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6화 〉096 이벤트 게임 (96/140)



〈 96화 〉096 이벤트 게임

허억허억.


나무와 풀로 우거진 숲속. 그 숲속에서 어느 한 남자는 피가 줄줄 흐르는 한쪽 팔을 부여잡으며 거침없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미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몸은 이제라도 그만 조금만 쉬고 싶다며 아우성을 치었건만 발걸음은 멈출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러한 의문은 그의 표정을 보면 대충 짐작이 갔다. 한계가 다다랐을 동안 몸을 혹사시켜도 지친 표정이 아니라 두려움에 잔뜩 질려 있었으니.

"시발... 시바아알!“

폐에서 끊임없이 나와 입 밖으로 내뱉어지는 숨은 남자를 더더욱 초조하게 만들고 있을뿐더러. 분노란 감정은 하나 없고 그저 멋도 모르던 과거의 자신을 향한 욕을 내뱉었다.


"살려줘. 제발 살려달라고! 시발년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있었다. 솔직히 어떤 미친놈이 이곳에서 여자 한 명을 따먹자고 임시 동맹을 맺자는 바보같은 제안을 하겠는가. 지금 바로 생각나는 이유는 딱 둘. 하나는 미끼. 두 번째는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존재거나 그런 존재가 옆에 있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남자는 처음엔 거절하려 했었다. 브론즈 등급도 아니고 아무리 여자가 있다 할지라도 조심에 또 조심을 하는 게 정상인데.


그들이 남자에게 동맹 제안을 하던 걸 우연히 보고 모습을 드러낸 미친년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성이 뚝 끊어져 버렸다. 침착하게 생각해 보자고? 저렇게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지녔는데 어찌 욕망에 몸을 맡기지 않겠는가. 그와 마찬가지로 곁에 있던 남자들도 당연히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눈앞에 나타난 여자의 전신을 훑느라 바빴다.

그때는 미친년이 얼마나 강한지 짐작조차 하지 않아 기껏 모았던 무리가 그녀를 혼자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움이 벌어졌다.  상태로면 언젠간 한 명만이 살아남아 법과질서가 없는 이곳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얻어 게임이 끝날 남은 시간 동안 재미를 볼 게 분명했는데. 여기서 이상한 점은 그녀가 갑작스럽게 손에 들린 단검을 자신의 목에 가져간 게 아닌가.


때가 타지 않은 하얀 피부에 핏물이 고이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싸움이 한순간에 멈춰서게 되었다. 잃기 싫었지. 등급이 서서히 높아질수록 게임 안에서 여자를 만나기가 정말 힘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말 운 좋게 여자를, 그것도 무척 아름다운 여자를 발견한 탓에 경쟁자를 죽이려던 무기들은 하나 같이 멈춰 섰다.

무슨 이유에서? 도대체 뭐 때문에 자신의 목에다가 칼을 가져간 걸까. 전혀 이해할 수가 없는 그녀의 행동이다. 일반적이라면 적이 다수일 때, 방심한 틈을 타 도망치는 게 정상이 아닌가.  정상이 아니더라도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최후의 일인 탄생하는 그 순간 이미 만신창이가 된 그를 가볍게 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가 낮은 등급 게임이 아닌, 골드 등급 게임 안. 그러니 자칫 잘못하다간 자신마저 최후의 일인이 되어도 얻기 위해 발악한 여자에게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를 깨닫고 있었다. 그러니 싸움은 질질 끌릴 수밖에 없는데 그걸 참지 못하고 그녀는 목에다가 칼을 가져간 것이다. 모두가 당황을 금치 못하는 상황. 그럴 때, 앵두같이 아름다운 입술이 벌어졌다.


'왜 니들끼리 싸워? 나 먹고 싶으면 나한테 덤벼야지. 안 그래? 킥!‘

누가 들어도 도발하는 듯한 말. 남녀의 신체 구조적 차이로 인해 그녀보다 그녀의 앞에서 치고받고 싸움을 벌이던 남자가 힘이 조금 빠졌더라도 승산이 훨씬 높았다. 거기에 더해 한 명도 아니고 다수를 향해 소리치니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어떤 이유에서 미쳐버려 뇌를 거치지 않고 말을 내뱉는 것이 분명했다.


누구에게 강간을 당한 걸 수도, 아니면 동료나 사랑하는 사람이 그녀가 보는 앞에서 죽어버렸던 건가. 그러니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그저 미친년 그 자체처럼 뒤를 생각지도 않으면서 모두 다 포기한 듯 말한 게 아닐까.


'그래? 그럼 덤벼줄게. 시발년아.‘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소중한 사람이 눈앞에서 죽거나 잔혹한 현장에 결국, 미쳐버리는 경우가. 그런데 대부분이 브론즈 등급, 튜토리얼이나 튜토리얼을 제외한 첫 번째 게임에서 주로 발생할 텐데. 온갖 수난을 극복하고 골드 등급까지 올라와  게임에 참가해서 어지간한 이유가 아니라면 절대로 미칠 이유가 없었다.

