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9화 〉129 아카데미 교관 (129/140)



〈 129화 〉129 아카데미 교관

쌔액. 쌕.

다섯 명이나 되는 애인들과 매일매일 밤새도록 몸을 섞다 보니 재희는 섹스를 잘해도 너무 잘하게 되었다. 그래서 평범한 여자 한 명을 손으로 보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씁. 더 하고 싶네.“


아카데미에 오면서 자지를 가지고 올 수는 없는 노릇. 애초에 자지를 가지고 나온다면 자신들도 아니고 아카데미에서 새로운 여자를 따먹는다며 화를 낼 것이라 차마 그런 선택을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렇듯. 여기서 더 전진할 수가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기절은 아니니 상관없겠지?“

계속 여기에 있을 생각은 없다. 그리고 이쪽은 사람이 잘 찾지 않는 사무실이면서 기절도 한 게 아니니 조금만 쉬면 다시 일어날  있을 터. 재희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스르륵 쓰러져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은 초롱이를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이네. 여기도.“


교육생들은 없고, 새로 뽑은 교관들은 교육을 받느라 넓은 부지를 자랑하는 아카데미엔 고요함만이 가득한 상황 속에서 기분 좋은 바람까지 살랑살랑 불어오니 약 2년에 가까운 과거. 튜토리얼을 막 끝내고 민정이와 예림이랑 함께 아카데미에 들어왔던 기억이 생각났다. 둘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가벼운  운동 수준으로 교육을 받았던 그녀로서는 추억이 안 될 수가 없는 기억이다. 그나저나.

"개들은 살아있으려나?“


같은 기수 교육생 중에 기억에 남는 인물들이 여럿 있었다. 몸매만 좋지 얼굴은 개박살이 난 여자와 그녀의 남자친구, 그리고 검도를 배워서 교육생들 중에 재희 다음으로 뛰어난 무력을 자랑하던 남자나 교관과 시비가 붙어 일방적으로 털린 남자나 등은 여전히 잘 살아있는 건지 모르겠다.

애초에 신경 쓸 가치가 없었을뿐더러 관심을 가질만한 것조차 없어서 신경을 끄고 있었으니 죽었는지 아니면 살았는지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살아서 등급을 차근차근 올렸다면 소식이 들렸을 수도 있는데.

"아무렴 어때.“

예쁜 여자라면 아쉽겠는데 뒤져도 재희와 아무 상관도 없는 놈년들이다. 다만, 백윤현.  아이가 죽은 게 너무나 아쉬웠다. 남자아이긴 해도 꽤 귀여웠었는데 말이지.

"아... 윤재희 교관님?“

느긋하게 옛날 향수에 빠져 걸음을 옮기고 있던 재희를 향해 농후한 목소리가 특징인 중년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음? 총장님?“

그는 다름 아닌 아카데미의 총장.


"저를 기억해 주시는군요. 이거 기쁘네요.“


너무나도 예쁜 여자가 보잘 것 하나 없는 자신을 기억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네에. 뭐.“

사실은 민정이와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갔을 때, 우연히 봤을 뿐이다. 당연하게도 총장이 남자이며 중년이기까지 하니 재희가 기억할 리는 없는데 다행스럽게도 민정이는 총장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재희에게  사람이 아카데미의 총장이라고, 되도록  사람과 마찰을 빚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해서 기억에 남아 있는 거지만.

"여기 처음 왔을 때의 기억이 나지 않는가요?“
"기억나긴 하죠.“
"하하. 저도 이곳에 다시 왔을 때, 처음 온 그날이 기억납니다. 고작 일주일이고, 고된 훈련을 받느라 같은 기수의 교육생과 아무런 접점이 없는데도 지금 와서 보니 추억이 되어 있네요.“

총장은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지 훈련 말고는 딱히 이렇다 할  없는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아련한 표정으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근데. 왜 고작 일주일인가요?“
"네? 윤재희 교관님은 아카데미가 어떻게 지어진 지 모르시는 건가요?“
"아뇨 압니다.“

나쁜 사람들이 있으면 착한 사람들도 있는 법. 그런 사람들이 의미 없이 죽어가는 뉴비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해 만든 것이 바로 아카데미가 아닌가. 그리고 그 아카데미가 수십 년째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늘릴 생각은 없나요?“
"교육 기간을 말이죠? 네... 저도 늘리고 싶습니다. 고작 일주일 교육받은 것으로 교육생들이 아카데미를 졸업하여 게임에 나가도 교육받지 않은 것과 비슷할 정도로 의미 없이 죽어 나가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는데 이게 마음처럼 기간을 늘릴 수가 없습니다.“


총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하늘로 향해있던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저도 아까운 목숨 들이 그렇게 죽어 나가는 건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떡할까요. 헤븐의 부호들이 지원해 주지 않는 이상에야 지금처럼 아카데미에서는 여전히 일주일이라는 정말 짧은 교육 기간만 거치면 수료증을 내어주고 졸업시켜 버리는데요. 돈... 네. 여기 온 목적과 마찬가지로 돈이 없는  큰 문제입니다.“


