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24)

  정신이 없네, 수현은 누군가 여기저기 꼬챙이로 푹푹 찔러 놓은 듯 들쑤셔진 사무실 분위기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출근카드를 찍고 들어오자마자 제게 와서 그거 알고 있냐고 묻는 비서실 직원을 간신히 떼어낸 참이었는데 이번엔 경리 한 명이 또 붙었다. 이 대리님, 그거 아세요? 대체 뭘 말입니까, 하고 덤덤하게 대답하고 돌아서는 수현의 뒤에서 수현이 피하고 싶어해마지않는 부장의 목소리마저도 들려왔다. 수현은 절대 그를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한 번 붙잡히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고생 뺨치는 그의 수다를 싫어했다.

  

  

  “이 대리는 모르나 보네.”

  “그러니까, 대체 무슨 소리들을 하고 계신 건데요?”

  “홍보 이사 새로 왔잖아.”

  “네?”

  “외국에서 유학중이던 회장 네 번째 아들 말야, 귀국해서 홍보부 이사로 들어왔다는데.”

  “그럼 직속 상사잖아요.”

  “그렇지, 문제는 나이가 겨우 서른둘이라는 거랄까.”

  

  

  서른 둘, 수현은 역시 은 숟가락도 아니고 순도 100프로 다이아몬드 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인간은 다르다고 혀를 내둘렀다. 한 방에 이사라니. 베일에 싸여 있던 회장님의 네 번째 아드님은 회사 내에서 굉장히 유명했다. 첫째, 둘째 아들들은 이미 이사 자리를 하나씩 꿰어 차고 열심히 일을 했지만 넷째인 그 아들은 어떤 인간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완전히 가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들려오는 소문에는 방탕하다는 둥, 여자 편력이 화려하다는 둥―누군지 알지도 못하면서 이상한 소문은 잘도 돌았다.― 사고를 쳐서 외국에서 돌아오지 못했던 거라는 둥 별별 것이 다 있었다.

  

  

  “내가 수현 씨한테만 알려주는 건데 말이야―”

  

  

  부장님이 알고 계신 거면 이미 소문은 돌고 돌아 주차장의 김 씨 아저씨까지도 아는 얘기일 텐데요. 높은 직위일수록 소문이 늦다는 건 조직 사회의 자명한 사실임을 수현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장도 수현 자신보다는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거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는 원만히, 또 맞춰줄 때는 잘 맞춰주는 성격이었지만 남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타입은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심드렁한 편. 

  

  

  “외모가 아주 출중하다더라고.”

  “…그래서 저렇게 난리군요.”

  “어제 잠깐 회사에 왔었다는데 회장실 비서가 난리가 났다니까. 알잖아, 그 비서 얼마나 콧대 높은지.”

  “알죠.”

  “홍보부 이사로 배정받았다니까, 오늘 여기 팀 여자 직원들 봤어? 난 우리 팀 여자들 얼굴에서 저렇게 광채 나는 거 처음 본다니까.”

  

  

  수현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침의 여유로운 커피는 무조건 자판기 커피를 외치던 김 주임은 웬일로 4000원짜리 커피를 들고 있었고 얼굴에는 펄 파우더를 얼마나 턱턱 두드린 건지 콧대와 광대가 번쩍거렸다. 골드 미스에 평소 모토는 무조건 편한 걸 고수하던 박 과장은 평생 입지도 않았을 하늘하늘한 블라우스에 샴페인 골드 빛깔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어쩐지 사무실 안이 번쩍거리더라니. 평소에도 잘 꾸미고 다니던 경리 아가씨는 아주 신부화장을 하고 왔다. 바로 시집가도 되겠다.

  

  

  “굉장하군요.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얼굴만 봐도 여자가 아주 줄줄 따르겠다던데? 이 대리는 어떡하나.”

  “뭐가요?”

  

  

  뾰족한 눈매로 부장을 쳐다보던 수현은 상사라는 사실을 깨닫고 눈매를 누그러뜨렸다. 아무리 편안하게 대해주고 친구처럼 지낸다고 해도 상사는 상사다. 

  

  

  “이 대리가 광고 홍보팀 마스코트였잖아. 인기도 많고. 근데 이제 그거 날라가게 생겼다 이거지.”

  “…마스코트는 얼굴로 하는 거 아니에요.”

  “물론 그렇지! 하지만 얼굴 뿐 아니라 뒷배경에 후광까지 비치는 경우는 좀 다르잖아. 이건 회장실 비서 아가씨가 홍보 이사 실사판 사진이라면서 주고 간 거야, 잘 봐.” 

