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3화 〉093 이벤트 게임 (93/140)



〈 93화 〉093 이벤트 게임

모습을 드러낸 건 세 명의 여자 참가자들. 재희는 배에서 자신을 성노예로 삼겠다며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여자들이란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드디어 찾았네. 고작 이틀 만에. 킥킥킥.“

 명이 재희에게 눈을 고정하며 웃었다.

"이번 게임에서는 우리보고 승리하라는 신의 계시인가 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던 것이 게임이 시작되며 뿔뿔이 흩어졌던 그녀들은 어제 하루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완동물로 데리고 다니려고 다짐했던 재희까지 이틀 만에 발견하게 되니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어이. 남자. 우리가 기분이 좋거든? 특별히 못 본 척을 해줄 테니까. 여잔 두고 꺼져.“


이제 재미를 볼 텐데. 굳이 살려둘 필요도 없는 남자와 싸움을 벌여 상처를 입거나 몸이 더러워지면 재미를 볼 마음이 사라질 게 분명했다. 그래서 싸움을 피하고자 남자를 풀어주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싫다면?“

남자는 무슨 바람이  건지 수적 열세에 불과하고 재희를 두고 꺼지라는 여자들의 말에 거부하는 의사를 밝혔다.

'애가 왜 이러냐.‘


재희라면 그냥 두고 떠날 거다. 재희의 실력을 알지 못해 짐짝으로 판단하고 있을뿐더러 이성으로서 관심도 아예 없어 보이는데 대체  위험을 부담하고까지 싸우려  건가. 재희와 다르게 사람을 수도 없이 죽여오며 악착같이 버텼다는 게 겉모습으로 보일  명의 여자들인데. 아무리 실력에 자신이 있다고 한들, 수적 열세를 뒤집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자신 있나?‘


그냥 근육을 더럽게 불린 놈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알고 보니 엄청난 실력자일 수도?


"헤에? 죽고 싶나 보다? 창년처럼 벌리라면 바로 벌려서 그런가. 목숨 아까운  모르네. 그저 한 달만 악착같이 살아남으면 되는 걸 굳이 여자 하나 때문에 죽으려고 발악하는 게 정말 한심하다."

남자나 여자들이나 서로 자신이 진다는 선택지를 완전히 배제했다. 여자들이면 이해가 되는데 애는 왜 그렇게 생각할까.


"언니. 내가 조져도 될까?“
"음? 네가?“
"응. 저 새끼. 내가 싫어하는 타입이야.“


튜토리얼 당시 근육질인 남자에게 사정없이 범해지며 살아남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저런 몸을 지닌 남자에게만 여러 차례 강간을 당하며 온갖 수치를 당했던 그녀로서는 다른 사람임에도 정말 찢어 죽이고 싶은 욕망이 피어올랐다.

"알아서 해.“
"고마워 언니.“

한 세트인 나이프를 양손에 들고 남자의 앞에선 그녀는 씩. 웃으며 자세를 잡았다.


"내가 갈까. 네가 올래?“
"......“


완전히 무시하는 듯한 모습. 조금 이질적이네. 남자가 여자에게 그러는 것도 아니고 여자가 남자에게 그러니.

"후회할 거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자 상체도 마찬가지로 앞으로 쏠렸다. 그 상태에서 남자는 길고 거대한 대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웅. 하는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단검을  여자에게로 휘둘러지고,

"읏?!“


대검이라 생각하기엔 무척 빠른 속도에 살짝 당황한 그녀는 뒷걸음질을 쳐서 아슬아슬하게 대검의 날이 상체 바로 앞의 허공을 훑고 지나갔다. 우세는 남자에게 기울어진 상황. 이 상황을 계속 이용하고자 남자는 공격을 계속 이어나기로 한 듯, 자신의  옆으로 되돌아온 대검을 오직 괴력만으로 반작용을 무시한  다시금 가로로 휘둘렀다.

"꺄악?!“


저게 가능이나 한 걸까. 대검으로 저렇게 빠른 연속 공격이. 어찌어찌 단검으로 엑스자를 만들어 공격을 막아보는데 충격까지는 무산시키지 못해 꼴사납게 넘어져 버렸다.

"마지막이다.“

머리 위로 들려진 대검. 남자는 끝을 알리는 말을 하며 대검을 아래로 찍으려던 찰나. 화살이 어깨를 꿰뚫었다.


"큿......!“

1대1 상황을 만들어 주긴 했어도 동료가 죽기 일보 직전인데 가만히 있는 게 이상할 따름. 당연히 그녀의 동료 중 한 명인 곡궁을 든 여자가 화살을 쏘아버린 것이다.

