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2화 〉122 엄마 (122/140)



〈 122화 〉122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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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 빠진 소녀를 깨우려는 것처럼 몸이 흔들거리자 자꾸만 닫히려고 드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렸다. 늘 잠에 깰 때가 되면 방안을 가득 메우는 알람이 시끄럽게 울리지 이렇게 부드러운 흔들거림을 느끼며 편안하게 일어났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누구지...? 누가 깨운 거지? 의문을 가지며 깨운 이가 누구인지 확인하자 누에 들어온 사람은 은발과 적안을 가진 여신과도 같은 미모의 소유자. 소녀의 엄마였다.

"우웅... 지희.....?"

소녀를 깨우면서 엄마는 그렇게 말을 했다.


"지희의 이름이야. 엄마의 이름은 윤재희. 너는 윤지희. 어때? 괜찮아?"
"윤재희...! 윤지희...! 응! 엄마! 이름 좋아!“

이름... 이름...! 엄마가 이름을 지어주었다. 실험체 BG  59가 아니라 윤지희라는 예쁜 이름을. 아니, 예쁘든 예쁘지 않던 아무래도 좋았다. 엄마의 이름과 비슷하고, 엄마가 직접 지어주었다는 것만 해도  의미가 담겨있었으니까.

'헤헤. 윤지희! 예쁘다. 엄청 예뻐!'

이름이 새로 생겨났다. 이러면 실험체 BG  59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더는 안 불려도 된다는 사실에 너무나 기쁜 나머지 소녀는, 지희는 엄마의 품에 안겨 얼굴을 마구 비벼댔다.


*

"그, 그 애는 뭐야?“


배에서 내린 엄마와 지희는 부둣가를 지나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던 중간에  잘생긴 남자가 다가와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지희를 손으로 가리키며 엄마에게 물었다.

"너 결혼 했었어? 스물두 살이라며. 고등학교  사고 친 거야? 이, 입양은 아닌데. 머리 색이나 눈 색, 그리고 외모를 보면 친딸이 확실한 것 같은데?"

그의 이름은 진도열. 헤븐에서 2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엄청난 사내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리라 마음먹었던 미래의 배우자에게 겉모습과 머리카락, 그리고 눈의 색까지. 친딸이 확실해 보이는 아이를 곁에 두었다는 모습을 목격하고 평소보다 말이 빨라지며 현실을 부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 아니지. 그리 나쁜 것도 아닐 수도?“

어떤 남자의 아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귀엽기만 하다면 자신의 딸이 되어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진도열의 생각을 읽은 건지 재희는 살짝 눈길만   주고는 대답해 줄 이유 따윈 없어서 다시 고개를 바로 하여 그를 무시한 채 걸어 나가자 지희는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드디어 엄마랑 만났는데 빼앗길  없지. 엄마는 지희의 것이라고 넘보지 말라며 알려줄 겸. 몸을 더 밀착하였다. 그러자 진도열에게 보인 차가운 모습과는 달리 무척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며 머리를 쓰다듬었고.

"웅...! 메에~!“
"아.....?“

그런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진도열을 향해 혀를 베에 내밀며 놀렸다. 그 모습에 진도열은 얼빠진 표정으로 몸을 굳혔다.


"엄마. 누구예요?“
"신경  필요 없어. 나중에 지희한테 다가오면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해. 알았지?“
"응!“

역시. 다행이게도 지희의 생각이 맞았다. 방금은 자신보다 엄마를  빨리 알았으며 오랫동안 알고 지낸 듯 친근하게 다가오는 모습에 질투가 나 대책 없이 행동했었다. 만약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이었으면 엄마에게  피해가 같을 터.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천만다행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응응. 외웠다!‘


엄마가 말한 세 단어. 암기해내서 반드시 적절한 상황에 써먹어 칭찬을 받아야겠다고 지희는 생각했다.


*

뭔가... 뭔가가 이상하다. 엄마의 친구들...? 로 보이는 언니들에게 추궁을 당하는 듯한 모습에 지희는 긴장했다. 레이건을 포함한 여기까지 오면서 만났던 남자들을 대했던 너무나도 차가운 모습과는 달리. 한없이 약해져 있었다.

'저 사람들은 위험해!‘


갇혀 지냈을 당시.엄마가 대단하다는 말을 끊임없이 들었다. 어쩔때는 높으신 분조차 엄마를 건드렸다가  화를 못지 못한다고 해서 지희의 세상엔 세계 제일은 엄마가 되어버렸다. 슈퍼맨 같던 그런 엄마에게 천적이 있다는 사실에 무척 혼란스러웠다.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라니. 누굴 우선시해서 잘 보여야 하는 건지 몰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온다.

"엄마... 누구에요?“


도움을 요청해 보도록 하자. 엄마에게 어떤 분들이냐고 물으며 엄마는 지희의 마음을 눈치채고 특정 인물을 골라줄 것이다. 그럼 그 사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여 지희의 매력에  빠지도록 해야 했다!


