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eloved-46화 (46/66)

46.

미끈한 다리에 살랑거리는 엉덩이, 고개를 젖힐 때마다 찰랑거리며 흩어지는 긴 머리카락.

해가 져 기온이 뚝 떨어진 저녁 시간, 휭휭 불어대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짧은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열심히 가게 홍보를 하고 있는 두 명의 예쁜 아가씨들은 근처를 지나고 있는 행인들의 시선을 완벽하게 사로잡고 있었다. 결국 멈춰선 사람들 중 일부는 적극적으로 호객에 나선 다른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가게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고, 그 외에 남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몇몇 일행은 예쁜 행사도우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가게 안으로 들어갈지 말지의 여부를 두고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 한 편으로 밤 시간인데다 다소 한적한 동네라 마이크를 통해 나가는 행사도우미의 목소리와 음악은 꽤나 크게 주변을 울리고 있어서 가게 앞을 지나는 행인들 중 일부는 손으로 귀를 막고 얼굴을 찌푸리는 등 노골적으로 불쾌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예쁘네요...”

“.......”

“몸매도 죽이고요...”

50미터쯤 떨어진 위치에 있는 행사도우미를 잠시 넋 놓고 바라보던 성호가 진지하게 중얼거리자 그의 옆에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던 윤재가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창 사람들로 북적거려야 할 시간대에 한산한 가게를 지키고 있는 두 사람은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든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를 걱정 반 원망 반의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전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위치에 새롭게 문을 연 선술집 <머꼬머꼬>는 일단 보이는 외관의 화려한 디자인이나 규모부터가 <민들레>를 가볍게 제압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사장이 작심을 하고 꽤나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는지 개업 후 며칠이 지나도록 행사도우미기 끊이지 않고 그 가게 앞에서 화려한 호객행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주변 이곳저곳에 도배되어 있는 전단지를 떼어 행사 내용을 확인해 보니 그 안에는 만 원 이상 주문할 시 따로 원하는 안주를 70퍼센트 할인된 가격에 추가할 수 있는 서비스를 비롯해 맥주를 1+1의 형태로 주문하거나 마른안주의 일부를 무한으로 리필할 수 있는 서비스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격이라도 왕창 비싸면 모를까 냉정히 말해 현재의 상태에서 <민들레>가 <머꼬머꼬>에 대항해 객관적으로 이길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자연스럽게 상대편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손님들의 모습을 얼마간 말없이 지켜보던 윤재가 잠시 후 행사도우미의 곁을 냉정히 지나쳐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한 무리의 일행을 발견하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네 명의 젊은 여성으로 구성된 일행은 석 달 전부터 <민들레>를 꾸준히 찾기 시작해 최근엔 가게의 주인인 윤재와 어느 정도 안부를 주고받을 정도의 친분을 쌓게 된 손님들이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윤재와 성호의 인사를 받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선 손님 일행은 텅 비어 있는 가게 안을 크게 한 번 둘러본 뒤 평소 지정석처럼 이용해온 창가 쪽 자리로 향했다.

“오늘은 손님이 없네요. 앞에 새로운 가게가 문을 열어서 그런가...”

“그렇죠 뭐. 저긴 행사도 하고 있고 또 사람 심리가 처음 생긴 곳에 가보고 싶기도 하잖아요. 평소 여기를 찾으시던 손님들 중에 저쪽으로 가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가벼운 한숨이 섞인 성호의 대답을 듣고 안 됐다는 표정을 지은 젊은 여자 손님들이 ‘주문하시겠어요?’하는 성호의 질문을 받자마자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주문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오기 전부터 미리 주문할 메뉴를 정해뒀던 모양이었다.

“여기 신메뉴 있죠? 오징어요...”

“아, 양파소스로 된 거요?”

“네. 그거 두 접시랑 찌개는 김치찌개, 과일안주 하나랑 술은 맥주로 다섯 병 가져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빠른 손놀림으로 주문서를 체크한 성호가 자리를 떠나기 전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서 말했다.

