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131 아카데미 교관
지우와 김재혁, 그리고 미안한 얼굴이 가득하면서도 순전히 남자들이 범죄자이지. 자신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서 그런 선택을 강요당한 피해자라는 것처럼 이젠 시야에 보이지 않는 그들을 욕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다가와 해변으로 향했고, 호화스럽기 그지없는 배로 안내했다.
약 한 달간 씻지 못한 탓에 얼른 씻고 싶은데 게임 측에서 여태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뷔페보다도 많은 음식을 보는 순간 씻고 싶다는 생각은 저 멀리 달아났고, 짐승처럼 게걸스럽게 수저조차 사용하지 않으며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었다. 그리고 비쓰온 게임과 지금 향하고 있는 섬. 헤븐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서 오랜만에 배부른 식사를 하고 있을 무렵. 배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었다.
그렇게 헤븐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 아카데미에 도착한 지우와 스물아홉 명의 사람들은 거대한 강당에 줄을 맞추어 서 있었다. 이들 중에 무식한 사람은 없는지 제복을 입고 옆에 서 있는 교관들에게 겁을 먹고 순순히 교관들의 말에 따라 침묵을 유지하며 가만히 서 있었다.
'김재혁은 버려야겠네.‘
지우는 그런 교관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서른 명 중에 김재혁만 한 인물은 없는데 이 넓은 섬. 헤븐에는 그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있을 게 분명했다. 안 그래도 예쁜 외모를 지닌 지우인데 솔직히 위험 부담을 감수해가며 긁지 않은 복권이길 기다리기보다는 이미 다 긁어 당첨이 된 남자의 아내나 첩이 되는 것이 훨씬 좋아 보였다. 이 얼굴과 몸매라면 충분히.
'빨리 살을 찌워야겠어.‘
강제 다이어트로 인해 뼈마디가 보일 정도로 살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데 빨리 살을 찌워야지만 본래 가지고 있는 매력을 제대로 표출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 우선할 건 살을 찌우는 것. 애초에 남자들은 지우만 한 예쁜 여자가 있다면 앞다투어 지우를 얻으려고 싸움을 벌일 터. 때문에 좋은 남자를 찾는 건 잠시 뒤로 미뤄 두어도 괜찮았다.
"지우야 어떤 것 같아?“
"어떤 거라니?“
"여기. 아카데미라는 이곳이 정말 도움이 될까?“
옆에 서 있던 김재혁은 교관들 몰래 지우에게 물어보았다.
"모르겠는데?“
세 달간 교육을 받는다니. 과연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는 그녀였다. 솔직히 배틀 로얄에서 뭘 배워 봤자 먹으면 안 되는 것. 먹어도 되는 것. 주의해야 할 점 등. 알아야 할 건 많아도 굳이 석 달이라는 시간을 소비해서까지 아카데미를 다녀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거기다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 한지우에게는 딱히 좋아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야 그럴 것이 학교에 좋은 감정보다는 오로지 부정적인 감정들만 가득했으니까. 그리고 게임의 참가는 자유라서 어차피 게임에 참가하지 않을 지우에게는 쓸잘대기 없는 지식을 주입하는 경우였다. 그냥 빨리 살을 찌워서 성격이나 몸매가 어떻든, 돈 많은 남자를 덥석 물어야 하는데. 지우에겐 이 시간은 정말 의미 없었다.
"전체 차렷!“
"......!“
침묵만을 고사하던 교관 중 한 명이 갑작스럽게 이번에 새로 들어온 뉴비. 교육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한동안 이렇게 가만히 서 있느라 잡담을 하기 시작했던 교육생들은 다급히 자세를 바로 해서는 목소리를 낸 교관 쪽으로 시선을 보내었다.
"호오. 괜찮네?“
교관들 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서른 명밖에 없는 교육생들을 스윽 훑어보다가 이내, 지우에게서 눈길이 멈추며 감탄하였다.
"알아서들 해.“
책임자이지만 책임자의 책무를 할 가치가 없는지. 입맛을 한 번 다셨을 뿐. 기껏 단상에 올라와 모습을 보여놓고선 고작 그 한 마디와 그윽한 시선을 내보낸 뒤에 다시 단상에 내려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남자들은 앞의 남자 교관을, 여자들은 앞에 여자 교관을 따라간다!"
방금 전체 차렷이라고 말했던 교관이 못 들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지우야. 나중에 또 보자.“
"응... 알았어.“
무인도 안에서의 김재혁의 호감이 가득한 눈빛은 긍정적일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는 커다란 짐으로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나중에 혼자 용기를 얻어 고백을 해 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으로 최대한 다정하게 찰 고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우아아~! 침대다아아.“
풀썩.