*

쫒겨났다... 엄마가 언니들이랑 할 얘기가 있다며 세라라고 불린 예쁜 언니랑 방에서 나오게 되었다. 떨어지고 싶지 않은데. 계속 엄마의 곁에 있고 싶은데 잠시 나가 달라는 부탁에 하는 수 없이,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밝은 모습을 보이며 어서 나가자며 세라 언니의 손을 붙잡고 나오기는 나왔는데 막상 나오니 기분이 확 나빠졌다.


"윤... 지희라고 했지?“
"네.....!"

풀이 죽어 입술이 삐죽 튀어나오려고 들지만 최대한 밝게. 아무렇지도 않게. 만약 지희의 기분이 안 좋은지 풀이 죽은 모습을 보였다는 말을 들어 걱정하지 않도록 웃으며 고개를 들어 세라 언니를 바라보았다.

"아윽...! 귀, 귀여워!“


갑작스럽게 가슴 부근에 통증을 느끼는 듯.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가슴을 부여잡는 세라 언니였다.

"머, 머리 쓰다듬어도 될까?“
"네!“

사실은 싫었다. 지희의 머리는 엄마만 만질 수 있었다. 그래서 갇혀 있을 때도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절대 허용하지 않았는데. 하지만 엄마조차 어떻게 하지 못하고 쩔쩔매던 언니들 사이에 있던 세라 언니이기에 불쾌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내주었다.

텁.


지희의 머리에 커다란 손이 떨어지고.


"우와아아. 너무 부드러워. 귀여워. 사랑스러워. 확 깨물어주고 싶어!“
"으......!“

거칠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예쁜 얼굴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기기괴괴한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자. 지희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안 돼!  돼! 지희야! 참아. 참아야 해!‘

세라 언니... 위험해 보이는 사람이니 딱히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면 당장 엄마에게 배운  단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


최대한 즐거운 척을 해 보았음에도  티가 났는지, 조금만 더 이 사랑스러운 생명체랑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세라는 하는  없이  아이의 엄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길드 구경이란 목적이 있음에도 제대로 길드 구경을 하지 못한 채로.


17분 42초간 보지 못한 엄마를 다시 만날 생각에 너무나 기뻐서 통통거리는 발걸음으로 발에 돌아갔다. 그런데 왜인걸. 모두가 있어야  그곳에 엄마와 단발머리를 가진 예쁜 언니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으며, 심각해 보이던 분위기를 풀풀 풍기던 예쁜 언니들은 지희를 보자마자 소녀처럼 꺄아. 거리며 지희에게 달려들었다.


"우으......“


동물원을 방문한 손님들이 만질 수 있는 동물을 만지듯. 지희의 온몸을 여러 손들이 희롱하자 불쾌할 따름인데 차마 화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참아야만 한다. 엄마를 위해서라면 이런 수모쯤은 충분히 버텨낼 수 있으니까!

"이제... 그만!“

그렇게 몇십 분이나 만져지니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온 지희는 몸을 더듬고 있는 손들을 쳐내며 소리쳤다.

'더는 못 참아!‘


대체 엄마는 어디에 갔길래 이런 곳에다가 자신을 방치해두는 걸까! 화나! 너무 화나! 엄마 미워!

"엄마는 어딨어요?!“

몸을 만져지면서 판단한 결과. 그녀들은 지희를 단순히 어린 아이로 보고 있어서 눈살이 잔뜩 찌푸려지는 큰 잘못만 아니면 애니가 그러려니 하며 넘어갈 것만 같았다. 그 때문에 조심스러웠던 앞선 행동과는 달리 정말 이 나이 때의 아이가 된 것처럼 엄마를 찾았다.

"으음... 그게. 잠시 어디 갔어. 그러니까 언니들이랑 있자. 짠~!“


엄마 다음으로 예쁜 사람  한 명인 여자. 이지원이었나? 아무튼, 이지원은 뭔갈 꽁꽁 숨기는 듯한 표정과 말투로 말하며 귀여운 토끼 인형을 꺼내들었다.

"토끼다!“


복스러운 털을 가진 토끼 인형의 등장에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토끼 인형을 받아 품에 끌어안고 싶었는데 이내, 제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세차게 저어댔다.

'와아! 귀여워! 아...! 아, 아니야. 안 돼! 토끼 인형보다 엄마가 더 중요하단 말이야!‘


고작 토끼 인형에 넘어갈 지희가 아니었다.


"잇!“
"앗?! 지희야! 어디가!“
"잠깐!  돼!“

언니들이 방심한 틈을 타서 문을 벌컥 열어 방을 뛰쳐나오자 뒤에서 크게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언니들이 그런 지희를 잡으러 마찬가지로 뛰쳐나왔다.