“양파소스 오징어 맛있죠?”

성호의 질문을 받은 아가씨 중 한 명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전에 왔을 때 신메뉴라고 해서 그냥 크게 기대 안 하고 호기심에 시켜봤었는데 진짜 맛있더라고요.”

“그쵸? 저희 사장님이 개발하신 건데 전체적으로 평가가 좋아요. 신메뉴 출시한 뒤로 그것만 찾으시는 손님들도 많으세요.”

“와- 여기 사장님이 직접 개발하신 거예요? 사장님 센스가 진짜 좋으시네요. 사실 오늘 그게 유독 먹고 싶어서 회사 끝나기 전에 친구들 모은 거거든요. 중독성이 강한 거 같아요. 양파의 감칠맛 때문인지.”

“맞아, 나도 자꾸 생각나더라. 안 그래도 이따 집에 갈 때 좀 포장해서 가려고. 내가 맛있다 맛있다 얘기하니까 우리 신랑도 궁금해 하더라고.”

한참 만에 가게 안으로 들어온 귀중한 손님들과 활기 띤 목소리로 한 차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주방으로 들어선 성호가 그 사이 요리를 시작한 윤재를 확인하고 자신도 서둘러 손을 걷어붙였다.

신메뉴 양파크림 소스는 윤재가 늘 그 날 하루 사용할 일정 분량을 만들어 채워두고 있기 때문에 성호는 미리 만들어둔 소스를 오징어에 발라 굽는 작업만 하면 됐다. 처음엔 바르는 소스의 양과 굽는 시간을 잘 맞추지 못해 헤맸던 그도 이제는 윤재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문제없이 오징어를 구워낼 수 있는 수준에 올라 있었다.

성호가 말랑말랑하게 구워낸 오징어를 예쁘게 접시에 담는 사이 윤재는 그의 등 뒤에서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적당히 칼칼한 냄새가 주방을 채우기 시작할 때쯤 한 차례 손을 씻어내고 서둘러 과일 안주로 나갈 과일 몇 가지를 골라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 윤재는 뒤늦게 오징어 작업을 끝내고 과일 깎는 일에 합류한 성호를 슬쩍 쳐다본 뒤 개중 손질하기 쉬운 바나나와 키위를 그의 앞에 밀어주었다.

늘 그렇듯 예쁜 토끼를 만들어내는 윤재의 능숙한 손놀림을 신기한 눈으로 지켜보던 성호가 얼마간 이어지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저기... 어머님 건강은 좀 괜찮으세요?”

갑작스런 질문을 받고 잠시 손을 멈춘 윤재가 곧바로 ‘응.’이라고 대답했다.

“지금은 안정적인 상태야.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저도 병문안 한 번 가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

“아... 혹시 부담되신다면...”

“다음 주 주말 오후에 가려고 하는데 그 때 같이 갈래, 그러면? 안 그래도 어머니가 성호 너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거든. 시간 괜찮아?”

“네. 전 괜찮아요.”

<민들레>에서 일을 시작한 뒤로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윤재로부터 그의 모친에 대한 이야기를 간간이 전해 듣기만 했을 뿐인 성호는 그렇지 않아도 한 번은 직접 찾아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윤재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 못지않게 윤재의 모친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그의 가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윤재처럼 바르고 참한 아들을 키워낸 어머니는 과연 어떤 분일까 하는 내용의 평범한 호기심이었다.

“지금 밖에 계신 손님들도 사장님이 개발하신 신메뉴가 엄청 마음에 드신 모양이에요. 중독성이 강해서 자꾸 생각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

정성스레 사과 껍질을 벗겨내던 윤재가 중간에 짧게 대꾸를 하자 기다렸다는 듯 성호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벌 가게의 등장으로 손님의 수가 눈에 띠게 줄어버린 현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애써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성호는 가게의 주인인 입장 상 자신보다 몇 배는 더 속상할 윤재의 심정을 나름대로 짐작하고 있었다. 이제 갓 문을 연 새 가게가 한창 행사 중에 있으니 당분간은 그쪽에 손님을 빼앗길 수밖에 없을 거라는 각오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설마 이 정도로 큰 타격을 입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성호는 평소라면 그저 좋다고 구경할 행사도우미의 화려한 춤사위를 지금으로선 마냥 좋은 눈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우리도 질 수 없는데 뭔가 행사를 좀 하는 게 어떨까요?”