방을 배정받은 지우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딱 봐도 그리 푹신해 보이지 않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역시 눈대중으로 봤을 때 한 예상이 틀리지 않은 듯. 딱딱했지만 차가운 흙바닥에서 자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다. 그러다 보니 스르륵. 눈이 감기며 잠에 빠졌다.
*
아침이 밝아왔고, 늦잠을 잤다는 이유만으로 지우를 포함한 서른 명의 인원은 밥을 굶게 되었다. 어제 배 터지게 많이 먹었음에도 인간이란 몸은 참 신기하게도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배가 꼬르륵. 밥 달라고 아우성치었다.
"아아. 배부르네.“
굶주림 속에 힘없이 주저앉아있던 지우의 눈에 교육생 선배라고 해야 하는 사람들이 부풀어 오른 배를 부여잡으며 강당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아.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큭큭.“
그들은 약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예전 추억을 상기하며 비웃었다. 그렇게 지우가 속한 초급반, 아카데미에 들어온 지 한 달이 된 중급반, 그리고 수료를 앞둔 상급반까지. 아흔이나 되는 아카데미 전교생이 강당에 모이게 되었다.
"어제 신입생들이 들어왔다. 중급반이나 상급반은 다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모두 모여있을 때 해야 짐승 같은 새끼들이 잘 알아들으니 또 들어라.“
싸움은 전혀 못 할 것처럼 벌크업만 엄청나게 한 남자가 단상 위에 올라서서는 말했다.
"배에서 다 들었다시피 헤븐에서의 범죄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지르면 안 된다. 그게 설령 아카데미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타인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뭔가를 훔치거나 폭행, 강간을 할 시에는 엄격한 처벌이 내려질 거다. 참고로 아카데미에서 처벌을 받은 후, 게임 측의 처벌을 또 받을 테니 몸을 잘 사려라. 알겠나. 초급반?“
"......“
"후우... 눈치가 없군. 이번 신입생들은.“
대답이 나오지 않자. 그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알아들었냐고!“
""네, 네에에!“"
그의 앞에 서 있던 다른 교관이 되묻자 그제서야 초급반은 우렁차게 대답했다.
'이게 뭐야. 수련회야?‘
그 속에. 지우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이거 완전 청소년 수련회가 아닌가. 정확히는 군대에 가깝겠지만 군대에 가 보지도 않았고, 크게 관심을 두지도 않아 분위기를 모르니 직접 체험해 본 것 중에 가장 비슷한 청소년 수련회를 떠올리게 되었다.
"다음부터는 대답 잘해라.“
"네에에엣!“
"그럼 곧바로 체력 단... 허업?!“
기계처럼 얼굴의 변화가 없어 보이던 교관의 얼굴은 무언가를 보고 놀라움에 표정이 완전히 풀어져버렸다.
'뭐야?‘
뭘 봤기에 저러는 건지. 지우는 교관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헙?!“
숨을 멈추었다.
"유, 윤재희 교관님. 무슨 일이십니까?“
누구에게조차 허리를 굽히지 않을 것만 같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교관은 잽싸게 단상에서 내려와 강당 뒤 편에 자리잡고 등을 기대고 있는 한 여성. 외모에 자신이 있던 지우조차도 몇 수나 접어도 모자랄 정도로 아름다운 은발과 적안의 여성에게 쪼르르 다가가 물었다.
"흐응... 예쁜 애가 들어왔다고 해서.“
"그, 그렇습니까?“
그는 아쉬움에 탄식이 흘러나올 것만 같지만 애써 숨겼다. 그야 그럴 것이 빼빼 말라서 보기에는 흉하지만 원판이 어찌나 예쁘던지. 살만 찌운다면 필히 그녀의 애인 중 한 명인 민정이급 외모가 될 수 있어 보였다. 그래서 다른 교관들이 접촉하지 못하도록 콕 찝어 찜해 두었는데 재희까지 노린다면 포기한다는 선택지밖에 고를 수가 없었다.
"괜찮네. 살만 찌우면 충분할 것 같아.“
"그렇죠... 네. 아마 살이 붙으면 정말 예쁠 겁니다.“
"엉냐. 그래 보여. 그러니까 나 신경 쓰지 말고 할 거 해.“
"알겠습니다.“
둘의 대화 내용이 궁금할 법한데도 불구하고 교육생들은 그저 재희의 아름다움에 반해 멍하니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뭐 저리 예쁜 거야?‘
지우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외모라면 연예계에 진출하게 되는 순간 정상은 무리가 있더라도 그 바로 아래까지는 도달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저 여자. 재희를 본 순간 하늘을 찌르던 자신감은 곧장 아래로 떨어졌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외모. 입이 떡하니 벌어진다.