'아아. 어서 와. 그걸 기다렸어.‘

죽일 생각이 없더라도 덩치  남자가 무기를 들고 다가오는 것만으로 무섭거나 긴장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환한 미소가 얼굴에 묻어나왔었다.

'교육 목적으로 조금만 맞자.‘


약육강식의 세계. 남자보다 약한 여자는 필히 순종적이어야만 한다. 다리를 벌리라면 곧장 다리를 벌리거나 해야 하는 그런 노예처럼. 이것이 바로 비쓰온 게임 내의 질서와 법칙이다.


'그래? 근데. 내가 맞기 전에 네가 죽을 거 같은데. 킥킥.‘


단단히 미쳐버린 웃음을 흘려버리며 그녀도 남자처럼 준비가 영 되지 않은 자세로 목에 향해있던 단검이 앞으로  뻗었다.

'하. 헛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먼저 움직였고, 뭘 할 틈도 없이 품을 파고들어 심장에 단검을 박아넣었다.

'아......?‘

움직이는 그 순간 당황하긴 했어도 목숨을 빼앗고, 빼앗기는 싸움에서 베테랑인 그는 곧장 방어 자세를 취하려고 했는데  사이의 거리가 좁은 데다가 자세가 완전히 풀어져 있어 미처 방어하지 못해 심장을 내어주게 되었다.

'시발......‘

빠르긴 더럽게 빨라. 방심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며 거대한 몸이 뒤로 넘어갔다.

'자. 다음은?‘

피가 자옥하게 묻은 단검에 혀를 가져가 한 번 핥은 뒤에 그녀는 말했다. 그렇게 한 명의 여자와 다수의 남자의 싸움이 벌어졌다. 삼국지에 나오는 천하 무쌍 여포나 오호 대장군인 조자룡처럼 날아다니는 건 아니었지만 방금까지 적이었던 그들로서 마찰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내, 개인전이 시작되었다.

'너희는 안 와?‘


시체와 피가 사방에 흐트러져 있고, 오직 그녀만 살아남자. 그녀는 다시금 도발하기 시작했다. 동맹 제안을 하던 무리와 남자를 향해서.


'아니.  안 해도 갈 거야. 네년 따먹으러.‘


시체의 수는 10구 가까이 되는데 그녀의 손으로 만들어낸 시체는 고작 3구. 적다면 적은데 많다 생각하면 꽤 되는 숫자였다. 아무튼, 싸움으로 인해 지쳤을 그녀를 뒤이어 상대한다면 확실하게 승산이 있을 거라 판단한 무리는 여유롭게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근데... 착각이었다.

'끄아아악! 사, 살려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아아!‘


힘을 아끼고 처음부터 본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는지 무리는 빠르게 제압되었고,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 싹싹 비는 그들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고통스럽게 죽음을 선사했다.


'넌  와?‘

마지막 남은 그. 싸우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인간이긴 해서 그런지 지쳐서 숨이 아주 거칠어져 있었건만 그래도 싸움을 벌이는 건 피해야만 했다.


'아? 술래잡기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치자. 그녀는 귀신에 씐 여자처럼 웃으며 뒤를 쫓았다. 그래서 지금. 혼자 살아남은 남자가 살기 위해 미친 듯이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여자에게서.


"아아. 너무 도망가지 마. 나 힘들단 말이야.“

앙탈을 부리듯, 달콤한 목소리로 말하지만 저 유혹에 속아서 걸음을 늦춘다면 곧장 지옥행이었다. 뒤를 쫓으면서 일부러 몸이 아닌, 남자의 팔을 향해 단검을 던져 맞췄는데. 그걸 속을 병신이 아닌 남자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도망가는데 집중했다.


"으읏?!“


그것도 잠시. 지쳐버린 다리는 제대로 뛰지 못해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꼴사납게 넘어져 버렸다.

"킥킥. 드디어 잡았다.“

잠시 고통을 느끼고, 그녀가 아직도 뒤를 쫓아오고 있다는 사실에 도로 일어나려던 찰나. 바로 뒤에서 귀를 정화하는 예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도망가네. 모두 너처럼  도망갈까? 음... 이젠 술래잡기 하지 말아야겠다. 너무 힘들어.“


투덜거리며 그녀는 많은 참가자의 피가 묻은 단검을 들어 올렸다.

"끄아아아악!“


푹.


허벅지에 꽂힌 단검.

"이러면 술래잡기  하겠지?“
"끄으윽!“

푹.

반대편 허벅지에도 찔렀다.


"살려줘... 제발... 제발 살려줘.“
"응? 내가 왜. 너도 날 따먹으려고 했지 않았어?“

물론. 그랬다. 그녀의 힘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면 뒤져야지.  몸은 온전히 내 거라고.“


자신이 봐도 예쁜 몸뚱이. 이런 몸뚱이가 같은 여자들에겐 질투의 조건이 되고, 남자들에게는 마구 탐하고 싶은 욕망을 피어오르게 만들어 주었다.