“행사?”

“네.”

“가격 할인 같은 거 말이야?”

“그것도 좋지만 일단 당장에 눈에 띠기 위해선 좀 더 시각적인 효과를 줘야죠.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인형 탈 쓰고 지나는 사람들 모으는 거 어때요? 가게 앞에서나 아니면 사람 많은 지하철 역 근처에 서서 전단지 나눠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인형탈?”

“네. 친구 말로 나레이터 모델은 돈이 비싸다고 하더라고요. 인형탈이면 저나 사장님도 쓸 수 있으니까 따로 알바를 쓸 필요도 없고 괜찮지 않을까요? 탈 쓰면 춤 춰도 얼굴 안 보이니까 민망할 일도 없고요.”

“.......”

“.......”

“...나는 춤 같은 거 못 춰....”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윤재를 보고 순간적으로 작게 웃음을 터뜨린 성호가 그 사이 일정한 크기로 잘라 낸 키위를 접시로 옮기며 말했다.

“인형탈 쓰고 추는 춤이야 뭐 그냥 움직이는 정도죠.”

“만약 한다고 쳐도 우리가 인형탈 쓰고 있는 동안 가게 일은 누가 하고?”

“가게가 한산할 때만 잠깐씩 앞에 나가서 하는 거죠. 아니면 도와줄 사람을 불러도 되고요. 준석이 형님이라면 도와주지 않으실까요?”

“준석이?”

“네.”

대답하는 성호의 얼굴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자연스레 인형탈을 쓴 준석의 모습을 상상하던 윤재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평소 준석이 자신의 일을 도와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인형 옷까지 입어줄 것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퇴근 후 기운 없을 그에게 그런 무리한 부탁 자체를 할 마음도 없었지만.

윤재가 고개를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그런가...’하는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기울여 뭔가를 생각하던 성호가 문득 다음 타깃을 입 밖에 냈다.

“그럼 우대리님 어때요? 전에도 사장님 도와주셨었잖아요.”

“지금 너 진심으로 묻는 거야?”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접시를 채워나가고 있는 윤재가 희미하게 미간을 좁힌 채로 물었다. 아무리 알바비 없이 일해 줄 행사도우미가 필요하다고 해도 우수영이라는 남자를 인형탈과 연관 짓다니 성호의 사고회로가 심각하게 걱정되는 그였다.

“성호 네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사람은 평소 남의 일에 관여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네가 본 건 그냥 조금 특별한 상황이었던 거야.”

“그래도 우대리님이 도와주시는 거, 제가 본 것만 네 번인가 그런데요. 그 정도면 남의 일에 관여하는 거 싫어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아요.”

“그러니까 성호 넌 그 사람을 잘 모르니까...”

“그럼 그냥 그 분한테 사장님만 특별한 건가요?”

“!”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은 윤재가 곧바로 정신을 수습하고 ‘아니야.’라고 조금 급하게 대답했다.

여기에 이전에 있었던 대화내용까지 합치면 성호가 현재 자신과 수영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 자세하게 묻는 것이 무서워지는 윤재였다. 이 정도면 혹시나 수영으로부터 뭔가 다른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냉정히 판단할 때 남과 쓸데없이 엮이는 것을 싫어하는 수영이 그와 같은 중요한 이야기를 여기저기에 흘리고 다닐 리는 없었다.

“그래도 두 분 모두 사장님이 부탁하면 진지하게 한 번은 생각해주지 않으실까요?”

“그럴 일 없으니까 이상한 기대는 하지 마.”