그 증거로 이번에 들어온 초급반 신입생들. 김재혁까지도 지우가 생각나지 않은지 재희에게 시선을 고정시켰고. 한 달, 두 달 동안 아카데미 생활을 하면서 운 좋게 가끔 보던 재희의 외모가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은지 마찬가지로 넋을 넣고 그녀의 미모를 감상하고 있었다.
"난 간다.“
"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예쁘다고 교관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한 뉴비를 본 것만으로 오늘 할 일은 다 끝낸 재희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지금도 예쁘긴 해도 과실이 잘 익었을 때 따먹어야 제맛이기 때문에 오늘은 이만 돌아가는 것이다. 어차피 걱정할 것 없이 재희의 눈치를 살피는 교관들이 멍청하게 저 여자를 따먹지 못할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하아... 시발. 마음에 드는 년들은 다 가져가네.“
이래서 교관들의 입단속을 꼼꼼히 시키는데 주둥이가 나풀거리는 새끼들은 그걸 참지 못하고 지들끼리 떠들어댄다. 이번에도 그 새끼들의 말을 우연히 듣고 온 게 분명하다고 그는 확신했다.
"오늘 할 기분 아니네.“
기분 잡쳤다.
"야. 따라와.“
"저, 저요?“
"너 말고 누구 있어?“
"알겠습니다!“
중급반에 있는 평범한 외모를 지닌 여자는 해맑은 표정으로 강당을 나가고 있는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와. 부럽다.“
그녀의 곁에 서 있던 여자가 그녀를 부러워했다. 왜냐하면, 원치 않게 범해지는 것보다 아카데미 교육을 한 번이라도 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몸을 대줘도 손해는 아니기 때문이다. 더러운 기분을 한두 시간만 꾹 참으면 나머지 시간은 자유니까.
"장 교관님이 자리를 비운 관계로 내가 대신하도록 한다.“
그의 대신으로 다른 교관이 교육생들의 앞에 섰다.
"일단은 간단하게 운동장 10바퀴 뛰도록 한다.“
운동장... 10바퀴? 그게 간단한 건가? 운동장의 크기가 좁다면 이해할 노릇인데 얼핏 보기로는 지우가 나온 학교의 운동장보다 두 배는 더 커보였기에 절대로 가볍게 10바퀴를 뛸 게 안 되었다.
"뛰어.“
밑도 끝도 없이 강당에 모여있는 교육생들을 향해 뛰라고 한다.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신입생들은 얼타고 있는데 선배들은 뛰라는 말에 재빨리 일어나 강당을 빠져나갔다.
'이, 일단은 따라가자!‘
여전히 얼타고 있는 그들 속에서 유일하게 지우만이 일어나 선배들의 뒤를 쫓아가자 그게 방아쇠가 되어 다른 신입생들도 무작정 달렸다.
"하악... 학......!“
두 바퀴 돌고 나니 벌써부터 지우의 체력은 고갈이 났다. 그런데 지우처럼 여자인 데다가 체력도 적어 언제 지쳐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는 선배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근데 기이한 건 그녀들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가지고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표정도 끈기나 이런 게 아니라 무언가를 두려워해서 어떻게든 버텨내려는 듯 보였다.
'포, 포기하면 안 돼!‘
왜 교관이 여자 한 명을 지목해 데려가자 같은 여자들의 부러움을 샀는지 이제 알 것만 같았다. 그래도 지우의 직감을 믿고 서서히 낙오되기 시작하는 신입생들과 다르게 쉬지도 않고 완주할 수 있었다.
'어우... 다행이다.‘
과반수의 신입생들은 끝내 포기했고, 그 결과 운동장을 더 돌고 있었다. 지우는 그들의 모습에 직감이 들어맞은 것에 안도했다.
*
"으어어어. 죽을 것만 같아아아.“
오늘 일과가 모두 끝나고, 샤워실로 가 물을 몸에 대충 뿌리고 난 뒤 지우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아프다고 난리가 난 몸을 침대 위에 올려두었다.
"싫어... 이걸 석 달이나 해야 한다니. 싫어어어.“
다 포기하고 여기서 나가고 싶었다. 차라리 자살하는 게 더 편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고통받으며 살아온 자신이 너무나도 불쌍했다. 한 번쯤은 행복하게 웃어도 될 텐데 그런 웃음조차 지을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원망스러웠고, 미련이 생겨났다. 따라서 죽으려고 해도 살아서 하고 싶은 게 많으니 죽을 용기가 영 나오지 않았다.
"아아. 집 가고 싶어.“
오늘 처음으로 망할 부모가 있는 그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