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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화 〉121 엄마 (121/140)



〈 121화 〉121 엄마

여기가 어딘지, 바깥세상은 또 어떻게 생겼고, 날짜나 시간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태어난 날도 정확하게 언제인지, 심지어는 이름도 모르고 있던  소녀는 좁은 공간에 갇혀 하루하루를 재미없게 살아가고 있었다.

"피 뽑을 시간이다.  내밀어.“

작은 소녀와 달리 커다란 몸집을 가진 성인 남자가 방으로 들어오자  그래도 좁은 방은 더욱 좁아져 속이 답답할 지경까지 도달하였다. 그럼에도 소녀는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팔 전체를 덮고 있던 옷자락을 스윽. 올린 채, 남자의 말에 따라 팔을 내밀었다.

푹.

흰색 가운을 입고 있던 남자는 방으로 들어오면서 가져온 주사기를 얇은 나뭇가지처럼 툭 건드린다면 바스슥 부서질 것만 같은 가냘프고 새하얀 소녀의 팔에다 꼽고 천천히 피를 뽑았다. 그렇게 피를 원하는 만큼 뽑았을 때, 팔 안 깊숙이 들어간 날을 빼내고는 주사기와 함께 가져온 알코올이 묻혀있는 솜을 내밀었다.


그러자 소녀는  솜을 받아들여 주삿바늘이 빠져나가고 작은 핏방울이 맺힌 팔에 가져다가 대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과정이 너무 무서웠고, 싫었으며,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도망칠 곳은 없었으며, 저항한다면 억지로라도 피를 뽑으려고 들어서 몸에 들어간 주삿바늘이 몸부림에 마구 움직여대 피멍을 만들어 내었다.


 때문에 소년 피를 뽑는 것에 저항하는 움직임을 이미 예전부터 포기했었다. 이렇게 순순히 팔을 내밀어 피를 뽑게 해 준다면 잠깐 따끔한 고통만 느끼지 오랫동안 지속되는 고통을 몸에 새길 필요가 없었다.

"엄마......“
"응? 엄마? 엄마가 보고 싶니?“
"네... 엄마 보고 싶어요.“

얼마 전에 안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소녀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 이름이 레이건이라는 늙은 노인에게 들었던 사실이며 실제로 엄마라는 사람이 찍힌 사진을 직접 보여주기도 하였다. 소녀의 엄마가 확실한 듯, 소녀처럼 은발의 머리카락과 적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게 거짓말은 아닌 듯 보였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몸과 마음은 사진을 본 것만으로 엄마가 맞다고 분명히 하고 있었기에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레이건은 소녀가 망가지지 않고 지금 이 생활을 버텨내도록 기운을 주기 위해 소녀의 엄마의 사진을 잔뜩 찍어서 선물로 주었다. 정말 기쁘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


기뻤다. 소녀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에. 만나고 싶었다. 레이건과 연구원들이 말하기를 소녀의 엄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며 사진으로 보다시피 엄청 예쁜 사람이라고 질릴 정도로 칭찬이 끊이질 않았었다. 그러니 엄마를 사진이 아니라 실제로 만나보고 싶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레이건과 연구원들은 엄마가 소녀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며, 만나려면  일이 다 끝나야만 한다고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만날 수 있다...! 는 기대감을 가지고 인형처럼 그들이 하라는 대로 모두 하다가 이내, 모든 일이 끝났다며 엄마를 만나게  준다며 지긋지긋한 좁은  안에서 나오게 되었다. 소녀는 기뻤다. 반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내내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했던 엄마라는 존재를 만나볼 수가 있었으니까. 레이건 박사는 소녀를 가둬두고 있던 연구소에서 나왔다.


소녀는 처음 보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과 넓고 푸른 하늘과 바다가 무척 놀라웠다. 그리고 밖에서 만난 사람들이 흰색 가운만 입고 다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활기찬 수많은 사람들, 높게 솟아오른 건물들과 빠르게 쌩쌩 달려나가는 자동차까지. 전부 다 처음 보는 것들이라 한 발자국 걷고 멈춰서고는 눈을 반짝이며 신기해하기 바빴다. 이럴 줄 알고 레이건 박사는 아침에 소녀를 데리고 나온 것이다.

