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0화 〉090 이벤트 게임 (90/140)



〈 90화 〉090 이벤트 게임

재희는 물론이고, 재희의 여자들까지 오지 말아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빌었던 그 날이 결국 찾아와 버렸다.


"재희야... 조심해야 해요."


지금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려도 전혀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재희의 몸을 끌어안으며 민정이는 말했다.

"걱정하지 마. 괜찮으니까."

괜찮을 거다. 아니, 괜찮아야만 했다. 아마도. 애초에 여기서 죽을 생각은 전혀 없었고 예상치도 못한 만약의 사태가 벌어져서 죽을 것만 같은 상황이 펼쳐져도 아름다운 여자인 재희가 죽을 일은 전혀 없을 거다.  대신에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짓을 당하겠지. 그래도 죽지 않으니 다행일 수밖에.


'씁. 가장 중요한 게 여자인데.‘


고작 골드 등급. 게임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무지막지하게 비싼 술을 사 먹는데 돈을 다 써버려 막상 할 게 없어진 재희는 훈련에 집중을 해 보거나  상황을 파악하는 데 신경 썼다. 그렇게 얻은 하나의 정보. 골드 등급까지 왔다가 벽을 느끼고 참가하길 포기한 여자들이 이번 이벤트에 대거 참가할 거라는 걸. 대부분이 브론즈, 높으면 실버 등급에 여자들이 모여있는데 골드 등급에도 몇 명 있어서 희망을 잃지 않아도 될듯싶다.

원래라면 브론즈 등급 때처럼 여자를 찾으러 싸돌아다닌다면  좋게 못생긴 여자라도 발견할 수가 있구만, 등급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심지어는 어중간한 골드, 플래티넘 등급에는 여자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애써 여자들이 많을 거라고, 쉽게 여자를 찾아 성욕을 풀어가면서 한 달을 버티면 된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지만 불안한 감정은 어디가지 않았다.

"언니... 안 가면 안 돼?“


재희의 실력을 알고야 있지만 걱정되는 건 매 한 가지. 예림이는 불안한 눈빛으로 재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불안해지는 건 재희였다. 그냥 간단하게 잘 될 거라 말하면서 보내주면 어디가 덧나나. 걱정되는  이해하는데. 마음 편하게 사람을 보내줄 때도 있는 법이다.


"주인님.......“

멀리서 그녀들을 바라보던 유지나. 주인이  재희가 사지로 끌려가는 모습을 믿음만 가지고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분해 눈물을 흘렸다.

'반드시... 반드시 강해질 거야.‘

기다리기보단 차라리 함께 사지로 뛰어드는 것이 낫지. 유지나는 반드시 강해져서 재희와 함께 게임에 참가할 거라고 다짐했다.


"조심해. 아직 익숙하지 않으면서 갑자기 골드 등급에 참가하게 되어 수준을 잘 모를 거야. 그러니 몸을 사려. 한 달만 버티면 되니까. 알았지?“
"엉. 알았어.“

한 달이라... 말이야 쉽지 뜻대로 되려나. 그리고 그럴 생각이었던 재희는 사쿠라의 조언에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눈물을 보이고.


"왜, 왜 울어?“


당황했다.

"흑... 걱정되서.“
"괜찮대도 그러네.“
"아니야. 걱정돼. 일단 재희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보긴 했는데 믿을만하지가 않아. 그러니까 조심해야 해. 알았지?“
"알았어. 알았다고.“
"우으... 정말?“


하아. 그리 믿음이 가지 않는 건가. 음... 힘들게 번 돈을 전부 술값으로 탕진하긴 했어도 이렇게까지 걱정을 살 정도로 못난 인간은 아닐 텐데.


"괜찮으... 니까.“


대체 누가  여자를 중견 길드의 길드장이라 생각할 것인가. 새끼 고양이가 출근하는 주인을 애타게 바라보는 모습처럼 보여오자 재희는 자신도 모르게 사쿠라의 머리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 서 있는 호위이자 소꿉친구인 세라가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건드리지 마.'


무시하고 싶은데 그녀는 여자의 몸으로 무려 다이아몬드에 올라선 여자이기에 입 모양을 읽어버린 재희는 살며시 눈을 돌려 사쿠라의 머리에 닿지도 않은 손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머리를 쓰다듬어줄  알고 기대하던 사쿠라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아.. 갔다 올게.“

시간이 다 됐다. 재희는  말을 남기며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민정이와 예림이를 떨어뜨리고 달아났다.