"왠지 안 될 것 같더라.“
"으으......“
"네가 부족한 게 아니라 제가 강한 거야. 저거 꽤 유명하거든?“

국궁을 든 여자는 남자를  알고 있다는 듯이 다시 화살을 장전하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괴력이 엄청나서 전투 센스만 있다면 색깔 등급까지 노려볼 유망주로 불리니까. 애초에 네가 이길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어.“
"힝... 알았으면 말해주지.“
"왜? 네가 간다고 했는데 선배이자 언니인 이상. 하고 싶은 대로 해주는 게 도리지. 안 그래?“
"나빠. 나중에는  알려줘.“
"알았어. 알았어.“


어느샌가 1대1 구도가 2대1 구도로 바뀌어 버렸다. 화살이 남자에게 겨누어져 있으며, 국궁을  그녀의 앞엔 단검을  여자가 지키고  있었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 누가 보더라도 패배는 확실해졌다.

"우린 기회를 줬다?“
".......“


 기회를 발로 찬 건 남자일 뿐.

"잘 가.“

그렇게 목숨을 노린 화살이 쏘아지려던 그때.

"악!“

작은 돌멩이가 날아와 시위를 끊어버렸다. 두 갈래로 찢어진 시위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뛰기 시작했고, 결국은 국궁과 화살, 둘 다 떨어뜨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강한 줄 알았는데. 아니라 실망인걸?“

여자들을 보면 딱히 강해 보이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골드 등급까지 왔을까. 어제 재희가 막 죽인 시체를 보고 뒤늦게 다가와 시체가  예정인 그 남자가 했던 말과 아까전에  남자가 했던 말처럼 예쁜 외모와 여자라는 이점을 이용해 꾸역꾸역 살아남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래서야 누가 누굴 짐짝으로 생각할지.“

못 맞출 걸 대비해서 돌멩이 여러 개를 손에 쥐었는데 한 번에 명중하자 이젠 필요 없어진 돌을 떨어뜨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무슨......?“


찌푸려진 표정. 남자는 믿기지 않는 걸 보았다는 듯이 경악했다.


"저년은 네가 알아서 처리해.“


역시나 놀란 기색이 역력한 단검을  여자를 가리켰다.


"단. 죽이면 안 돼.“
"왜지......?“
"쓸데가 있으니까. 죽이면 안 돼. 물론 몸에도 작은 상처를 입히면 안돼.“
"......“

그게 가능한가. 브론즈 등급에서의 여자라면 가능할지도 모르는데 골드 등급에서 만난 여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힘과 기술 면에서 전부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더라도 상처 하나를 내지 않으며 제압하기란 무척 어려웠다. 도리어 자신이 당할 가능성이 생길 정도로 빈틈을 보이게 된다. 그러면 죽겠지. 괜한 짓을 하다가.

"까라면 까. 뒤지기 싫으면.“


겁도 없는지 무기가 되는 레이피어만을 손에 쥔 채로 여자들을 향해 걸어가는 재희의 모습으로 남자는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알았... 다.“

실력은 형편없는데 자만심에 찌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데 남자의 눈에는 그저 강해보였다. 그것도 무척. 우연히 보았던 미친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인다. 남자의 감이 절대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고 아우성치었기에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죽는  매한가지라 살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선택지. 재희와 싸우는 게 아니라 상처를 입히지 않고 단검을 든 여자를 제압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고생하고.“

발걸음이 멈춰서고, 고개를 돌려 두 명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국궁을 들었던 여자는 재빨리 검을 들었는데 자세가 영 어설펐다. 아마도 여기서 죽인 참가자의 무기를 가져온 거겠지. 화살이 다 떨어질 때를 대비해서.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휘어진 도를 들고 있었다.


"아까 한 말. 그래도 돌려줄게.“


아름답다는 말로도 부족할 미소가 입가에 그려지며.

"운이 정말 좋네? 나보고 돈을 벌라는 신의 계시인가 봐?“

안 그래도 오늘 안으로 여자를 얻어서 성욕을 풀어야 했는데 한 명도 아니고 셋이나 발견하게 되다니. 그녀들의 입장에서는 빠르게 동료와 만났다는 것만으로 행운인데, 다르게 말하자면 불행 그 자체였다. 그 때문에 운이 좋다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헛소리는.“


긴 팔과 긴 바지를 입고 있어 재희의 속살을 볼 수가 없는데 그 대신에 얼굴과 손바닥은 확인할 수가 있었다. 얼핏 보아도 정말 깨끗하기 그지없는 예쁜 얼굴과 손. 금 등급까지 올라오려면 아무리 피부를 관리해 보려 한들 영원히 씻어지지 않는 흉터가 동반할 수밖에 없는데 재희의 몸은 전혀 싸움이란 걸 해 봤다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당연히 헛소리라 치부하며 도를 든 여자가 먼저 달려들었다.


우웅.


뒷걸음을 치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몸이 베였을 게 분명한 날카로운 공격.  공격에 국궁을 들었다가 이제는 검을  여자가 다급히 소리쳤다.


"미친년아! 죽이지 마!“


"그럴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나 진심으로 휘둘렀어.“

그래 보였다. 경기용인 검도가 아니라 실전 검술을 배운 것처럼 발도술과 도를 휘두르는 게 수준급이었으니.


