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차우현은 병원으로 옮겨져 급히 수술을 받았다. 한상철이 일부러 깊게 찌르지 않아 장기가 다치지는 않았다. 피를 좀 흘리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수술 역시 금방 끝난 편이었다.
똑똑.
밖에서 작게 노크 소리가 들렸다. 1인실 앞을 지키고 있는 시커먼 가드들한테는 이미 말해 뒀다. 고결이라는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그러니 저 노크 소리는 고결이 왔다는 뜻이었다. 생각보다 좀 늦었네.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며 차우현은 그런 여유로운 감상이나 떠올렸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스르륵 옆으로 문이 밀렸다. 침대에 등을 기대고 반쯤 앉은 차우현이 문가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푹 숙인 고결이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차우현은 입술을 끌어 올리며 평소처럼 부드럽게 웃었다. 결아.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작게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고결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혹시 귀국하자마자 바로 여기로 온 거야?”
미안. 걱정 많이 했지? 작은 사과를 덧붙였다. 고결의 얼굴은 복잡했다. 오는 동안 울기라도 한 건지 두 눈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저게 무슨 얼굴일까. 차우현은 고결의 얼굴에 담긴 감정을 단어로 치환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슬픔이라고 하기엔 마냥 슬퍼 보이지만은 않고, 그렇다고 분노나 배신감 같은 것으로 칭하기엔 약했다. 아, 혼란스러운 건가. 이게 제일 적당한 것 같았다. 차우현은 현재 고결의 상태를 혼란스러움으로 정의 내렸다.
“…형.”
“응.”
“괜찮은 거예요?”
고결의 물음에 차우현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행히 장기가 다치진 않았대. 수술도 잘 끝났고 상처 아물기만 하면 괜찮을 거래. 그 대답에 고결이 입술을 감쳐물었다. 저 입술이 어떤 고민을 뜻하는지 알았다. 차우현은 침착하게 고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형, 제가 형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솔직하게… 말해 주셨으면 해요.”
고결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차우현은 두 눈을 살짝 크게 뜨고서 의아하단 표정을 꾸며 냈다. 여기까지 와 놓고도 사실을 확인하기가 망설여지는 건지 고결이 입술을 벙긋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린 후 겨우 입 밖으로 흘러나온 말은 혹시, 였다.
“혹시… 혹시 형이 한상철 씨한테 사주한 거예요? 이 모든 게… 그러니까 차 회장님이 죽고 형이 다친 게, 그게 다 형이 한 일이에요? 맞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결아?”
차우현은 연기를 했다. 고결이 제게 왜 저런 걸 묻는지 다 알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당혹스러운 얼굴을 만들어 냈다. 고결이 한국에 도착하면 저를 찾아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2주간 자신이 챙기지 못했으니 우편함에 손을 댈 것이라는 것도. 그래서 일부러 편지를 끼워 뒀다. 고결이 볼 수 있게끔, 그걸 보고 모든 사실을 알아챌 수 있게끔.
“편지를 봤어요. 아까 집에 도착해서 가방만 두고 바로 형네 집으로 갔거든요. 그런데 우편함을 봤더니 편지가 있어서… 그래서 읽었는데….”
어쩐지 말하는 게 힘들어서 고결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높은 산에 올라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꾸만 숨이 찼다.
“형의 제안을 받아들인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형이 수술 잘 받고 무탈하길 바란다고…. 그런 말이 쓰여 있었어요.”
말을 하면 할수록 목소리가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고결은 차우현의 눈치를 살폈다. 방금과는 다르게 표정이라는 걸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이 어색했다. 저렇게 서늘한 얼굴을 한 우현은 알지 못했다. 고결이 모르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네?”
“그래서 뭐가 알고 싶은 거야? 진짜로 내가 그런 게 맞냐고? 그게 궁금한 거야?”
묻는 말이 차가웠다. 고결은 주먹을 힘껏 안으로 말아 쥐었다. 파고든 손톱 탓에 손바닥에서 화끈거리는 열감이 올라왔다.
“맞아. 내가 그랬어.”
“…….”
“내가 한상철 씨를 찾아가서 제안했어. 차 회장을 죽이자고. 그걸 한상철 씨가 받아들였고.”
“…왜요? 대체 왜 그랬어요?”
얼음장처럼 차갑던 차우현의 얼굴 위로 이번엔 분노가 서렸다. 결이 널 죽이려고 했으니까. 짓이기듯 힘주어 발음하는 말에 고결이 느리게 눈을 깜빡거렸다. 죽여? 누가? 차 회장이 나를? 대체 왜? 충격으로 살짝 벌어진 고결의 입에서 혼잣말과도 같은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그게 무슨….”
