 그것만으로도 좋긴 했지만 붉은 점막이 욕심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조금 더, 기다려야지. 팔딱팔딱, 손에 감긴 목덜미의 혈관이 뛰었다. 수현은 감았던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어둠에 익숙해진 망막에 억지로 참고 있는 듯한 잘생긴 얼굴상이 맺혔다. 뒷목을 감싼 손이 목덜미를 조금 세게 쥐었다 놓았다 하는 것에 훅, 열이 오른 수현이 허리춤을 잡고 있던 손을 조금 우악스럽게 당겼다.
정시우 이사는 수현을 뒤로 슬슬 밀었다. 방을 더 좁은 걸 잡았어야 했나, 침대까지 가는 게 멀다. 하지만 방이 넓어봐야 얼마나 넓겠는가, 수현은 뒤로 밀리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무릎이 꺾이면서 뒤로 그대로 넘어갔다. 커다란 손이 넥타이 매듭을 슥 잡아 뺐다. 설마, 하는 얼굴로 올려다보니 의도가 미심쩍은 얼굴로 다시 입을 맞춰왔다. 젠장, 이 키스―아직 혀도 안 넣었지만― 너무 좋잖아. 수현은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던 정시우 이사의 머리카락 속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손끝이 바짝바짝 굳어졌다.
살짝 떨어지는 입술 틈으로 수현은 포옥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뒷머리를 감싼 손을 내리눌러 입술을 부볐다. 슬금슬금 입술을 벌려주기도 하는데 들어올 생각을 않는 것이 얄미워 꽉 머리카락을 세게 쥐자 정시우 이사는 목을 울려 웃었다. 어느새 딱 달라붙은 가슴부터 입술까지 웃음이 새어 들어왔다. 뭐가 웃겨, 치잇, 하고 작게 투정 섞인 소리를 내자 정시우 이사는 그제야 붉은 혀를 내어주었다. 아랫입술을 가볍게 핥고 윗입술을 쪽 한 번 빨아들였다가 그대로 진입.
이가 입술 안쪽 점막을 가볍게 씹었다. 수현은 그에 대응하듯 머리카락을 또 꽉 쥐었다. 하지만 아프지도 않은지 앞니를 핥고 잇몸을 훑는 움직임은 전혀 멈추지 않았다. 수현은 은근슬쩍 제 입에서 놀고 있는 다른 혀 위를 슬쩍 핥아보았다.
“…이수현 씨.”
“예?”
“참고 있는데 그러지 맙시다.”
“흐응…”
참고 있기는 뭐가, 셔츠 바지춤에서 다 빼내고 허리도 만지작만지작하고 있으면서. 코웃음을 치기 무섭게 꽉 코끝이 깨물렸다. 뭐하는 거냐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다시 꼭 붙여온 입술에 그건 접어두기로 했다. 키스는 정말 좋으니까. 부드럽지만 육감적이고 통통한 입술이 쪽쪽 입을 맞춰오는 건 정말이지 기분이 좋아서. 수현은 이젠 다이렉트로 입천장을 핥아 올리는 혀에 부르르 티 나지 않게 떨었다, 거긴 직통인데, 안 되는데, 거기 핥으면 바로 가는데… 하지만 좋은데 어떡해. 단추를 반쯤 풀어 내린 부드러운 실크셔츠가 손 안에서 구겨졌다.
편안히 눈을 감은 채 부딪치는 대로 입술만 내미는 수현은 정말 꼭꼭 씹어 먹고 싶을 만큼, 온 몸을 다 핥아주고 싶을 만큼 예뻤다. 정시우 이사는 커다란 손으로 수현의 앞머리 밑으로 손을 넣어 이마부터 슥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짙은 눈썹과 동그란 이마가 드러났다. 손바닥으로 쥐고 있는 허리도 군살 없이 매끌매끌하다.