다른 교육 기관들처럼 돈을 받는다면 큰 문제가 없을 테지만. 교육을 받은 이들 전부가 주머니가 통통 비어버린 이들이라는 거다. 그런 이들이 아무리 도움이 된다고는 해도 빚을 내고 여기 왔는데 굳이  돈을 내면서 교육을 받을까. 아니지. 절대 그러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육받을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니. 그저 사람을 죽이고 살아남으면 될 텐데 그깟 교육이 필요 할까라고 가볍게 생각할 것이다.

"몇몇 교육생들이 이러한 아카데미식 교육 방식에 불만을 품고 나중에 자신이 성공한다면 반드시 아카데미 개혁을 한다고 소리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떵떵 소리친 것과 달리 돈을 많이 벌어들여도 했던 말을 지키는 교육생들이 없습니다. 아마도 목숨을 걸고 번 돈을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쓰는 성인군자가 아닌 것도 있고, 깨끗한 물에 더러운 물을 섞으면 더러운 물이 되듯. 변하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그래서 바뀌지 않는 것이라. 총장은 미련한 현실에 탄식했다.

"교관님들의 월급은 게임 측에서 지불하고 있어서 쓰지 않은 건물들을 리모델링 해서 숙소와 화장실, 샤워실을 만들 돈만 있으면 되는데 기부는커녕. 저도 돈이 없네요.“


총장의 월급은 정말 짜다. 그럴 수밖에. 총장은 브론즈 등급이며 하는 일이라곤 아카데미의 간단한 관리뿐이니 게임 측에서 주는 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빚의 이자를 갚는 것만으로 힘이들 노릇인데. 그런 돈을 쪼개고 또 쪼개서 아카데미를 변화시키기란 무리가 있었다.

"저한테 능력이 있었다면, 윤재희 교관님처럼 돈을 많이 벌어들일 수만 있다면 달라졌을까요. 아니면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이기적으로 바뀌었을까요.“


쉽게 말하네. 능력이 있더라도 고생과 위험은 똑같은걸. 재희가 생각하기로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끈기가 필수 요소였다. 솔직히 빵 두 개와 물  병으로 한 달 이상을 살아가야 하는데 끈기가 없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순간 다른 참가자들에게 죽어버릴 게 분명하니까.


"알 순 없죠. 그건.“
"네. 알 수가 없죠. 미래와 만약의 일은.“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확신할 수가 있었다. 총장이란 이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 같다고. 지금까지는.

"제가 도와드릴게요.“
"네?“
"도와드린다고요. 아카데미가 변하기를 말이죠.“

한 달간 무인도에 갇혀서 맛 대가리 없는 빵만 쪽쪽 빨아대다 보니 당연히 아카데미의 식당 음식은 맛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먹어보면 영 아니었다. 아마도 예산을 아끼거나 도둑놈이 있다는 의미일 터.


"그게 가능할까요? 수십 년이나 이어져 온 방식이 한순간에 바뀌기란 힘들 겁니다.“
"네. 그런데 저는 다릅니다.“

윤재희. 그녀가 누구던가. 외모는 두말할 것 없고 후원자들 사이에서 아이돌과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그리고 게임 측에서도 실험체 중에 유일한 생존자이니 재희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정보들은 최대한 다 알아내야만 해서 게임을 하는 모습을 모니터링 하면서 되도록 죽게 두지도 않았다.

"어떻게요?“


어떻게긴.

*

"많이 늦네.“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아카데미를 바꿔보고 싶다며 돈을 달라고 게임 측에 떼를 쓰는 것. 그러려면 우선은 게임 측 인물과 만나서 얘기를 나눠봐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물론 그런 인물들이 헤븐 내에 많이 존재하긴 한데 전부 말단이 해도 무방한 사람들이라 아무리 토로해 보아도 들어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재희와 게임 측과의 사이가 어떤지도 모르는데 과연 들어주기나 할까. 그래서 재희가 생각한 건 다름 아닌, 무작정 부둣가에서 누군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부둣가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재희가 의도한 대로 자신들과 접촉하려는 생각이구나 하고 사람을 보내올 수도 있었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는데 너무 늦네.


"윤재희 씨?“
"아. 드디어 왔네."

이벤트라는 이름을 방자한 개 같은 지옥에 밀어붙이기 위해 재희의 그녀들을 협상 용도로 사용한다며 알려주었던 익숙한 얼굴을 한 심부름꾼이 재희에게 다가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너무 늦었다며 투덜거렸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방금 전에 알아차려서 최대한 빠르게 온다고는 했는데 너무 늦어버렸네요."

