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104 이벤트 게임
"......“
익숙하고도 더는 보기 싫어지는 어두운 동굴 천장이 눈을 뜨자마자 재희를 반겨왔다.
"윽!“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특정 부위가 아프다고 비명을 내질렀다. 안 그래도 연약한 몸뚱이었는데 고작 몇 대 맞았다고 이렇게나 아프다니. 공격력과 스피드만 올린 몸 약한 게임 캐릭터가 된 기분이다.
"하아... 미치겠네.“
아주 작은 성욕은 심각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성욕을 풀어주지 않았을 때처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오며 눈이 핑 돌았다. 초인의 영역에 도달한 실험체가 아닌 어디에나 있을법한 인간의 몸이라 그런지 여태까지 잘 버텨오던 몸은 한 번의 기절로 몸살과 같은 증상이 찾아온 게 아닌가 싶다.
무리하긴 했지.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바닥에 얇은 천 하나만 깔고 비위생적인 생활에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몸은 어느새 약해질 대로 약해져 버려 결국은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미 예상은 했지만 되도록 게임이 모두 끝이 난 후, 헤븐에 돌아갔을 때 뒤늦게 무리했던 게 한꺼번에 밀려들어 오길 간절히 빌었는데 헛된 바람이었나 보다.
"음냐... 음냐.“
재희의 바로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이지원은 뭐가 그리 좋은지 바보처럼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덮고 있는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키라는?“
분명 있어야 할 한 명의 여자의 모습이 눈을 씻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보이지가 않는다. 애초부터 없었다는 듯이, 그녀가 가지고 있던 가방이나 흔적들이 보이지 않으니 불안함이 솟구친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키라를 사랑하는 마음 따윈 없었다. 그저 함께 다녀도 될 예쁘장한 외모와 여자 치곤 강한 힘, 마지막으로는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서 비즈니스로 데리고 다녔다.
"일어나 봐. 지원아. 지원아.“
다급하게 이지원의 몸을 흔들어 잠에서 깨웠다.
"우응...? 아앗?! 재, 재희야. 몸은 괜찮아? 어디 아픈 곳은 없어?“
아픈 곳이라. 팔꿈치로 얻어맞은 옆구리와 발목이 가장 아팠고, 딱딱하고 찬 곳에서 몸을 뉘었기에 목과 허리 등등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것보다 아키라는?“
"......“
다짜고짜 아키라를 찾아 살짝 불쾌한 표정을 띄운 이지원이었지만 지금 몸 상태가 최악이었고, 상황도 급한 나머지 한순간에 어두워졌던 그녀의 표정을 발견하지 못했다.
"재희야......“
울먹임이 섞인 낮은 목소리. 이지원은 눈물을 또르르 흘리며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재희가 기절했을 때, 남자 여럿이 나타났어.“
"뭐.....?“
"당연히 우릴 강간하려고 하더라. 그런데 아키라가 나보고 재희 너를 데리고 먼저 도망치라고 했어. 금방 따라간다고. 솔직히. 그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때 나는 제대로 싸울 여건이 안 되었고, 나만이라면 몰라도 재희까지 그 남자들에게 더럽혀질 거라 생각에 불안했어.“
아키라가 미끼가 되었다라... 그럴 수도 있겠다. 재희는 아키라보다 예쁜 이지원을 더 많이 범했으니 그녀보다 먼저 몸 상태가 나아져서 이지원보다 빨리 몸을 움직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려보니까. 난 이미 재희를 데리고 도망치고 있더라.“
눈물을 흘리는 얼굴로 피식 웃는 게. 가슴이 아팠다. 미친 년이라, 살인에 능한 년이라 불리오던 이지원이었는데 알고 보니 친분이 있는 사람이 죽어버리는 그 누구보다도 아파하는 것만 같았으니까.
"괜찮아.“
그녀의 거짓말에 완전히 속아 넘어간 재희는 희미하게 떨려오는 몸을 살며시 끌어안았다.
"네 탓이 아니야. 그리고 고마워.“
"흐윽.....!“
어깨에 턱을 올리고 울먹이는 소리를 내지만 얼굴은 악마처럼 웃고 있었다. 태연하게 바로 옆에 있는 은색을 띤 머리카락에 코를 가져다가 향을 맡아보면서.