아무리 자신에게 친절하려 노력하는 두 사람이지만 그들에게도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의 한계란 게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윤재였고, 설령 두 사람이 들어준다고 해도 그런 도움을 받아들일 그가 아니었다. 이전에 본의 아니게 도움을 받은 일로도 여전히 마음의 짐을 안고 있는 윤재로선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빚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하긴... 도와주신대도 두 분 다 안 어울릴 것 같긴 해요. 일단 키들이 크셔서 귀여운 이벤트 인형이 아니라 뭔가 조금 위압감이 느껴질 것 같고요. 사실 우대리님은 탈 없이 그냥 그 얼굴로 서있는 게 홍보 효과가 크겠죠.”

아직도 질리지 않고 인형탈 이야기를 하고 있는 성호를 향해 가볍게 한숨을 내쉬어 보인 윤재가 마침내 완성된 과일안주와 조금 전 성호가 만들어놓은 신메뉴가 담긴 접시를 쟁반에 담아 들고 주방 입구로 향했다.

-‘네가 부려먹겠다고 하면 내 몸 얌전히 내 줄 테니까.’

조금 전 성호와의 대화 도중 수영의 이름이 나온 시점에서 무심코 며칠 전 수영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들었던 말을 떠올렸던 윤재는 곧바로 그런 스스로에게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 날 들었던 수영의 말을 빈말로 여기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진심이라고 해도 현실적으로 그가 인형탈까지 써주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윤재였다. 만약 정말로 해주겠다고 나선다면 오히려 윤재에겐 그게 더 무서운 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윤재가 자신의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오는 손님들을 확인하고서 좀 더 걸음에 속도를 붙여 다가간 뒤 들고 있던 안주들을 하나하나 차례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가장 기대하고 있던 양파 소스 오징어를 입에 넣자마자 찬사를 쏟아내기 시작한 손님들의 곁을 잠시 쑥스러운 얼굴로 지키던 윤재는 잠시 후 한참 만에 가게 안으로 들어선 새로운 손님 일행을 확인하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로 주문할게요. 여기 양파맛 소스 오징어인가 새로 나온 거 있죠? 그걸로 두 접시랑요...”

당연한 것처럼 자신이 개발한 신메뉴부터 주문하기 시작하는 손님을 보며 조금 기쁜 표정을 지은 윤재는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새롭게 안으로 들어서는 손님들을 슬쩍 눈으로 살피고 뒤에 서있는 성호에게 눈짓을 보냈다. 곧바로 주문서를 들고 새로운 손님 일행에게 향하는 성호의 뒷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윤재는 바로 앞 손님의 테이블에 계산서를 내려놓고 등을 돌려 주방으로 향했다. 그 사이 윤재의 등 뒤에서는 또다시 ‘양파맛 버터 오징어 주세요.’라는 누군가의 말이 들려오고 있었다.

좀 전까지 한산한 가게를 지키며 가라앉았던 기분이 서서히 떠들썩해지는 가게의 분위기와 함께 회복되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 있는 윤재는 아까 전 주방을 나설 때와 비교해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어제 새롭게 공수해온 질 좋은 오징어를 꺼내 손질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면 정말로 인형탈을 덮어쓰고 어설픈 춤이라도 출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그였다.

*

“이야-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너.”

“어서 와.”

회사에서 미리 연락을 받고 퇴근길에 모처럼 바(bar)-에 들른 수영은 일찍부터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일행의 곁으로 다가가 비어 있는 소파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여전히 골초네.”

습관대로 자리에 앉자마자 재킷 안쪽에서 담배부터 꺼낸 수영이 기다렸다는 듯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주는 종원에게 시선을 던졌다.

지금 테이블을 채우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수영이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친구 중 한 명인 종원은 이곳에서 유일한 유부남이었다. 2년 전에 속도위반을 이유로 급하게 결혼한 뒤로 얼마 동안은 가정에만 충실한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제 버릇을 남한테 줄 수는 없었는지 석 달 전쯤부터 다시 총각 시절의 습관대로 이 부근의 바(bar)를 도는 그의 모습이 많은 지인들로부터 목격되고 있었다.