"감히 내 몸을 희롱하다 못해 범하려고 해?“


마지막으로 그녀 자신도 자신의 외모를 보고 반하여 끝내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럼 죽어야지.“

그녀는 사실 정식으로 계약서를 쓰고 비쓰온 게임에 들어온 여자가 아니었다. 그저 후원자들이 재희와 재미난 싸움을 벌여달라는 의미에서 바깥세상의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그녀를 몰래 꺼내온 것이다. 그녀의 죄목은 잔혹한 살인, 그리고 시체 훼손이 있었다.


"난 말이야. 나한테 못된 생각을 가진 새끼들을 고통스럽게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녀는 태어나서부터 싸이코패스가 아니었다. 아이돌 생활을 하면서 유독 띄는 외모에 정말 인기가 많은 한국 대표의 아이돌로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한 명의 악질 팬... 아니, 스토커가 그녀의 집에 몰래 따라 들어와 그녀를 범하려 했을 때, 어떻게든 도망치고자 발버둥을 치며,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이용해 자신의 옷을 벗기던 스토커의 머리를 강타했다.


하필이면 손에 잡힌 게 신인상으로 받은 트로피였고, 그 트로피는  단단하여 연약한 여자의 힘만으로 한 방에 남자의 두개골과 뇌를 부서뜨렸다. 결국, 스토커는 즉사. 스토커에 강간범일지라도 사람을 죽였다면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죄책감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겠는데 그녀는 쾌감에 눈을  버렸다.


그 후로 음란패설을 하거나 성추행을 하려던 새끼들은 모조리 기절시켜 집으로 데리고 온 뒤에 실험을 방지한 고문이 이어졌다. 좆을 자르기도 하고, 사지를 찢기도 하는 기하학적인 그런 일들을. 하지만 21세기의 현대에서 모든 범죄가 완벽히 숨기기엔 힘든 노릇. 끝내 그녀도 경찰에 잡혀 유죄를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몇 년 뒤에 게임 측 직원의 말에 따라 골드 등급의 게임에 참가하게  것이다.


"비쓰온 게임이란 거. 재밌어.“

살인을 저질러도 합법이라니. 재밌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오히려 그녀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어 준 것만 같아 고맙기 그지없었다.


"근데. 불편하네. 좋긴 한데 말이지.“


사람을 얼마든지 죽이거나 고문할 수 있어 좋긴 한데. 무인도에 고립된 거라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참아야지 별수 있을까.


"아. 말이 길었지?“

뾰로통한 얼굴로 한동안 씻지 못한 몸과 더러운 옷을 보며 말하던 그녀 몰래 남자는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포기하지 않고 도망을 치고 있었다.


"너 혼자 남았는데 재미를 봐야지 않을까?“


나머진  죽어버렸으니. 남아있는 사람을 이용해 충분히 재미를 봐야겠지.


"네 애원처럼 바로 죽이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히려 그게 더 걱정일 수밖에 없는데. 그녀는 씩. 웃으며 남자의 등을 발로 밟았다.


"너무 약하네. 너. 스승님이 봤으면 그냥 나가 뒤지라고 했을 것 같아.“

악질 죄수로 수감된 그녀는 우연히 교도소의 안에서 스승님을 처음 만났다. 스승님은 그녀를  것만으로 사람을 죽이는 데 재능이 있다는  알아차리고는 가혹한 훈련을 강제로 시켰다. 무기만 있으면 대부분의 인간들을 상대할 수 있을뿐더러 굳이 무기를 두고 여자의 몸을 단련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 여러 차례 반항을 해 보았는데 부질없는 짓이었다.

어떻게든 날카로운 무기를 만들어 덤비거나 기습을 해도 손수 무책으로 당할 뿐. 그제서야 그녀는 스승님을 이기기 위해 훈련을 받았다. 그렇게 스승님 못지않게 강해진 그녀는 예전에 품었던 스승님을 향한 증오심 대신 존경만이 남게 되었다. 아직도 무기징역으로 교도소에 수감중일 스승님이 이 하찮은 남자들을 보았다면 한숨을 픽 내쉬었을  분명하다.


"그러니까. 네가 쓸모있는 인간이 되도록 만들어 줄게."

나가 뒤쟈야  만큼 한심한 그를 자신이 직접 쓸모있는 놈으로 만들어 주기로 했다. 물론, 그녀의 재미를 충족한 장난감으로써 말이다.

"네가 말한 미친년이 저거야?“

그런 그때. 그녀 자신의 목소리보다 더 매력적인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고, 그녀는 황급히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은발을 허리 부근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적안을 가진 미녀를 눈에 담을 수가 있었다. 차마 못  걸 봤다는 듯이 잔뜩 찌푸려진 표정이 어찌나 예쁜지. 이 세상에는 자신보다 예쁠 게 없을 거라 확신하던 그녀의 생각을 완벽하게 부쉈다. 질투...? 자신보다 예쁜 여자를 봐서 질투할까? 아이돌일 때 자신을 바라보던 선배라는 쓰레기들처럼?


'아... 너무 예뻐.‘

아니었다. 지금 그녀는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데 그것마저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예쁜 외모에 홀린 것으로 모자라서 첫눈에 반해버렸다. 세포 하나하나라도 예뻐 보이는 재희의 외모, 처음으로 사랑을 느낌과 동시에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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