"아... 재, 재희야!“
"언니!“
"재희야!“
"주인님......“

네 명의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부름에 무시한 채, 배에 올라탔다. 마음 약해지지 않게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하... 시발. 가기 싫네.“

가족들의 곁을 2년간 비워야 한다는 생각에 군대도 정말 가기 싫어 미뤘는데. 그보다도 더한 곳에 강제로 끌려가게 되니 가기 싫은 마음이 하늘을 찔렀다. 지금 당장이라도 다리를 다시 놔달라고, 그게  된다면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몸은 차마 움직이지 못했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재희의  전체를 감싸고 지나가며 거대한 배가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멀어짐에 따라 점점 작아지는 섬, 헤븐. 부둣가에 나와 마중을 하던 사람들은 어느새 콩알만 하게 변했다. 이젠  번 다시 돌아가질 못하는 것처럼 벌써부터 그리움이 밀려온다. 사람들의 말소리, 흙의 느낌 등등 사소한 것들까지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손에 다 담다 못해 몇 배가  있어야 채워질 정도로 작아진 헤븐을 바라보던 재희의 곁에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얜 또 뭐야?‘


누구지. 재희는 고개를 돌려 말을 건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어찌나 부러운지. 대여소에서 빌린 무기가 아니라 자신의 것처럼 보이는 대검이 등에 걸려 있었다. 얼핏 보아선 양날에 무게는 꽤 나가면서 크기는 일반적인 대검들과 비슷했다.


"네가 윤재희인가?“
"네. 그런데 누구세요?“
"흠... 골드 등급이라 하기에는 몸이 전혀 잡혀 있지 않군.“

무시다. 누구길래 자신의 이름을 아는 건지, 또 여자가 된 이후로 처음으로 남자가 재희의 예쁜 몸을 음흉한 눈빛으로 감상하는 게 아니라 백 퍼센트로 싸울 만한 힘이 있는지 탐색하는 눈빛으로 몸 전체를 훑었다.


"개인 무기도 없을뿐더러 이렇게 몸을 키우지 않았으면 빠르게 죽겠구나.“


골드 등급이면 과반수가 개인 무기를 가지고 있다. 굳이 개인 무기를 비싼 돈을 들여 맞출 필요는 없는데 목숨이 달린 문제라 전용 무기를 맞추기를 게임 측에서도 권장한다.

"쯧... 사쿠라의 부탁이기는 해도 데리고 다니면 짐짝밖에 더 안 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사쿠라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그여서 빚진 목숨을 도로 내놓더라도 사쿠라의 부탁을 무조건 하나 들어주기로 했었다. 그런데  부탁이 자신과 같은 등급에 참가하는  여자를 게임 내에서 도와달라는 것이다. 이왕이면 사쿠라 본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건만. 간절한 표정과 부탁의 말은 남자의 생각을 변화시켰다. 일단은 그러겠다고 했는데.

"내 방해만 되지 마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아서 헤븐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남자는 떠나갔다. 이해가 되지 않는  아니다. 아무리 초월적인 미녀라도 관심이 없는 남자가 있을 수도 있지. 으응.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재희 자신이 봐도 연약하기 그지없는 몸뚱어리다. 과연 이 가냘픈 몸에서 힘이야 제대로 나올 수야 있으련지, 한 달간 현대식 문명이 하나도 없는 무인도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심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도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말이 있지.“


기분이 나쁘네. 이런 몸으로 골드 등급 게임에 왔다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혼자서 살아남을 실력이 있다는 건데. 그저 겉모습만으로 확신해 버리니 게임 안에서 모가지를   버릴까 하는 잔인한 생각이 들어왔다. 그러나 사쿠라의 부탁이라 했으니 굳이 도와주려는 사람을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죽여버릴 이유 따윈 없다.


정말 눈을 의심할 정도로 재희의 아름다운 외모에 무관심한 그, 저 남자라면 등을 맡길 수가 있을 것만 같았다. 당연히 의심 많은 재희에게 완전히 인정을 받는다면. 아직까지는 믿을 만한 남자인지 의심이 된다. 모두 다 연기였다면, 눈치 좋은 재희의 눈조차 속인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연기였다면 나중에 큰코다칠 게 분명하니 방심은 금물이다.

뭐... 게임 안에서 만날 수야 있을지는 모른다. 넓은 무인도에서 대충 만날 장소를 정해두지도 않았으니 우연히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운 좋게 만난다고 할지라도 멀쩡한 모습일지, 아니면 싸늘한 시체가 되어서 발견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나 재희나.

"일단은 배제하지 뭐.“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 적이 가장 까다로워 신경을 많이 써야 하긴 해도 게임 안에서 곧장 만날 것도 아니기에 눈을 돌리기로 했다.

"야... 시발. 존나 예쁘네. 내가 맨 처음 발견해서 한 달간 성노예로 삼고 만다.“
"미친놈. 되겠냐? 내가 있는데. 킥킥킥.“

먼저 시선이 닿은 남자  명. 그들은 재희가 여자라고 단단히 무시한  아름다운 외모를 칭송하며 어서 빨리 범하고 싶다는 욕망을 표출하였다. 다음은 여자 무리.

