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0화 〉130 아카데미 교관 (130/140)



〈 130화 〉130 아카데미 교관

주위에는 오로지 흙과 나무, 풀  산에서만 볼법한 것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렇다. 여긴 산이었다. 심지어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는 무인도였다. 아니,  무인도에서 나가지 못하고 갇혀있는 사람들이 굶주림, 그리고 편한 삶에서 벗어나 원시적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으니 완전한 무인도라 하기에는 어폐가 존재했다.

그런 사람 중. 망할 부모의 밑에서 스무 살이 되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던 한지우, 그녀는 교통사고로 부모가 죽자 드디어 그 개같은 새끼들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을 줄로만 알고 기뻐했는데 마지막까지 지우의 인생을 나락으로 향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비쓰온 게임? 이름도 괴상한 그런 배틀 로얄 게임에 지우를 담보로 맡기고 뒤진 게 아닌가.


당연히 지우의 의사도 없이 결정한 문제라서 무효였다. 이건 법적으로 가도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중세도 아니고 부모가 아이를 팔아넘기는 경우는 아무리 썩어빠진 나라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노릇. 그래서 법대로 하자는 식으로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긴 것 같아 기뻤는데. 지우의 창창한 앞날을 서서히 막아오자 결과는 지우의 패배가 되었다.


안 그래도 부모의 사망 보험금은 딸인 지우가 아니라 지우를 팔아넘긴 쪽의 어느 사람으로 되어 있어 아무것도 가진 게 하나 없는데 돈을 벌 방법까지  막아대니 결국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왔다. 배틀 로얄이라는 이름의 지옥에.


"지우야. 조금 괜찮아?“
"아. 응. 괜찮아.“


힘없이 나무에 등을 기대고 여기와는 다르게 느긋하게 흘러가고 있는 새하얀 구름을 올려다보고 있던 그녀에게 한 잘생긴 남자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우가 걱정되어 용기를 내어 물었는데 그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 아니, 사실은 지우가 속한 무리의 리더인지라 무시했다가는 나중에 어떤 증오로 돌아와서 지우를 나락으로 빠트릴지 몰랐다. 그렇기에 지우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무리하지는 마. 지우야.“
"아니야. 괜찮아. 정말로.“

무인도에서 언제 나갈  있을지는 모르고, 굶주리다 보니 서서히 몇몇 사람들이 미쳐서 인간이라면 하지 말아야 하는 짓을 스스럼없이 범하고 있었다. 사람을 죽인다거나 힘없는 여자를 강간하거나 하는 인간말종의 짓을. 안 그래도 예쁘장한 외모의 지우라 무리의 남자들이 그녀를 보며 음흉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어차피 법과 질서가 없는 이곳이며, 오직 힘만이 우선시되는 곳인데, 그리고 보호를  주었으면 그에 따른 대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또한, 며칠씩이나 여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보니 여러 상황이 맞닥뜨렸다. 예를 들면 우연히 여자의 속살을 본다거나 지쳐 잔뜩 풀어진 모습에 흥분한다거나 하는 그런 상황이.

그 때문에 어젯밤. 결국에는 도저히 참지 못한 남자들이 여자들 중에 가장 예쁜 지우를 범하려고 시도하였다. 잠에 빠져있던 지우의 입을 틀어막고, 손과 발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구속하여 가슴과 허벅지를 만지작거리니 당연히 지우는 잠에서 꺨 수밖에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었다.

목소리는 물론이고 손과 발이 구속되어 옆 사람을 깨울 방법이 없으니까. 그랬는데 다행이게도 무리의 리더이자 잘생긴 남자인 김재혁이 마침 깨어나 지우를 구해주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면 혼란스럽겠지만 예쁜 지우에게는, 인복이 없던 그녀에게는 이런 일이 다수 있어서 겁은 날지언정 여태까지 그랬듯이 도움을 받아 상황만  정리가 된다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 것 없이 평상시대로 돌아왔다.


"알았어......“

지금도 마찬가지로 처녀를 강제로 잃어버렸을 수도 있었는데도 아무렇지 않았지만, 김재혁의 비호하에 있으려면 어떻게든 힘든 척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김재혁에게 도움을 받은 다음에 불쌍한 척을 위해서 애써 밀려오는 수마를 밀어내며 밤을 지새우지 않았는가.


"누가 괴롭히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
"고마워.“
"고맙긴 뭘.“

여자로서는 끔찍한 짓을 당할 뻔했었기에 지우의 얼굴이 저리 창백하다고 판단한 김재혁인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속이려고 드는 지우의 속셈인지도 모르고. 힘없이 웃는 지우의 모습에 얼굴을 붉히며 돌아섰다.

