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7화 〉127 아카데미 교관 (127/140)



〈 127화 〉127 아카데미 교관

재희는 지금. 진도열과 약속한 저녁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그것도 헤븐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격도 제일 비싼 고급 레스토랑에서 말이다.

"야... 기껏 왔으면 즐기는 모습이라도 보이는 게 예의가 아니냐?“
"엉. 즐기고 있어.“

그런 재희를 앞에  진도열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토로했지만, 어쩌라는 건지 하고 묻는 듯한 반응으로 하나에 몇십만 원이나 하는 작은 젤리를 입에 넣었다.


"......“


그가 지긋이 재희를 쳐다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와아~! 이거 너무 맛있다. 고마워~!“
"성의 없네. 시발.“

어라. 최대한 성의가 있게 보이도록 심의를 기울여 연기했는데. 들켜버렸네. 그리고 애초에 비즈니스식 식사인데. 솔직히 여자도 아니고 호감이 있는 남자와 어쩔 수 없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나저나. 너 이제  하게?“
"너라니. 오빠라고는 언제 부를래? 나이도 내가 훨씬 많은데.“
"일어날까?“
"아니다.  네 마음대로 해라.“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자에게는 절대 오빠라는 말이나 존칭을 하지 않는 재희였다. 그래서 진도열의 물음을 듣자마자 일어날 준비를 끝마쳤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도열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가 훨씬 많은 새끼가 새파랗게 어린 유부녀를 꼬시려고 드는 건 정상이냐. 시발놈아.‘


재희 자신이 제정신이 아니란 건 이미 알고는 있지만 이와 만만찮게 진도열 역시 정신이 나가있었다. 외모가 동안이며 잘생긴 것뿐이지. 평범한 얼굴이었다면 사람들에게 쓰레기라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고도 남았을 것이다..

"놀아야지. 뭐  있냐.“

팀의 박스를 부신 패널티로 강제 휴식과 벌금이 물렸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 꽤나 멋졌다. 그야 그럴 것이 못해도 못해도 100억에 가까운 돈을 혼자 부담했을 건데도 불구하고 상관없다는 듯한 반응에. 부럽네. 돈 많아서.

"다음 달에 또 게임이 잡혔던데. 넌 그거  거냐?“


참가가 가능한 게임이 있다면 무조건 참가하는 재희는 어느새 미친년. 돈에 환장한 제대로 미친년 등. 온갖 부정적인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은 게임 측에서 임의로 넣은 건데. 억울하게 시발.

"아니. 아카데미 교관을 한번  보려고.“

아직 게임 측에서 게임 신청서를 내지 않은 시기라서 재희는 미친 듯이 뛰어가 아카데미에 교관 신청서를 내고 온 뒤에 시간이 남아. 덤으로 진도열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건 왜. 돈도 안 주는데.“


아카데미 교관의 경쟁은 정말 세다. 과장을 담아 말해 보면 IG, 사성 등과 같은 대기업보다 경쟁이 심했을 가능성도 높았다. 왜냐? 낙하산이 있으니까. 교관 선발 기준은 오로지 등급 우대였다. 예를 들자면 골드 등급의 참가자가 신청서를 내어 뽑혔음에도 뒤늦게 온 플래티넘 등급 참가자가 자기 교관을 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은 떨어지게 된다.

만약 같은 등급이면 짬밥이나 인맥을 통해 결정이 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정말 극소수였다. 진도열이 말한 것처럼 아카데미 교관은 돈을 받으려는  아니라 게임에 참가할  없을 때 하는 도피처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라 그런지 월급이 게임에 참가하는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짜게 주었다.

참고로 교관 심사위원은 있으나 마나이긴 해도 일단은 있었으며, 그 사람들은 재희처럼 헤븐에 갇힌 빚쟁이들이다. 그런데 월급은 게임 측에서 준다. 황당하게도. 이런 시스템을 가지게 된 이유는 원래 길드에서 교관 월급을 주는데 너무 짜다 보니 하는 사람이 없게 되어 결국은 게임 측이 개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튼.

골드 등급이 교관이 되면  300, 플래티넘이 400, 다이아가 500, 색깔 등급이자 재희의 등급인 레드는 천이었을 거다 아마도. 적어도 너무 적다. 다른 등급이라면 몰라도 색깔 등급 부터는 상금이 엄청 늘어나서 못해도 1억은 꽁으로 먹고 시작하는데 월 천만 원? 이 때문에 게임 대신으로 교관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색깔 등급은 아예 없었고.


