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마침 근처에 있는 커다란 나무 그늘 안에 들어가 있는 빈 벤치를 발견하고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간 수영이 먼저 자리에 앉자 윤재도 곧 그의 옆에 작은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양지에 서있을 땐 이제 슬슬 덥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드는 날씨였지만 그늘 안으로 들어오자 적당히 좋은 날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는 장마가 시작되지 않은 덕분에 대기는 건조한 상태여서 간간이 한 차례씩 불어오는 바람은 쾌적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문득 어딘가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어설픈 노랫소리에 따라 자연스레 두 사람의 고개가 움직였다.
조금 떨어진 벤치에 앉아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박수를 치고 있는 남자의 앞에는 작은 몸으로 열심히 춤을 추고 있는 여자 아이와,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흥에 취한 아이가 더 열심히 작은 엉덩이를 흔들자 그 모습을 바라보며 크게 웃던 남자가 결국에는 옆에 놓아두었던 목발을 짚고 일어나더니 같이 엉덩이를 흔들며 적극적으로 아이의 춤에 호응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따스한 가족드라마의 한 장면과 같은 모습이었다.
평소 아파트와 회사, 가끔씩 회식 차 술집이나 바(bar)를 찾는 정도의 간략한 동선에 익숙해져 있는 입장에서 좀처럼 볼 일 없는 장면을 말없이 시야에 담고 있던 수영이 잠시 후 슬쩍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좀 전까지의 그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근처에서 펼쳐지고 있는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던 윤재가 뒤늦게 자신의 뺨에 닿아온 수영의 시선을 알아차리고서 고개를 돌려왔다.
“역시 밖에 나오니까 좀 활력이 생기는 것 같아. 아무리 크고 좋은 병실을 쓴다고 해도 저 건물 안에 있으면 칙칙한 공기에 질식할 것 같거든.”
가벼운 한숨이 섞인 수영의 말을 들은 윤재가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병원 특유의 날 서고 침착된 공기가 자연스레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기분을 가라앉힌다는 사실을. 아픈 사람들이 많은 장소의 특성상 웃음소리가 많이 나지 않는 건 당연한 거였지만, 일단 그 안을 채우는 공기 자체부터가 전체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빛을 띠고 있었다. 만약 그간 모친이 계신 병원을 꾸준하게 다니며 느껴온 병원 내의 분위기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회색을 위주로 한 무채색 계열의 물감을 사용할 거라고 윤재는 병원을 떠나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몇 번이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몸 상태는 어때요? 교통사고라고 들었는데... 어디를 어떻게 다친 거예요?”
걱정 어린 질문을 받은 수영이 그제야 좀 전부터 줄곧 늑골 부위에서 느껴지고 있는 통증을 새삼 현실로써 자각했다. 금이 간 뼈가 붙을 때까지는 절대 무리해서 움직이지 말라는 주치의의 경고를 깨끗이 무시한 대가가 곧바로 몸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사고 당시 부딪친 충격으로 늑골 좌측 3,4번에 금이 갔고 그 외에 목이랑 어깨 몇 군데에 타박상을 좀 입었어.”
“금이요? 뼈에 금이 갔는데 그렇게 달리면 어떻게 해요? 달릴 때 아프지 않았어요?”
“솔직히 좀 아프긴 했는데... 그래도 일단은 널 꼭 찾아서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했어. 만약 무리가 가서 악화되면 그땐 그때 이야기고.”
대책 없는 수영의 대답에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은 윤재가 이내 희미하게 미간을 좁혔다.
평소 늘 단정하고 세련된 수트 차림의 모습만을 보다가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환자복을 입고 있는 수영의 모습을 보니 낯설면서도 안타까운 기분이 드는 윤재였다. 오랫동안 환자복 차림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신 모친의 영향일까, 윤재는 아픈 사람들, 특히 환자복을 입고 있는 아픈 사람들에게 유독 약한 면이 있었다.
“사고 얘기는 누구한테 들었어?”
질문을 받고 자연스레 정훈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린 윤재가 대답했다.
“가게에 찾아왔던 동료 직원 분들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옆에서 들었어요.”
“그래...?”
수영은 지금 들은 대답으로 대략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짐작했다. 사고와 관련된 이야기를 따로 전하지 않았던 터라 윤재의 방문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로선 윤재가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지금의 상황이 아무래도 온전히 현실로 와 닿지 않고 있었다.