'뭐야?! 대체 엄마한테 무슨 일이 있길래 숨기는 걸까?!‘


천재 정도는 아니지만 똘똘한 머리와 태어나서부터 갇혀서 지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평범한 아이들보다 똑똑해지며 내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지희의 머리로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설마. 나쁜 사람들이었나?!‘


알고 보니  사람들은 흰색 가운을 입은 사람들과 같이 나쁜 사람이지 않을까.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바보다. 너무 바보였다!


'잇...! 엄마는 내가 구할 거야!‘

두  다시 떨어져 지내고 싶지 않으며, 여태까지 받지 못했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지희는 그때처럼 무기력하게 갇혀 지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후후. 재희야. 저 정말 괜찮아졌어요. 솔직히 믿기 힘든 말이긴 해도 재희가 거짓말을 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숨긴 건 이해해요. 근데... 지희는 조금, 아니 많이 이해하기 힘들지만 재희가 어렸을 적의 모습처럼 보여서 그런지. 믿을  있어요.“

짧은  다리로 도도도 달려나가던 지희는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던 목소리가 들려오자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야. 여기에 엄마가 있는 게 분명해!‘

아쉽게도 안에서 들려오는 말을 듣지 못한 지희.

"읏......!“
"어, 엄마.....?!“


문을 열려는 찰라. 안에서 들려오는 사랑하는 엄마의 신음소리. 나이는 한 살이지만, 신체적으로는 고작 다섯  전후로밖에 보이지 않으며, 애초에 평범한 사람들도 여자 둘이서 그렇고 그런 짓을 할 거란 생각을 하기는 힘이 들었다. 그래서 지희는 엄마를 괴롭히고 았다고 판단하며.


"엄마!“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곤 보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앞에 서 있는 이민정이란 여자를.

"아.....?“
"지, 지희야?“


갑작스럽게 난입한 지희로 인해 하던 것을 멈추고 멍하니 지희를 바라보았다.

'나, 나쁜 사람!‘


상의 안으로 들어간 손의 존재 때문에 엄마의 새하얀 배가 밖으로 드러나 있었고, 때때로 흰색 가운을 입은 남자들이 지희의 가슴과 다리를 보며 만지려 들었을 때처럼 손이 엄마의 가슴을 만지고 있는지 확실하게 가슴 부근에 손의 모양이 그려졌다. 그리고 바지 위로 허벅지까지 더듬고.

"그 손 놔아아!“

섹스에 관해 조금이라도 안 다면 둘이 무얼 하려고 했는지, 어떤 사이인지 인지할 수 있는데 지희는 그딴 것 모른다. 그저 엄마를 괴롭힌다고만 생각할 뿐. 때문에 귀청이 떨어져라 소리를 내지르며 둘 사이를 파고들어 엄마에게서 민정이를 떨어뜨렸다.

"엄마! 엄마 괜찮아요?!“
"아... 그, 그게. 지희야.“


봤다... 민정이에게 몸을 더듬어지고 있던 광경을 오늘 생긴 딸에게 확실히 보여졌다.


"괜찮아요. 엄마!“

이런 기분 알지. 지희는 엄마의 목에 팔을 걸어 허리를 숙이게 만든 다음 자신보다 두 배는 커다란 덩치를 가진 엄마를 품에 안으며 뒷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이젠 엄마 혼자가 아니야!‘


괴로웠겠지. 힘들었겠지. 지희는 약 반년간 이와 비슷한 일들을 당했을 것이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도망쳐요. 저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뭐? 지, 지희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
"닥쳐요! 꺼져요! 엄마랑 저한테 다가오지 말아요!“


도망치자니. 그게 무슨 소리냐며 따지려던 민정이는 처음 봤을 때랑 달리 정말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에게서 나올 리가 없는 증오심에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지희가 지켜줄게요. 엄마.“
"......“

'어머나... 애 뭔가 착각하고 있는데?‘

당연히 재희는 방금 둘이서 무얼 했냐고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물어보지 않을까 해서 그에 대한 대답을 고민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도망가자니? 그리고 민정이에게 왜 소리를 치며 혐오하는 모습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렇게 도달한 결론. 지희가 뭔갈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판단하였다.


"지희야. 괜찮아.“
"흑... 아니예요.  괜찮다고요!“

굳이 자신을 위해서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려 한다고 지희는 생각하자 바보 같은 사람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아아. 미움받았어......“


재희가 엄마이니 자신은 아빠? 아니면 똑같이 엄마라고 불러주길 기대했는데 미움을 받자 허탈한 표정으로 민정이는 주저앉았다.


'아! 지희 하나를 왜 못 데리고 있는 거야?!‘

대체 뭔 짓을 하고 있었길래 지희를 잘 보살피지 않은 건지. 재희는 그녀들을 원망하며 지희를 어르고 달래어 오해를 풀어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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