"그냥. 쉬려고.“
"하... 참. 쉰다는 년이 그 쉬는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돈을 벌려고 하냐? 진짜 돈에 미쳤네.“
"솔직히 미치지 않고서 어떡하냐? 시발. 네가  입장이 돼 봐라. 개같은 새끼야. 빚이 1조라고 1조, 거기다가 이자가 50%인데. 말이 되냐? 야. 한 달이면 5천억이 불어난다고!“

돈에 미쳤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은데 돈에 미치지 않고서야 미래를 바라볼 수 없는 입장이 되었는데. 뭘 어떡하라는 거야.


"쯧. 그러게 왜 1조나 빚을 졌냐? 아니 1조를 질 수가 있냐? 회사를 말아먹어도 그 정도는  된다. 진짜.“

조 단위의 기업가치가 있는 회사라면 망하기가 힘들뿐더러 1조라는 빚도 지는 게 무지 힘들지 않을까. 재희도 안다. 그걸 아는데.


"하아.......“

내가 진  아니라고. 아버지라는 개객끼가 진 거라고 말하기도 이젠 지친다.


"쯧. 불쌍하긴.“

외모와 능력. 남자가 보기에는 세상 부러울 게 하나 없이 모든 걸 가진 것만 같은데 안은 1조라는 빚을 가지고 있다. 어떨 때는 부럽다가도 이럴 때는 전혀 부럽지 않은 게 재희라는 여자였다. 그래도 예쁘니 빚이 얼마나 있다고 해도 진도열은 그녀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좋아. 이쯤이면 되겠지?‘

배경과 외모만 있으면 알아서들 오는 여자들이라 꼬시는 법을 모르지만, 한꺼번에 여러 여자를 꼬시고, 문어발 다리라는  들켰어도 헤어지지 않게 여자를 구슬릴 줄 아는 길드원에게서 들었다. 여자는 힘들 때 다가와 공감해 주고 도움을 주는 남자에게 호감을 크게 느낀다는 말을. 그런데 재희가 고민을 진도열에게 말할 리가 만무하니 먼저 병을 주고, 약을 주는 방식을 채택했다.

진도열은 이쯤이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왔다. 1조라는 빚을 아버지가 졌다고는 해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람 한 명이, 그것도 부자라고 해도 1조라는 빚을 지기가 힘든데 아버지라는 사람 혼자서 졌다는 말이 믿기 어려울 따름. 그래서 믿지 않은 척. 진도열은 공격을 한 것이다.


'예쁘네. 그것도 더럽게.‘


살짝 일그러진 표정으로 턱을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여신이나 다름없었다.  속눈썹과 오똑한 콧날. 수없이 많은 게임을 했음에도 탄 기색이 없는 새하얀 피부, 기울어진 머리와 달리 중력을 버티지 못해 일자로 늘어뜨려진 은색의 머리까지. 하나하나가 매력 포인트였다. 이러니 주위에 여자들이 많은 진도열조차 그녀의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얻고 싶어 안달이 난 게 아닌가.


그는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는 재희의 작은 손을 향해 팔을 점차 뻗어 나갔다. 우선은 가벼운 스킨쉽부터. 솔직히 알고 지낸  1년이 넘었으며, 친하게 지낸 지는 3개월로 짧아도 정말 남매처럼 친한 사이를 유지해 왔다. 그러니 손을 잡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터. 그리고 잘생기기까지 했으니 만나왔던 여자들처럼 거부하지 않을  분명하다.


"뭐 하냐?“
"......“


슬금슬금 다가가던 진도열은 손을 딱딱하게 굳으며 움직임이 멈추었다.


"왜. 손잡으려고?“
"아......“

진도열의 속셈을 알아차렸는지. 그렇게 물음며 테이블 위로 올라가 있던 손은 그의 시선이 닿지 않은 무릎으로 떨어지자 탄식이 흘렸다.

"참나... 이제 포기할 때 안 됐냐?“


어떻게. 어떻게 포기해야 하냐. 지희의 아빠가 살아있었어도 진도열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의 남편을 죽이고 그녀의 마음까지 사로잡으려고 노력했을 텐데 말이다. 하필이면 레즈라니. 레즈라면 주위의 여자를 죽이더라도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이상. 부질없는 짓이었다.


"나 남자 안 좋아해.“

알지. 재희 네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를 좋아하는 것쯤은. 헤븐에 있는 모든 이가 다 알고 있을 사실이었다. 그렇다 보니 외모에 자신 있는 여자들이 재희를 꼬시려 들지 않은가. 레즈라는 성벽이 없어도 재희의 얼굴을 본 순간 확정적으로 성벽이 뒤바뀌니까. 그리고 능력도 있으니 예쁘장한 외모만 가지고 있다면 해 볼만한 도박이었다.

"여자 좋아해.“


남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올 예전과는 달리 지금의 재희는 완벽한 여자에 가까웠다. 그래도 가끔은 남자다움이 풀풀 풍기는 걸크러쉬한 여자로 인식되지만. 아무튼, 시간이 흘러도 좋아하는 성별만큼은 변함이 없으니 진도열의 노력은 헛된 것일 수밖에 없다. 피를 부르는 사나이. 이창운도 마찬가지. 애초에 그가 중2병이라는 것만으로 아웃이다.