“평소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문자나 연락을 했으면서 왜 정작 사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어요?”
미세한 책망의 기색이 담겨 있는 윤재의 질문에 수영이 쓰게 웃었다. 그의 시선은 곧 윤재를 떠나 주변의 풍경으로 옮겨졌다.
멀찍이 떨어진 벤치 부근에는 아까 전 즐겁게 놀던 가족이 떠난 뒤 그들을 대신해 새로운 얼굴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각자 한 손에 먹을거리를 들고 신나게 떠들고 있는 사람들은 병문안이 아니라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무척이나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중간에 환자복을 입은 사람만 껴있지 않다면 지금 그들이 있는 장소는 병원 앞의 넓은 뜰이 아닌 평범한 공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잠시 동안 멀찍이 떨어진 환자 일행을 시야에 담던 수영이 이내 다시 윤재에게로 시선을 되돌렸다.
“사고 얘길 하면 혹시라도 신경 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 그렇지 않아도 어머니 일이나 가게 일로 신경 쓸 일이 많잖아. 도로에서 치어죽은 개도 그냥 못 지나치는 너인데 계속 주변에 있던 사람이 다쳤다고 하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예 연락 자체를 하지 않은 건 혹시 네 목소리 들으면 내가 못 참고 얘기를 꺼낼 것 같아서였고. 어차피 오래 안 쉬고 다시 회사에 출근할 예정이니까 그때쯤 가게에 들러서 지나간 일로 얘기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수영의 대답을 들은 윤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대답인 만큼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개운한 기분이 들지는 않는 그였다. 사실은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기분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를 내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일단 그와 같은 미묘한 감정과 별개로 수영의 판단을 이해하고는 있는 윤재였다. 확실히 수영의 말대로 만약 그에게서 사고 연락을 받았다면 좋든 싫든 일하는 중간에도 그쪽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실제로 어젯밤 정훈으로부터 얘기를 듣고 난 뒤로 가게에서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었고, 이곳에 오기로 최종 결심을 하기 전까지 머릿속은 쉽사리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로 줄곧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네가 여기에 와줄 거라고는 정말로 생각 못했어.”
잠시 텀을 두고 들려온 진지한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윤재가 멀찍이 떨어진 어딘가에 시선을 향하고 있는 수영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사실, 여기에 온 뒤로 계속 기분이 좀 별로였어. 몸이 아픈 건 둘째 치고 사고가 난 날부터 별로 친하지도 않는 사람들까지 문병을 오거나 전화로 연락을 해오는데 거기에 적당히 맞춰서 인사하고 똑같은 대답 반복 하는데 슬슬 지쳐가고 있었거든. 일단 걱정해주니 고맙다는 생각이 아예 안 드는 건 아닌데 솔직히 말해서 진심으로 걱정해준다는 느낌을 받아도 별다른 감흥이 안 느껴졌어. 그보다는 그냥 계속...”
“.......”
“다른 사람이랑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머릿속엔 네 핸드폰 번호가 계속 아른거렸어.”
뜻밖의 말을 듣고서 당장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윤재가 망설이는 사이 수영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내가 조금은 걱정이 돼서 여기까지 와준 거라고... 그렇게 내 마음대로 생각해도 돼?”
질문을 받은 윤재가 잠시 텀을 두고서 보일 듯 말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상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정해진 대답일 텐데도 굳이 말로써 분명히 확인받기를 원하는 수영의 마음을 윤재는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다.
“당신의 말대로 전... 도로에서 죽은 개한테도 일일이 신경 쓰는 사람이니까요.”
좀처럼 하지 않는 농담을 섞어 윤재가 말하자 피식 작게 웃음소리를 낸 수영이 ‘그래도 개보다는 많이 신경 쓰인다고 해줘.’라고 말했다.
잠시 후 문득 옆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척을 따라 고개를 돌린 수영이 근처에 세워져 있는 음료수 자판기로 향하는 윤재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절뚝거리며 자판기 앞으로 다가가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 윤재가 수영에게 시선을 던져왔다. 어떤 걸 마시겠느냐고 눈으로 묻는 그를 향해 무난한 음료수 이름을 댄 수영은 곧바로 낡은 지갑에서 꺼낸 지폐를 넣고 차례로 두 개의 음료수를 뽑아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윤재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평소 대부분을 밤 시간 <민들레>에서 만났던 터라 밝은 햇살 아래에 서있는 윤재의 모습이 수영에게는 조금 낯설게 느껴지고 있었다.