두 시간 동안 뼈 빠지게 기다렸을 무렵에 연락이 왔었다. 재희가 이유도 없이 부둣가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이.


"교관 일을 때려치우셨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그리고 석  정도 하기로 했으니 그때까지는 게임에  자도 꺼내지 마. 나 미쳐버리니까.“
"끄응...! 그러면 대체 무슨 용무입니까?“

뭐야. 왜 저리 화가 났대. 오히려 화를 내야 하는 사람은 재희가 아니던가.

"안 그래도 당분간 재희 씨가 게임에 참가하지 않을 거라는 말에 후원자들이 난리가 나서 골머리를 썩이는데. 아카데미 교관을 그만둔다는 희소식도 아니라니.“

아... 그거 참 미안하네.

"그냥. 돈  지원해 달라고.“
".......“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 재희는 다짜고짜 돈을 지원해 달라는 말을 내뱉어 버리자 심부름꾼은 멍하니 재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침묵을 고사하다가 이내,

"네?“

되물었다.

"못 들었어? 돈  지원해 달라고.“
"도, 돈을요? 이자 책정 기간을 늘려달라는 게 아니라 돈을 달라고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요구. 지금 50억이라는 거금을 가지고 있으니 딱히 돈이 필요하지 않을 텐데 대체 뭐가 부족해서 3년으로 줄어버린 유예기간을 다시 5년으로 늘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달라니. 심부름꾼은 순간 자신이 잘 못 들은  알았다.

"아카데미 교관을 하려 하는데 시설이나 운영이 너무 부실하더라고. 그래서 그걸 바로잡을  돈을 달라는 거지. 내가 쓸 건 아니야.“
"아. 그런 건가요. 네. 저도 아카데미에 문제가 많다는 건 알았지만.“

'시발.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부른 거야?‘


별 같잖은 이유로 바쁜 사람을 불러놓고 하는 말이 저거라니. 화가 치밀어 오를 상황이지만 어찌 되었든 재희의 얼굴을 화면 넘어가 아닌, 실제로 볼 수 있어서 기분은 좋았건만.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지금은 아니라고!‘


이래서는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뒤로 미뤄진다는 것. 누군가 대신해 주는 것도 아니라 한 시라도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여기서 일거리를 늘려 준다고? 아무리 재희라도 이건 선을 심하게 넘은 듯 보인다.


"불가능합니다.“
"왜.“
"왜라니요. 수십 년 동안 그렇게 운영되고 있던 아카데미인데 어찌 바뀔 수가 있나요?"
"어쩌긴. 돈을 주면 되잖아?“
"그게 문제입니다. 돈을 주더라도 아카데미 측에서 제대로 자금을 운영 할지는 모르지 않습니까? 애초에 굳이 그러지 않아도 잘 돌아가던 아카데미라 상부에서도 허락이 떨어질 것 같지 않고요.“

뭐, 잘 돌아가는 시설을 돈을 써가며 개선할 필요는 없겠지.

"아닐걸?“
"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응. 큰 문제가 하나 있지.“
"그게 뭐죠. 있으면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빠르게 확인하여 개선해야 하니까요.“
"빠른 일 처리 좋네. 오케이. 알려줄게. 문제는 바로.“


두근두근.


"아카데미가 내 마음에 들 정도로 바뀌기 전까지 게임에 참가하지 않을 거야.“
"예...? 네에에엣?! 그, 그게 지금 무슨 헛소리인가요?“
"왜. 안 돼?“
"네! 안 되죠! 절대  되죠!“

일주일조차 참기 힘들다고 하는 후원자들이라 재희에게 미안하지만, 최대한 게임을 빠르게 잡아 강제로 참가시키고 있는데 아카데미가 정상화 될 때까지 게임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이건 큰 문제가 된다.

"왜? 어차피 총장이 승인하는 순간 너희는 나한테 돈을 줘야 하잖아?“


월급은 게임 측에서, 근데 교관은 아카데미 측에서 뽑으니 재희가 마음을 바꾸지 않는 이상 직접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무모합니다. 당신의 딸이나 애인들도 생각해야죠!“
"그건 내가  말인데? 걔들을 건드리면  어떻게 행동할까?“
"끗......!“


갑은 재희였다. 애인들이 죽으면 미쳐서 날뛰면 그만. 근데 게임 측은? 잃을 게 많아도 너무 많은데 상대가 세계를 뒤흔들만한 힘이 있는 돈 많은 집안이라면 답은 뻔했다.

"이젠 협박은 안 통해.“

재희의 부탁이라면 목숨을 내놓더라도 들어줄 호구들은 헤븐에 널리고 널려 있다.


"알겠... 습니다. 일단 이대로 상부에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까득!“

분한 마음에 이빨이 마구 갈리는 그.

"부탁할게~!“


날카로운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희는 손을 흔들어 부둣가를 나갔다. 그러게 며칠 뒤에 아카데미에 지원금이 비처럼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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