  

  

  나이가 마흔 다섯이 다 되셨으면서 참 세상 즐겁게 사신다니까. 수현은 부장이 쥐여 준 빳빳한 컬러 사진을 뒤집어 보았다. 사진은 사람 얼굴 위에 새하얀 빛무리를 합성해 놓은 것이었다. 지금 나랑 장난해? 뿌득, 수현은 웃는 낯으로 이를 한 번 갈고 사진을 꽉꽉 구겨버렸다.

  

  

  

  

  

  

  

  

  

  

  

  수현이 일하는 이 회사는 대기업을 꼽아 보라고 하면 열이면 열 세 손가락 안에 꼽아내는 곳이었다. 그런 곳을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입사했으니 수현은 꽤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대학 과 적성도 잘 살려 광고홍보부에 배치 받고 팀원들도 죽이 잘 맞아 회사생활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신문 기사나 잡지의 꼭지로 자주 실리는 직장 상사와의 갈등과 스트레스는 딴나라 이야기일 정도로. 특히 현재 최고 상사라고 볼 수 있는 부장과의 관계가 좋아 수현은 직장생활을 정말 편하게 했다. 물론 과장님도 차장님도 친절하긴 매한가지였다. 

  바로 저번 주에 새로운 광고가 방송을 탄 터라 쌓이는 일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많았음에도 수현은 웃는 낯을 지우지 않았다. 일은 즐거웠다. 사람들이 좋으니 일도 좋았다. 마구 재촉하는 사람도 타박하는 사람도 없으니 일의 능률도 매우 높은 편이었다. 그 기세를 몰아 수현은 시청률을 분석하고 인터넷 반응을 모으는 까다로운 일도 순조롭게 해나가던 참이었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여기가 광고홍보부입니까?”

  

  

  중후한 울림이 있는 아주 매력 있는 목소리였다. 의자 끌리는 소리와 함께 여자들 백 뒤적이는 소리와 파우치 열리는 소리, 분첩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수현은 모니터에 박고 있던 고개를 느릿하게 돌렸다. 아, 젠장. 진짜 잘생긴 남자였다. 수현은 자신이 은근히 부장의 말이 틀리길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적어도 마스코트로는 남고 싶었다구요, 아무리 마스코트가 얼굴로 하는 건 아니라지만… 수현은 부장을 말을 뼛속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제부로 홍보부 이사를 맡게 된 정시우입니다.”

  

  

  약삭빠른 최 과장님이 부장님보다 먼저 이사의 손을 붙잡고 흔들었다. 수현은 슬그머니 다시 자리에 앉아 분석하다 말은 시청률 표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계산을 하다 말아서 어디까지 했는지도 기억이 몽롱했다. 이래서 중간에 일 끊기는 게 싫다니까…

  

  

  “이 대리.”

  “…….”

  “이수현 씨!”

  “…네?”

  

  

  수현은 미적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장님이 사색된 얼굴로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왜 나까지… 생각보다 정시우 이사는 권위주의자가 아닌 모양이었다. 과장님까지만 인사하면 되지 뭘 대리랑 주임에 경리까지 불러서 다 인사를 하나 몰라, 불평불만을 속으로만 중얼거리면서 수현은 정시우 이사 앞에 섰다. 크구나, 키도 큰데, 덩치도 있고. 어깨빨이 장난이 아니구나… 셔츠가 아주 팽팽해서 터지려고 하네. 운동은 얼마나 열심히 했을까. 툭 어깨를 치는 손에 수현은 놀라 손을 내밀었다. 그제야 제가 남자의 몸을 여기저기 뜯어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수현입니다.”

  “반갑습니다.”

  

  

  전 별로 안 반가운데요. 어차피 이사인 당신과는 별로 마주칠 일도 없을 거 같고… 부장님 까지는 같이 일하지만 이사는 보통 컨펌 내리는 역할일 테니 상관없겠지 싶어 수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얼굴도 더럽게 잘생겼잖아. 호남에, 훈남에, 엄친아라는 말이 어울리는 정시우 이사에서 휙 시선을 돌리면서 수현은 뚱하니 입술을 내밀었다. 정말로 광홍부 마스코트라는 내 자리는 물건너 가나요.

  

  

  “저녁에 회식 합시다. 직급만 이사지 일은 처음이니까 많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럼요, 그렇고 말구요.”

  “그리고 저도 여기서 일합니다.”

  “예?”