연신 불어오는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은 안 본 사이 조금은 길어진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고, 그늘을 벗어나 햇살을 그대로 받고 있는 얼굴은 눈이 부실 만큼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당장 눈에 띌 만큼 화려한 미남은 아닌 윤재지만 단순히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를 빼고 보더라도 그는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자연스레 한 번쯤은 끌어낼 만한 묘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지갑 가지고 나왔어야 했는데... 잘 먹을게.”
윤재가 건네는 음료수를 받아 든 수영이 그렇게 말하고서 뚜껑을 따 입으로 가져갔다.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실은 꽤나 목이 마른 상태였는지 순식간에 통에 담긴 음료수의 절반 가까이를 비워낸 그는 잠시 후 옆에서 들려온 윤재의 목소리를 듣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 만나러 병원에 가셨었다고 들었어요.”
생각하고 있지 않던 화제가 떠오르자 잠시 침묵을 지키던 수영이 들고 있던 음료수 통을 뚜껑을 닫아 옆에 내려놓았다.
“너한테 괜찮다는 얘긴 들었지만 아무래도 직접 뵙는 게 확실할 것 같아서. 어차피 전에 한 번 인사도 드렸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었어. 혹시... 내가 실수한 거야?”
“...아뇨.”
윤재의 대답을 듣고 다시 먼 곳 어딘가로 시선을 옮기고서 천천히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수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행히 전에 뵈었을 때보다 안색이 좋아지셔서 마음이 좀 편해졌어. 내 친구들 중에 어머니랑 같은 병을 앓고 계신 분이 계셔서 그 친구한테 얘기를 좀 들었거든. 혼자 있을 때는 내 나름대로 책도 좀 찾아서 읽어봤고. 대장암은 식생활이 중요하다고 해서 음식에 대한 얘길 주로 했는데 그러다 이런저런 다른 얘기도 나왔어.”
“.......”
“어머니가 네 어릴 적 얘기를 해주셔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들었어. 어릴 적엔 의외로 축구도 잘 했다면서? 공 들고 나갔다가 들어오면 만날 다리가 상처투성이가 돼 있어서 그거 볼 때마다 속상하셨었다고 말씀하시더라.”
“별로 잘 했던 건 아니에요. 그냥 무작정 공을 쫓아 뛰어다니는 걸 좋아한 거였죠.”
어릴 적의 기억을 떠올리고 스치듯 쓴웃음을 머금은 윤재가 그 순간 갑자기 붕 하고 불어온 강풍에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바람에 날려 올라온 흙먼지가 한 차례 주변을 덮치고 지나간 뒤에도 남겨진 바람의 잔상을 맞은 근처의 나무들이 단체로 푸스스 시원스런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때 말했던 대로 지금... 우리들의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
“!”
갑작스럽게 들려온 질문에 일순 눈을 크게 뜬 윤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하고 있는 수영의 시선을 마주했다.
“혹시 생각하고 있는 중이라면... 네가 지금 가장 크게 고민하고 있을 부분이 뭔지 조금은 짐작이 돼.”
이어지는 수영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진지했다.
“과거에 그런 일을 겪고 나니 아무래도 나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지? 우리 관계가 얼마나 이어질지에 대한 확신도.”
명백한 동요를 보이는 윤재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짐작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한 수영은 좀 전까지 희미하게 드리우고 있던 웃음기를 일시에 얼굴에서 깨끗이 지워냈다.
“사실, 말이란 건 편해.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뭐라도 할 수 있지. 상대가 원하는 말을 해주는 것 자체는 쉬운 일이야. 어차피 그 말을 두고 믿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그 사람의 몫이니까.”
“.......”
“그래도 난 너한테는 그 ‘쉬운’ 말은 안 할 거야. 영원히 너만 보겠다는 말도, 우리들의 관계가 영원할 거라는 맹세도 하지 않을 거야. 실제로 나중일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거니까. 어쩌면 나보다 네가 먼저 질려서 날 떠나버릴 수도 있고, 또 어쩌면 며칠 전 나한테 갑작스럽게 사고가 일어났듯이 우리 둘 중 누군가에게 사고가 생겨 한 사람이 먼저 떠날 수도 있어.”