작전상 후퇴, 혀를 물리고 입술을 살짝 떼어내자 수현은 달은 숨을 뱉으면서 혀끝을 쏙 내밀었다 다시 집어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걸 놓칠 리가 있는가. 정시우 이사는 입술로 혀끝을 물고 송곳니로 꼭 한 번 깨물었다. 아픈지 아래 깔린 몸이 파닥거렸다.
“아픕니까?”
“안 아프겠어요?”
“그럼 수현 씨도 한 번 깨물어요.”
“그, 그런…”
“물라니까.”
그럼 누가 못 깨물 줄 알고? 수현은 입꼬리가 그린 듯 올라가 있는 입술을 꽉 물어뜯었다. 하지만 되로 주고 말로 받기, 바지 뒷주머니로 들어온 손이 엉덩이를 움켜쥐고 끌어당겼다. 맞붙은 하체가 비벼지는 것에 수현은 엄마야, 하고 팔을 휘저었다.
“저, 저기, 이사님!”
“왜요.”
“…이러면 안 돼요.”
“안 되긴 뭐가 안 됩니까.”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는 긴 시간 동안 서로 알아가고 자고로 완만한 것이 오래가기 좋은…”
“그럼 이건 어쩌죠.”
다시 아래가 비벼졌다. 수현은 헉헉, 하고 놀란 숨을 들이마시기 바빴다. 그, 그게 왜 그렇게 되셨나요. 아직은 좀… 아예 그냥 몇 번 만나고 말 사이면 상관없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수현은 눈만 데구르르 굴렸다. 물론 제 쪽도 상태가 완전히 흐물흐물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바지도 안 벗었는데 겉으로 봐도 묵직할 정도는 아니란 말이다.
“이수현 씨. 억지로는 안 합니다.”
“그… 은근한 권유는요?”
“그건 하겠죠.”
“안 돼, 안 넘어갈 거야.”
수현은 귀를 막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약간의 원망이 섞인 눈으로 올려다보자 다시 쪽쪽 입을 맞췄다.
“키스만 한다고 하셨잖아요.”
“키스만 하고 있잖아요.”
“그…”
거기나 좀 어떻게 하시고 말씀하시지 그러세요… 입술과 뺨에 쪽쪽 부딪치던 입술이 귓불을 한 번 가볍게 물고 귓바퀴에 와 닿았다. 낮게 깔려 속살거리는 목소리에 수현의 목덜미에 소름이 다 돋아났다.
“은근한 권유는 말로 하는 게 아닙니다.”
“이, 이사님. 저 술 마시고 싶은데요. 술이요. 술. 엄마야…”
“엄마는 왜 찾습니까.”
“이사님이 자꾸…!”
수현은 바지 뒤춤으로 들어온 커다란 손이 엉덩이를 쥐었다 놓는 것에 온전히 울상을 지었다. 좋아, 좋다고, 섹스 싫어하는 남자가 어딨어, 나도 좋은데, 이게 좀… 난 순서를 차근차근 지켜가면서 밟아 나가는 게 좋단 말이야.
“이사님! 저… 마음의 준비가…”
“누가 뭐랬습니까. 키스만 한다고 했죠.”
“키스에 이게 다 포함된 거냐구요!”
“그럼, 당연하지.”
“말도 안 돼!”
“…그럼 다시 키스.”
조금 망설이는가 싶던 정시우 이사는 곧 열심히 입운동을 시작했다. 아까보다 좀 더 깊숙이 혀를 밀어 넣고 입술을 빨자 수현은 아주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다. 딱 키스까지만 좋다 이건가, 거참 은근히 까다롭네, 하지만 키스를 하는 도중에는 어디에 손을 대든 그냥 조금 움찔거리긴 하지만 손을 걷어내지도 않는다. 그저 경고하듯 어깨에 손톱을 꽉 찔러 넣을 뿐, 하지만 그건 자극기제일 뿐이었다.
“흐읏… 이, 이사님…”
“거참, 무드 없네. 이 상황에서 이사님 소리가 나오나?”
“그럼 뭐라고 불러요?”