“종원이 넌 벌써 권태기냐? 요즘 퇴근 뒤에 집에도 잘 안 들어간다며?”

옆에서 들려온 형석의 질문을 받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 종원이 미간을 찌푸리고서 되물었다.

“누가 그래?”

“너 요즘 밤놀이 한창이라고 여기저기서 제보가 들어오더라. 어제는 요 앞 클럽에서 어린 남자애 하나 잡아서 놀았다며?”

구체적인 증언이 나오자 더는 결백을 주장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는지 곧 종원의 표정이 느슨하게 바뀌었다.

“뭐, 가끔은 영계로 몸보신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에이- 새끼. 지 마누라도 아직 어리면서 무슨.”

“주변사람들 눈치 봐서 일단 결혼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난 남자랑 자는 게 더 맞는가 보다. 와이프든 누구든 여자랑 자면 만족감이 덜해.”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종원이 길게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바이 성향으로 주변인들 눈을 의식해서 결혼생활을 하면서 따로 남자 애인을 두는 패턴이라면 이미 주변에서 흔히 봐온 이곳의 일행은 종원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진성 게이면 결혼 생활 자체가 힘들지만 지금 종원과 같은 테이블을 채우고 있는 자들은 대부분이 겉으로 볼 땐 영락없는 노멀인 바이 성향으로 적당히 놀다 시기를 봐서 평범하게 결혼을 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진실을 모르는 상대 쪽 여자에겐 미안한 일이었지만 어차피 자신의 인생이 가장 소중한 인간들에게 있어 그런 문제는 그리 크게 와 닿지 않는 부분이었다.

“사실 나도 어제는 오랜만에 실컷 좀 놀았다.”

“누구랑 놀았는데?”

“스물두 살 먹은 대학생. 요 앞 바(bar)에서 만났는데 그냥 얼굴은 평범했어. 근데 은근히 끼가 있다고 할까. 이쪽으로 넘어 온지 얼마 안 된 것 같던데 호기심이 많더라고. 그래서 이것저것 시험해봤지.”

만족스런 어젯밤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한 형석이 아직까지 직접적으로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채 조용히 담배만 피우고 있는 수영에게 시선을 던지고선 대뜸 질문을 던졌다.

“수영이 너 SM쪽으로 경험 많지?”

갑작스런 질문을 받은 수영이 곧바로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오랜 만에 만들어진 친목 모임에 잠시 얼굴만 내비칠 생각으로 온 그는 가능하면 중심으로 나서는 것을 피하려는 생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없어.”

딱 잘라 대답하는 수영을 일제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는 일행 가운데서 형석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그런 말 못하지. 내가 아는 놈들 가운데서 네 얘기 꺼내는 놈들이 몇인지 알아? 너처럼 완벽한 주인님은 본 적이 없다고 어찌나 칭찬을 하던지...”

“언제 적 얘기야?”

연기를 내뱉으며 짧게 대꾸한 수영이 슬쩍 소매를 걷어 시간을 확인했다. 일단 아홉시까지만 자리를 지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그는 아직 두 시간 여의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새로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몇 년 전까지 기분이 내킬 경우 SM플레이의 일부를 섞어 섹스를 한 건 사실이지만 횟수로 따지면 거의 희박한 정도였고 그나마도 벌써 오래 전의 일인 만큼 지금 시점에서 그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다름 아니라 내가 어제 초짜랑 이거저거 시험해 봤다고 했잖아. 하다가 그 자식 거시기 털을 바짝 밀어버렸거든. 그러다가 나도 같이 밀게 됐고... 근데 이런 것도 SM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생각보다는 수위가 낮은 질문을 받은 수영이 재떨이에 담배 끝을 툭툭 털어내며 ‘사이좋게 같이 하면 SM이 아니라 친목이지.’라고 냉정하게 대답했다.

“그럼 넌 어떤 플레이를 했었는데? 때리는 거, 묶는 거?”