"야야. 저 씨발년이 쳐다본다.“

재희의 시선을 발견한 한 여자가 근처에 있던 두 여자의 몸을 쿡쿡 찌르며 알려준다.

"와. 예쁘긴 존나 예쁘긴 하네.“


여자가 봐도 감탄밖에 나오는 외모.

"나 이상하게 흥분되네. 하핳.“
"오오. 그럼 우리 저 여자를 개처럼 데리고 다닐까?“
"그거 좋네?“

그녀들은 골드 등급까지 올라오면서 성노예로서 살아남은 적이 비일비재했다. 당연했다. 약하면 죽는 약육강식인데 여자란 이점을 이용해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하니. 오줌을 받아먹으라면 먹고, 똥을 먹으라면 먹고, 때려서 흥분하는 새끼면 맞으면서 좋은 듯 앙앙댔다.


그렇게 살아남으며 돈을 벌고, 천천히 강해진 그녀들은 자신들에게 했던 남자들처럼 똑같이 약한 남자들을 사로잡아 성노예로 부렸다. 한 달이라는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 동안. 그런데 지금. 못생기거나 뚱뚱하거나 하는 못난 남자들이나 여자들은 가차 없이 죽여온 그녀들은 생전 처음으로 은발과 적 안을 가진 여자에게 성욕을 푸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나 저 몸에다가 채찍질하고 싶다.“
"미친년아. 안 그래도 약해 보이는데 그러다 뒤진다.“
"그런가? 그래도 하고 싶은데... 으.“

정신이 나갔네. 아니 저게 정상인가. 제정신을 유지한 채 여기서 살아남을 수 없으니. 재희는 물론이고 이 배에 올라탄 참가자 전부가 미친 연놈들일  분명했다.

'그래도  예쁘긴 하네.‘

거리가 있어 재희가 못 들을 거란 생각에 온갖 음란패설을 마음껏 짓거리지만 전부 다 들린다. 그래도 외모는 평타를 치니 봐주기로 한다. 대신 게임 안에서 만나면 재희가 아니라 자신들이 성노예가 되겠지만. 재희는 그녀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바로 대여소를 찾은 재희는 이번 게임에서 한 달간 함께할 무기인 레이피어를 찾았다.


"흠... 그냥 받을  그랬나?“


사쿠라는 골드 등급이라면 기본적으로 개인 무기가 있어야 한다며 재희가 주로 쓰는 레이피어를 주문 제작해 깜짝 선물했다. 그러나 주는  하나 없이 받는 것만 있으면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는 노릇. 거기다가 정말 유명한 대장장이에게 부탁했는지 검 가격이 억이나 하는데 그걸 사쿠라는 자신의 사비로 샀다 하지만 선물을 주기 전 세라가 와서 귀띔했다.


길드 예산으로 산 거라고, 억이나 하는 검을 선물로 줄 재력이 있으면 이미 사쿠라와 자신은 헤븐에서 나가 떵떵거리며 바깥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눈치가 보인 재희는 자신이 나중에 돈을 모아서 그녀에게서 사겠다는 말을 하며 거절했는데 막상 대여소의 레이피어를 손에 쥐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무게나 검날이나 광택 등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
잠시 들었을 뿐인데 선물 받은 레이피어에 대한 정보는 이미 머릿속에 똑똑히 저장되어 있었다. 대여소의 레이피어보다 가볍고, 검날은 더 날카롭고, 광택과 디자인이 더 아름다워 욕심이 났는데. 차라리 그냥 받은 뒤에 할부로 돈을 지불했어야 했나? 아쉽네. 아쉬워. 지금쯤. 누가 써주길 빌면서 짱박혀 있을 걸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걸로 할게요.“


대여소에 있는 직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네. 윤재희 씨. 조심히 써주시길 바랍니다.“


접대 최고 레벨인 직원은 재희의 외모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보기 좋은 미소를 그리고선 카드를 돌려주었다.

'편하네 이거.‘

이 카드 하나만으로 모든  가능했다. 물건을 사거나 빌리는 게. 바깥에서 카드를 긁는 것처럼 단말기에 긁어대면 모든 정보가 한 번에 저장되니  얼마나 편한가. 완전 21세기 중반이나 후반에 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수고하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윤재희 씨. 그리고 무운을 빕니다.“

싱긋.


의미심장한 미소. 재희는 별거 아니라 판단하며 대여소를 나와 다시 갑판 위로 올라왔다. 그런 재희의 모습에 남자들이 다가와 이름과 정보를 캐물었고, 여자들도 때때로 다가와 질문을 툭 던져댔다. 당연히 남자에겐 관심 없고, 눈에 띄게 예쁜 여자가 없어서 무시하거나 강하게 대응해 떨어뜨렸다.

"......“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게임을 진행할 무인도가 재희의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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