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24)

  

  

  

  “어머어머, 이사님 센스도 좋으시네요. 저희가 항상 좀 냄새 안 나는 곳으로 가지고 해도 부장님이랑 차장님은 무조건 회사 앞 삼겹살집을 외치시는데.”

  

  

  딱 하루, 하루도 아니라 반나절 만에 정시우 이사는 회사 내 모든 이목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키는데 성공했다.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는 뭇 남성들의 질투―와 숨겨진 선망―를 모든 여성들의 선망을 샀다. 그에 비례하여 관련된 소문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수현은 아무래도 이 회사에서 사람들이 이직하지 않는 이유는 이 재미있는 소문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휴게실이나 식당, 사무실을 막론하고 어디서든 정시우 이사의 이름이 들리지 않는 곳은 없었다. 한 번씩 이렇게 소문거리가 빵빵 터져주니 어디 회사를 그만둘 수가 있나. 이건 마치 인터넷 중독자들이 커뮤니티 게시판에 꼭 붙어 앉아서 모든 글을 다 읽어야 하고, 하루라도 들어오지 못한 날엔 뭔 일이 나진 않았나 자기가 보지 못한 글부터 전부 복습을 하는 심리와도 비슷했다.

  

  

  “오늘 이사님이 불러온 파란은 작년에 이 대리님 스캔들하고 비견될 만 했다니까요.”

  “김 주임.”

  

  

  수현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경고를 했다. 거기서 더 말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어요, 라는 낌새가 폴폴 풍겨 왔지만 김 주임, 그녀는 수현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때 거드는 이가 있었으니 수현이 믿어마지 않던 부장님.

  

  

  “그때 대단했지, 난 이 대리가 그렇게 냉정할 줄 몰랐어.”

  “여자가 앞에서 막 우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했잖아요. 난 그 여자 너무 불쌍하더라.”

  “희대의 카사노바라는 별명이 그냥 붙은 게 아니지. 얼마나 저런 일이 잦았으면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을까 하고 말야.”

  “그것뿐이 아니잖아요. 애까지 있었다는 소문도 있던데요.”

  

  

  수현은 천천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 사람들이 보자보자하니까…

  

  

  “지금 당사자를 앞에 두고 뒷담화를 까시는 겁니까? 대체 그건 언제까지 우려 드실 건데요?”

  “사골처럼 푹푹푹.”

  

  

  푹에 맞춰 비싼 소고기를 젓가락으로 찌르면서 김 과장님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수현은 그들을 말리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일은 수현에게도 봉변과도 같았다. 종로에서 뺨맞고 온 김 아무개에게서 뺨맞은 한강의 이 아무개나 다름없었던 거다. 그녀는 제 친구의 애인이었고 둘이 싸우는 바람에 제게 조언을 청했고 자신은 조언을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고 말았고 화가 난 그녀가 와서 제 앞에서 울어버린 것이 일의 화근이었다. 맹세컨대 수현은 그녀와 아무런 썸씽도 없었고 저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당황했을 뿐이었다. 

  

  

  “수현 씨가 보기와는 다르군요.”

  “보기엔 얌전해 보이죠? 어이구, 술 들어가면 가관입니다. 오죽하면 광홍부의 마스코트겠어요.”

  “부장님!”

  “술 들어가면 말이죠, 쟤가 아주 그냥 노래방에서 납니다, 날아. 또 애교는 얼마나 부리는지…”

  

  

  수현은 귀를 틀어막고 싶어졌다. 비싼 고기나 먹자, 먹어, 먹는 게 남는 거다. 쌈장에 고기를 찍어 입에 밀어 넣으면서 수현은 울상을 지었다. 지난 번 회식 때 여자 아이돌 노래 부른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었다. 춤도 살랑살랑 추면서 말입니다, 얼마나 귀엽던지, 이사님도 꼭 보셔야 할 텐데 말이죠, 쭉 이어지는 부장님의 말에 수현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

  “뭘 그런 걸 그렇게 우렁차게…”

  

  

  수현은 꽁지에 불붙은 강아지처럼 화장실로 도망쳤다. 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얼굴을 더 새빨갛게 만들었다.

  

  

  

  

  

  

  

  

  

  

  

  수현은 찬물을 마구 얼굴에 덮어씌웠다. 빨갛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톡톡 페이퍼타월로 얼굴의 물기를 두드려 닦아내다 수현은 거울로 비치는 얼굴에 어깨를 움찔했다. 풍기는 위압감만으로도 어깨가 움츠러들게 하는 사람이다. 

