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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 트랩-2화 (2/71)

2화

하지만 고결은 그 웃음에서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 뭐라고 딱 꼬집어 설명은 못 하겠으나 그 잔잔한 미소가 어째서인지 조금은 이질적으로 다가온 탓이었다. 고결은 이유 모를 위화감의 원인을 찾기 위해 차우현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반듯하고 진한 눈썹부터 호선을 그리고 있는 조금 얇은 입술까지. 따라 그리듯 눈동자를 움직여 봐도 딱히 알아차린 건 없었다. 평소와 똑같았다.

“내 생각은 결이 너랑 조금 다른데.”

발견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빈틈없이 맞물리며 예쁘게 휘어진 가느다란 눈매. 그 안에 숨겨진 차우현의 눈동자가 위험한 빛을 품은 채 일렁이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은 애초에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난 그 새가 행복할 거 같아. 깨끗한 잠자리. 부족함 없는 음식. 그리고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날개까지 잘라 가며 옆에 두려는 주인. 어떻게 보면 새한테 있어서는 그 상황 자체가 유토피아 아닐까? 자유를 박탈당한 대신에 안전한 보금자리와 이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해 주는 사람을 얻게 된 거잖아. 이 정도면 자유 하나쯤은 포기해도 괜찮은 조건 같은데?”

차우현의 맨 마지막 말은 물음표로 끝이 났다. 마치 그렇지 않냐고 고결의 동의를 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 고결의 입에서 탄식과도 같은 소리가 작게 흘러 나갔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해졌다. 묵직한 무언가로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새의 날개를 자르는 걸 그만큼이나 새를 사랑하는 행동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거구나. 놀라움과 깨달음, 그 어디쯤에 고결의 생각이 어지럽게 걸쳐졌다.

사실 고결의 입장에서는 좀 놀랍다 못해 약간은 충격적이기까지 한 사고방식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현이 이런 식의 사고를 할 줄은. 지난 8년간 우현의 옆에 붙어 있으면서 고결은 자신이 우현에 대해 모르는 것 없이 전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정정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제 보니 그건 오롯이 저의 자만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아.”

“…….”

“결아?”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고결의 눈앞에다 차우현이 장난스럽게 손바닥을 흔들었다. 애들끼리나 할 법한 장난이었다. 그제야 정신을 되찾은 고결이 다급하게 대꾸했다.

“네?”

“왜 그렇게 넋을 놓고 있어. 졸려? 피곤해? 좀 잘래?”

그렇게 묻는 목소리가 부드럽고 나긋했다. 여전히 입가에 해사한 미소를 띠고 있는 얼굴만큼이나. 이게 뭐라고 너무 넋을 빼고 있었다. 사람의 생각은 다양한 건데. 서로 다를 수도 있는데. 아니. 서로 다른 게 당연한 건데. 고결이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런 거 아니라 잠깐 딴생각 좀 하느라….”

죄송해요. 작은 사과가 덧붙여졌다. 그런 말은 왜 하냐는 듯 차우현이 입가에 띠고 있던 미소를 거두곤 한쪽 눈썹을 슬쩍 찌푸렸다.

“죄송은 무슨. 뭐 이런 거로 죄송해해.”

피곤하면 자리 피해 줄 테니까 꼭 말하라며 차우현이 제법 다부지게 당부했다. 고결을 바라보는 깊은 두 눈에서는 걱정이 묻어났다.

“그런 거 정말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형.”

차우현의 눈빛에 담긴 걱정을 읽어 낸 고결이 얼른 웃는 얼굴을 만들어냈다. 그제야 좀 안심이 된 건지 차우현도 다시 입술 끝을 당겨 웃어 보였다. 방금 전, 고결이 느낀 이유 모를 위화감은 차우현의 얼굴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런 게 존재했단 사실조차 흐릿할 정도로.

-1. 발현-

“고결 님, 2번 진료실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 네.”

드디어 이름이 호명됐다. 소파에 앉아서 휴대폰으로 우현의 기사를 읽고 있던 고결이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고결은 2번 진료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지금껏 고결은 자신이 꽤나 건강한 축에 속한다고 믿어 왔다. 단순한 허풍이나 근거 없는 자만심 같은 건 아니었다. 지난 25년,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병원 문턱을 넘어본 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고등학생 때 수술을 받느라 잠시 입원하고, 그 후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들락거렸던 걸 제외하면 아마 다섯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건강만큼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고결은 자신이 건강한 것이 아마도 어릴 때 운동을 한 덕분일 거라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놀이터나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게 전부인 9살. 고결은 그 어린 나이에 유도를 시작했다. 뭔가 거창한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고, 처음엔 단순히 체력 증진을 이유로 학원에 다니게 된 것뿐이었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가 직장 생활을 하고 계셔서 가정 형편이 괜찮았다. 막 부유하진 않아도 다른 애들처럼 학원 한두 개쯤 다닐 수 있을 정도는 됐다.