이어지는 수영의 무거운 말들을 윤재는 묵묵히 귀에 담았다. 자체적으로 반응을 자제하고 있는 그에게서 볼 수 있는 움직임이란 본능에 따른 눈의 깜빡임 정도로 미약한 것이었다.
“그래도... 날 한 번만 더 믿어달라고 말할 구실이라면 있어.”
잠시 말을 멈추고서 진지하게 윤재와 시선을 마주하던 수영이 이내 묵직한 무게가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회사 복도를 걷다가 너랑 엇비슷한 체형을 한 사람을 보면 저절로 눈이 가. 너일 리가 없다는 걸 아는데도 자연스레 꼭 한 번은 확인하게 돼.”
“.......”
“누가 널 만진다고 생각하면 당장 쫓아가 손이고 팔이고 다 분질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어쩌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네 곁을 차지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거기에 신경이 쓰여서 일에 집중하는 게 힘들어져.”
“.......”
“누구 얘긴가 싶지? 어딜 가나 습관적으로 누군가의 모습을 찾는 것도, 볼썽사납게 누굴 질투하는 것도 나와는 평생 상관없는 일일 줄 알았어.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당연히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우습지, 이제는 그런 것들이 나한테도 상관있는 일이 됐어.”
담담하지만 동시에 단단한 수영의 말들을 묵묵히 귀에 담던 윤재가 살며시 고개를 숙여 자신의 무릎 언저리를 내려다보았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그냥 한 순간 변덕으로 널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야. 그냥 잠깐 듣기 좋은 말로 영원이니 어쩌니 하는 맹세를 하는 건 쉽지만 난 하지 않을 거야. 그 대신, 내가 지금 널 상대로 갖고 있는 이 감정들이 지금까지 만나온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것들이라는 거, 그리고 절대 손바닥 뒤집듯 쉽게 변할 만큼 가볍지 않은 감정이라는 것만은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맹세할 수 있어.”
무릎 위에 얌전히 놓여 있는 윤재의 주먹에 일순 꾹 힘이 실렸다.
차라리 무작정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텅 빈 말들을 건네 왔다면 조금은 더 쉬웠을 텐데 몇 분에 걸쳐 나직하고도 묵직하게 귀에 담겨져 오는 말들은 가뜩이나 위태롭게 흔들리던 윤재의 마음을 한층 더 크게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지금 수영이 안고 있는 감정이 잠시 피어올랐다 사그라질 정도의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 같아서. 그게 무서웠다.
“내가 당한 건 심각한 정도의 사고는 아니었어. 그래도 생각지 못하던 상황에서 갑자기 쾅하고 크게 부딪치는 소리가 나고 지금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간신히 알아차렸을 때 한꺼번에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더라. 남들이 흔히 죽는다고 생각한 순간 머릿속에 일생의 기억이 스쳐 지난다고 한 얘기처럼.”
윤재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대꾸도 해오지 않았지만 수영은 그대로 말을 이어갔다. 윤재가 곁에서 듣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수영은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회사에서 열심히 진행해놓은 일들이 생각났고, 당연히 가족이나 친구들 생각도 났어. 그런데... 그 엉망인 상황에서도 제일 분명하게 떠올랐던 건 네 얼굴이었어.”
희미한 웃음소리가 섞인 수영의 말에 한참동안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 윤재가 잠시 망설이다 천천히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왕이면 웃는 얼굴이면 좋았을 텐데. 어째서인지 그 긴박한 순간에 떠오른 네 얼굴은 전에 한 번 봤던 것처럼 눈물로 젖어 있어서 마음이 아팠어. 주변은 시끄럽지, 몸은 아프지... 그런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꼭 한 가지 후회가 들더라.”
망설이면서도 끝내 자신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있는 윤재를 향해 보일 듯 말듯 엷은 미소를 지어보인 수영이 잠시 그대로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실제로 그가 입을 여는 데는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윤재의 눈동자에 그 모습은 이상할 만큼 느릿하고도 분명하게 비쳐오고 있었다.
“사랑해, 너를.”
귀에 익은 낮은 목소리가 근처를 지나는 바람 소리에 섞여 들려왔다.
지금 막 들려온 말이 지닌 의미를 인식한 것과 동시에 윤재의 눈이 미세하게 커졌다.