  

  

  이제 자리로 돌아가도 되겠지 싶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던 수현은 여기서 일한다는 이사의 말에 휙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을지 모르는 정시우 이사가 시퍼런 안광으로 뚫어져라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요, 왜 저를 그렇게 쳐다보시나요. 제가 좀 고깝게 봤다고 이런 식으로 복수하시면… 채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이사의 눈은 다른 쪽으로 돌아갔다. 그냥 타이밍이 좋지 않았나 보다. 

  

  

  “직급만 이사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사라고 커다란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는 거 적성에 안 맞습니다.”

  “역시 외국물 먹고 오셔서 그런지 화끈하십니다. 그럼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어이, 이 대리!”

  

  

  예예, 이런 잡일은 다 제 몫이죠. 나도 똥개 한 마리 키우든가 해야지 원. 부장이 차장한테 시키면 차장은 과장한테 미루고 과장은 나한테 미루고. 요즘엔 아예 부장님이 애초부터 제게 모든 일을 떠맡기기 시작했다. 수현은 짧은 한숨과 함께 시청률 표를 덮어버렸다. 오늘 제대로 일 하긴 글렀다.

  

  

  “이 대리님 하기 싫으시면 제가 대신…”

  “그냥 제가 합니다. 김 주임.”

  

  

  수현의 얼굴에 아주 짧은 순간 싫은 표정이 지나가자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있던 김 주임이 손까지 번쩍 들면서 귀찮은 일을 자청했다. 하지만 수현은 왠지 그녀와 정시우 이사를 같이 뒀다간 더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아 툭 말을 잘라버렸다. 

  

  

  “그럼 부탁합니다. 이수현 씨.”

  “그냥 이 대리라고 부르세요.”

  “전 이름 부르는 걸 더 좋아합니다.”

  

  

  외국물 먹고 오셨댔지, 수현은 왠지 모르게 계속 삐뚤빼뚤하게만 그려지는 생각의 끝을 탁 잡아챘다. 잘난 남자는 다 적이지만 저 남자는 상사다, 상사다, 상사다, 내 월급 주는 상사다, 상사다… 상사지만 너무 잘생겼잖아. 또 뚱하니 튀어나오려는 입술을 꾹 밀어 넣고 수현은 어떻게 할깝쇼, 하는 얼굴로 부장과 이사를 번갈아 보았다.

  

  

  

  

  

  

  

  

  

  

  

  정시우 이사의 자리는 부장님 자리로 낙찰이 됐다. 그는 번거로울 테니 비어있는 자리를 그냥 쓰겠다고 했지만 수현이 봐도 그 자리는 이사라는 사람이 쓰기엔 사무실 구석탱이로 너무 외진 곳이었다. 부장님의 짐을 다 옮기고 수현은 여름날 강아지처럼 혀까지 빼물고 헥헥 거렸다. 이젠 이사실에 가서 거기 있는 짐들을 다 가지고 내려와야 할 터였다.

  

  

  “…귀찮아.”

  

  

  그냥 김 주임 시킬 걸. 여자지만 저보다 더 무거운 것도 번쩍번쩍 드는 헬스 경력 8년의 그녀를 떠올리고 수현은 우울해졌다. 저번에 헬스클럽에서 만났을 때 그녀는 저보다 쇳덩이를 세 개나 더 올리고 팔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럼 아마 짐들도 저보다 한 번에 한 박스는 더 들 수 있을 거다. 시원한 냉커피를 한 잔 들이키고 수현은 와이셔츠를 둘둘 말아 올렸다. 회사 안은 춥다는 이유로 긴팔을 입은 것이 실수였다. 

  

  

  “이 대리, 도와줄까?”

  “과장님은 안 도와주시는 게 도와주시는 거예요. 또 저번처럼 허리 삐끗하시지 마시구요.”

  “내 마누라랑 아주 토씨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말하는 구만.”

  “허리 담 걸리는 거 습관성이라구요. 걱정해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알지, 이 대리 착한 거 내가 모르나. 이 대리는 항상 그 말투가 문제라고, 말투. 톡 쏘지 말고 나긋나긋하게.”

  “언제는 이게 매력이라고 하셨으면서.”

  “그것도 매력이긴 하지.”

  

  

  허허, 사람 좋게 웃는 과장님을 뒤로 하고 수현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카트 하나 정도는 어디서 빌릴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딱히 구할 곳이 없었다. 이사실 앞에 가자 박스 들이 다섯 개 정도 놓여 있었다. 꽤 깔끔하게 정리 되어 있는 터라 그리 힘들진 않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박스를 번쩍 들고 수현은 옆에 있는 박스를 발로 툭 건드려보았다. 가벼우면 같이 올려서 가져가려고 했는데 발로 밀었을 때 전―혀 밀리지 않으니 이건 포기해야겠다. 