'쯧... 기분 더럽네.‘

솔직히 김재혁은 잘생긴 데다가 능력도 좋아 보여서 대체 무슨 이유로 빚을 지고 이곳에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지우가 쓰레기 부모를 가진 것처럼 커다란 문제점이 있었겠지. 그 생각만을 제외한다면 이상적인 남자가 아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자초한 일인지 몰라서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는 순간 김재혁에게 향한 호감도가 대폭 상승할 수도 있었다. 그전에는 지우라는 꽃뱀에게 목을 물려 매혹당해 도구처럼 이용당할 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절대로 자신의 부모처럼 나쁘게 살지 않을 거라는 다짐이 산산 조각나니 기분이 무척 나빴다.

거기에 더해 여자의 적은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들에게 윤간을 당할 뻔했던 지우를 걱정하는 기색은 영 보이지 않고 김재혁의 관심을 모조리 끌어모았다는 이유만으로 무리의 여자들 전부가 지우의 적이 되었다. 얼핏 얘기를 들어보면.

'그냥 강간이나 당하지. 그랬으면 재혁이도 버렸을 텐데.‘
'딱 봐도  얼굴로 걸레 짓을 하다가 잘 못 걸려서 여기 온  같은데. 역시 걸레 기질은 어디  가네.‘
'우웩! 역겨워. 걸레랑 같은 공기를 마시니까 토 나와.‘


등등. 누구에게나 있었던 학창 시절이 정말 멀게만 느껴질 법한 여자들이 모여 유치하게 저러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모욕적인 말을 무시하려고 해도 계속 들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아... 여기서 나가고 싶다.“


여자들은 적이고, 남자들은 김재혁만 없다면 지우를 바로 강간할 것처럼 쳐다보고, 먹을 것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었다. 차라리 은행에 빚을 지고선 알바자리를 찾던 그때가 그리워질 정도였다. 그때도 정말 힘들어서 죽고 싶었는데도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대주고 싶은데. 곤란하네.“

무리의 사람들에게 신뢰와 더불어 존경 어린 시선으로 받고 있는 김재혁. 그리고 그는 지우에게 관심이 있어 보였다. 한 마디로 지우가 몸을 대준다면 곧장 그의 애인이  수가 있었고, 어느새 그녀는 무리의 2인자로 서열이 급상승을 노려볼 수가 있다.


그런데 그러면 반발이 이어지겠지. 지금 상황이 어떤데 그런 짓거리를 하냐며 김재혁에게 불만을 품거나 지우를 따먹었다며 질투하는 이들이 생겨날 터. 식량난 때문에 분열 조짐이 보이는데 굳이 몸을 대주면서 상황을  악화시킬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김재혁의 마음을 모르는 척. 호감과 동정을 받아 내고 있는 것이다.


"하아......“

무얼 해도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지우의 미래는 파멸만이 가득했다. 예전부터 그냥 예쁘지 않고 못생겼다면 얼마나 좋을지. 하고 생각한 게 여러 번 하긴 했지만 그래도 세상은 외모지상주의기에 나중에는 반드시 쓸모가 있을 거라 확신했는데 도움커녕 피해만 끼치고 있었다. 지금처럼. 지우는 암울한 현실에 다시금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지우야. 점심이야.“

잠시 뒤. 김재혁은 점심이라고 가져온 빵을 지우에게 내밀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지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자 이미 무리의 사람들은 부족한 점심으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아. 고마워.“

지우는 김재혁이 준 빵을 받아 입에 넣었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야 그럴 것이 눈치 없는 이 자식이 지우의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기 때문이다.

'하아. 진짜. 답답해. 대체  하고 살았길래 이렇게 눈치가 없는 거야?‘

날카로운 여자들의 시선이 온몸을 쿡쿡 찌르고 있고, 김재혁에게도 지우라는 예쁜 여자와 친하게 지내는 사실 하나만으로 존경 어린 눈빛은 대체 어디 갔는지  대신 차지하고 있는 질투라는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김재혁은 멍청하게도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니가 이러면 이럴수록 상황만 악화된다고. 왜 그걸 몰라.‘

지우의 생각으로는 김재혁은 정치인을 해서는 절대 안  것만 같았다. 아무리 호감이 있는 상대가 있다고 해도 이렇게 날이 잔뜩 선 주위 사람들을 대놓고 무시한  욕망에 이끌려 움직인다면 능력도 외모도  되어 지우에게 말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조차 의미 없는 질투심을 유발할 수가 있었다.


말해주고 싶은데. 이러면 안 된다고 알려주고 싶은데 괜히  말을 꺼냈다가 김재혁이 쓸데없는 정의감에 불타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어젯밤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 내가 같이 있어 주는 게 좋을 것 같다거나 아니면 멍청하게 지들이 뭔데 그러냐고 신경 쓰지 말고 자신만 믿으라며 전혀 믿음이  가는 말을 내뱉으며 무리의 사람들과 대치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김재혁은 전자나 후자 중 하나를 선택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정말 괜찮아?“
"으응... 괘, 괜찮아.“


분노에 입술이 부르르 떨리며 이가 갈려오는데 지우는 이걸 이용해서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행동했다. 뭐가 어찌 되었든 간에 이미 엎질러진 물.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보호해줄 호구, 기사님으로 김재혁을 완전히 사로잡아야만 했다.