예상한대로의 동요를 보이는 윤재를 마주한 채로 수영이 다시 한 번, 이번엔 좀 더 확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해. 김윤재. 진심이야.”
얼어붙어 있던 윤재의 얼굴 위로 미세한 균열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그렇게 날 봐달라고, 기다리겠다고 해놓고서 정작 이 중요한 말을 아직 한 번도 너한테 한 적 없었다는 걸 깨닫고서 후회했어.”
갑작스런 교통사고가 일어났던 날 이후로 줄곧 마음 안에 가둬두고 있던 말을 간신히 해방시킨 수영이 쓰게 웃었다.
사랑해-라는 한 마디의 흔해빠진 고백.
지금까지 일일이 얼굴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과 짧고 얄팍한 관계를 가져오며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반대로 그 말을 입에 담은 건 수영에게 있어선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볼썽사나운 질투와 마찬가지로 간지러운 사랑 고백을 하는 일 역시 평생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단언해왔던 그는 이제야 그것이 단순한 무지에서 온 오만이었음을 깨닫고 있었다.??
지금껏 그저 알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누군가를 보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지는 한편으로 가슴 한켠이 욱신거리는 감정을.
그 누군가에게 다른 누군가가 닿으면 불처럼 화가 일어 견딜 수 없는 흉포한 감정을.
본능적으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에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떠올라 끝내 미련을 남기게 만드는 사람을.
“네가 우는 건 정말 싫은데, 그래도 만약 내가 그 상황에서 정말 사고로 죽게 된다면, 그땐 네가 조금은 울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이어지는 고백에 대체 어떤 말을 돌려줘야 할지 알 수 없어 달싹였던 입술을 그대로 다문 윤재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수많은 감정들이 순식간에 가슴까지 차올라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수 년 전 아직 어리던 시절 수영과 잠시 어울리다 끝을 맞이할 당시 평생 그의 입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이 나올 일은 아마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윤재였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사랑받는 것에 익숙한 남자는 아마도 평생을 그렇게 오만하게 위에 앉아 누구에게도 진심어린 마음 한 조각 내주지 않고 살아갈 거라고.
그런데 그와 같은 생각과 믿음은 바로 오늘 윤재의 눈앞에서 산산이 깨어져나가고 있었다. 그 후로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순간 믿을 수 없게도, 한참동안을 틀림없이 그렇게만 믿어왔던 남자가 줄곧 얼굴 위에 드리우고 있던 오만한 표정을 지워내고서 순순히 자신이 가진 패 전부를 고스란히 내보이고 있었다. 스스로를 가리고 있던 단단한 막의 마지막 한 꺼풀까지 깨끗이 벗어버린 채로.
“모르겠어요... 전. 지금도...”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이것은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얽혀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윤재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대답이었다.
“그래, 알아. 알고 있어. 강요하거나 재촉하려고 한 말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마. 그냥...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그때 가서 후회나 미련이 남지 않게 이 마음은 꼭 너한테 전해두고 싶었어. 물론 그렇다고 아무런 흑심도 안 담겨 있다곤 말 못하겠지만.”
마지막엔 엷은 웃음이 섞인 수영의 대답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들려던 윤재가 그 순간 또다시 한 차례 강하게 불어온 바람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찡그린 채 눈을 감았다. 붕 하고 스쳐가는 바람을 맞은 주변의 나무 잎과 풀들이 일제히 푸스스 시원스런 소리를 내는 와중에 바닥에서 쓸려 올라온 흙냄새가 스치듯 코끝에 닿아왔다 곧 사라졌다.
잠시 후 먼지 섞인 바람이 한 차례 더 강하게 주변을 뒤덮고 지나간 뒤 조심스레 꼭 감고 있던 눈을 뜬 윤재는 그때까지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친 순간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수영의 모습을 확인하고 무심결에 시선을 피했다.
그늘 아래 있는데도 어째서인지 단숨에 주변 온도가 몇 도는 오른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윤재였다.
“<민들레>는 요즘 어때?”
갑작스럽게 바뀐 화제에 그제야 줄곧 심각하던 표정을 조금은 느슨하게 푼 윤재는 이윽고 담담한 목소리로 최근 가게의 동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수영의 주도로 시작된 소소한 대화는 잠시 어색하게 멈춰 있었던 두 사람의 시간을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늘 아래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그 후로 얼마 동안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 섞인 대화소리를 배경으로 둘만의 조용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한참 뒤 마침내 수영의 귀환을 기다리다 못해 병원 밖으로 나온 세은이 멀리서 두 사람을 발견하고 서둘러 다가올 때까지.