'쯧... 죽었겠네. 운이 좋다면 살아있을 수도 있겠지만.‘
좋은 꼴로 마주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두 명의 여자. 심지어는 아키라보다 예쁜 여자 두 명을 아키라 때문에 놓쳤다고 생각한 분노에 정말 끔찍한 짓을 당하는 건 물론이고 어차피 다른 여자들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서 일회용으로 성처리를 한 뒤에 아키라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꽤 괜찮은 년이었는데. 아쉽네. 끙......‘
헤븐에 있을 애인들과 비교하자면 덜떨어진 외모였지만 그래도 한 번쯤 남자들의 시선을 끌어모을 외모였다. 거기다가 이미 재희의 성노예. 그 이상이 되어서 그런지 골드 등급 게임 전용 성 풀이용으로 쓰려고 했는데 너무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하... 그럼 이제 성욕은 어떻게 풀어야 하지?‘
이지원의 농후한 살 냄새가 코를 마구 찌르자 성욕은 느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 게 착각이었는지 몸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강간과 비슷한 일방적인 섹스를 했겠지만, 재희는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그야 그럴 것이 재희는 지금 당장 싸울 여건이 안 되어서 이지원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섹스를 통해 그녀 또한, 싸우지 못하게 만든다면 결과는 참담했다.
여자에게 발각되면 죽임을 당할 것이고, 남자에게 발각되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굴욕적인 강간을 당할 게 분명하니까. 아직 게임이 끝나기까지 약 이주라는 시간이 남았다. 여기서 빠져나가기까지 절반이 남았는데 이틀에 한 번. 총 7번은 만족할 정도로 성욕을 풀어야 하는 게 과연 가능이야 할까. 아키라가 있다면 그녀가 죽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쉴 새 없이 범할 텐데.
"고마워. 재희야. 이제 괜찮아 졌어.“
품에서 빠져나온 이지원은 싱긋 웃으며 눈물을 닦았다.
"그, 그래.....?“
꿀꺽.
목 부분이 길게 늘어진 티셔츠를 통해 가슴골이 노골적으로 보여오자 마른 침을 꿀꺽 삼켜버렸다.
'미, 미친년아. 참아... 참아야 한다고!‘
한 번 범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번지게 되니. 최악의 상황으로 향하게 되는 멍청한 행동이었다. 참아야 했다. 어떻게든. 이 성욕을 가라앉히기 위하여 재희는 고개를 푹 숙여 숨을 고르게 마셨다.
"재희야. 어디 아파?“
돌발적인 행동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이지원은 몸을 숙여 재희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눈을... 올렸으면 안 되었다. 힐끔. 눈을 올리니. 중력에 의해 축 늘어진 티셔츠 안에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는 커다란 가슴과 딱딱하게 서 있는 핑크빛 유두가 눈에 들어왔다.
'아... 좆됐다.
"꺄아악?!“
끝내 참지 못한 재희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이지원의 양팔을 붙잡은 채로, 그녀의 위에 올라섰다.
"재희야?“
"하아... 하아... 시발... 개같네.“
통증이란 것에 끊임없이 자극당하던 머리는 성욕에 잡아먹혀 어느새 통증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 대신이라고나 할까. 그러면 안 된다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텨보려고 해도 악마의 속삭임처럼 머리는 어서 그녀를 범해 정액 범벅으로 만들라고 아우성치었다.
"재희야. 안 돼.“
손목을 붙잡혔지만 끌어 오른 성욕과 정상이 아닌 몸으로 낼 수 있는 힘은 지극히 적어 이지원은 손쉽게 손의 자유를 찾았다. 그리곤 곧장 여전히 숨이 거친 재희의 뺨에 손을 올리곤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지금 재희를 지킬 사람은 나 하나뿐이야. 만약 여기서 날 괴롭히면 그땐 정말 끝이야."
적당히만 하면 될 텐데. 재희에게 적당히란 아랫배가 아파서 싸움에 집중하지 못할 때까지 범하는 게 분명하니. 아쉬워도 지금은 절대로 섹스를 하면 안 되었다. 어차피 이번 게임이 마지막이니 조금만 참고 헤븐으로 돌아가 꾹 참아왔던 성욕을 분출하면 될 터. 이지원은 완전히 흐트러진 재희의 모습에 흥분한 몸을 애써 진정시키며 현실을 직시해 주었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강해.“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 남자가 이지원조차 어떻게 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강했다. 그렇다고는 하나 재희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일 거지만 지금 그녀의 몸 상태는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둘의 몸을 안전하게 보호할 방법은 이지원밖에 남지 않은 상황. 정말 안타깝게도 둘을 위해 희생한 아키라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재희를 지킬 의무가 있었다.
"몇몇은 나도 장담하지 못할 정도야. 재희라면 다르겠지만.“
꽤 되는 시간 동안 함께해오면서 재희는 정말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은 정말 약한데 저렇게 약해 보이는 몸으로부터 나오는 비정상적인 괴력과 스피드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그런데 재희가 이렇게 약해져 있으니. 나라도 멀쩡해야지 않을까?“
솔직히 이런 개 같은 곳에서 석 달 연속으로 갇혀서는 목숨을 위협받는데 몸이 멀쩡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었다. 이지원은 그래도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현대 문물이 자리한 헤븐에서 편히 쉬었으니 괜찮았는데 재희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
"그러니까. 안 돼.“
누구는 섹스를 하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몸을 갈망하는 아름다운 재희의 얼굴과 몸매만 보아도 몸이 이렇게나 달아오르는데. 만약, 단둘이서 한 방에 갇혀 있었더라면 나갈 때까지 섹스만 갈구하지 않았을까. 죽을 때까지 알몸으로 딱 달라붙어 있지 않았을까. 이지원은 생각했다.