"그러니 이제 포기하는  어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재희의 얼굴과 레즈라는 소문이 헤븐 전역이 퍼져서 작업을 거는 남자들이 확연하게 줄어들긴 했어도 외모에 자신 있는 남자들이나 진도열과 이창운처럼 배경이 자신 있는 남자들은 포기를 모르는 듯. 끊임없이 다가왔다. 지긋지긋하다. 아무리 여자를 좋아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으니까.


"그게 뜻대로 안 되니까. 이러고 있지 내가.“


그도 레즈라는 사실에, 그리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변함없는 재희의 마음으로 인해 포기하려고 한 적이 수십 번은  되었다. 다른 여자를 만나 보고, 그녀를 잊기 위해 시간 가는 줄 모르던 놀이 문화를 접해 보아도 자꾸만 재희의 얼굴이 눈앞에 아려옴과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그의 발은 재희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걸 어쩌란 말인가.

"에휴. 그럼 성전환이라도 하고 와. 그럼 받아줄지도.“


남자와 여자의 미적 기준은 비슷비슷해다. 그 증거로 잘생긴 남자가 여장을 하면 예쁘듯이 에쁜 여자가 남장을 하면 잘생겨지니 말이다. 그러니 잘생긴 진도열이 재희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성전환이란 큰 결정을 한다면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 볼  있지 않을까.


"미쳤다고 그러겠냐.“

사랑 때문에 성전환을 하다니. 그것도 동성이 아니라 이성 떄문에. 말이 안 되지. 남자가 여자를 위해서 여자가 된다니. 지나가던 똥개가 코웃음을 치다 못해 2연   텀블링을 할 정돌 어이가 없었다.

"그럼 포기해야지 뭐.“


그게  된다면 접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


진도열은 멈추었던 식사를 이어나가기 시작한 재희의 얼굴을 바라본다. 성격이 저렇게 더러워도 얼굴이 미쳤기 때문에 그런 성격마저 끌어안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녀의 잘 못으로 싸우더라도 무조건 진도열 자신이 잘 못했다며 빌고, 재희가 원하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문제는 그녀의 마음이 변함없이 확고하다는 거다.


"그건 안 되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멈칫.


그리 말했는데도 진도열의 마음도 변함이 없었다. 재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음식에 향해 있던 눈을 떼어내 앞에 앉아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미친... 새끼.“
"인정.  미친 새끼다.“

얼마나 미쳤냐면. 여기서 1000억을 벌고 바깥세상으로 나가기로 마음먹었는데 재희 한 명 때문에 나간다는 생각을 접은 것으로 모자라 1000억이라는 돈까지도 모아놓고 그녀를 위해 써대다 보니 벌써 100억이 넘게 증발하지 않았던가. 배가 아파서라도 포기 못 한다. 정말로.

"내가 대체 뭐가 좋아서 그러는데?“
"얼굴.“
"또?“
"얼굴.“
"그것 말고 없는 거냐?“
"음... 몸매?“
"시발.“

결국엔 외모라는 거잖아.


"그래. 그래.  쪼대로 해라. 그런데 절대 네 마음 받아줄 일은 없을 것 같다.“
"알아. 알고는 있어도 이러는 건 나니까. 그건 신경 쓰지 마.“
"아니, 어떻게 신경을  쓰... 하아......“

자신이 좋다고 졸졸졸 쫓아다니는 남자를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말인가. 심지어는 여러 번 찼기까지 했는데.

'끈질기다. 끈질겨.‘


그녀들이 재희의 예쁜 외모를 좋아하니 예쁜 건 좋긴 좋다만. 쓸데 없이 남자들까지 꼬이는 게 정말 스트레스가 쌓일 지경이다.


'지희한테도 이러려냐?‘

이미 유치원에서 남자들이나 여자들에게 고백을 받았다며 자랑스럽게 말하던데. 나중에 성인이... 아니, 중학생만 되도 지희가 애인을 만들어도 남자들이 그 애인을 시기 질투하는 것으로 모자라 괴롭힘에, 헤어지라는 협박에...... 아니지. 아니야.

'지희의 남자친구?‘


 되지. 죽어도 지희가 남자를 만나는 건 허락  한다. 눈에 칼이 박혀 들어와도 재희가 미치지 않는 이상은 애인은커녕 같은 반 친구라는 것조차 허락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지희는 죽을 때까지 재희랑 함꼐 살아야 하니까. 응응!


달그락. 달그락.


진도열은 어떻게 하면 재희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재희는 지희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둘의 사이에서 말이 사라지고 오직, 식기만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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