“나가서 소식이 없더니 여기 있었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 오는 세은에게 가벼운 목례로 답한 윤재가 먼저 몸을 일으킨 자신에 이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영을 돌아보았다.
“왜 여기까지 찾으러 나왔어?”
“빨리 올라가 봐. 병실에 손님 와계셔.”
“손님?”
“작은 아버지라고 하시던데. 부인까지 같이 오셨어. 어서 가봐.”
세은의 말을 듣고 희미하게 미간을 좁힌 수영이 옆으로 고개를 돌려 윤재를 쳐다보았다.
“그래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이제 슬슬 가게 열 준비도 해야 하니까.”
“저 앞까지 바래다줄게.”
병원 입구를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 수영이 그렇게 말하고서 먼저 움직이려하자 윤재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아뇨, 지금 위에 손님이 기다리고 계신데 어서 가보세요. 어차피 저기만 빠져 나가서 돌면 바로 버스 정류장이에요.”
윤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영의 곁으로 바짝 다가와 그의 팔을 붙잡은 세은이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이 분 말씀이 맞아. 어린애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이 대낮에 혼자서 못 갈까봐 그래?”
“권세은.”
미세하게 낮아진 목소리로 세은의 이름을 부른 수영이 자신의 팔에 감겨 있는 가느다란 팔을 떼어내고 말했다.
“넌 먼저 올라가서 잠시 뒤에 올 거라고 좀 전해줘.”
“뭐? 왜?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부탁 좀 할게.”
또박또박한 말투로 들려온 ‘부탁할게.’라는 말에 세은의 눈이 순간적으로 빠르게 깜빡였다.
세상에 살다 보니 성격 더러운 우수영에게서 부탁한다는 말을 다 듣게 되다니 방금 전 자신의 귀로 똑똑히 듣고도 들은 말의 내용이 영 믿기지가 않는 그녀였다.
어쨌거나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진귀한 말을 들은 마당에 이 이상 쓸데없는 고집을 부릴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한 세은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 빨리 올라 와.’라고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남긴 뒤 먼저 몸을 돌려 거대한 병원 중앙 건물로 향했다.
긴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걸어가는 세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윤재에게로 시선을 옮긴 수영이 ‘가자.’라고 말하고서 먼저 발을 뗐다.
위층에 버젓이 나이 든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본의 아니게 배웅을 받게 된 윤재의 마음은 아무래도 편할 수가 없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한시라도 빨리 자신이 떠나는 것이 기다리는 손님에게도 수영에게도 좋을 거라고 판단한 그는 곧 수영을 따라 자신도 멈춰 있던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문안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네요.”
걸음을 옮기던 중간 윤재가 그렇게 말하자 슬쩍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본 수영이 대답했다.
“깊이 마음 터놓고 사귀는 사람은 별로 없어도 조금씩 얼굴 알고 지내는 사람은 많으니까. 여기저기 이름도 다 모르는 모임들에 불려 나갔다가 부모님을 통해 알게 된 사람도 많고. 굳이 나와 개인적 친분이 없더라도 내 주변 환경을 생각해 이참에 얼굴 도장 찍어놓는 게 좋겠다는 계산을 하는 사람도 꽤 있지.”
시니컬한 수영의 대답을 들은 윤재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야 병원에 입원한다고 하면 직접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나 몇 명 오겠지만, 수영처럼 거대한 뒷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주변에는 단순한 친분관계를 벗어나 이익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도 많이 몰려들 거라는 생각이 드는 윤재였다. 더불어 만약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와 같은 삭막한 인간관계에 익숙해져 간다면 자연스레 그와 같은 환경이 어느 정도는 자라는 사람의 정서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워낙에 거침없는 성격을 가진 수영이라면 웬만한 환경에는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 같기는 했지만.
“이제 다 왔어요. 그만 가보세요. 손님이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신데.”
“정말 버스 정류장이 바로 앞이네.”
윤재의 말에 그렇게 짧게 대꾸한 수영은 미리 언급했던 병원 입구에 다다랐음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다가 버스 오면 바로 타고 가면 돼요. 그러니까...”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너 가는 거 볼게.”