'에이씨 몰라. 날 좋아하니까 어떻게든 지켜주려고 하겠지. 뭐.“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어차피 대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 눈치가 없어 무리를 통솔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김재혁은 머리를 쓰는 것과 달리 몸을 쓰는 일에는 뛰어났다. 그래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도 이 많은 사람들을 무력만이 우선시되는 이곳에서 모아서는 지금까지 유지하는 게 가능하니까.


*


결국은 이렇게 되었다.

"지, 진정하세요.“
"닥쳐 시발. 옆에서 염장질을 대놓고 하면서 뭐? 진정? 하. 지랄한다.“


지우와 김재혁. 둘 만을 제외하고 무리의 사람들은 적이 되어버렸다. 외모에 자신이 없어 여자들에게 외면만을 받아오던 못생긴 남자들이 예쁜 지우와 꽁냥꽁냥 대는 그의 모습에 이성을 잃고 분노하여 반란을 일으킬 사람들을 모았고, 여자들 또한, 김재혁의 편에 서도 질 게 뻔해 보여 몸을 팔아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그들의 편에 섰다.

"이런 사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아니지. 근데 여자가 옆에 있는데 왜 가만히 내버려 둬야 하냐? 그리고 나뿐만 아니더라도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같은 생각인데?"
"아윽......!"

김재혁을 밀어내고 새로운 무리의 대장이  듯한 남자는 반반한 얼굴을 가진 여자를 품에 안으며 가슴을 강하게 움켜쥐자 그녀는 고통에 미간이 잔뜩 일그러졌지만 반항은 절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여긴 약육강식 아니야? 그런데도 여자들은 시발. 잘생긴 너한테만 가네?“


 말 대로라면 김재혁이 여러 여자를 품에 안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려나. 어쨌든 여기서 가장 강한 사람은 김재혁이니까. 그냥 질투 나서 헛소리를 하는 게 확실해 보였다.


"아닙니다......“
"아니긴 뭘 시발. 야. 개년아. 너도 저새끼 좋아하지?“
"아, 아니예요.“
"지랄한다. 지랄을.“
"아으윽...! 아, 아파!“


품에 안긴 여자에게도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부정. 그래서 남자는 거짓말하는 못된 년에게 벌을 주듯. 가슴을  강하게 쥐었다.


"재혁아. 정이 있으니까. 그 년만 두고 꺼져. 그럼 살려줄게.“

욕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김재혁의 뒤에 서 있던 지우를 바라보며 말한다.

'윽... 역겨워.‘

아직 남자 경험이 없긴 해도 창작물 속에 나오는 비련한 여주인공에게 다가오는 남자 주인공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남자라면 충분히 몸을 내어주어도 괜찮게 생각한 지우였는데 집단 강간은 아니다. 그건 절대로 아니었다. 심지어 청결하지 못한 여기 무인도에서 범해지기 싫었고, 범해진 다음에 씻지 못한 상태로 있는 것도 싫었다.


'어떡할 거야?‘


지우는 김재혁을 올려다보았다. 지금에서야 지우가 저쪽에 붙어도 강간을 피하지 못할 것. 만약 여기가 무인도가 아니라 모텔 같은 곳이라면 두 눈 꼭 감고 남자들에게 몸을 대주겠는데 환경이 영 아니어서 김재혁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지우는 어서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으라고 재촉하듯 그의 팔을 강하게 쥐었다. 그러던 그때.

[총 생존 인원이 30명으로 떨어진 관계로 튜토리얼을 종료합니다. 축하드립니다.]


게임이 끝이 났다.

"뭐야. 끄, 끝이야?“


어안이 벙벙해지며. 남자가 당황했다. 그리곤 잃어버렸던 이성이 되돌아오며.

"재, 재혁아?“

계속 이대로 무인도에만 있었으면 자신이 무리의 리더가 되어봐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게임이 끝이 나니. 이젠 어떻게 될지 몰라 본능적으로 여기서 가장 강한 재혁이를 찾았다.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입니다. 가자. 지우야.“
"아... 응.“

게임이 끝났으면 게임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떠한 조치를 내릴 터. 그래서 재혁이는 고비를 넘겼다고 안도하면서도 무리의 사람들을 실망한 눈빛으로 경계하는 상태로 지우를 데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재, 재혁아!“
"가, 같이가!“

여자들은 뒤늦게 둘을 쫓아서, 남자들은 한탄이 가득 담긴 숨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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