“내 잠자리 얘기 듣겠다고 여기 모인 거 아니잖아. 적당히 해.”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요구하는 형석의 태도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 수영이 서늘하게 낮아진 목소리로 제동을 걸자 그때까지 은연중에 형석이 만들어낸 분위기에 동조하던 다른 일행이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중재에 나섰다.

모처럼 만에 친구의 연락을 받고 참석하긴 했지만 한동안 술과 섹스의 세계에서 떠나 있었던 탓인지 지금의 수영은 일행 사이에서 오가는 진득한 섹스 관련 대화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에도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반쯤 흘려들으며 간간이 대꾸하는 것으로 적당히 대화에 참여하던 수영은 마침내 2차로 클럽에 가자고 일어서는 일행을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난 2차는 패스할게.”

“어? 왜? 지금부터 파트너 구해서 한판 찐하게 뜨려는데 같이 가자. 응? 네가 있어야 빨리빨리 진행된단 말이야. 분위기 봐서 파트너 섞어서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

“오늘은 일찍 들어갈 거야. 좀 피곤하기도 하고.”

단호한 수영의 거절에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을 지은 일행은 이후 두어 번 더 같이 갈 것을 권하다 연이어 거절당하자 어쩔 수 없이 그쯤에서 다음에 다시 보자는 인사를 건넨 뒤 일제히 몸을 돌려 입구로 향했다.

혼자 남겨진 뒤 소매를 걷어 시간을 확인하고 걸음을 옮기려던 수영이 문득 가게 안으로 들어선 반가운 얼굴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에요. 제이.”

“어머나, 이게 누구야? 안 본 사이에 더 잘생겨졌네. 수영씨.”

모처럼 만난 김에 잠시나마 대화를 나누기 위해 곧바로 집으로 향하려던 마음을 돌려 바테이블로 자리를 옮긴 수영은 기다렸다는 듯 비싼 술과 컵을 가지고 돌아온 제이에게 시선을 던졌다.

한동안 캄보디아로 여행을 갔다 왔다고 하더니 과연 제이의 피부색이 조금 어둡게 변해 있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의 제이는 예전부터 종종 한겨울이 되면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가곤 했었다.

“캄보디아 여행은 어땠어요?”

수영의 옆자리에 앉아 두 개의 잔에 차례로 술을 따른 제이가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거저거 볼 게 많더라고. 사원이며 시장이며... 이국적인 느낌이 좋았어.”

“혼자 갔어요?”

“아니, 친구랑. 그 녀석도 여행을 좋아하거든. 전에 칠레 여행도 그 녀석이랑 같이 갔었지. 그건 그렇고 수영씨 머리카락 좀 자랐네. 전의 짧은 머리도 멋있었는데 지금 길이가 더 좋은 것 같아. 왁스로 세팅하기에 딱 좋은 길이라고 할까. 세팅은 아침마다 늘 스스로 하고 있는 거야?”

“귀찮긴 해도 하는 편이 나으니까요.”

“하여튼 자기는 손재주까지 좋다니까.”

수트가 잘 어울리는 비율 좋은 장신에 세련되고 댄디한 느낌의 헤어스타일.

굳이 잘난 얼굴을 제외하고 스타일만 보더라도 분명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여직원들은 틈만 나면 수영을 훔쳐볼 거라고 제이는 확신을 담아 짐작했다. 그의 짐작을 뒷받침 해주기라도 하듯 지금 당장도 주변에 있는 몇몇 손님들이 중간에 힐끔대며 이쪽을 훔쳐보고 있었다.

일단 가볍게 안부를 주고받은 두 사람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애초에 아홉 시까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수영은 예상보다 빨리 친구들과 헤어진 상황에서 제이를 상대로 남아 있는 시간을 사용해나가고 있었다.

“근데 수영씨, 뭔가 좀 변한 거 같네.”

갑작스런 제이의 말을 듣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수영이 담배를 쥔 손가락을 움직여 재를 털어내며 물었다.

“어디가요?”