그렇게 말하고서 결국 고집스럽게 걸음을 옮겨 병원 입구 근처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까지 윤재를 바래다 준 수영은 일제히 그를 향해오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나란히 옆에 서있는 윤재를 쳐다봤다.
“...퇴원은 언제쯤 하세요?”
질문을 받은 수영이 커다란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대답했다.
“며칠만 더 입원해서 안정취하다가 웬만하면 곧 퇴원할 거야. 팀 리더가 된 입장에서 오랫동안 회사 일을 내팽개쳐둘 수도 없고. 일단 퇴원한 뒤엔 공백 채우느라 꽤 바쁠 거야.”
“.......”
“아, 지금 오는 거 타는 거 맞지?”
다가오는 버스 앞머리 쪽 부분에 기재되어 있는 역 이름을 확인하고 그렇게 말한 수영이 ‘네. 갈게요. 어서 가보세요. 위에서 기다리고 계실 텐데.’라고 말하는 윤재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늘 와줘서 고마워. 빈말이 아니라 정말 기뻐.”
솔직한 수영의 말에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든 윤재가 잠시 후 도착한 버스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자 옆에서 뻗어져온 커다란 손이 그의 마른 어깨에 닿았다.
“가서 타. 퇴원한 뒤에 가게에 한 번 갈게. 그때 봐.”
“네... 몸조리 잘 하세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버스에 오른 윤재는 입구 근처의 비어있는 자리에 앉은 뒤 고개를 돌려 창밖을 쳐다보았다.
“현주야, 저기 저 밖에 서있는 사람 좀 봐봐. 진짜 잘 생겼다.”
“누구? 아, 저기 환자복 입은 사람?”
“응. 진짜 잘 생겼지?”
“와... 그러게. 키 엄청 크네. 어깨도 넓고. 수트 빨 진짜 잘 받겠다.”
“우리 회사에도 저런 남자 있으면 진짜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고 싶을 텐데...”
“에이- 회사에 있어봤자 남의 떡이지. 저런 남자가 여자 친구 없겠냐?”
“있어도 넘어오게 하면 되지.”
뒤에서 들려오는 여자들의 들뜬 대화소리를 묵묵히 귀에 담은 채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서 수영과 시선을 마주하던 윤재는 잠시 후 손님들이 모두 차에 오르고 차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온 것과 동시에 마지막으로 슬쩍 목례를 했다. 차가 출발하자 수영의 모습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혼자가 되어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던 윤재가 천천히 소매를 걷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4시 40분.
가게 준비를 위해 지금부터 급하게 움직여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유를 부릴 정도의 시간까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가게로 가기 전에 시장 앞에서 내려서 장을 볼까... 감자랑 양파가 좀 간당하게 남아 있는데... 양파 소스 만들어놓은 것도 어제까지 거의 다 사용해서 다시 만들어놔야 하고...’
한참이나 유지되고 있는 긴장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식적으로 조금 전 수영과의 일들을 머릿속에서 떨쳐내려 한 윤재는 그러나 결국 그리 오래지 않아 그와 같은 노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귀에 단단히 달라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불과 수십 여분 전 선선한 나무 그늘 아래서 들었던 수영의 묵직한 고백이.
-‘사랑해. 김윤재. 진심이야.’
태어나 처음으로 들은 사랑 고백은 어렴풋이 상상했던 것처럼 마냥 달콤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이상할 정도로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어서 그때의 상황에서 윤재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기쁜 것인지 당혹스러운 것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 또렷이 기억나는 게 있다면 나직이 이어지던 수영의 말들을 듣는 내내 숨을 쉬는 것이 힘들 만큼 가슴이 강하게 죄어들었던 사실뿐이었다.
사실은 지금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쫓아 뛰어오던 모습도, 쉽사리 넘길 수 없게 만드는 묵직한 말들도, 헤어지기 직전 와줘서 기쁘다고 말하며 보이던 엷은 미소도 모두가 선명하게 남은 채 지금 홀로 버스 안에 앉아 있는 윤재의 가슴을 욱신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정말 이대로 당신을... 깨끗이 기억에서 지워낼 수 있을까...’
차창에 머물러 있던 시선을 거둬낸 윤재가 미간을 좁힌 채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머리와 귀에 남아 있는 잔상들이 아무래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한참 만에 들려온 익숙한 정거장 이름에 깨워져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올 때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