  

  

  “짓궂은 사람들이군요.”

  “…그래도 좋은 분들이세요.”

  

  

  짓궂긴 하지만, 수현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그의 말을 인정했다. 홍보부라는 명칭에 어찌나 잘 부합해주시는지 다들 말빨 하나는 따를 사람이 없고 말 지어내는 건 천재적이다. 거기에 인맥은 또 얼마나 넓은지 광홍부에 말이 돌았다 하면 다음날, 아니 그날 저녁엔 귀도 어두운 주차장 김 씨 아저씨까지 아는 건 일도 아닌 거다. 그런 사람들의 한복판에서 그런 일을 당했으니 저것이 두고두고 안 씹히면 이상한 거다. 

  

  

  “악의는 없어 보이는데요.”

  “그냥 놀리시는 거예요.”

  

  

  반응 보이면 더 좋아하는 건 너무너무너무 잘 알아서 수현은 꾹 참고 언제나 반응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꼭 끝까지 긁고 긁어서 터질 때까지 긁는 그들의 행태에 이젠 애초에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면 타겟은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옮겨가므로. 페이퍼 타월을 하나 더 뜯어 턱의 물기를 닦아내고 수현은 톡 뭉쳐진 젖은 휴지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근데 정말입니까?”

  “…예?”

  “희대의 카사노바라는 거 말입니다.”

  “예?”

  

  

  수현은 입을 벌린 채 어버버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이 사람 그렇게 안 생겨놓고는 순진하게 저런 걸 묻는단 말이야? 그거야 당연히 장난이지! 수현은 억울함에 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카사노바라니, 차라리 여자 아이돌 춤 살랑살랑 추는 마스코트라고 불러주세요. 살면서 카사노바라고 불릴 짓은 한 번도 안 하고 살았단 말입니다.

  

  

  “왠지 저 분들의 심리를 알 것 같군요.”

  “예?”

  “아닙니다. 그럼 먼저 나가보지요.”

  “예…”

  

  

  수현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까만 셔츠에 감싸인 등이 잔상처럼 남은 것 같아 눈을 몇 번이나 깜빡였다. 손을 씻고 세수까지 했다는 사실을 순간 잊고 다시 비누를 손에 묻히다가 수현은 허옇게 거품에 감싸인 손을 망연히 내려다보았다.

  

  

  “근데 왜 온 거지?”

  

  

  화장실에 왔으면 볼일을 보든가, 손이라도 씻든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수현은 애써 내놓은 비누거품을 다시 흐르는 물에 씻어냈다. 설마 나 때문에… 는 아니겠지. 그냥 왔다가 생각해보니 볼일이 없어서 그냥 돌아갔나 보다.

  

  

  “못난 얼굴은 아닌데…”

  

  

  사람은 참 비교를 하게 된단 말이지. 오늘 아침에도 면도를 하고 난 잘생겼다, 를 세 번이나 외치고 나왔는데. 회사에 오니 평생 한 번 볼까 말까한 엄친아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으니 지금은 이 얼굴이 전혀 잘생겨 보이지 않는다. 얼굴에 콤플렉스는 정말 별로 없이 살았다구. 못생기지 않았단 말이야. 호감형이고 여자들도 꽤 좋아하고 남자들도 좋아하는 얼굴이라구. 수현은 애써 자신감을 고양시켰다. 난 잘생겼다, 잘생겼다, 잘생겼다, 세 번을 중얼거리고 나자 조금 잘생겨 보인다. 흠, 이정도면, 하고 턱을 치켜세웠다가 한숨을 쉬고 수현은 페이퍼 타월을 뜯어 손만 닦았다. 

  하지만 아무리 주문을 걸어도 동그란 턱선이 날 서 보이진 않았다.

  

  

  

  

  

  

  

  

  

  

  

  노래방은 싫어요, 싫다구요, 수현은 이들이 제게 무엇을 요구할지 너무, 매우, 정말 잘 알았다. 마스코트라는 이름에 걸맞은 짓을 시키려고 하겠지. 예쁜 짓 해보라고 억지로 맥주를 먹이고 넥타이를 보타이처럼 묶어준 후 온갖 귀여운 노래들만 시킬 거였다. 여자애들보다 네가 더 귀여워! 라는 말도 안 되는 아부와 함께. 대체 왜 이 팀은 직장 내 성희롱이 나한테만 퍼부어지는 거냐고.

  

  

  “이사님, 노래방 싫으십니까?”