수현은 절반쯤 벗겨진 바지 사이로 들어온 손이 사타구니를 주무름에 눈앞에 보이는 어깨에 이마를 대고 후욱후욱 뜨거운 숨만 뱉었다. 툭툭 단추를 뜯어내듯 풀어내고 정시우 이사는 수현의 목덜미와 어깨와 목이 이어지는 부분에도 잇자국을 냈다. 단단한 이로 한 번 물고 까끌한 혀로 한 번 쓸고 가볍게 흡입하기까지. 아주 사람 골로 보내는 삼박자를 골고루 갖추셨다.
“자, 따라 해요.”
대체 뭘요, 수현은 이젠 아예 속옷 안까지 침범해온 손에 뒷머리를 베개에 대고 비볐다. 뜨거운 것이 같이 와 닿아서 힉, 하고 놀란 소리까지 내뱉었다. 아래를 한 번 흘긋 내려다보고 포기한 듯 눈을 꽉 감은 채 손으로 얼굴을 가리기에 이르렀다. 짙은 음영이 진 아래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머릿속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 커다란 손 안에 힘들어간 살덩이 두 개가 같이 쥐여져 있는 장면은 외설적이기 그지없다.
“시우 씨.”
“…예?”
“이사님 말고.”
“그, 그게 무슨… 으악! 저, 이, 이사님, 좀 놓고… 아픈데…”
“뭘 사서 고생해. 불러 봐요. 응?”
“귀에 대고 말하지 말구요, 어떻게 좀…”
“내가 뭐 많은 거 해달라고 하나?”
“이사님도 급하잖아요!”
“부르기만 이사님이지, 존대도 제대로 안 하잖아?”
‘말하지 마시구요.’ 가 아니라 ‘말하지 말구요.’, ‘급하시잖아요!’가 아니라 ‘급하잖아요!’는 뭐냐. 존대를 하려면 제대로 다 하고 안 할 거면 하질 말든가. 그래놓고 이사님이라고 부르겠다고 고집은. 급한 건 매한가지지만 정시우 이사는 교묘하게 손을 움직임으로써 수현만 안달 나게 만들고 있었다. 불러보라고, 그냥 한 마디만 하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준다니까? 수현은 귀를 막았다. 유혹을 속살거리는 악마의 목소리가 척추를 관통했다. 유혹에 넘어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목소리로 갈까봐 무서웠다. 그게 무슨 쪽이야.
“이수현 씨…”
뒤, 뒤 흐리지 마세요. 당신 무슨 페로몬을 목으로 흡수했어? 수현은 귀를 막고 있는 손가락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날숨과 목소리에 넉다운 당했다. 아래를 은근슬쩍 조물거리는 손에 더해서.
“이사님…”
“시우 씨.”
“…….”
“안 해?”
“시…”
“그 다음도.”
…발 치사하게 그런 걸로 협박하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수현은 아직 그 정도로 맛이 가지는 않았다.
“이수현 씨.”
“시…”
수현은 차마 크게 할 자신이 없었다. 이거 왜 이렇게 부끄럽지, 안 그래도 붉어졌던 귓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한 손으로는 어깨를 한 팔로는 목을 감아 제 상체를 들어 올린 수현이 잘생긴 정시우 이사의 귓가에 입술을 댔다. 그 와중에도 귀까지 잘생겼다고 투덜댔다. 그리곤 정말 모기만한 목소리로 간신히, 정말 간신히, 쥐어짜 시우 씨, 하고 아주 짧게 속삭여주었다.
“…잘 안 들리는데.”
진짜 죽을래!! 정말 원망이 가득 섞인 눈에 정시우 이사는 한 번 웃고 그대로 키스와 함께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헐떡헐떡 숨이 부족한 듯 해 볼이 빵빵해지도록 공기도 훅 불어넣어주었다. 어째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까지 사랑스러운 것 같아 혼이 다 빠지도록 입을 맞춰주었다.
…혼이 빠진 게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