가지고 싶은 게 있다면 사 주려고 하지만 소녀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눈치만을 보고 살아온 탓에 갖고 싶은 게 없다며, 원하는 거라곤 엄마를 보는 거라며 어린애 같지 않은 일관적인 말만 반복하였다. 레이건은 하는 수 없이 가지고 싶은  어쩔 수 없고, 먹을 거라도 많이 먹이고자 자신이 먹으려고 샀지만 덤으로 네 것까지 샀다며 다양한 먹거리들을 먹여주었다. 그렇게 소녀의 엄마가 오는 시간이 다 되었고, 레이건과 소녀는 어느 공항에 들어갔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려구나. 네 어미를 데리고 올 테니.“
"저도 같이 가면 안 되나요?“
"같이 가도 된다만 먼저  말이 있으니 기다려주겠니?“
"우응... 네. 알겠어요.“

함께 가도 되었다. 그러나 이 아이에 대해서 미리  줄 말이 있었다. 어른들에게는 신경조차 쓰지 않을 말을 어린아이가 듣는다면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으니 레이건의 작은 배려에 뜻한 것이었다. 근데 소녀가 이러한 진실을 모르니 레이건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빨리 만나게  주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렇게 홀로 남은 소녀.


"얘야. 혼자니? 부모님은?“


잠시 혼자 있었을 뿐인데 소녀의 외모에 넋을 잃고 바라본 사람들이 제정신을 차리며 좋은 뜻에서 다가와 물었다. 참고로 연구소에는 각 나라에서 이름을 날린 연구원들이 있어서 그런지 소녀는 자연스럽게 여러 나라들의 언어를 습득할 수가 있었다.


"엄마 있어요!“
"그러니? 지금 어디에 계시니?“
"모르겠어요. 기다리면 오신다고 했어요."


엄마...! 소녀에게도 엄마가 있으며 이제 곧 만나게  것이다! 그래서 호의적으로 다가온 사람에게 엄마가 있다고 말을 하지만 어디에 있냐는 물음에 올라갔던 텐션은 급격하게 떨어지며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을 했다.


"그러니?"

소녀에게 말을 걸어준 사람은 여러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풀이 죽은 표정과 좋거나 나쁜 감정이 섞인 목소리에 우선 소녀의 엄마라는 사람이 생각도 없이 소녀를 두고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 부모 실격인 사람인  같았다.


"나쁜 엄마네.“

이렇게나 예쁜 아이를 두고 혼자 어디서 뭘 하는 건지. 애 엄마가 참 나쁜 사람 같아 보였다. 그러다 보니 마음속으로 중얼거려야 하는 말을 실수로 입 밖으로 내뱉어버렸다.

"아니에요! 엄마는 나쁘지 않아요!“

그럴 리가. 나쁜 건 흰색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소녀와 엄마의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확실한데. 왜 자신의 엄마를 나쁜 사람 취급하는지 모르겠다.


"미안해. 그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아니에요. 괜찮아요.“


고작 그따위 사과  마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만 괜히 사고를 쳤다가는 엄마를 만나게  주겠다던 늙은 노인이 말을 바꿀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고개를 내저었다.


"언제 돌아오신다고 했어?“
"......“

그런 말은 없었다.


"어디 가신다고 말을 했는지 기억하니?“


모른다. 알고 있는 거라곤 조금만 있으면 소녀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엄마가 이곳으로 온다는 것.

"모르겠어요.“
"뭐...? 모, 몰라?“
"네. 모르겠어요.“
"하... 참. 황당하네.“

정말 아무말도 없이 아이를 여기에 두고 어디로  건가? 이래서는 아이를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오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엄청 급한 바람에 아이만을 두고 잠시 어디로 간 것일 수도 있어서 억측은 금물이었다.

"아줌마가 같이 기다려 줄까?“
".....?“

뭐 때문에. 무엇 때문에 소녀의 엄마를 처음 보는 사람이 같이 기다려준다는 걸까. 소녀는 배려란 것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이 중년 여성의 행동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름이 뭐니?“


소녀의 옆에 앉은 그녀는 문득. 이름이 궁금해져 소녀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이름... 이름.‘

소녀에겐 이름이 없었다. 아니, 불리는 이름 같은 게 있긴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랑 너무 다른 이름이라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말하기 싫니?“


정식 명칭은 실험체 BG – 59였다. 원래 이름은 부모가 되는 사람이 지어준다는데 소녀에게 이런 괴상한 이름을 지어준 사람들은 전부 흰색 가운을 입은 나쁜 사람들이었다. 소녀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그 사람들. 그러니 이 괴상한 이름은 소녀의 이름이 될 수가 없었고, 이런 이름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가 않았기에.

"없어요.“
"뭣...! 이, 이름이 없니? 정말로?“

끄덕끄덕.


소녀의 이름이 될 수 있는  무조건 엄마가 지어주어야만 했다. 그전까지 소녀에게 이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아줌마를 보고 진실을 알려주겠니? 정말 이름이 없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걸까. 그리고 이름이 없다는 게 그리도 충격적인지. 소녀는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임을 반복했다.

"나, 나쁜 새끼들이네.“


그녀의 손은 주먹이 쥐어지다 못해 부르르 떨려오며 분노를 참기 힘든 나머지 욕을 입에 담았다.