“난 사실 죽은 차태민 사장의 아들이 아니야. 차 회장의 아들이지.”
차우현은 덤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차 회장이 얼마나 우성 알파라는 존재에 대해 비틀린 집착을 가진 인간이었는지. 그 집착으로 태어난 게 자신이라는 사실도. 차 회장이 끝내 한도연과 차태민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까지 모두 다. 갑자기 쏟아진 사실들을 받아들이는 게 버거운 건지 고결이 작게 비틀거렸다. 결국엔 침대 끝에 털썩 걸터앉았다.
“결이 너까지 그 사람 손에 잃어버리면 살 수 없을 것 같았어. 그래서 내가 먼저 그 사람을 없앴어.”
“…….”
“내가 전에 말했잖아. 결이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 좋은 사람 아니라고.”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고 있던 고결이 고개를 틀어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은 차우현을 바라보았다. 고결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차우현의 얼굴이 슬프게 일그러졌다.
“…이젠 내가 무서워? 내가 끔찍해? 내가 결이 네가 아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싫어?”
그렇게 묻는 목소리에는 숨기지 못할 물기가 눅눅하게 묻어났다. 그 물음 앞에서 고결은 좌절했다. 이제야 모든 것이 실감 났다. 아득한 정신을 비집고서 무서울 정도로 현실감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우현이 자신을 위해서 사람을 죽였다. 그것도 생물학적 친아버지를. 직접 죽이지 않았대도 이건 염연히 살인 교사였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다. 그런데 그 죄를 지은 게 자신 때문이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고결은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서 소리 없이 신음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차우현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살짝 위로 올라갔다. 이것으로 고결이 자신에게 느끼는 죄책감과 부채감은 더할 나위 없이 커질 것이었다. 제 아랫배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고결은 매번 지금 이 순간, 이 시간으로 돌아올 게 분명했다. 또 한 번 실감할 것이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우현이 무슨 짓까지 저질렀는지를.
“결아. 너는 착각이 아니냐고 했지만….”
조심스럽게 운을 뗀 차우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했다.
“이건 사랑이 맞는 거 같아. 나는 널 사랑해.”
마침표가 찍힌 고백에 고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차우현의 두 눈에서 투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그런 차우현을 바라보는 고결의 눈에도 빠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난 고결이 차우현의 옆으로 다가갔다. 말없이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차우현은 곧바로 팔을 뻗어 고결의 허리를 감쌌다. 판판한 가슴에 이마가 닿았다.
“제가… 제가 형한테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게 하나 있는데요. 저도 형을 사랑해요. 형이 알면 놀랄 만큼 아주 예전부터 형을 좋아해 왔어요.”
오래된 진심을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꾹꾹 눌러 담았다. 평생 전할 일이 없을 거라 믿은 제 마음이 먼 길을 돌아 결국엔 우현에게 닿았다.
“저도 형을 사랑하니까… 그러니까 형이 하고 싶은 대로 해요. 형이 하자는 대로 다 할게요.”
우현이 제게 품은 감정이 진짜 사랑인지 아닌지는 이제 더 이상 상관이 없었다. 책임감이래도 괜찮고, 착각이래도 괜찮았다. 우현이 옆에 있어 달라면 옆에 있고, 회사를 그만두라면 그만두고, 우리가 각인할 걸 세상에 알리자고 하면 알릴 것이었다. 뭐든지 우현이 하자는 대로 다 해 줄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우현이 하고 싶은 대로 해 줄 것이었다. 그렇게 해 주고 싶었다.
‘드디어.’
두 눈을 감은 차우현은 고결의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을 더했다. 드디어 토끼가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왔다.
차우현은 숲속에 있는 작은 초막집에서 혼자 살아가는 아이였다. 차우현은 자신이 외롭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그러던 어느 날, 차우현의 앞으로 새하얀 토끼 한 마리가 지나갔다. 그 토끼를 보고 나서야 차우현은 제집이 아무것도 없이 텅 비었음을, 자신이 무척이나 외로운 존재였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차우현은 그 토끼를 자신의 초막집으로 들이기 위해 포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좋아하는 토끼를, 가지고 싶은 토끼를 자신이 사는 작은 초막집으로 오게 만들기 위해 그동안 놓은 덫은 모두 잊기로 했다. 어쨌거나 토끼가 제 발로 자신이 사는 초막집까지 찾아왔다는 거, 그게 차우현한테는 가장 중요했다.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차우현은 그 옛날에 자주 부르곤 했던 동요의 마지막 소절을 속으로 조용히 읊었다. 이제는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이 토끼가 밖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만들 것이었다. 이 집에 토끼와 행복하게, 영원히 갇힐 것이었다.
비로소 완전하고 완벽한 끝이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