여러 가지 운동 중에서 왜 하필 유도를 했냐고 묻는다면 그 역시 시시할 정도로 별 이유 없었다. 그 당시 결이 다니고 있던 보습 학원 바로 옆에 유도장이 새로 생겼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 자리에 태권도장이 있었다면 태권도를, 검도장이 있었다면 검도를 배웠을 것이었다.

처음 엄마의 손에 이끌려 유도장을 찾았을 때만 해도 고결은 심드렁했다. 방과 후에 다닐 학원이 하나 더 늘어났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막상 다녀 보니까 의외로 괜찮았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주야장천 문제집만 풀어 대야 하는 보습 학원보다는 몸 쓰며 땀 흘리는 유도 쪽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그래서 끊지 않고 꾸준히 다녔다. 사실은 ‘잘한다!’, ‘멋지다!’, ‘우리 결이 최고다!’ 하는 사범님의 칭찬이 듣기 좋아서 더 열심히 한 것도 있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사부님의 칭찬은 고결을 춤추게 만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대신 유도에 흥미와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유도를 하다 보니 1년 후에는 또래 중에선 맞붙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실력이 부쩍 향상됐다. 2년 정도 지났을 땐 무려 3살이나 더 많은 중학생 형을 이기기까지 했다. 유도 경력은 고결보다 짧았어도 중등부에서 제법 덩치가 있는 형이었다. 유도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덩치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운동 종목이었다. 사실 모든 운동 종목이 거의 다 그렇긴 하지만. 고결의 실력을 본 사범님은 흥분에 찬 얼굴로 곧장 어머니를 호출했다.

“어머님, 결이한테는 재능이 있습니다. 얘는 무조건 운동 시키셔야 해요. 얘는 유도 해야 됩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고결은 지루하기만 하던 보습 학원을 그만 다니게 됐다. 그 대신 유도장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고, 각종 대회에 불려 나갔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유도를 하다 보니 어느새 청소년 국가대표까지 되어 있었다. 그대로 쭉 유도를 했다면 아마 어렵지 않게 성인 국가대표로도 발탁됐을 것이었다.

여기서 아마, 라는 부사가 쓰인 건 고결이 유도를 쭉 하지도, 성인 국가대표로 발탁되지도 못했다는 걸 의미했다. 고결은 유도를 그만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불의의 사고로 왼쪽 어깨를 다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됐다. 그게 19살 여름 방학 때 일어난 일이니까 시간으로만 따지면 벌써 6년 정도 된 이야기였다.

6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은 누가 봐도 건장한 체격이던 고결을 보통보다 조금 더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변화시켰다. 10년간 해 온 운동을 그만두었으니 온몸 구석구석에 붙어 있던 근육들이 빠져나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선명하던 초콜릿 복근이 흐려지고 어느 순간 옅은 11자의 선만 남게 됐다. 체격에 비해 유달리 굵고 탄탄하던 팔뚝과 허벅지 사이즈 또한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고결은 거기에 별다른 아쉬움을 느끼지 못했다. 애초 남한테 보여 주거나 자기만족을 할 목적으로 키운 근육이 아니었다. 그저 꾸준히 훈련을 받았다는 흔적이자 표상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못했다.

‘이상하네. 왜 이렇게 몸에 힘이 안 들어가지?’

그런데 아무래도 운동을 그만둔 후유증은 상당히 뒤늦게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면 7년 동안 야금야금 빠져나간 몸속의 근육이 기어코 어떠한 부작용을 만들어 낸 걸지도 몰랐다. 둘 중에 뭐가 원인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요즘 고결은 몸 상태가 영 좋지 못했다. 그 덕분에 태어나 처음으로 알게 됐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이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인지.

기분 나쁜 미열이 떨어지질 않았다. 한 것도 없는데 괜히 피곤하고, 노곤했다. 몸속의 뼈가 흔적도 없이 녹아내려 연체동물처럼 흐물흐물해진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유쾌한 감각은 아니었다.

‘이런 게 몸살감기인가?’

아파본 적이 별로 없으니 병명을 유추하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지금 이런 상황에선 몸살감기가 제일 유력한 후보이지 않을까 했다. 감기는 병원 가면 칠 일, 안 가면 일주일이라던데 며칠 지나면 알아서 저절로 낫겠지. 고결은 무심하게 넘겼다.

“결아. 너 요즘 몸 안 좋지? 그러고 있지 말고 병원 다녀와. 더 큰일 되기 전에.”

별안간 우현이 저렇게 병원행을 종용하지만 않았다면 아마 쭉 그랬을 것이었다. 평소처럼 밴 안에서 촬영 대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우현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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