'나쁜 사람...?  사람들?‘


소녀의 머릿속에 기억되어있는 나쁜 사람들은 오직 흰색 가운을 입은 사람들 뿐이기에 당연히 그들을 향해 말을 하는 건 줄 알았다.

"잠시만 기다리렴.“


그녀는 숨을 고르며 분노를 삭혔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스마트폰을 가방에서 꺼내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뒤.


그녀는 푸른 제복을 입은 경찰들을 대동한 채 다시 소녀에게 다가왔다.

"이름이 없다는 아이가 바로 이 아이입니까?“


경찰 한 명이 소녀를 가리키며 말을 하자 그녀는 분노에 가득 찬 대답을 했다.

"얘야. 혹시 엄마나 아빠의 이름을 아니?“
"엄마는 윤재희고요. 아빠는 없어요.“
"윤재희... 한국인인가? 다른  없어? 특정할 수 있는 거라든지.“
"음... 엄마는 저랑 똑같은 눈 색과 머리색을 가지고 있어요.“
"그거면 충분하겠네. 은발과 적안이면 범위를  줄일  있겠네. 알아봐봐."
"네. 알겠습니다.“

상급자가 그리 명령하자 하급자로 보이는 경찰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저... 은발과 적안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확실해?“"네. 아무런 정보도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후우... 기다려 봐. 얘야.“
"네?“
"염색이 아니니?“
"염색......?“

그건 또 뭐지?“
"하이씨. 모르는 건가?“

모를 가능성도 있었다. 보기에는 5살 근처로 보이는데 모르는  태반일 나이 때였다.

"음. 그러니까 머리카락 색이 두 개거나. 눈에서 렌즈... 아니, 눈에서 무언가 빼내는 걸  적이 없니?“
"모르겠어요.“
"하아... 이러면 못 찾는데.“

동남아 국가라면 몰라도 한국에서 온 불법체류자는 정말 희귀한 사례였다. 거기다가 은발과 적안이라는 특이한 색을 가지고 있는데도 정보에 없으면 염색이랑 렌즈라는 건데.

"보기에는 염색이 아닌데. 애초에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는데 염색까지  귀찮은 짓을  리가.“


이름도 지어주지 않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 귀찮게 이렇게나 예쁜 은색으로 소녀의 머리카락 색을 바꿔줬을 리가 없는 것 같았다. 만약 염색이 확실하다면 이름이 없다는 게 거짓말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었다.

"CCTV 확인해 봐.“
"네. 알겠습니다.“
"못 찾는 건가요?“


한 경찰관이 어디론가 뛰어가고. 이 자리에 남은 사람은 소녀와 경찰관 한 명, 그리고 아줌마뿐이었다. 아줌마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물음을 던졌다.


"버리고 갔다면 CCTV에 찍혔겠죠.“
"다시 그 사람에게 돌려보낼 건가요?“
"음... 일단 상황을 보고 판단해야겠지만 아이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면 아마도 고아원에 보내져 입양을 기다릴 겁니다.“
"그럼 제가 입양하고 싶습니다.“
"사모님께서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제가 데려가고 싶어요.“
"으음......“

못된 사람 같진 않고... 불법체류자에게 버려진 게 확실하다면 고아원에 보내는 것보다 이 아줌마의 손에 길러지는 게 좋아 보이긴 했다.

"알겠습니다.“
"하핫. 감사합니다!“

은발과 적안을 가진 예쁜 아이. 탐이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가진 엄마들이라면 소녀를 보자마자 자신도 저렇게 예쁜 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부러움에 잠기는데. 이젠 자신이 부러움에 대상이 된다는 생각에 기뻐했다.


'이상해... 뭔가 이상해.‘

소녀는 뭔가가 좋지 않게 흘러간다고 생각하며 둘의 눈치를 살폈다.

'도, 도망쳐야 해!‘


레이건 박사는 어중간한 사람이었지만  늙은이를 제외하면 모든 사람이 전부 못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이 두 사람도 마찬가지로  된 사람이며 흰색 가운을 입고 있지 않은 것이 자신을 엄마와 만나지 못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도망쳤다.


"얘, 얘야!“

소녀의 뒤를 쫒는 둘. 그 모습을 보니 더더욱 확신이 섰다.

"엄마... 엄마.....!“


빨리 엄마를 찾아야만 했다. 엄마가 아니더라도 레이건을 찾아야 하는데. 이 넓은 공항에 측정인물을 찾지가 얼마나 어려운지. 소녀는 모르고 무작정 뛰어가기만 했다. 그렇게... 레이건과 대화하고 있는 한 여성을 보았다. 그 여성은 소녀처럼 은발과 적안을 가지고 있었으며, 소녀가 사진 속으로만 엿볼 수 있던 외모를 가진 것이. 소녀의 엄마가 확실해 보였다.


"아!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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