"오히려 긴장해야  건 우리야.“

도를 든 여자가 가장 강한 사람이었는지 그 말 한마디에 검을 든 여자는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그 정도야?"
"그래.“
"고작 한 번 피한 것뿐이잖아?“
"넌  기습을 피할  있어?“
"......“
"못 피하지. 그리고 내 기습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길드 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야.“
"그, 그렇지만 보고 있었잖아? 앞에서 했으니까 피할 수도 있지?“

그녀의 말에 도를 든 여자는 한숨을 픽 내쉬었다. 말은 쉽지 그게 실제로 가능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실전 검술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과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게 바로 발의 움직임이다. 거기에 더해 남자와 여자의 신체 차이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며, 살아남기 위해선 일격으로 적을 빠르게 쓰러뜨리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훈련은 만나는 적을 한 번에 쓰러뜨리기 위해 일격을 수련했다. 시간을 질질 끌었다가는 위험해지는 건 외모가 꽤 예쁜 여자인 자신이었으니.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녀의 일격을 피하는 사람은 몇 없었다. 있더라도 기습할 걸 알려주었지, 언제 움직일 건지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연습 상대가 되어주는 소수의 사람뿐이지. 이렇게 무방비하고 방심한 상태로 피하는 건 말도 안 되었다.

"다시 안 와?“


심지어는 여유롭게 피했다.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그럼 내가 갈게.“


하루 동안 참느라 고생했던 재희는 드디어 여자를 통해 성욕을 풀 생각으로 악귀처럼 웃으며 레이피어를 든 손을 머리 뒤로 젖혔다.

"웃?!“


레이피어가 찔러지며 다급히 도를  앞에 두어 막아보려 했다.

"한 번 죽었네?“


그러나 이미 레이피어의 칼날은 머리카락을 스치고 머리 바로 옆을 지나갔다.


'이, 일부러 안 죽였어?‘

마지막에 옆으로 틀었다. 틀지 않았더라면 얼굴에 구멍이 났을 게 분명한데도 여유를... 아니, 원치도 않는 자비를 주고 있었다.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남자들에게 강간을 당했을 때보다도 더  굴욕감이 밀려오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시발년이......!“


죽이지 않은 걸 반드시 후회하게 해주겠노라 다짐하며 도를 바로 하여 휘둘렀다. 1초도 안 되는 정말 짧은 시간. 재희는 그 시간 동안 몸을 자유자재로 이용해 다시 거리를 벌렸다.


"허억... 허억......“

정말 죽을  있다는 공포. 회심의 공격들이 먹히지 않자 다른 이들에게는 사로잡히더라도 언젠간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왔는데 재희의 앞에서는  생각이 일체 들지 않았다. 단지 여기서 그녀를 어떻게 하지 못하면 분명 죽는  자신이라 판단했다.


"괘, 괜찮아?“
"죽여야 해. 반드시.“
"어...? 갑자기?“
"안 그러면 우리가 죽어.“
"꼭 그래야만 해?“
"그래. 그러니까 집중해. 진짜 죽을 수도 있으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희는 다시 움직였다. 작전 회의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걸까. 아니, 그냥 땀에 젖은 그녀를 보니 흥분해서 한시라도 빨리 성욕을 풀고 싶었다는 욕망 때문이다.

"커헉?“

내찔러진 레이피어는 미끼. 주먹이 배에 내다 꽂히자 짧은 신음성과 함께 허리가 접혔다.


"익!“


무릎까지 꿇어지는 게 여기서 더 싸울 상황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검을  여자는 황급히 검을 휘두르지만 어색할 따름인 공격을 순순히 맞아줄 재희일 리가 없었다.

"끄윽...! 아, 아파!“

손목을 붙잡히고 손목을 붙잡은 재희의 손이 점점 힘이 쥐어지자 끝내 울먹이며 검을 떨어뜨렸다.


"잠시 자고 있어.“

무방비해진 그녀의 목 뒤를 강타해 기절시키고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은 여자까지도 기절시킨 뒤에 재희는 여전히 싸움을 진행 중인 남자와 단검을 든 여자를 바라보았다.

"역시 무리였나?“


분명 이기고 있는 건 남자인데 몸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제압할 수가 없으니 점점 밀리고 있었다. 너무 큰  바랬나 보다. 아무리 무기를 가지고 있더라도  정도면 충분히 잡을  알았는데 과대평가를 한 것 같아 제대로 밥값이나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항복하는 게 어떨까? 너만 남았는데.“
"......!“

재희의 말에 그제서야 바닥에 엎어져 있는 두 명의 여자를 발견하고 경악했다. 검을 든 여자는 국궁이 없으면 근접전은 젬병이라 그렇다 쳐도, 도를 든 여자까지도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한 채 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기가 팍 꺾였다.

"얌전히 따라가자? 응?“
"......“


혼자서 도망칠 수야 있겠는데, 과연  한 달간 혼자서 살아남을 수야 있을지. 그녀는 피가  정도로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손에 들린 단검을 떨어뜨렸다.

"얌전히... 따라갈게.“
"잘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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