  

  

  싫다고 해주세요, 제발요, 네?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무릎 꿇고 빌 테니 노래방만큼은 제바알― 물론 조삼모사, 지금 하나 나중에 하나 마스코트 질을 계속 하게 될 테지만 지금은 지금만큼은!! 

  

  

  정시우 이사의 시선이 제게로 향함에 수현은 말 그대로 애원의 눈빛이 되었다. 간식을 앞에 둔 강아지 같은, 서른인 남자에겐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동글동글한 머리스타일이 잘도 어울리는 동안의 수현이 짓는 애원어린 표정은 여자들의 귀여워! 하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약간 량이지만 소주 몇 잔을 마신 수현에겐 그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노래방 좋네요, 가죠.”

  “이, 이사님!”

  ‘마지막 남은 보루마저! 부르터스 너마저!’를 장렬하게 외치면서 쓰러져 버렸으면 좋겠다. 수현은 마지막 방법으로 아픈 척 하기에 이르렀다. 

  

  

  “부장님, 저 속이…”

  “허허, 노래방 가면 우선 수현 씨부터.”

  “머리가 좀…”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 뭐지, 김 주임?”

  “부장니임―”

  “귀여운 노래 말이야, 귀여운 노래.”

  

  

  수현은 침울해졌다. 내 편은 아무도 없구나, 새삼 깨달은 사실에 과장되게 흑흑거렸을 뿐이었다. 알콜이 살짝 돌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수현의 일인 극이었다. 이제 시동이 걸렸으니 기어를 당기고 악셀만 밟으면 된다. 팀원들은 신이 났다. 잘생긴 이사가 왔는데 아주 그냥 매너도 좋고 돈도 잘 쓰고 성격도 좋은 것 같고 꼬장꼬장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다가 오랜만에 수현이 발동 걸릴 기미까지 보인다. 이런 날은 필히 노래방을 가줘야 한다. 인과 관계 따위는 필요 없다.

  

  

  “이 대리님, 노래방 가시는 거예요, 가실 거죠?”

  “…안 가면 어떻게 되는데요?”

  

  

  수현은 저보다 직급이 아래면서 저를 쥐고 흔들어대는 김 주임을 고기집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 올려다보았다. 노래방에 가서 뺑이 돌려질 생각을 하니까 벌서부터 다리가 풀렸다. 막상 시작하고 나면 정신없이 놀아재끼게 되지만 그 전의 쪽팔림은 어찌 감수할 것이며, 그 후의 두고두고 안주 거리가 될 내 인생은 어찌할 것인가.

  

  

  “가죠, 수현 씨.”

  

  

  턱 팔을 붙잡은 억센 손이 그대로 끌어 올려 수현을 일으켜 세웠다. 어안이 벙벙해진 수현이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꼬꼬마 시절 이후로 이렇게 온전히 남의 힘에 의해서 움직여진 건 처음이다. 

  

  

  “…깜짝이야.”

  “반응이 늦군요.”

  “이사님, 꼭 노래방 가셔야겠어요?”

  

  

  수현은 직구로 질문을 날렸다. 저, 정말 가고 싶지 않아요, 라고 얼굴에 쾅쾅 박혀 있는 듯 해 무표정한 얼굴의 그가 조금 웃었다. 불쌍해 보이려고 축 늘어진 채 말 끝도 늘리는 것이 어떻게 하면 좀 더 애처롭고 귀여워 보일 수 있을까 수십 년 연구한 사람 같았다. 장인 정신이 묻어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행동이 지어낸 것이라거나 꾸며낸 것이라면 그 효과는 완전히 반감되겠지만 수현의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술이 들어가자 적당히 애교스러워진 그는 원래 그런 성격처럼 보였다.

  

  

  “꼭 가고 싶군요.”

  “…무심한 사람.”

  

  

  툭 던지는 수현의 말은 그를 웃게 하기에 충분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연습하는 건 아니죠?”

  “연습이라뇨?”

  

  

  학습된 여우거나, 네추럴 본 여우거나. 낼름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는 수현의 얼굴을 가만 쳐다보던 그가 먼저 돌아 앞장섰다. 저쪽에서 그들을 부르는 손을 따라 수현도 다들 미워, 를 중얼거리면서 넓은 등을 바라보면서 걸었다. 오늘은 또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까, 무슨 춤을 춰야 할까, 집에는 과연 들어갈 수 있을까. 부장님한테 끌려서 사우나에서 자게 되는 건 아닐까. 수현은 앞서가는 어깨가 간헐적으로 떨리는 건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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