  

  

  수현이 옆에 있는 다른 박스를 툭 치는 찰나 이사실 문이 열리고 검은색 셔츠 차림의 정시우 이사가 나왔다. 순간 그 모습이 무슨 흑표범 같아 수현은 힉, 숨을 한 번 들이켰다. 저 박력, 여자들이 깔딱깔딱 넘어가는 이유가 있구나. 

  

  

  “무겁지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그럼.”

  

  

  아니, 저기요, 사람이 일하고 있는 걸 보면 도와주는 게 인지상정 아닙니까, 예? 무겁지 않냐고 물었을 때 ‘네, 무거워요.’하고 바로 대답할 사람이 어디 있으며 뭘 해도 삼세번이라고 세 번은 물어줘야 하는 거라구요. 미국 물 먹으면 다 그렇게 되는 겁니까!! 하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아주 가슴이 벅찰 정도로 차올랐지만 수현은 입을 꾹 다물기만 했다. 

  

  

  “들어줄까요?”

  “예?”

  “무겁다고 얼굴에 쓰여 있습니다만.”

  

  

  네, 솔직히 많이 무겁네요. 대체 뭐가 들었길래 이렇게 무거운 가요. 설마 안에 다 책이 들어있다고는 하지 마세요. 그럼 정말로 던져버리고 싶을 거 같으니까. 수현은 회사 책꽂이에 오만 잡다한 책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싫었다. 읽지도 않는 책을 꽂아 놓아서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바닥에 일거리를 놓아두고 나중에 없어졌다고 난리를 치는 사람들을 꽤 봐왔기 때문이었다. 책은 그냥 집에서, 제발 그냥 집에서 읽으세요, 예?

  

  

  “그럼 들어주세요.”

  

  

  수현은 더 이상 거부하지 않고 그에게 박스를 떠넘겼다. 그리고 발로 툭툭 건드려본 결과 제일 가볍다고 생각되는 박스를 골라 제가 들었다. 아까보다 배는 가볍다. 이건 다행히 책이 아닌 모양이었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서 조심히 균형을 맞춰 들고 수현은 엘리베이터의 아래로 향한 화살표를 눌렀다.

  

  

  “힘듭니까?”

  “안 힘들 리가 없잖아요, 지금 부장님 책상 다 치우느라…”

  

  

  무슨 친구한테 하는 것처럼 투덜대다 수현은 뚝 입을 다물었다. 묻는 목소리가 되게… 척추를 직격으로 관통하는 느낌이랄까, 수현은 왠지 붉어졌을 것 같은 목덜미를 긁적였다. 그리고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목소리나 행동이 부드러워서 편하게 대하게됐다. 

  

  

  엘리베이터 내부 팔걸이에 박스를 올려놓고 수현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거울에 비친 옆선이 참 멋지구나, 절경이로세. 신이 당신을 만들 땐 참 성심성의껏 깎았나 보오, 

  

  

  “난 대충 뭉개놓고.”

  

  

  툭 터져 나온 수현의 말에 거울 속의 그가 고개를 돌렸다. 앞판은 더 멋지구나. 어쩜 저렇게 눈이 길고 곧을까, 눈은 또 초롱초롱하네. 하아, 수현은 한숨과 함께 제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정말 대충 뭉개 놨다.

  

  

  “콤플렉스 있을 만한 얼굴을 아닌데.”

  “그럼요. 당연하죠.”

  

  

  지금 그 얼굴 가지고 콤플렉스 있다고 하면 이 세상 남자들 다 죽으라는 거? 수현은 샐쭉하게 눈을 올려 뜨고 입술을 삐죽였다. 그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 점이 귀엽다고 주위 여자들에게서―남자들에게도 꽤― 인기가 좋았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데는 좋은 것이 못 되었다. 

  

  

  “잘생겼군요.”

  “예?”

  

  

  자화자찬도 참― 이라고 생각하던 수현은 순간 새빨갛게 얼굴을 붉혔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이 제 얼굴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엄마야, 난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지. 굳어진 채 수현은 그가 제 박스를 가져가 두 개의 박스를 한꺼번에 드는 걸 보고 얼음이 풀린 것처럼 후다닥 움직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는 수현은 툭 밀어 넣은 그가 눈을 찡긋하며 입을 열었다.

  

  

  “수현 씨는 다른 짐 가지고 내려 와요.”

  

  

  다른 남자가 했다면 욱, 하고 토기가 올라왔겠지만 조금은 느끼하고 능글맞은 그 행동마저 죽여주게 잘 어울렸다. 수현은 저절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한참 후에야 이사실로 올라가는 층의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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