"미안해.“
"......“
알고는 있지만... 그게 마음처럼 될까. 이건 실험의 부작용인데. 안 하겠다며 자신을 밀어내는 상황임에도 그녀는 이지원의 목덜미에 입을 가져갔다.
"하으읏...! 재, 재희야. 안 된다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그것도 환자인 몸을 강하게 내치지 못하는 이지원은 말로만 안 된다고 말하면서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했다.
'아아. 기분 좋아.‘
거친 숨이 목덜미에 불어 넣어지며 노련한 혀의 움직임에 쾌감이 밀려온다. 그냥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몸을 맡길까 하는 욕망 생각까지 들어오기 시작한다.
"안 돼!“
이 순간을 위해서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이지원은 피가 날 정도로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재희의 몸을 옆으로 눕히고, 그녀의 위로 올라탔다. 아까와 달리 반대가 된 상황. 재희가 밑에 깔려 있자. 이지원은 다시금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 양팔은 속박되어 있고, 은색을 띠는 머리카락은 바닥에 자옥하게 흐트러져 있으며, 그녀의 적안은 자신의 몸을 올라탄 이지원에게 향해 있었으니까.
"재희야... 왜 그래?“
사람 같지가 않아. 그냥 발정 난 짐승 같아. 만약 곁에 있는 사람이 여자인 자신이 아니라 남자가 있었다면 정말 끔찍할 노릇이다. 조심히 만져야 할 그녀의 몸을 남자의 거친 손이 닿는 것도 모자라 격하게 어루만져지며 연약한 피부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짜증이 솟구쳤다.
"재희야. 제발 진정해야 해.“
똑똑하던 재희는 대체 어디 갔는지.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달려든 게 참으로 이질적이었다. 마치 몸만 그대로지 속에 있는 정신이 다른 사람의 것으로 뒤바뀐 것만 같은 느낌이다.
"하아... 하아......“
말까지 잃어버렸는지. 살짝 벌어진 입술 틈 사이로는 말은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공기만이 배출되었다. 누워있으면 가슴이 아래로 짓눌려 작아지게 되는 데 재희의 가슴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약 D컵 정도 되는 커다란 가슴은 옷으로도 감추지 못해. 눈에 띄도록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숨을 내뱉음에 따라서 가슴은 올라왔다가 내려오니 더 색정적이었다.
"재희야. 제발.“
뭐라 말은 하지 않았지만, 표정만으로 그녀가 무얼 원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움직임을 막은 몸의 속박을 풀어서 한시라도 빨리 몸을 대달라는 눈빛... 이거 놓지 않냐고 화를 내었다면 좋았을 것을. 믿고 있다는 것처럼, 대줄 거라는 것처럼 아무 말도 없이 바라보기만 하니 마음이 약해졌다.
"그렇게 하고 싶어?“
"......“
과연 이 여자는 어떻게 학창시절을 보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러는 것처럼 수많은 여자를 아름다운 얼굴로 유혹하여 학교 안 곳곳에서 수도 없이 범하는 서큐버스였지 않을까.
'부럽네. 교복 입은 재희라... 아앗...! 흥분된다.'
머릿속에 그려진 교복을 입은 모습을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털어냈다.
"재희야. 무슨 병이라도 있는 거야?“
아무리 여체에 푹 빠진 상종 못 할 변태라도 판단과 자제를 할 줄은 알았다. 그런데 재희는 어떤가. 그냥 발정기의 짐승처럼 여자만 보면 달려들어 섹스하려 들지 않은가. 지금 상황이 어떤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일이 벌어진 다음에 그때 해결하면 된다는 듯이. 대책 없이 말이다. 그러니 무슨 병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어온다.
"......“
정답이었는지. 재희의 표정이 희미하게 일그러졌다.
"재희야. 무슨 병이야?“
궁금하다. 이 아름다운 여자를 변태로 만들어버린 병의 이름이.
"알려주면. 이거 풀어줄게.“
손목을 붙잡고 있던 손은 힘을 풀지 않은 채로 유혹하듯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날 덮치게 해줄게.“
그 말에 숨이 멈췄다.
"정말......?“
"응. 정말.“
그럴 리가 있나. 거짓말을 하는 건데.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다면 재희는 이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차렸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퇴화라도 된 것마냥 순수하게 곧이곧대로 믿는 반응이다.
"사실은.“
무거웠던 그녀의 입은 성욕에 패배하여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