“어디랄까... 분위기가. 딱 집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 이런 쪽으로 예민한 거 알잖아.”

겉보기엔 소도 때려잡을 듯이 생긴 투박한 외모를 하고 있지만 실제 제이가 굉장히 섬세한 성격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수영은 지금 들려온 말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제이는 수영이 평소 가지고 있는 가슴속 이야기를 터놓고 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상대인 만큼 그와 함께 있을 때의 수영은 자연스레 평소보다 조금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그랬다.

분위기가 변했다는 말을 듣고서 수영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린 것은 물론 윤재와의 일이었다. 윤재의 존재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여감에 따라 자신의 일상이 이전과 비교해 상당부분 달라졌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그는 아마도 그와 같은 변화가 섬세한 제이의 레이더망에 감지되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일과 수면을 제외하면 남는 것이 거의 없는 담백한 일상의 연장.

잠자리 상대들과의 연락을 차단한 이후로 수영은 섹스 없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이어져온 그의 난잡한 성생활을 아는 사람이면 쉽게 믿지 않겠지만 며칠 전엔 오랜 만에 자신의 손을 써서 직접 욕구를 해소하기도 했던 그였다. 학창시절부터 성생활과 관련해 단 한 번도 상대가 부족한 적이 없었던 그에게 있어선 조금은 신선하게 느껴질 만한 경험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윤재를 볼 때마다 그를 안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었지만 오래 전 실컷 그의 몸만을 취하고 버렸던 과거를 가지고 있는 수영으로선 아무래도 윤재와의 관계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의 수영은 윤재의 몸보다 그의 마음을 얻고 싶은 바람이 간절했고, 그런 이유로 윤재와의 섹스는 목적이 아닌 결과의 일부가 될 뿐이었다. 물론 이처럼 느릿하고 담백하게 이어지는 관계는 하룻밤 사이 상대를 깨끗이 먹어치우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수영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생소한 것이었다.

“전에 말했었죠? 자꾸만 생각나는 사람 한 명쯤은 있지 않았냐고...”

“...있어?”

술잔을 든 제이가 엷은 미소를 머금고 묻자 먼저 한 차례 길게 연기를 뱉어낸 수영이 잠시 텀을 두고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분명 좋고 행복한 생각만 드는 건 아닌데... 그래도 습관처럼 자꾸 보게 돼요.”

“.......”

자신의 대답을 듣고도 얼마간 아무런 대꾸를 해오지 않는 제이를 뒤늦게 슬쩍 한 번 쳐다본 수영이 쓴웃음을 머금고서 물었다.

“역시 이상해요? 내가 이런 말 하니까.”

“뭐... 확실히 수영씨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은 아니지. 그래서 솔직히 좀... 놀랐어.”

“.......”

“그래도 난 좋은 것 같아. 수영씨도 이제야 제대로 된 연애를 하는구나 싶어서. 그런데 또 좋다고 그 마음 담아서 너무 심하게 안으면 안 돼. 자기 섹스가 엄청 하드한 건 알 만 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그 소중한 사람이 중간에 무섭다고 도망치면 안 되잖아?”

진심어린 걱정이 담겨 있는 제이의 조언을 들은 수영이 잔을 입으로 가져가 천천히 두 모금의 술을 목으로 넘겼다.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하게 된다면... 최대한 부드럽게 안을 생각이에요.”

“정말이지, 자기 입에서 부드럽게 한다는 말이 나오니까 진짜 믿기지가 않네. 최고의 주인님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 그런 말 하니까 받아들여지지가 않아.”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그런 이상한 소문은 대체 누가 어디서 내고 다니는 거예요?”

“그건 비밀이야. 알려지면 그 사람 당신한테 죽을 것 같거든. 그리고 사실 별로 헛소문도 아니잖아? 당신은 눈빛만 봐도 영락없는 ‘주인님’타입이니까. 그러니까 마조 끼 있는 바텀들이 환장하고 당신한테 몰려드는 거 아니겠어?”

“.......”

“그보다 누군지 물어봐도 돼? 당신이 지금 푹 빠져 있다는 그 상대.”

질문을 받고 일순 움직임을 멈춘 수영이 잠시 동안 가만히 잔을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오래 전에 만났을 때 내가 한 번 버렸던 남자에요. 비쩍 말라서는... 다리 하나가 불편해서 움직일 때마다 어깨가 크게 흔들리는데 그걸 보고 있는 게 마음 아프네요.”

대답하는 수영의 눈빛이 무척이나 진지한 것을 확인한 제이가 마찬가지로 진지한 표정을 짓고서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죄책감이나 동정은 아니지?”

이미 이 상황까지 오기 전에 수십 번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을 제이로부터 받은 수영이 깊이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내뱉고서 말했다.

“내가 애초에 누굴 동정할 만큼 착한 인간이 아닌 건 당신도 알잖아요.”

“...진심이네.”

“그래요, 진심이에요.”

“그럼 그 사람이 부탁하면 뭐라도 다 들어줄 거야?”

“가능하면요.”

“놀이공원에 가서 같이 커플티 입고 회전목마 타자고 하면 타 줄 거야?”

“...뭐, 그 정도는.”

“그럼 만약 그쪽에서 자기가 주인님 하겠다고 하면 얌전히 묶이고 무릎 꿇어줄 수도 있어?”

지나치게 극단적인 예를 드는 제이를 찌푸린 얼굴로 쳐다본 수영이 연기와 함께 짧은 한숨을 내뱉고 대답했다.

“진짜 하고 싶다고 하면 진지하게 한 번 생각은 해보겠지만 그런 타입은 절대 아니에요.”

“와- 그런 것까지 진지하게 고려해보겠다니, 자기 진짜 진심이구나. 이젠 자기가 그 상대한테 얼마나 진심인지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이상한 예로 진심을 인정받은 수영이 그쯤에서 적당히 대화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비워둔 시간도 채워졌고 무엇보다 아무리 상대가 제이라고 해도 이 이상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그였다.

“당신과 이런 진솔한 얘기 나누다니 보람 있는 시간이었어.”

만족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제이에게 ‘또 올게요.’라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등을 돌린 수영은 그대로 긴 다리를 움직여 순식간에 가게를 빠져 나갔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더니... 그래서 더 멋있어진 건가...”

조금 전 수영이 빠져나간 입구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낮게 중얼거린 제이가 문득 옆으로 다가오는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조금 서두르는 걸음으로 제이의 곁으로 다가온 건 단정한 이목구비를 한 양복 차림의 남자로, 그의 곁에는 화려한 인상을 한 젊은 청년이 서 있었다.

“즐거운 시간 보내셨는지 모르겠네요.”

“즐거웠습니다.”

제이의 질문에 형식적인 대답을 돌려주고서 일행과 나란히 을 빠져나온 남자는 일단 오늘은 이쯤에서 헤어지자는 말로 일행을 먼저 떠나보낸 뒤 재킷 안쪽에서 담배를 꺼내 그 끝에 불을 붙였다. 그가 나와 서있는 한밤의 유흥가 거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취한 인간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동안 질리지 않고 계속 만나고 있었던 건가. 녀석이 알면 눈 뒤집어지겠군.’

조금 전 바(bar) 안에서 우연찮게 들었던 대화내용을 떠올린 남자가 아직 반 이상 남아 있는 담배를 바닥에 내던지고 이어 칵 하고 침을 뱉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허름한 가게에서 보았던 순진한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고서 미간을 찌푸린 남자가 재킷 안쪽에서 핸드폰을 꺼내 단축번호를 누른 뒤 귀에 가져다댔다. 잠시간의 기다림 끝에 상대의 목소리를 확인한 그는 곧바로 입을 열어 자신의 이름을 밝힌 뒤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어. 나 해준인데, 지금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

잠시 바(bar) 앞 부근을 울리던 낮은 목소리는 잠시 후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한 남자의 뒷모습과 함께 곧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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